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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215화 (215/326)

< 마수왕의 탑 2 >

새까만 탑이었다. 얼핏 보면 검은 기둥 같았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분명히 탑이었다.

그것이 마수왕의 탑인지 아닌지 다들 확신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현석은 분명히 확신했다.

[마수왕의 탑]

심안을 통해 이름을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

[마수왕의 영혼이 봉인된 탑. 마수왕의 증표가 있어야 들어갈 수 있다. 네 가지 증표를 모두 모으면 마수왕의 영혼이 강림한다.]

‘마수왕의 영혼이 강림한다고? 그래서 내가 얻을 수 있는 게 뭐지?’

대체 안에 들어가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다.

일단 마수왕의 증표 네 개는 다 모았다. 그러니 탑에 들어갈 자격도 얻었고, 들어가서 마수왕의 영혼을 강림시킬 조건도 충족시켰다.

한데 마수왕의 영혼을 강림시키면 과연 뭐가 어떻게 될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영혼이 내 몸을 차지하려 싸우는 건가? 아니면 이 증표에 영혼이 깃드는 건가? 그것도 아니면……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건가?’

애초에 이런 증표를 만들어 세상에 뿌려둔 것부터가 이상한 일이었다.

뭔가 목적이 있지 않고는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카이로스는 목적이 명확했다. 자신의 영혼 나머지 반쪽을 되찾겠다는 목적이 있었다.

그러니 마수왕도 분명 뭔가 목적이 있음이 분명하다.

문득 마두스의 영혼이 떠올랐다. 마두스의 영혼이 마수왕의 영혼을 흡수하면 어떻게 될까?

과연 마수왕의 영혼이 마두스의 영혼에 흡수당할까? 아니면 둘이 충돌해 소멸할까?

그것도 아니면 둘이 섞여 전혀 새로운 무언가로 다시 태어날까?

‘그럼 영생의 구슬도 흡수할 수 있나?’

영생의 구슬에는 카이로스의 영혼이 녹아들어 있다. 그걸 마두스의 영혼이 과연 흡수할 수 있을까?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머릿속이 너무 복잡해졌다. 현석은 고개를 흔들어 상념을 털어냈다.

‘내가 언제부터 망설였다고. 일단 부딪쳐 보는 거지.’

결심을 굳힌 현석이 발걸음을 옮겼다. 이내 마수왕의 탑 앞에 도착한 현석은 일행을 돌아봤다.

“여긴 나밖에 못 들어가는 곳이니까 다들 기다리고 있어. 혹시 마수가 나타날지 모르니 조심하고.”

다들 어이없는 눈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그냥 저렇게 대책 없이 가 버리면 어쩌란 말인가. 심지어 저 안에 들어가면 언제 다시 나올지도 모르지 않나.

현석이 아공간에서 컨테이너 박스 하나를 꺼냈다.

다들 황당한 눈으로 현석과 컨테이너 박스를 번갈아 바라봤다.

“이게 뭐냐?”

라이언의 물음에 현석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밥.”

“뭐?”

“밥이라고요? 그러니까 먹을 것?”

류지혜가 얼른 말을 받았다. 그리고 컨테이너 박스의 문을 열었다.

“헉!”

그녀는 깜짝 놀라 헛숨을 들이켰다. 마치 마트의 식품코너를 통째로 옮겨 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아니, 식품 창고를 통째로 가져온 것 같았다.

컨테이너 박스 안에는 각종 식재료와 인스턴트식품, 심지어 과자와 초콜릿에 음료수까지 다양한 음식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이, 이게 다 뭔가요?”

류지혜가 놀란 눈으로 현석을 바라보며 물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어야 했다.

현석이 그 자리에 없었기 때문이다.

다들 황당한 표정으로 현석을 찾았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마수왕의 탑을 바라봤다.

현석의 등이 잠깐 보였다가 사라졌다. 탑의 문이 저절로 닫히면서 말이다.

“진짜 황당하네.”

