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친 흑마법사의 정체 2 >
어둠의 숲은 이름에 아주 충실한 곳이었다. 사방에 짙은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환한 대낮에 들어왔는데도 숲에 한 발 들어오자마자 갑자기 밤이 된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으스스하네요.”
류지혜는 그렇게 말하며 자연스럽게 뒤로 빠졌다. 그러자 메인퀘스트 팀원들이 그녀의 움직임에 맞춰 진형을 갖췄다.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들자마자 전투태세에 돌입한 것이다.
팀 메인퀘스트가 전투 진형을 갖추자, 라이언과 추광열도 좀 더 전투에 편하게 자리를 이동했다.
현석은 여전히 가장 앞에서 휘적휘적 걸어갔다.
자연스럽게 현석의 양쪽 뒤에 비스듬하게 떨어진 채로 팀 메인퀘스트와 라이언, 추광열이 따라가는 형태가 되었다.
현석은 거침없이 안으로 쭉쭉 들어갔는데, 뒤에서 보면 마치 어둠의 숲에 대해 잘 알고, 또 길을 잘 찾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사실 현석은 일단 숲 중앙으로 이동하는 것뿐이었다. 차분하게 마력을 흘리면서 말이다.
일단 어둠의 숲을 장악하고 있는 그 미친 흑마법사부터 만나야 했다.
달그락. 달그락.
뼈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점점 더 크고 복잡해졌다.
사방에서 새하얀 스켈레톤 무리가 달그락 소리를 내며 다가오고 있었다.
일행은 이미 포위된 뒤였다. 마치 스켈레톤들에게 지능이라도 있는 것처럼 멀찍이 포위한 상태에서 포위망만 좁혀온 것이다.
“보통 스켈레톤이라고 생각하면 안 돼요! 정신 바짝 차리세요!”
류지혜가 팀원들에게 당부했다.
그리고 스켈레톤들이 달려들었다.
꽈드드드드득!
챙! 챙! 챙! 챙!
꽈드드드득!
이곳의 스켈레톤들은 제법 뛰어난 무기를 들고 있었다.
이 스켈레톤의 소스가 어둠의 숲을 정벌하기 위해 들어온 병사들이었기에 그들이 생전에 쓰던 무기를 그대로 쓰고 있었다.
확실히 뭔가 다른 힘이 작용하는 건지 스켈레톤들은 빠르고 강했다. 그리고 싸움 자체를 잘했다.
협공도 기가 막히게 했고, 또 각자 든 무기에 제법 숙달이 되어 있었다.
마치 오랫동안 손발을 맞춰온 병사들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들이 아무리 강해봐야 스켈레톤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들을 상대하는 건 세계에서 손꼽히는 플레이어들이었다.
현석 일행은 말 그대로 스켈레톤들을 휩쓸면서 쭉쭉 이동했다.
강화된 스켈레톤이나 그냥 스켈레톤이나 솔직히 현석 일행쯤 되는 수준이면 별 차이를 느끼기 어려웠다.
그냥 스켈레톤들일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이동했을까. 새로운 형태의 스켈레톤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훨씬 몸놀림이 민첩하고 덩치가 작은 스켈레톤들이 섞여들었다.
그리고 양손이 화려하게 빛나는 스켈레톤들도 보였다.
스켈레톤 어쌔신과 스켈레톤 메이지였다.
각각 암살과 마법에 특화된 스켈레톤이었다. 아마 이들이 나타난 순간부터 원정군은 극심한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 역시 현석 일행에게 있어서는 그저 스켈레톤일 뿐이었다.
꽈득! 꽈득! 꽈득!
스켈레톤 메이지들이 마법 한 번 못 쓰고 박살 나 흩어졌다.
박승희가 날리는 화살은 마법을 쓰려는 스켈레톤 메이지를 차례차례 박살 냈다.
화살 하나하나에 담긴 힘도 엄청났고, 정확도도 끝내줬다. 그녀가 날린 화살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스켈레톤 메이지의 핵을 부쉈다.
