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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217화 (217/326)

< 공허의 산맥 너머 >

공허의 산맥 너머로도 숲이 쭉 이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건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그 뒤로는 죽음의 땅이 펼쳐져 있었다.

마치 숲의 끝부분이 삶과 죽음의 경계라도 되는 것 같은 모양새였다.

그리고 죽음의 땅 중심에 거대한 탑이 서 있었다.

현석은 그 탑이 무엇인지 안다. 저건 신의 파편이었다. 카이로스의 나머지 반쪽 영혼이 봉인되어 있던 탑이기도 했다.

역시 두 세계가 하나로 모였다.

이것이 세 번째와 네 번째 신의 파편이 가지는 의미였다.

* * *

다들 초롱초롱한 눈으로 용에서 내리는 현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현석은 그들을 슥 둘러봤다.

확실히 이젠 제대로 도움이 되고 있었다. 애써 키운 보람이 느껴졌다.

솔직히 현석은 자신이 이렇게 빨리 강해질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물론 회귀해서 미래의 정보를 다 아는 상태에서 성장하는 거니 예전보다 훨씬 빠른 레벨업이야 너무나 당연했다.

하지만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그때와는 전혀 달랐다.

현석도 성장이 빨랐지만, 전체적으로 플레이어들의 성장이 빨라졌다.

그리고 던전에 관련한 발전 속도도 더 빨라졌다. 회귀 전에는 아직 나오지 않았던 물건이 덜컥 나오기도 했다.

어쨌든 그렇게 성장이 빨라서 처음 세웠던 계획을 좀 수정해야 하지 않나 생각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함께 할 수많은 동료를 만들어 렉스턴 에너지에 대항할 계획이었다.

한데 성장이 너무 빨라서 이대로는 굳이 동료를 만들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이 모두 사라졌다.

변수가 너무 많았다. 혼자서는 분명히 한계가 있었다.

이번에 카이로스만 해도 현석 혼자 왔다면 아마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실패했을 확률이 훨씬 높았다.

카이로스가 혼자 나왔다면 충분히 압도했겠지만, 그놈이 부리는 부하들이 문제였다.

이번에 팀 메인퀘스트와 라이언, 추광열이 그놈들을 잡아주지 않았다면, 현석은 아마 이렇게 쉽게 카이로스를 잡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어떻게 됐어요? 어둠의 숲까지 다 숲으로 채워졌죠?”

“저쪽에 산맥도 있잖아요. 거기까지 닿았나요?”

“그보다 용은 왜 탄 거지? 확인할 게 또 있었나?”

일행들은 궁금한 걸 또 우르르 쏟아냈다. 현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근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잠깐 쉬었다가 돌아가지.”

다들 후다닥 현석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마치 선생님의 수업을 기다리는 초등학생 같았다.

“일단…… 이 던전이 다른 던전이랑 연결되었다.”

첫 마디부터 강렬했다. 다들 멍하니 현석을 바라봤다.

“내 생각에 이 던전과 비슷한 규모의 던전인 것 같고…… 아마 그 던전은 퀸급 생성지역의 화이트홀 중 하나인 것 같다.”

확실치는 않지만 그렇게 추정할 수 있었다.

퀸급 던전 생성지역의 화이트홀은 다들 이런 식으로 거대한 세상을 이루고 있었다.

회귀 전에는 화이트홀과 연결된 세상 자체가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대단한 화제가 되었다.

하지만 교류는 없었다. 그저 전쟁만 있을 뿐이었다.

충분히 전쟁의 가치가 있었다. 그곳은 자원의 보고였다. 아직 전혀 개발되지 않은 무수한 자원들이 지천에 깔려 있었다.

게다가 이곳에서 얻을 수 있는 아티팩트는 또 얼마나 대단한가.

마수만 사냥해도 얻을 수 있는 것이 많은데, 전쟁을 통해서는 얼마나 많은 걸 얻을 수 있겠는가.

어쨌든 회귀 전에는 그런 식으로 역사가 흘러갔다.

현석은 이번에는 그걸 좀 뒤집고 싶었다. 그래서 미리 화이트홀을 다 선점한 것이다.

아마 지금 당장은 전쟁을 일으키고 싶어도 못 할 것이다.

이쪽 세상의 힘은 결코 만만치 않다. 플레이어들도 충분한 성장이 필요했다.

회귀 전에는 이 모든 화이트홀을 렉스턴 에너지가 장악했다. 던전 속 세상이고 뭐고 다 그들의 것이었다.

그러니 세계를 지배하겠다는 야욕을 불태우는 것 아니겠는가.

“자, 잠깐! 지금 퀸급 생성지역이라고 했나? 그런 게 있었어?”

“그건 나중에 얘기하지.”

현석은 그 부분에 대한 설명은 뒤로 미루고 나머지 얘기를 했다.

화이트홀에 대한 것, 그리고 거기에 연결된 세상등에 대해 대략적이나마 설명해 주었다.

