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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214화 (214/326)
  • < 마수왕의 탑 1 >

    현석은 숲의 변화에는 관심조차 두지 않고 끊임없이 걸음을 옮겼다.

    걸어가며 현석의 몸이 점점 회복되어 가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겉으로 난 상처는 애초에 자고 있을 때 모두 사라졌다. 그때는 워낙 상처가 빨리 아물어서 현석이 다친 줄도 몰랐다.

    하지만 현석이 깨어난 다음에는 다들 현석이 평소와 다르다는 걸 대번에 알 수 있었다.

    그냥 겉으로 보기에도 그랬다. 힘이 모조리 빠져나가 껍질만 남은 사람 같았다.

    그런데 그 빈껍데기 안에 내용물이 쫘악 채워지고 있었다. 일행의 눈에는 딱 그렇게 보였다.

    다들 그걸 보며 혀를 내둘렀다.

    “대체 어떻게 하면 저렇게 되는 거야? 스킬인가?”

    “스킬이겠지. 아마…… 자가 회복 계열의 스킬 아닐까?”

    “그렇겠지. 아무리 그래도…… 와아, 이건 진짜 말이 안 나오네.”

    채 몇 걸음 걷기도 전에 현석은 예전의 포스를 그대로 내뿜었다. 아니, 오히려 예전보다 더 대단해진 것 같았다.

    당연했다. 이번 전투를 통해 레벨이 또 올라갔으니까.

    일행이 수군거리는 소리는 현석의 귀에 고스란히 들어갔다. 다들 굳이 몰래 한 얘기가 아니라서 더 잘 들렸다.

    하지만 현석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은 그것보다는 다른 일로 머리가 복잡했다.

    왠지 일이 점점 복잡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여러 가지 일이 얽히면서 단순하게 일을 풀어나가기 어려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숲을 벗어나 몇 발 걸어가던 현석은 문득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다시 숲을 돌아봤다.

    어둠의 숲에 대한 소문과 정보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애초에 어둠의 숲이 유명해진 이유는 카이로스라는 미친 흑마법사 때문이 아니었다.

    이 숲에서만 얻을 수 있는 귀한 약초 때문이었다.

    한 뿌리에 금화 1000개의 가치가 있는 약초였다.

    금화 하나면 형편이 좀 어려운 가족이 1년을 먹고 살 수 있는 금액이었다.  족하게 한 가족이 1년 동안 살려면 금화 2개면 충분하다.

    한데 금화 1000개라니. 얼마나 효능이 뛰어난 약초인지 알 수 있지 않은가.

    그런 약초를 확인도 하지 않고 그냥 간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현석은 다시 돌아서서 숲으로 향했다.

    “그런데 여기 원래도 어둠의 숲 아니었나? 카이로스 하나 없어졌다고 이렇게 바뀔 수가 있나?”

    숲에 들어서자마자 그들을 반긴 것은 밝은 빛이었다.

    나무가 이렇게 울창한데도 숲은 전혀 어둡지 않았다. 그 이유를 알아내는 건 별로 어렵지 않았다.

    스스로 빛나는 풀이 숲 곳곳에 자라고 있었다.

    그 풀에서 나는 빛이 숲을 더욱 환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마치 숲이 빛나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숲에 다시 들어온 모든 일행이 멍하니 그 광경을 지켜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풀에서 나던 빛이 점점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어?”

    다들 놀란 눈으로 사방을 휘휘 둘러봤다. 모든 풀에서 빛이 사라져 버렸다.

    숲에 다시 어둠이 내려앉았다.

    물론 처음 이 숲에 왔을 때처럼 진득한 죽음의 기운이 서려 있는 건 아니었다. 그저 어두울 뿐이었다.

    “아까 그 빛나는 풀 대체 뭐였을까?”

    “이 숲에 귀중한 약초가 자라고 있다던데 그거 아닐까요?”

    류지혜의 말에 다들 눈을 빛냈다.