라이언과 추광열은 물 만난 고기처럼 날뛰고 다녔다. 물론 현석 일행과 되도록 멀리 떨어지지 않으려 애쓰면서 싸웠다.
하지만 그들은 세계에서 1,2위를 다투는 플레이어들이다. 그들의 손짓 한 번 칼질 한 번에 스켈레톤들이 우수수 무너졌다.
그들이 한 번 휩쓸고 간 자리에는 반경 십여 미터의 공백이 생겨날 지경이었다.
그렇게 일행이 활약을 하는 사이 현석은 목표를 향해 똑바로 걸어가면서 가볍게 검을 휙휙 휘둘렀다.
그저 가벼운 검격이었지만 나오는 결과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한 번 검을 휘두를 때마다 검에서 길쭉한 초승달 모양의 마력 덩어리가 채찍처럼 휘어져 스켈레톤들을 휩쓸었다.
현석 앞의 스켈레톤들이 무더기로 무너졌다. 그 순간 현석이 외쳤다.
“조심!”
현석의 외침에 다들 긴장감을 되찾았다.
상대하는 적이 스켈레톤뿐이라서 살짝 긴장감이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어쩌면 적이 노린 타이밍도 딱 그런 순간인지도 모른다.
콰우우우!
거대한 무언가가 날아왔다. 새하얗고 길쭉한 것이 맹렬히 회전하며 엄청난 속도로 날아왔다.
한두 개가 아니라 수십 개나 되는 수였다.
그것은 무너진 스켈레톤들의 뼈가 단단히 뭉쳐 만든 드릴이었다.
현석은 눈을 빛내며 몸을 살짝 웅크렸다. 그리고 검을 두 손으로 단단히 움켜쥐었다.
“하아압!”
강렬한 기합과 함께 현석의 검이 눈부신 속도로 움직였다.
꽈앙! 꽈앙! 꽈앙! 꽈앙!
현석의 검에 뼈로 이루어진 드릴이 연이어 부딛혔다. 드릴들은 날아오던 방향이 비틀려 하늘과 땅, 좌우로 마구 튕겨났다.
그리고 그렇게 튕겨난 드릴들은 온몸에 금이 쩍쩍 가더니 회전하는 힘을 못 이기고 그대로 부서졌다.
슈우우우우우!
사방이 뼛가루로 가득 찼다.
현석은 마치 칼춤이라도 추듯 몸을 빙글빙글 회전시키며 사방으로 검을 내뻗었다.
콰우우우우우!
현석이 검을 뻗을 때마다 돌개바람이 일어났다. 검풍에 마력이 섞이며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냈다.
다들 넋을 놓고 그 광경을 바라봤다.
수십 개의 돌개바람이 사방을 가득 메워가던 뼛가루들을 그대로 날려 버렸다.
어느새 현석은 검을 자연스럽게 늘어뜨린 채로 가만히 서서 오연히 서 있었다.
현석 주위로 새하얀 뼛가루와 뼛조각들이 가득했다.
마치 눈밭 위에 홀로 고고히 서 있는 것 같았다.
현석은 검을 다시 팔찌로 만들어 착용한 다음 걸음을 옮겼다.
말없이 걸음을 옮기는 현석의 뒷모습을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던 일행들이 퍼뜩 정신을 차리고 얼른 따라붙었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처음 그 진형으로 돌아가 다시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고작 이 정도로 끝날 리가 없었다. 이게 전부였다면 그 많은 원정이 모조리 실패했을 리 없었으니까.
* * *
어둠의 숲에는 수백 년 전부터 주인이 존재해 왔다.
그가 숲을 장악한 뒤 가장 처음 한 일은 숲의 모든 움직이는 생명체를 말살하는 작업이었다.
생명을 가진 마수부터 시작해 짐승들, 심지어 곤충까지 모두 죽였다.
생명 말살 작업은 그에게는 아주 간단한 일이었다. 그저 죽음의 안개만 피워 놓으면 자연스럽게 모두 죽음으로 달려갔으니까.