현석의 설명을 열심히 들은 일행들은 다시 질문을 시작했다.

“대체 그런 건 어떻게 알았어?”

라이언의 질문이었다. 이건 패스했다. 굳이 답해줄 이유가 없었으니까.

현석이 고개를 돌려 손을 번쩍 들고 있는 류지혜를 쳐다보자, 라이언이 투덜거렸다. 사실 그도 현석이 답해줄 거라고 믿고 한 말은 아니었다.

솔직히 여기까지 얘기해주고, 함께 이런 일을 했다는 것 자체가 즐겁고 기뻤다.

왠지 진짜 같은 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으니까.

라이언이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류지혜가 물었다.

“중국과 인도 쪽에 있는 퀸급 생성지역에도 화이트홀이 있는 거 아니었나요? 각각 두 개씩?”

“맞다.”

“우리 쪽에 있는 거야 들어가지 말라고 하셨으니 안 들어갔지만…… 과연 그쪽도 그럴까요?”

현석이 피식 웃었다.

“상관없다.”

“예? 하지만…….”

“굳이 독점할 생각 없다. 들어가고 싶으면 마음대로 하라고 해. 외부에 알리지만 않으면 상관없다.”

현석의 답에 류지혜는 물론이고 다른 모든 일행이 미심쩍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현석은 문득 슬슬 그럴 때가 되긴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미있겠네.’

현석의 입가에 떠오른 미소를 본 일행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 화이트홀에 대한 걱정을 깨끗이 접었다.

현석이 저런 웃음을 보일 때는 상당히 불쌍해지는 사람이 나오곤 한다는 걸 이제 슬슬 다들 눈치채고 있었으니까.

* * *

중국에 있는 퀸급 던전 생성 지역의 관리는 생각보다 잘 되고 있었다.

장춘의 힘이 컸다.

중국 쪽 퀸급 생성지역은 중국의 흑시, 그리고 이집트의 피라밋 암시장, 그리고 한국의 미래산업이 동시에 관리했다.

그리고 그 모든 관리의 총 책임자가 바로 장춘이었다.

장춘은 사실상 현석이 꽂아줬으니 미래산업의 인물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흑시에서도 별로 반대하지 않았다. 장춘은 제법 유명한 사람이었다.

어쨌든 천하제일인 아닌가.

이곳의 룰은 아주 간단했다.

순서에 맞게 던전을 돌며, 화이트홀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그게 전부였다.

순서가 어긋나면 한동안 개점휴업 상태가 된다. 던전이 다시 나타날 때까지 시간이 제법 오래 걸리기 때문이었다.

그걸 알기에 순서를 지키는 일에는 다들 신경을 많이 썼다.

하지만 화이트홀에 들어가지 말라는 지시는 논란이 계속되었다.

가끔 몰래 들어가려는 놈들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장춘의 눈을 피하지 못했다.

장춘은 자다가도 화이트홀에 접근하는 놈들이 있으면 귀신같이 나타나 그들을 막았다.

그리고 미래산업에서 파견된 사람들도 주로 화이트홀을 감시하는 위주로 근무를 했기에 쉽사리 화이트홀에 들어갈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기회가 왔다.

장춘도 사람이니 항상 던전 생성지역에서만 지낼 수는 없었다. 가끔 밖에 나가기도 하고, 또 어떨 때는 나가서 며칠 혹은 일주일 정도 있다가 오기도 했다.

그럴 때는 미래산업에서 더욱 철저히 감시하곤 했다.

문제는 흑시에서 그동안 참을 만큼 참았다는 점이었다.

장춘이 있었다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지만, 지금은 마침 장춘이 나간 상황이었다. 아마 일주일은 있어야 돌아올 듯했다.

딱 그 시점에 맞춰 흑시의 플레이어 30명이 어슬렁거리며 나타났다.

그들은 흑시에서 고르고 고른 정예들이었다. 이번에 작정하고 화이트홀을 확인하기 위해 준비한 자들이었다.

“무슨 일입니까?”

미래산업에서 파견된 플레이어들이 다가오는 흑시의 플레이어들을 막으며 물었다.

미래산업에서 파견된 플레이어들은 보통 레드드래곤 길드 소속인 경우가 많았다.

이번에는 레드드래곤 길드 절반에 나머지는 중소 길드가 해체되면서 미래산업에 흡수된 플레이어들이었다.

상대적으로 레드드래곤 길드의 플레이어들이 더 뛰어났다. 레드드래곤 길드는 여전히 플레이어의 성장을 정책적으로 지원해서 타 길드에 비해 하나하나가 강력했다.

레드드래곤 길드는 명실공히 한국 제일의 길드였다.

그래서 만일 이곳을 지키는 플레이어들이 모두 레드드래곤 길드에서 파견된 자였다면 흑시의 플레이어들이 고작 30명으로 어떻게 해볼 수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미래산업 소속 플레이어의 비율이 높았다. 흑시에서도 그걸 파악하고 딱 타이밍 맞춰 화이트홀 진입을 시도한 것이다.