    “귀중한 약초?”

    “한 뿌리에 금화 1000개라고 하더라고요.”

    “금화 1000개? 그게 대체 얼마 정도 하는 거야?”

    “글쎄요. 한…… 100억?”

    “뭐어?”

    다들 깜짝 놀라 류지혜를 바라봤다. 그녀는 혀를 날름 내밀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냥 해본 말이에요. 아무튼 엄청나게 비싼 풀이죠.”

    류지혜는 반쯤 농담 삼아 한 말이었지만 그 말을 들은 일행의 눈빛이 달라졌다.

    “우리도 그거 찾자.”

    양세희가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한 뿌리에 100억이라니. 그럼 열 뿌리 뽑으면 1000억 아닌가. 100뿌리 뽑으면 무려 1조다.

    한데 아까 보기에는 숲이 빛나는 풀이 엄청나게 많았다. 100뿌리가 뭔가. 숲의 크기를 생각해보면 만 뿌리도 캘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니 다들 눈이 한 번쯤 뒤집힐 만했다.

    문제는 그걸 뽑았을 때의 소유권이다. 양세희는 슬그머니 현석의 눈치를 살폈다.

    모든 일행이 현석의 얼굴만 빤히 바라봤다. 얼른 결정을 내려달라는 뜻이었다. 마치 아기고양이들이 엄마 고양이에게 젖을 달라고 하는 듯했다.

    현석은 피식 웃고는 말했다.

    “알아서들 해. 자기가 직접 뽑은 걸 내가 무슨 수로 터치하겠어?”

    “이예!”

    양세희가 주먹을 불끈 쥐며 파이팅포즈를 취했다. 그녀는 의욕에 넘쳐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으로 사방을 둘러봤다.

    이제 진짜 문제가 발생했다. 대체 어떤 풀을 어떻게 뽑아야 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럼 수고들 해.”

    현석은 그 말을 남기고 훌쩍 떠나 버렸다. 어찌나 빠르게 움직였는지 그 자리에서 그냥 사라지는 것처럼 보였다.

    다들 멍하니 현석이 서 있던 자리만 바라보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뭣들 하고 있어! 얼른 풀 뽑으러, 아니, 약초 캐러 가자!”

    양세희가 나서서 외치고는 후다닥 달려갔다. 아까 빛나는 풀을 봤으니 기억을 더듬어 어떻게든 찾아보려 한 것이다.

    그걸 본 일행 모두가 황급히 사방으로 흩어져 각자의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일행이 기억을 더듬고 있을 때, 현석은 숲 깊은 곳으로 들어가 느긋하게 심안을 발동시켰다.

    [무지개풀]

    [마력의 정수가 담긴 풀. 죽음의 기운에 오랫동안 억눌렸다가 풀려난 덕분에 내재된 마력이 더욱 정순하고 강해진 상태다.]

    현석은 이 풀이 왜 그렇게 비싼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걸 비싸게 사고판다는 얘기는…… 이걸로 레인보우 엘릭서를 만드는 법이 알려져 있다는 뜻인가?”

    충분히 가능성 있었다. 현석은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렸다. 어쩌면 굳이 렉스턴 에너지에서 정보를 뽑아내지 않아도 마력의 정수를 정제해 레인보우 엘릭서를 만들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현석은 사방을 둘러봤다. 곳곳에서 무지개풀이라는 이름이 겹쳐서 보였다.

    대체 얼마나 많은 무지개풀이 있는지 셀 수조차 없었다.

    레인보우 엘릭서를 한 사람이 몇 개나 복용할 수 있는지 몰라도 아마 현석은 그 한계를 경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현석은 서둘러 무지개풀을 채취하기 시작했다. 채취법은 간단했다. 마력의 정수가 흩어지지 않게 캐면 되는 것이다.

    상처가 나면 안 된다. 이 무지개풀의 강점은 마력의 정수가 안에 갇혀 있다는 점이었다.