그가 이곳에 자리를 잡은 건 환경이 그에게 딱 맞았기 때문이다.
그의 계획을 이루는 데 최적의 환경을 가진 곳이 바로 이곳, 어둠의 숲이었다.
숲의 주인은 어둠의 숲에 있는 모든 생명체를 말살하는 데에서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외부로 어둠의 숲에 대한 소문을 흘리기 시작했다.
이곳에 아주 귀중한 약초가 있다는 정보가 은밀히 돌기 시작했다.
숲의 주인은 혼자가 아니었다. 그와 손잡은 동료들이 있었고, 그를 따르는 수하도 있었다.
그들의 도움을 받아 은밀히 퍼트린 소문은 수많은 사람들을 어둠의 숲으로 이끌었다.
숲의 주인은 그들을 말 그대로 학살했다. 그리고 그들을 이용해 자신의 군단을 조직했다.
말 그대로 어둠의 군단, 죽음의 군단이었다.
어둠의 숲에 대한 악명이 너무 높아져 이제 더 이상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을 지경이 되었다.
숲의 주인은 계획을 진행하며 다시 사람들의 관심을 끌만한 소문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때 불청객이 숲을 방문했다.
처음에는 하잘 것 없는 모험자들이라고 여겼다. 그동안도 군대 단위의 인간이 오지는 않았지만 소규모 모험자들은 어쩌다 한 번씩 방문하곤 했다.
물론 그들 역시 지금은 그의 충실한 수하가 되어 있다. 생명을 빼앗긴 채 말이다.
그래서 이번에도 그럴 거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 생각이 틀렸다는 걸 깨닫는 데에는 두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첫 번째로 보낸 그의 스켈레톤 군단이 몰살당한 것이다.
비록 스켈레톤 병사와 어쌔신, 메이지로 이루어진 단순한 구성의 병력이었지만, 그들은 어둠의 숲 특유의 힘에 의해 몇 배나 강화된 녀석들이었다.
게다가 한 번 죽었다고 그냥 끝나지 않고 마지막에 아주 강력한 공격을 한 번 하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순식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짧은 시간에 끝나 버렸다.
숲의 주인이 거느린 군단은 총 셋이었다. 그 중 첫 번째가 완벽하게 사라진 것이다.
그는 나머지 두 군단을 이끌고 직접 나가기로 했다.
그의 군대는 그와 함께 하면 두 배로 강해진다. 적이 심상치 않다는 걸 인정한 것이다.
“흐으으으. 가자.”
숲의 주인이 허공에 둥실 떠올랐다. 그리고 미끄러지듯 이동했다.
그 뒤로 그의 부하들이 줄줄이 따라갔다. 물론 앞장서서 이동하는 부하들도 있었다.
겉모습은 스켈레톤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저 단순한 스켈레톤이 아니었다.
그들의 뼈는 훨씬 두껍고 단단했다. 그리고 신비한 빛깔이 군데군데 맴돌았다.
그들이 사라진 자리에는 커다란 수정구슬 하나가 허공에 둥둥 떠 있었다.
어둠의 숲에 더없이 어울리는 새까만 광택이 번들거리는 수정구슬이.
* * *
현석 일행은 숲 중앙을 향해 꾸준히 나아갔다. 현석은 이제 더 이상 마력을 풀지 않았다. 원하던 것의 위치를 파악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정확히 이 어둠의 숲 중앙에 있었다.
현석 일행이 두 번째 만난 것은 언데드화 된 마수들이었다.
어둠의 숲에 원래 서식하던 마수와 짐승들이 언데드로 변해 일행에게 달려들었다.
어둠의 숲 특유의 힘이 작용한 탓인지 살아있을 때보다 훨씬 더 강하고 빨랐다. 게다가 회복력도 엄청났다.
아까의 스켈레톤 병사들보다 훨씬 까다로운 놈들이었다.
물론 현석 일행에게는 아까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었다. 압도적인 힘으로 몰아쳤다.
언데드 마수들이 우수수 무너졌다. 다들 박살이 나서 가루로 흩어졌다.
