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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216화 (216/326)
  • < 세 번째 파편 >

    왜 그랬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래야 한다고 굳게 믿었다.

    현석은 아공간에서 마두스의 영혼과 영생의 구슬을 꺼냈다. 영생의 구슬은 카이로스의 영혼이 깃들어 있으니 그것 역시 영혼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네 개의 증표도 꺼냈다.

    후웅! 후웅! 후웅! 후웅!

    네 개의 증표에서 영혼의 조각들만 쏙쏙 빠져나가 마법진에 흡수되었다.

    놀랍게도 권능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저 영혼만 정확히 빼간 것이다.

    흐어어어어어.

    귀곡성이 울렸다. 마법진으로 빨려 들어가는 마두스의 영혼이 내는 소리였다.

    결국 마두스의 영혼도 마법진 속으로 사라졌다. 허공을 채운 입체 마법진이 더욱 밝은 빛을 내뿜었다.

    역시 이게 정답이었다. 저 마법진을 가동시키려면 영혼이 필요했다. 그것도 마수나 마족화된 영혼이 말이다.

    마지막 남은 건 영생의 구슬이었다.

    이건 현석이 단단히 봉인해 놨기에 쉽게 흩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마법진이 본격적으로 가동하기 시작하자 얼마 버티지 못했다.

    쩌저저저저적!

    영생의 구슬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구슬의 표면을 이루고 있는 것은 현석의 마력과 죽음의 마력을 섞어서 만든 제3의 마력이었다.

    그 중에 죽음의 마력이 숭숭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버티지 못하고 금이 간 것이다.

    쩡!

    결국 구슬이 깨졌다.

    슈아아아악!

    영생의 구슬에 모여 있던 죽음의 마력과 카이로스의 영혼이 순식간에 마법진으로 빨려들었다.

    화아아아아악!

    지금까지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빛이 마법진에서 뿜어져 나왔다.

    죽음의 마력은 결국 생명체의 영혼에서 뽑아낸 힘이다. 즉, 영혼을 정제해 만든 마력이라 할 수 있었다.

    ‘죽음의 마력이었구나!’

    이 탑의 마법진이 원하는 힘은 영혼이 아니라 영혼이 품은 죽음의 마력이었다.

    현석은 고개를 들어 허공을 가득 채운 마법진을 올려다봤다.

    ‘죽음의 마력…….’

    사실 좀 의외이긴 했다. 신의 파편이 죽음의 마력을 원할 줄이야. 하지만 이해할 수는 있었다.

    죽음의 마력도 필요하니 원하는 것 아니겠는가. 신의 입장에서 말이다.

    어쨌든 현석은 이번 신의 파편을 보면서 신이 분명히 뭔가 원하는 것이 있어 이것들을 만들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냥 쪼개진 게 아니었다. 의도를 갖고 쪼갠 것이 분명했다.

    현석이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점점 빛이 강해졌다. 현석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이럴 때가 아니었다. 그냥 저렇게 두면 안 된다.

    기존 신의 파편을 깨웠을 때를 생각해보면 저기에 자신의 마력과 의지를 얹어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파편을 깨울 수 있고, 또 보상도 제대로 받을 수 있다.

    현석은 지그시 눈을 감고 허공을 가득 채운 입체 마법진에 집중했다.

    현석의 마력이 입체마법진에 부드럽게 진입했다.

    여러 번 해본 일이라 그런지 아주 자연스러웠다. 현석은 자신의 마력 성질을 조금씩 변화시켜봤다.

    어쨌든 여기 있는 건 죽음의 마력이다. 그러니 자신의 마력도 죽음의 마력에 맞게 변형시켜야 한다.

    기본적으로 죽음의 마력은 어둠 속성에서 나온다고 판단해 마력에 어둠 속성을 담았다.

    그리고 천천히 변화를 시도했다.

    사실 마력 변환은 거의 처음 해보는 거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신선하고 까다롭고 난해했다. 하지만 재미는 있었다.

