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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210화 (210/326)
  • < 미친 흑마법사의 정체 1 >

    “잠을 푹 자서 그런가? 이거 몸이 아주 날아갈 것 같은데?”

    라이언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몸을 이리저리 풀었다. 아침에 이렇게 상쾌하고 가뿐한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 정도로 몸 상태가 좋았다.

    그건 라이언뿐만이 아니었다. 나머지 일행도 다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시선은 당연히 현석에게로 향했다.

    “뭔가 해준 거지? 우리한테. 아니면 어제 먹은 고기 탓인가?”

    현석은 대답 대신 걸음을 옮겼다.

    “닥치고 따라오라고? 그래. 그래야 우리 대장이지. 큭큭큭.”

    라이언이 낄낄대며 현석의 뒤를 따랐다. 계속 겪다보니 익숙해지고, 익숙해지니 또 이런 게 현석의 매력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뭐…… 내가 길들여진 걸 수도 있지만. 그게 뭐 어때서.’

    라이언은 좋게 생각했다. 지금 이런 것도 정말 나쁘지 않았다.

    “그나저나 그 귀족 저택에서 말이야.”

    라이언이 현석에게 따라붙으며 물었다.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던 놈이 하나 있는데, 너도 알지?”

    “쥬크?”

    “아, 그놈 이름이 쥬크였어? 그 어린 놈?”

    현석이 고개를 끄덕이자 라이언이 질문을 이어갔다.

    “그놈 그냥 둬도 괜찮은 거 맞아? 왠지 원한을 가진 것처럼 보이던데?”

    말을 알아듣진 못하지만 그래도 눈빛이나 분위기를 보면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라이언이 보기에 쥬크라는 놈은 상당히 위험했다.

    “그놈 제법 지위도 있는 놈이잖아? 그 가문에서. 그때 저녁도 같이 먹었으니까 맞지? 만일 그놈이 가문을 이어받기라도 하면 나중에 곤란해지는 거 아냐? 뭐…… 여기 다시 올 생각 없으면 상관없지만.”

    현석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쥬크가 크란시스 후작이나 제논 백작과 다른 점이 있는데 못 알아봤나?”

    크란시스 후작이 아까 그 가문의 주인이고 제논 백작은 현석이 구해준 사람이라는 거야 알고 있었다. 한데 그 두 사람이 쥬크와 다른 점이 무엇일까?

    라이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철이 없다는 거랑…… 피해의식에 휩싸여 있다는 점?”

    현석이 고개를 저었다.

    “쥬크는 플레이어가 아니다.”

    라이언은 그 말에 깜짝 놀라 현석을 바라봤다.

    “그럼 나머지 두 사람은 플레이어란 말이야? 아니, 이 안에도 플레이어가 있다고?”

    하지만 라이언은 이내 놀란 표정을 지웠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곳은 던전 안이다. 어쩌면 플레이어가 아닌 사람이 있는 게 더 이상한 일 아닐까?

    “그럼 그 플레이어들은 던전의 출입구를 이용할 수 있겠군.”

    라이언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만일 출입구를 발견해 저들이 세상으로 나가게 된다면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질까?

    예측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더 불안했다.

    ‘하긴…… 무슨 대단한 일이 벌어질 거 같진 않지만…….’

    어쨌든 그건 그거고 대체 플레이어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 무슨 차이가 있단 말인가.

    라이언의 시선을 다시 받은 현석이 간단히 설명해 주었다.

    “가문의 비고를 열 수 있는 사람은 플레이어뿐이다. 그게 열쇠를 인계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아아.”

    라이언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아마 그 쥬크라는 애송이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가문에서의 위치가 점점 애매해질 것이다.

    ‘결국 스스로가 버티지 못하게 되겠지.’

    두 사람은 그렇게 대화하는 와중에도 열심히 이동 중이었다. 그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었는데 따라가는 사람들의 표정이 새하얗게 질려갔다.

    강을 건널 때도 그냥 달려서 건넜다. 강의 폭은 넓지만 깊이가 얕아서 달려 건너는 데에 큰 무리는 없었다.

    물론 중간쯤 갈 때는 물이 가슴 정도 높이라서 그저 앞으로 나아가기가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제법 빠르게 강을 건널 수 있었다.

    옷이 젖은 채 달렸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 조금씩 물기가 말랐다.

    날이 그리 덥지도 않은데 물기 마르는 속도가 상당했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이제 강이 아닌 호수가 나왔다. 이 호수를 건너면 바로 어둠의 숲이었다.

    호수를 빙 돌아서 가는 방법도 있지만 아무래도 질러가는 것이 훨씬 빨랐다.

    설사 배를 타고 천천히 건넌다 해도 그랬다. 돌아가는 길은 건너는 길에 비해 거리가 엄청나게 멀었다.

    “이제 어쩌죠?”

    류지혜가 물었다. 호수 근처에는 인적이 하나도 없었다. 이대로라면 직접 배를 만들어 타고 가야 한다.