라이언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하지만 이해는 했다.

“그러니까 그 마수왕의 증표인가 하는 게 있어야 한다고 했지? 그걸 가지고 있는 사람만 들어갈 수 있으니까 우릴 여기다가 방치한 거로군?”

라이언의 말에 류지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셈이죠. 뭐, 그래도…….”

그녀는 고개를 돌려 컨테이너 박스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이런 게 있으면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을 것 같지 않나요?”

류혜연이 그 말에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사실 상황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다.

그녀는 마수왕의 탑을 바라보며 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부디 무사히 돌아와 주세요.’

그런 류혜연의 모습에 다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동안 말은 잘 안 걸었지만 그녀가 현석을 바라보던 눈빛을 알아차리지 못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말없이 양세희가 류혜연의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려 주고는 컨테이너 박스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환호성과 함께 각종 먹거리들을 잔뜩 들고 나왔다.

그 뒤로 당분간 일행들의 파티가 이어졌다.

물론 파티는 길지 않았다. 마수가 나타났으니까.

어둠의 숲에 있는 마수는 모조리 죽었지만, 그곳에서 제법 떨어진 장소인 마수왕의 탑 주변은 달랐다.

다행스러운 것은 여럿이 몰려다니는 마수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딱 한 마리씩 나타났다. 대신 무지막지하게 강했다.

이는 일행을 위해서도 좋았다. 일행은 이곳에서 편안히 쉬고 충분한 식도락을 즐기며 차근차근 강해져갔다.

* * *

탑에 들어온 현석은 문이 닫히는 걸 느끼며 앞으로 한 걸음 움직였다.

쿵!

문이 닫히면서 근처에 날카로우면서도 거친 마력이 회오리쳤다.

아마 현석이 그 자리에 그냥 서 있었다면 그 마력의 회오리에 고스란히 노출되었을 것이다.

탑에 들어오니 알 수 있었다.

이 마수왕의 탑은 그 자체로 거대한 마법진이었다.

안에 들어오니 계단도 없었다. 탑 내부가 텅 비어 있었다. 그리고 내부 벽면에 마법진이 꽉 채워져 있었다.

특이한 것은 벽면의 마법진으로부터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는데, 그 빛이 허공에서 서로 어우러져 새로운 마법진을 입체적으로 만들고 있다는 점이었다.

사실 마법진을 입체적으로 구성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2차원과 3차원은 계단 하나의 차이가 아니다 수십, 혹은 수백 배의 차이가 난다.

심지어 그 신의 파편조차 완벽한 3차원 마법진은 아니었다.

“어쩌면…….”

현석은 또 하나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어쩌면 여기가 또 다른 신의 파편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이곳을 깨우는 방법은 마수왕의 영혼을 강림시키는 것일 수도 있었다.

‘물론 그렇게 간단히 깨울 수 있을 리는 없지만.’

지금까지 두 개의 파편을 깨웠는데, 그때마다 현석이 거기에 개입해 마력을 잘 유도해 내야만 했다.

이렇게 단순히 아이템에 의존해 깨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어쩌면…… 마수왕의 영혼은 신의 파편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거 아닐까?’

현석은 손을 들어올렸다. 현석의 손목에는 네 개의 팔찌가 채워져 있었다.

마수왕의 네 가지 증표였다.

파아아앗!

네 개의 증표가 밝은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네 줄기 빛이 사방으로 뻗어나가 탑을 직격했다.

우우우웅!

탑이 나직이 울음을 토해냈다.

현석은 그 상태로 서서 주위를 둘러봤다. 하지만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탑이 살짝 진동한 게 전부였다.

‘뭐지?’

현석은 감각을 총동원해 주변의 마력 흐름을 파악했다.

‘여기가 아니라 바깥이야!’

탑의 내부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탑 외부에 변화가 시작되었다.

탑이 온통 빛나는 마법진으로 꽉 채워진 것이다. 그 마법진은 주변의 마력을 탐욕스럽게 빨아들였다.