    새로운 도전 아닌가. 아마 이걸 제대로 해내고 나면 마력에 대한 관점이 새로이 열릴지도 모른다.

    그리고 계속해서 관점을 확장해 나가다 보면 새 경지에 발을 들이게 될 것이고 말이다.

    현석은 더욱 깊이 자신의 마력에 침잠해 들어갔다.

    이내 죽음의 마력과 비슷하게 마력을 변형시키는 데 성공한 현석은 자신의 마력에 모은 의념을 집중했다.

    후아아아악!

    순식간에 영혼이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현석의 의지는 신의 파편에 올라탔다.

    거대한 시야가 열렸다.

    ‘이게 뭐지?’

    현석의 시야는 이 근방을 비추지 않았다.

    근방이었다면 응당 마수왕의 탑과 그 근처에 있을 동료들의 모습이 보여야 하는데, 전혀 그런 것이 보이지 않았다.

    탑이 하나 보이긴 했다. 하지만 단언컨대 저건 절대 마수왕의 탑이 아니었다.

    마수왕의 탑과 비슷하게 생기긴 했다. 새까만 기둥모양의 탑이었다. 하지만 훨씬 더 크고 높았다.

    그리고 세밀한 부분이 달랐다. 표면에 오돌토돌한 돌기가 무수히 깔려 있었다.

    ‘게다가 저 무지막지한 수의 언데드는 대체 뭐지?’

    하늘 높은 곳에서 보고 있으니 탑과 그 주변 아주 멀리까지 모든 상황을 눈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탑 근처에 언데드들이 바글바글했다. 한데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대체 어디까지 있는 거지?’

    현석이 그 생각을 한 순간 시야가 훨씬 더 위로 쭉 올라갔다. 더 넓은 공간이 한눈에 들어왔다.

    끝이 없을 줄 알았던 언데드 무리에도 끝이 있었다. 그리고 그 끝은 놀랍게도 전투 중이었다.

    언데드들이 밖으로 우르르 몰려나가려 하고 있었고, 그것을 인간의 군대가 막고 있었다.

    아니, 인간의 군대만이 아니었다. 각종 이종족의 군대가 언데드들과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하지만 애초에 싸움이 될 리 없었다. 언데드는 지치지 않는다. 하지만 생명체는 결국 지친다.

    인간의 군대는 싸우다가 지치면 뒤로 물러나고 그때까지 쉬고 있던 부대가 앞으로 나와 언데드와 싸우는 방식으로 전장을 유지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조금씩 뒤로 밀려나고 있었다.

    생명체의 죽음은 곧 새로운 언데드의 탄생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땅은 언데드에게는 축복과도 같은 장소였다.

    언데드는 핵이 완벽하게 박살 나지 않는 한, 끝없이 회복하고 재생했고, 일반적인 다른 언데드보다 훨씬 강했다.

    ‘꼭…… 어둠의 숲에 있는 놈들 같네.’

    어둠의 숲에 있던 언데드들이 딱 저랬다.

    인간이나 이종족들 안에는 현석 일행만큼이나 강한 자들도 다수 섞여 있었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벌써 전장이 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한계라는 게 있었다. 또한 언데드 중에도 엄청나게 강한 놈들이 섞여 있었다.

    카이로스의 친위대 스켈레톤 같은 놈들 말이다.

    어쨌든 그로인해 전황은 점점 인간들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보아하니 지금도 굉장히 오랫동안 버틴 모양이었다. 하루이틀 버틴 게 아니라 몇 달, 아니 몇 년은 버틴 듯했다.

    슬슬 한계라는 것이 현석의 눈에도 확연히 보였다.

    현석은 이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이제 저들도 쉴 수 있겠군.’

    현석이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기 무섭게 새까만 탑이 회전하기 시작했다.

    아니, 탑이 회전하는 게 아니라 탑을 둘러싼 죽음의 마력이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사방에 깔린 죽음의 마력을 서서히 회수했다.

    꽈르르르르르!