    한데 배를 만드는 시간에 차라리 호수를 돌아가는 게 훨씬 빠르지 않을까?

    그런 류지혜의 의문은 현석이 아공간에서 커다란 배를 꺼내 호수에 던지면서 끝났다.

    다들 어이없고 황당한 표정으로 현석과 배를 번갈아 바라봤다.

    설마 아공간에 배를 넣어가지고 다닐 줄이야.

    “저 배, 움직이기는 하는 거죠?”

    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 배는 모터를 이용해 가는 배였다. 사실 몇 번의 개조를 거친 배였다. 이럴 때 쓰려고 현석이 미리 양동욱에게 말해 준비한 물건 중 하나였다.

    저 배는 오랫동안 움직이는 데에 초점을 맞춰 개조했다. 연료통을 극단적으로 키우고 다른 부분은 모두 제거해 버렸다.

    최대 수용 인원은 20명이었고, 배 위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가만히 앉아서 운전하는 것 외에는 없었다.

    현석은 일행을 먼저 배에 태우고 마지막으로 자신이 오르며 말했다.

    “이 호수에 위험한 마수가 몇 마리 산다고 하니 다들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모두의 안색이 흐려졌다.

    역시 인적이 없는 이유가 있었다. 이곳은 위험한 장소였다. 아까 지나온 숲만큼이나 말이다.

    현석은 배의 운전석으로 가서 시동을 켰다.

    부르르릉!

    거친 소리와 함께 배가 부르르 떨렸다. 다른 모든 걸 포기했기에 배에 탄 사람이 얼마나 편안한지 따위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현석은 제법 능숙하게 배를 몰았다. 사실 운전 자체가 단순한 배였다.

    배가 빠르게 물살을 헤치고 쭉 뻗어 나갔다. 속도가 상당했다.

    현석은 그저 단순히 배를 몰기만 하는 게 아니었다. 마력을 사방으로 풀어서 혹시라도 무슨 일이 없는지 끊임없이 확인했다.

    제논 백작으로부터 받은 정보에 따르면 이 호수에 거대한 마수 몇 마리가 살고 있다고 했다.

    그 중에는 뭍으로 기어올라갈 수 있는 놈이 있었고, 그렇지 못한 놈들이 있었는데, 물에서만 사는 놈이 훨씬 강력했다.

    그래서 이 호수에 배를 띄우려면 정말로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

    물론 호수에서 얻을 만한 것이 거의 없기에 그럴 사람도 이제 남지 않았다.

    호수의 마수가 이렇게 강력해진 것은 호수 근처에 있는 어둠의 숲에 흑마법사가 살기 시작하면서부터라고 전해진다.

    물론 명확한 근거를 가진 소문은 아니었지만, 대충 시기가 맞아 떨어지니 다들 그럴 거라고 여겼다.

    “온다.”

    현석의 말에 다들 긴장하며 무기를 꺼냈다. 특히 박승희는 활을 꺼내며 눈을 빛냈다.

    아마 지금 가장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은 그녀일 것이다. 일단 원거리 공격이 가능하니 말이다.

    “배가 부서지면 어쩌죠?”

    류지혜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하지만 현석은 여전히 담담했다.

    “배는 걱정할 필요 없다.”

    현석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아마 뭔가 나름의 조치를 한 모양이었다. 류지혜는 그렇게 믿고 다가오는 마수와 싸울 준비를 했다.

    그녀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버프를 걸어주는 것이었다.

    그녀의 몸에서 은은한 마력이 뿜어져 나가며 배에 탄 모든 사람들에게 버프가 걸렸다.

    라이언과 추광열의 눈이 반짝였다.

    이 버프를 처음 겪었을 때 놀랐던 일이 떠올랐다. 그때는 정말 경악했다.

    이렇게 강력한 버프가 존재한다는 걸 처음 알았으니까.

    류지혜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는 모르지만 플레이어들끼리 대규모 전쟁을 하게 된다면 그녀가 속한 진영이 무조건 이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로 류지혜의 버프는 강력하고 효과적이었다.

    어쨌든 버프를 받은 일행은 다가오는 마수의 기척을 느껴보려 했다.

    하지만 좀처럼 느껴지는 게 없었다. 아무래도 물에서 움직이는 마수인지라 기척이 별로 드러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내 물살이 밀려오는 것이 온몸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다들 긴장하며 무기를 쥔 손에 힘을 꽉 주었다.

    그리고 그 순간 배가 휘청거리며 옆으로 크게 휘돌았다. 그리고 마치 순간이동이라도 하는 것처럼 앞으로 쭉 미끄러졌다.

    방금 전까지 배가 있던 곳에 뭔가가 불쑥 솟아났다.

    촤아아악!

    사방으로 물이 튀었다.

    일행은 솟아나온 것의 정체를 눈으로 확인했다. 그것은 거대한 빨판이 잔뜩 달린 문어다리였다.