    다른 마력의 정수와 달리 굳이 젤리웜의 체액에 보관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안 그래도 젤리웜의 체액이 모자랐는데 이런 좋은 풀을 얻게 되어 다행이었다.

    그리고 레인보우 엘릭서에 대한 힌트를 하나 얻을 수 있었으니 정말 운이 좋았다.

    ‘왠지…… 이번 생은 운으로 점철된 것 같아.’

    항상 일이 좋은 쪽으로만 풀리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 암중에서 은밀히 도와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현석은 빠르게 숲을 돌아다니며 닥치는 대로 무지개풀을 뽑아 아공간에 휙휙 집어넣었다.

    * * *

    “이건가? 아니, 이거였나?”

    양세희는 더듬은 기억 속에서 본 풀을 떠올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근처에 분명히 하나 있었던 것 같은데 풀이 전부 비슷하게 생겨서 도저히 구분할 수가 없었다.

    그런 그녀의 앞에 사람 발 하나가 보였다. 정신을 놓고 있는 사이 누군가 다가온 줄도 몰랐던 것이다.

    양세희는 깜짝 놀라 쪼그려 앉은 채 고개만 휙 들었다.

    현석이 거기 서 있었다.

    “깜짝이야. 놀랐잖아요.”

    현석은 그녀를 향해 씨익 웃어준 다음 바닥에 있는 세 개의 풀을 슉슉슉 뽑아갔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손놀림이었다.

    양세희는 그 광경을 멍하니 지켜보고 있다가 이내 당했다는 걸 깨닫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그거 당장 내 놓으라고 소리치려다가 이내 입을 다물었다.

    자기가 뽑은 걸 빼앗아간 것도 아니고 고민하던 풀 중 하나를 뽑아간 것도 아니었다.

    양세희는 자신이 고민하던 세 개의 풀을 가만히 내려보다가 헛숨을 내뱉었다.

    “헐. 헛짓 하고 있었네.”

    그렇게 중얼거린 양세희는 입술을 삐죽이며 저 쪽에서 똑 같은 일을 하는 현석을 살짝 흘겨봤다.

    “좀 알려주고 나눠 먹으면 어떻게 돼? 처음부터 구분할 수 있었다는 거잖아.”

    잠시 후, 입술이 한 자쯤 튀어나온 일행들이 숲에서 터덜터덜 걸어나왔다.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정확히 빛나던 풀의 위치를 파악해 그걸 캔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근처에 비슷하게 생긴 풀이 너무 많았다.

    결국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했다. 그들은 토라진 눈과 표정으로 현석의 등을 살짝 살짝 노려봤다.

    뭔가 억울했다.

    현석이 돌아서서 일행을 쳐다봤다.

    다들 움찔 놀라 시선을 피하기 바빴다.

    “이게 무슨 약초인지는 알고 캔 건가?”

    그 말에 다들 귀를 쫑긋 세웠다. 솔직히 궁금했다. 대체 무슨 약초인지 말이다.

    “이 약초의 이름은 무지개풀이다.”

    “무지개풀?”

    다들 고개를 갸웃거렸다. 왠지 무지개랑은 전혀 관계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무지개풀이라는 이름을 가지려면 최소한 무지개색이 어딘가에는 있어야 할 것 아니겠는가.

    최소한 아까 빛나고 있을 때도 일곱 빛깔로 빛나든가 말이다.

    “이걸 정제해 약을 만들 수 있는데, 그 약의 이름이 레인보우 엘릭서지.”

    “레인보우 엘릭서…….”

    다들 멍하니 현석을 바라봤다. 엘릭서라는 이름이 들어갔다는 건 절대 보통 약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아무 약에나 엘릭서라는 이름을 갖다 붙일 수는 없을 테니까.

    “레인보우 엘릭서를 복용하면 몸에서 일곱 빛깔 광채가 뿜어져 나오는데, 그래서 붙은 이름이다.”