그리고 이내 탑의 벽 안쪽으로 스며들었다.

현석의 감각은 그 모든 변화를 아주 정확히 잡아냈다. 그리고 그것이 무슨 역할을 할지도 대충 파악했다.

‘굉장히 복합적인 마법진이네. 뭔가를 가두고 있다가 풀어준 것 같아.’

그리고 그것이 마수왕의 영혼이라는 건 쉽게 추측이 가능했다.

후우웅!

거친 바람이 불었다. 그냥 바람이 아니라 마력의 바람이었다.

그 마력의 바람은 탑 중앙에서 회오리치며 뭉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반투명한 사내의 모습으로 변했다.

[마수왕의 영혼]

현석은 심안을 통해 그 사내의 정체를 파악하며 그를 빤히 쳐다봤다.

영혼 상태의 마수왕이 서서히 하강했다. 그리고 현석 앞에 사뿐히 내려섰다.

현석은 심안에 집중해 마수왕의 정보를 좀 더 확인했다.

[제국 5대 악인 중 하나인 마수왕 베칸의 영혼. 봉인에서 막 풀려난 상태. 새로 쓸 육체를 찾고 있다.]

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함정이었다. 그것도 마수왕이 직접 만든 함정 말이다.

이런 결과도 충분히 예상했다. 그래서 나름 마음의 준비도 단단히 했다.

“정말로 내 증표들을 다 모은 사람이 있을 줄이야. 고맙구나. 덕분에 다시 살아날 수 있게 되었어.”

현석은 마수왕을 담담히 쳐다봤다.

“이 탑을 어떻게 알게 된 거지?”

마수왕은 어차피 모든 일이 끝났다고 여겼는지 즐거운 마음으로 대화에 응해 주었다.

사실 오랫동안 봉인되어 있으면서 사람이 좀 그리웠는지도 모른다.

“우연히 알게 되었지. 사실 이 탑이 이렇게 변한 건 세상이 뒤집히고 난 다음의 일이야. 그 전에는 아주 평범한 탑이었지.”

“평범했다고?”

현석이 눈을 빛냈다. 원래 평범하던 탑에 신의 파편이 깃들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다른 신의 파편도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았다.

“사실은 날 봉인한 그놈도 봉인 마법진을 안쪽에 새겼는데, 이 탑이 이렇게 변하면서 밖으로 밀려난 거야.”

현석이 손을 들어 증표들을 흔들며 물었다.

“이건?”

“그건 내 영혼의 조각들로 만든 거야. 미리미리 준비한 거지. 역시 준비성이 철저해야 기회가 생기는 법이거든.”

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영혼의 조각을 따로 떼어 거기에 특별한 가공을 한 것이다. 나중에 영혼의 본체를 이쪽으로 이끌어 낼 수 있도록 말이다.

그렇게 하면 봉인이고 뭐고 아무 소용이 없다. 애초에 영혼이 완벽하게 봉인되지 않은 상태가 되니 말이다.

“나름 대단하긴 하군.”

“궁금증은 다 풀렸나?”

현석이 고개를 저었다. 아직 마지막으로 하나가 더 남았다.

“세상이 뒤집혔다는 게 무슨 뜻이지?”

현석의 눈이 별처럼 반짝였다. 이 세상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확실히 알고 싶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지만 말이다.

마수왕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걸 나도 정확히 모르겠단 말이지. 세상이 조각조각 잘려 나갔어. 그래서 카이로스 그 멍청이도 쪼개졌지. 그리고 이 탑이 변하기 시작하더라고. 내가 아는 건 그게 전부야.”

새로울 것도 없었다. 충분히 예상하던 바였으니까. 진짜 궁금한 건 대체 왜 그렇게 되었느냐다. 그리고 이 세상의 진정한 정체가 무엇이냐였다.

“자아. 그럼 슬슬 시작할까? 너도 궁금증을 다 푼 것 같으니 말이야. 죽더라도 덜 억울하겠지. 뭐…… 여기 갇혀 지내는 건 좀 외롭겠지만 말이야.”