    호수에 거대문어가 사는 모양이었다.

    “무슨 호수에 문어가 살아!”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라이언이 외쳤지만, 마수의 세계에 그런 게 어디 있는가. 날아다니는 거북이에 벼락을 쏟아내는 잠자리까지 있는 마당인데 말이다.

    다리가 높이 치솟았다. 다리의 길이와 두께를 보니 정말 어마어마하게 큰 문어인 모양이었다.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준비하고 있던 박승희가 화살을 날렸다.

    콰우우우!

    꽈드득!

    맹렬히 회전하며 날아간 화살이 문어 다리의 중간 부분을 왕창 뜯어놓고는 호수 한가운데로 날아갔다.

    하지만 그 정도로 문어 다리를 끊을 수는 없었다. 워낙 다리가 두꺼웠기 때문이다.

    문어 다리가 배를 향해 그대로 내리 꽂혔다.

    박승희는 떨어지는 문어 다리를 보며 화살 두 대를 연이어 날렸다.

    콰우우! 콰우우!

    맹렬히 회전하는 두 대의 화살이 정확히 방금 뜯어진 곳 옆을 나란히 파고들었다.

    꽈득! 꽈득!

    그 두 방의 화살이 추가되자, 결국 다리가 끊어졌다. 정말 가공할 위력의 화살이었다.

    퍼어엉!

    다리가 물 위에 떨어지며 사방으로 파도를 만들어냈다. 배는 그것을 아슬아슬하게 피해 마치 드리프트라도 하듯 빙글 회전하며 문어 주위를 돌았다.

    “이번엔 나도 힘 좀 써볼까?”

    라이언이 나서서 문어가 있을 거라고 예상되는 곳을 향해 크게 검을 휘둘렀다.

    쉬아아악!

    검에서 날카로운 마력이 뿜어져나가 물속으로 파고들었다. 그것은 소리도 없이 물속으로 파고들었다.

    투웅!

    둔중한 울림이 수면을 흔들었다. 그러더니 문어 다리 네 개가 동시에 위로 솟구쳐 올랐다.

    촤촤촤촥!

    그 다리들은 배를 각기 다른 방향에서 덮쳤다.

    아무리 봐도 빠져나갈 틈이 없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일행을 태운 배는 평범한 배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뱀처럼 요리조리 미끄러지더니 문어 다리들 틈을 비집고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 와중에 이제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리고 여유를 찾은 일행들의 공격이 문어 다리에 마구 쏟아졌다.

    퍼버버버벙!

    꽈득! 꽈득! 꽈득!

    순식간에 두 개의 다리가 끊어졌다. 그리고 나머지 두 개의 다리도 허무하게 물을 때리고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 문어 다리는 다시 올라오지 않았다.

    일행은 아쉬운 눈으로 물을 내려다봤다. 조금만 더 하면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조만간 실컷 싸울 수 있게 해줄 테니 기다려라.”

    그 말에 다들 어색한 표정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솔직히 그렇게까지 맹렬히 싸우고 싶은 건 아니었는데 말이다.

    어느새 배가 반대편 호숫가에 도착했다.

    일행이 모두 내리자, 현석은 배를 다시 아공간에 넣었다.

    저 멀리 거대한 숲이 펼쳐져 있었다. 그것이 바로 어둠의 숲이었다.

    불길한 기운이 일행을 향해 스멀스멀 기어오는 듯했다.

    그것은 죽음이 진득하게 스며든 기운이었다. 공기 자체가 달랐다.

    현석은 말없이 어둠의 숲을 향해 걸어갔다.

    “그런데 저 안에 진짜 흑마법사가 있기는 할까요?”

    류지혜가 현석 옆으로 다가가 물었다.

    “글쎄.”

    “정보에 보면 어둠의 숲에 흑마법사가 살기 시작한 지가 무려 300년이 넘었다고 되어 있거든요.”

    류지혜의 말에 다들 놀란 표정으로 현석과 그녀를 번갈아 바라봤다.

    물론 그 와중에도 걸음을 멈추지는 않았다.

    “300년이라고? 상식적으로 사람이 그렇게 오래 살 수 있나?”

    “사람이 아니면 가능하지.”

    현석이 그렇게 말했다.

    “사람이 아니라고요?”

    사람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다들 의문이 가득한 표정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설마 사람이 아닌 마수가 흑마법사 노릇을 한 건가요? 그렇다고 하기엔 이 정황들이 좀…….”

    “그냥 마수가 아니겠지. 원래 사람이었다가 마수가 되었을 것이다.”

    현석은 거기까지 말하고 걸음을 서둘렀다.

    원래 사람이었다가 마수가 된다고? 일행은 등줄기에 소름이 쫙 돋았다.

    왠지 으스스한 기분이 들어 황급히 현석에게 바짝 붙었다.

    그리고 이내 그들은 죽음과 불길함이 넘실거리는 어둠의 숲으로 진입했다.

    < 미친 흑마법사의 정체 1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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