현석은 그렇게 흩어진 언데드 마수의 가루를 무조건 바람으로 날려 버렸다.
그것들이 호흡기를 통해 계속 체내에 쌓이면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지나치게 많은 가루를 흡입하면 아차하다 언데드화가 진행될 수도 있었다.
다른 언데드는 몰라도 이곳의 언데드는 그랬다.
어쩌면 이 가루야말로 이 어둠의 숲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인지도 모른다.
어둠의 숲을 진짜 어둠의 숲으로 만드는 원흉인지도 모른다.
현석은 그런 생각을 하며 검을 휘둘렀다.
“더럽게 많네!”
라이언이 투덜거리며 마구 검을 휘둘렀다. 그의 공격에 맞춰 추광열도 교묘하게 언데드들의 빈틈을 찾아 공격을 찔러 넣었다.
언데드들이 우수수 쓰러졌다.
쓰러진 언데드들을 그냥 지나치면 다시 일어나기에 확인사살이 필요했다.
그들은 언데드들을 짓밟으며 박살을 냈다.
팀 메인퀘스트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진형을 무너뜨리지 않으려 애쓰며 언데드들을 상대했다.
다들 점점 지쳐갔다. 하지만 그럼에도 눈빛은 점점 더 강렬해졌다.
그들도 자신이 어둠의 숲에 들어와 치열하게 싸우면서 급격히 성장하고 있다는 걸 몸으로 느끼는 것이다.
그렇게 얼마나 싸웠을까.
마수와 짐승은 물론이고 심지어 곤충형 언데드까지 달려들었다.
현석 일행은 그 모든 언데드를 착실하고 빠르게 부숴 나갔다.
결국 끝이 보기기 시작했다.
현석은 크게 검을 훠둘렀다.
콰우우우!
전방은 물론이고 좌우 멀리 퍼져 있던 언데드들이 일제히 박살 나면서 가루가 되어 쏟아졌다.
현석은 그걸 마지막으로 더 이상 검을 휘두르지 않았다.
아직 언데드들이 남았지만 그건 라이언, 추광열과 팀 메인퀘스트가 처리해도 충분했다.
물론 시간은 좀 더 걸리겠지만 말이다.
현석은 심호흡을 통해 빠르게 힘을 회복했다. 그리고 힘을 회복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
지금 아주 무시무시한 죽음의 마력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 숲의 주인이 등장할 모양이었다. 그것도 부하들을 잔뜩 데리고서.
죽음의 마력이 지척에 다가왔다. 그리고 때를 맞춰 현석 일행이 이곳에 있던 언데드들을 모두 정리했다.
“흐으으으. 정말 보통 놈들이 아니었구나.”
검은 로브를 입고 후드까지 뒤집어 쓴 놈이 허공에 둥둥 떠서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후드 안쪽에서 그놈의 눈이 핏빛 광망을 뿜어내고 있었다.
현석 일행은 숨을 헐떡이며 질린 표정으로 그놈을 바라봤다. 아니, 그놈 뒤에 있는 것들을 바라봤다.
심상치 않게 생긴 놈들이 서 있었다. 수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하나하나가 엄청나게 강해 보였다.
현석은 흑마법사의 머리 위에 뜬 이름을 읽었다.
“카이로스?”
“흐으으. 내 이름을 아는 자가 아직 남아 있었던가?”
당연히 그런 게 아니다. 현석은 그저 심안을 통해 보이는 이름을 읽었을 뿐이었다.
현석은 카이로스라는 놈의 정보를 확인했다.
[카이로스]
[제국의 5대 악인 중 하나. 흑마법의 정점에 이르러 언데드화를 연구해 영생을 얻었다. 현재 반쪽만 남은 상태.]
“반쪽만 남아?”
현석의 중얼거림을 들은 카이로스의 몸에서 시커먼 불길이 확 치솟았다.
“네놈이 그걸 어찌 아느냐!”
< 미친 흑마법사의 정체 2 > 끝
ⓒ 김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