    탑 근처에 있던 언데드들이 허무하게 무너졌다. 육체를 유지하는 핵에 담긴 죽음의 마력까지 모조리 빼앗긴 것이다.

    순차적으로 언데드들이 무너지는 광경은 엄청난 장관이었다.

    마치 도미노처럼, 아니 뼛가루의 해일이 일어나기라도 한 것처럼 탑을 중심으로 커다란 동심원이 세력을 확장해 나갔다.

    꽈르르르르르릉!

    언데드들이 무너지는 소리가 마치 천둥처럼 세상을 쩌렁쩌렁 울렸다.

    그리고 그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탑을 둘러싼 죽음의 마력이 회전속도가 빨라졌고, 그에 따라 마력 흡입력도 점점 빨라졌으니까.

    언데드들과 싸우던 인간들은 갑자기 가루가 되어 무너진 언데드 군단을 멍하니 바라봤다.

    온몸을 뼛가루가 뒤덮었는데도 아무 신경도 쓰지 못했다.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하느라 머리를 팽팽 굴렸다.

    하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이제 더 이상 언데드 군단의 진군은 없다는 사실 말이다.

    거대한 환호성과 함성이 온 대지를 쩌렁쩌렁 울렸다.

    그리고 대지 한가운데 솟은 탑이 더욱 새까매졌다. 그리고 칠흑의 회오리가 탑 끝에서 하늘로 쭉 솟아올랐다.

    현석은 그 광경을 보며 서서히 신의 파편과 이루었던 동기화가 약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이제 다 끝난 것이다.

    그렇게 막 원래 몸으로 돌아가려는 순간, 현석은 기묘한 광경을 스치듯 확인했다.

    물론 너무 짧은 순간 훅 지나가 버리는 바람에 제대로 보진 못했다. 하지만 그건 분명히 놀랄 만한 일이었다.

    ‘이게 목적이었어?’

    현석은 눈을 떴다. 그리고 위를 올려다봤다.

    어느새 이곳 탑에는 죽음의 마력이 한 톨도 남지 않았다. 여기 있던 모든 죽음의 마력을 그쪽 탑으로 전송한 것이다.

    당연히 이쪽에는 그 반대의 마력이 가득했다.

    이 마수왕의 탑은 생명의 마력으로 꽉 찬 장소가 되었다. 아마 이 주변도 넘실거리는 생명력으로 뭔가 변화가 생겼을 것이다.

    현석은 묘한 표정으로 입체 마법진을 올려다보다가 시선을 내렸다.

    탑의 입구가 열렸다. 이제 볼일 다 봤으니 나가라는 뜻이었다.

    현석은 피식 웃으며 탑에서 나갔다.

    그리고 퀘스트 창을 확인했다.

    [퀘스트-신의 파편]

    [모든 신의 파편을 찾아 그것을 깨워라. 모든 파편을 깨우면 진정한 신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4/8]

    원래 두 개의 파편을 깨웠고, 이번이 세 개째였다. 한데 깨운 파편의 수는 3이 아니라 4가 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두 개의 파편이 연결되어 있었다는 거지.’

    그쪽 신의 파편에 있던 것 역시 카이로스의 영혼 반쪽이었다.

    그 두 영혼이 하나로 된다는 의미가 바로 이런 것이었다.

    어쨌든 현석은 이번에도 거대한 보상을 얻었다.

    그 많은 언데드를 혼자 박살 낸 거나 다름없었다. 대체 레벨이 얼마나 올랐겠는가.

    ‘신의 파편은 레벨업 하나는 확실히 보장해주지.’

    현석이 씨익 웃으며 저 멀리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서서 사방을 둘러보고 있는 일행을 향해 걸어갔다.

    * * *

    “와아…… 진짜, 살다 살다 내가 별 희한한 광경을 다 보네.”

    라이언이 사방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그 말에 모든 일행이 격하게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다들 깜짝 놀랐다. 갑자기 주변에 미친 듯이 풀과 나무가 자라났기 때문이다.