마수왕이 음흉하게 웃었다.

그런 마수왕을 향해 현석이 손목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설마 이걸 믿고 그렇게 자신만만한 건 아니겠지?”

현석은 순식간에 팔찌들을 풀어버렸다. 그리고 아공간에 쑥 넣어버렸다.

순간 마수왕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굳이 그걸 뺄 필요가 있을까? 제법 도움이 되지 않아? 그 아티팩트?”

“마수 길들일 때 쓸 만하더군.”

“그렇지? 내가 마수왕이라 불린 이유가 그 권능 때문이야. 내가 가진 네 가지 권능을 이용해서 만든 아티팩트거든.”

현석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이제 권능도 없는 쭉정이라는 뜻 아닌가? 남은 건 달려들어서 강제로 육체를 차지하는 것뿐이고.”

마수왕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현석을 노려봤다.

“내가 권능이 없다고 해서 너 하나 어쩌지 못할 것 같으냐? 난 수백 년 동안 여기 갇혀서 고독과 싸워왔다. 그 간절함을 네놈 따위가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마수왕은 그렇게 외치며 달려들었다.

현석은 그의 말을 충분히 이해했다. 그리고 아마 그게 맞을 거라고 생각했다.

수백 년 동안 고독과 싸워온 마수왕의 간절함과 정신력은 아마 현석을 압도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압도하려면 일단 현석의 몸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현석은 마력을 풀어냈다.

“컥!”

마수왕은 마치 단단한 유리벽에 막히기라도 한 것처럼 현석 바로 앞에서 멈춰 버렸다.

“정신력은 압도당할지 몰라도 마력을 다루는 능력은 내가 아마 훨씬 위에 있을 것 같은데?”

“말도 안 돼!”

마수왕이 마구 달려들었다. 하지만 현석이 쳐 놓은 마력의 벽을 넘지 못했다.

현석은 그렇게 마수왕을 묶어놓은 다음 이곳을 어떻게 깨울지 생각해봤다.

마수왕은 신의 파편과는 아무 관계가 없었다. 그렇다면 그동안 해 왔던 것처럼 마력을 이용해 직접 깨우는 수밖에 없었다.

마수왕부터 해결하는 게 순서였지만, 지금 당장은 마수왕의 영혼을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마두스의 영혼을 꺼내는 건 좋지 않았다. 어쩌면 마두스의 영혼이 마수왕의 영혼에 먹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예감이 들었다면 아마 거의 틀림이 없을 것이다.

현석은 마력을 풀어내 사방 벽에 흘려 넣었다. 그리고 그곳의 마력 패턴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좀처럼 잘 되지가 않았다.

현석은 문득 허공을 가득 메운 입체 마법진을 올려다봤다. 어쩌면 이번 파편의 정답은 저기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쳤다.

첫 번째 파편은 그곳의 마력 흐름에 자신의 마력을 얹어서 해결했다.

두 번째 파편은 생명수를 이용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첫 번째 파편과 같은 방식이었다.

그럼 이번에도 비슷하지 않을까?

현석은 자신의 마력을 허공에 펼쳐진 입체 마법진 위에 얹었다. 그리고 그 흐름에 동화되도록 집중했다.

지이이잉!

허공을 가득 메운 입체마법진에 빛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저 반투명한 마법진이었는데, 거기서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현석은 그 위에 자신의 마력을 얹어 마법진과 서서히 동화되기 시작했다.

“크아아아! 뭐야 이게!”

마수왕의 영혼이 울부짖었다. 그의 몸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있었다.

후우우우웅!

마수왕의 영혼이 거친 마력의 흐름에 빨려들어 입체 마법진과 하나가 되었다.

어이없이 영혼이 소멸된 것이다.

현석은 문득 아공간에 보관 중인 영혼 두 개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것이 이번 파편의 답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현석은 아공간을 열었다.

< 마수왕의 탑 2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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