    다들 그제야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래서 무지개풀이라는 이름이 붙은 거네요.”

    현석은 일행을 슥 둘러봤다. 다들 긴장한 눈으로 침을 꿀꺽 삼켰다. 이제 효능을 말할 차례였다.

    “레인보우 엘릭서의 효능은 레벨을 강제로 하나 올려주는 거다.”

    “예?”

    “그게 가능해요?”

    다들 충격에 멍하니 현석을 바라봤다. 레벨을 하나 강제로 올려준다니.

    문득 아까 숲을 가득 메우던 무지개풀의 빛이 떠올랐다.

    모두 경악한 눈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대체…… 몇 뿌리나 캐셨어요?”

    현석은 대답해주지 않았다. 대답해 줄 수도 없었다. 몇 뿌리나 캤는지 세보지 않았으니까.

    게다가 그게 전부가 아니다. 마력의 정수를 그동안 닥치는 대로 구해서 보관 중이었다.

    젤리웜의 체액이 모자랄 정도로 많이 구했으니 그것까지 다 하면 아마 어마어마한 양의 엘릭서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현석이 혼자서 그 모든 엘릭서를 복용하고 그 효과를 온전히 다 받아들일 수 있다고 가정하면 수천, 수만 레벨을 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될 리 없었다. 아마 일정 레벨 이상에서는 효과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강제로 레벨업을 하는 것보다는 직접 레벨을 올리는 편이 스탯 성장에는 더 좋을 것이다.

    어쨌든 현석은 지금 최대한 레벨을 올리는 중이다. 레벨 하나 올리기가 벅찰 때까지 레벨을 올리고, 그 다음부터는 망설임 없이 레인보우 엘릭서를 통해 레벨을 올릴 생각이었다.

    그 한계치까지 말이다.

    “일단 마수왕의 탑부터 해결하고 천천히 알아보기로 하지.”

    현석은 그렇게 말하고 걸음을 옮겼다.

    마수왕의 탑을 먼저 해결한 다음, 다시 크락실리아로 돌아가 무지개풀 정제에 대해 알아볼 생각이었다.

    현석의 뇌리에 생명수가 떠올랐다. 그걸 이용해서 정제한다면, 어쩌면 레인보우 엘릭서가 가지는 한계치도 올라가지 않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현석의 걸음걸이가 점점 더 빨라졌다.

    “그런데 마수왕의 탑이 어디에 있는지는 알고 가는 건가?”

    라이언이 다가와 물었다. 그의 눈빛에는 기대감이 가득했다. 어쩌면 레인보우 엘릭서 몇 개 정도는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었다.

    힘들이지 않고 레벨을 올릴 수 있다는 건 정말 큰 매력이었다.

    라이언은 레인보우 엘릭서를 받게 되더라도 그걸 최후의 최후까지 쓰지 않고 한계에 도달한 다음에 쓰겠다고 다짐했다.

    물론 아직 떡 줄 사람의 마음은 전혀 모르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런 심정을 고스란히 눈빛에 드러내며 묻는 라이언의 질문에 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수왕의 탑은 영생의 구슬을 얻은 즉시 알 수 있었다.

    역시 카이로스와 마수왕의 탑에 있는 누군가는 같은 편이었다. 서로 연락도 주고받았고, 도움도 주고받는 사이였다.

    그래서 어느 한 쪽에 문제가 생기면 즉시 서로가 알 수 있게 해주는 시스템을 구축해 뒀다.

    영생의 구슬을 완벽하게 소유하면서 현석은 그 시스템을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걸 통해 마수왕의 탑이 어디 있는지 알아냈다.

    현석의 걸음에는 거침이 없었다. 그걸 본 일행도 그냥 따라갔다.

    길을 모르는 사람이 저렇게 자신만만하게 갈 것 같지는 않아서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의 눈에 거대한 탑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수왕의 탑이었다.

    < 마수왕의 탑 1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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