    탑 주변이 순식간에 숲으로 변했다.

    아마 이 숲은 저쪽에 있는 어둠의 숲과 연결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아무래도 이 근처만 숲이 된 게 아니라 굉장히 넓은 범위가 숲으로 변한 것 같으니 말이다.

    “한 번 확인해 볼까요?”

    류지혜가 그렇게 말하고는 나무 위로 휙휙 뛰어 올라갔다. 근처에 있는 나무 중 가장 높은 나무에 올라가서 주위를 둘러봤지만 끝이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더 높이 올라가 봐야 할 것 같아요. 이럴 때 용이라도 탈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용 가진 사람은 저 탑에 들어가서 나올 생각을 안 하고 있으니 포기하는 게 좋을 걸?”

    라이언은 그렇게 말하며 마수왕의 탑을 바라봤다. 주변에 풀과 나무가 잔뜩 자라났는데도 마수왕의 탑까지의 시야는 제대로 확보되어 있었다.

    마치 길이라도 난 것처럼 중간에 빈 공간이 있었다.

    마수왕의 탑을 본 라이언의 눈이 커다래졌다. 탑에서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현석을 발견한 것이다.

    “어? 끝난 건가?”

    라이언의 말에 다들 고개를 휙휙 돌렸다. 그리고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현석이 나오는 걸 보니 이곳에서의 일이 얼추 끝난 모양이었다.

    이제 돌아갈 일만 남았다.

    크락실리아로 가서 레인보우 엘릭서의 제조법에 대해 알아본 다음에 말이다.

    라이언을 필두로 우르르 현석에게 몰려갔다.

    “끝났나?”

    “이게 어떻게 된 거죠?”

    “몸은 괜찮으세요?”

    우르르 쏟아지는 질문에 현석은 일행을 슥 둘러봤다.

    사실 지금은 갑자기 수십 레벨이 오르는 바람에 힘이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넘치고 있었다.

    “잠깐 기다려.”

    현석은 다시 탑으로 돌아갔다. 어차피 몇 걸음 걷지 않았기에 금세 탑 앞에 설 수 있었다.

    위를 슬쩍 올려다본 현석은 탑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탁탁탁탁!

    탑을 평지처럼 밟고 달렸다. 그런데도 떨어지지 않았다.

    굉장히 절묘한 균형감각과 무지막지한 발가락 힘이 만들어낸 광경이었다.

    다들 고개를 위로 치켜들고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봤다.

    “이젠 점점 더 인간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 같네…….”

    류지혜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다들 거기에 대꾸하거나 고개를 끄덕이진 않았지만 속으로 크게 동의했다.

    어느새 현석은 탑 꼭대기에 올랐다. 그리고 사방을 둘러봤다.

    시력이 어찌나 좋아졌는지 탑 주변에 갑자기 자라난 숲이 어둠의 숲까지 덮어 버렸다는 것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중간에 있던 호수에도 수풀이 가득했다.

    이 모든 것을 이룬 어마어마한 생명력은 탑에서부터 나온 것이다.

    그것도 탑이 생명력으로 꽉 채워지는 와중에 물이 튀듯 흘린 여분의 생명력으로만 이뤄낸 결과였다.

    ‘정말…… 굉장하긴 하네.’

    확실히 신의 파편이라는 이름에 어울릴 정도의 힘을 가진 곳이었다.

    현석은 사방을 찬찬히 둘러봤다. 그리고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달라졌어.”

    원래 이 숲의 끝은 공허의 산맥에 닿아 있었다. 한데 그쪽 공허의 산맥이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그쪽으로 숲이 쭉 이어져 있었다.

    ‘내 예상이 맞다면…….’

    현석은 즉시 용을 소환했다. 일단 저쪽으로 날아가 제대로 확인해보고 싶었다.

    용에 탄 현석은 공허의 산맥이 사라진 쪽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그리고 산맥 너머의 광경을 확인했다.

    < 세 번째 파편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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