“화이트홀을 그쪽에서 독점한다는 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흑시 측 플레이어 중 하나가 앞으로 나섰다. 그의 얼굴에는 비웃음이 가득했다.

시비를 걸자고 나온 게 확실했다.

미래산업 측 플레이어들 사이에 긴장감이 쫙 내려앉았다.

“독점이 아니라 때가 될 때까지 일단 금지한 겁니다. 상부의 지시를 따르지 않겠다는 뜻입니까?”

“우리는 생각이 좀 다른데 말이야. 정말 막을 건가? 힘 대 힘으로 하면 그쪽이 좀 불리할 텐데?”

흑시 측 플레이어가 말이 살짝 거칠어졌다. 표정이나 기세도 마찬가지였다.

“수는 같은데 어디가 불리할지는 해봐야 알지.”

레드드래곤 길드의 플레이어가 앞으로 나섰다. 그는 이를 드러내며 사납게 웃었다.

당장에라도 달려들 것 같은 자세로 손은 허리춤의 검을 꽉 쥐었다.

“수가 같다고? 누가 그래?”

흑시 측 플레이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과장되게 지으며 말했다.

그러자 사방에서 사람들이 나타나 우르르 다가왔다. 척 보기에도 그 수가 수백 명은 되는 듯했다.

“이런 미친! 외부에서 사람을 데려온 건가!”

이곳에 대한 비밀은 철저히 지키기로 했다. 한데 외부인을 끌어들였다는 건 진짜 뒤통수를 제대로 치겠다는 뜻이었다.

“외부? 누가 외부래? 우리 흑시를 너무 우습게 여기는 거 아냐? 저놈들 다 우리 애들이야.”

그 말에 레드드래곤 길드원이 질린 눈으로 사방을 둘러봤다.

역시 흑시였다. 아마 저들도 흑시의 사람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할 것이다.

‘응?’

레드드래곤 길드원은 뭔가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묘한 위화감이 들었다.

“저놈들 플레이어가 아니야!”

레드드래곤 길드원이 위화감의 정체를 알아차리고 소리쳤다.

그 순간 수백 명의 일반인들이 몽둥이와 쇠파이프를 들고 우르르 달려들었다.

치열한 싸움이 시작되었다. 물론 거의 일방적으로 화이트홀을 지키는 플레이어들이 몰아붙이는 싸움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흑시의 플레이어 30명은 그 틈을 이용해 유유히 화이트홀에 들어갔으니까.

“젠장! 손에 사정을 두지 마!”

더 심하게 싸우려는 찰나, 남은 사람들이 우르르 도망쳤다. 그들의 목표는 딱 여기까지였다.

레드드래곤 길드원들과 미래산업의 플레이어들이 허탈한 표정으로 도망치는 놈들과 화이트홀을 번갈아 바라봤다.

* * *

흑시의 플레이어들은 화이트홀에 들어가자마자 자세를 낮추고 사방을 주시했다.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위험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일단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곳은 넓은 들판 한가운데였다. 사방으로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은 들판이었다.

들판에는 발목쯤 오는 풀이 쫙 깔려 있었다.

“보통 화이트홀이랑…… 좀 다른가?”

“비슷한 거 같은데? 좀 더 넓을 것 같긴 하네.”

그렇게 화이트홀에 대한 느낌을 서로 나누고 있을 때, 한 사람이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응? 저기 뭐가 있는데?”

“뭐가?”

다들 그쪽을 바라봤다.

뭔가 검은 연기 같은 것이 저 멀리 쫙 깔려 있었다.

“연기 같은데?”

“뭔가…… 좀 불길하지 않아?”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일단…… 저쪽으로 조금만 가볼까?”

“퇴로 확보하는 거 잊지 말고.”

그 순간 그들의 뒤쪽에서 거대한 폭음이 울렸다.

꽈아앙!

다들 온몸에 충격을 받으며 앞으로 훅 날아갔다. 하지만 그들은 나름 한가락 하는 플레이어들이었다.

억지로 균형을 잡고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뒤를 확인했다.

“저게…… 뭐야?”

“스켈레톤인가?”

언데드들이 출구 앞에 진을 치고 있었다. 거대한 스켈레톤들이었다.

방금 전의 충격은 저 스켈레톤들의 공격이었던 모양이다.

“일단…… 저놈들을 처리하고 돌아가야 할 것 같은데?”

다들 거기에는 동의했다. 한데 그 순간, 그들 중 하나가 멍한 표정으로 손을 들어 뒤쪽을 가리켰다.

“왜? 뭔데?”

모두의 시선이 손가락이 가리키는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대로 얼어붙었다.

아까 봤던 검은 연기는 전부 언데드였다.

그것도 전부 거대한 스켈레톤이었다. 어마어마한 속도로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도망쳐!”

다들 출구를 향해 달렸다. 하지만 앞에도 스켈레톤들이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 절망이 가득 드리워졌다.

< 공허의 산맥 너머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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