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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209화 (209/326)
  • < 어둠의 숲으로 2 >

    “정말 이렇게 새벽같이 떠나야만 하는 거야?”

    “지도는 받으신 거 맞아요?”

    라이언과 류지혜가 마치 미리 말을 맞춰보기라도 한 것처럼 거의 동시에 물었다.

    현석은 고개를 한 번 끄덕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원래 이렇게 이른 시간에는 성문을 열어주지 않는 것이 규칙이었다.

    하지만 성문을 관리하는 사람이 크란시스 후작인데 뭐가 불가능하겠는가.

    현석 일행은 성문에 만들어진 작은 쪽문을 통해 모두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저쪽이다.”

    현석은 앞장서서 걸었다. 그 걸음이 어찌나 빠른지 거의 뛰는 거나 다름이 없었다.

    일행은 허겁지겁 그 뒤를 따랐다.

    현석이 서두르는 걸 보니 아차하는 순간 훅 뒤쳐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일행이 이동하는 방향은 남동쪽이었다.

    “이제 어둠의 숲으로 가는 건가요?”

    현석을 바짝 따라붙은 류지혜가 물었다. 그녀는 팀 메인퀘스트의 리더답게 항상 일정과 계획을 체크했다.

    그녀는 항상 팀의 화합을 생각했고, 또 팀의 전투 스타일에 대해 고민했다. 또 팀의 발전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현석이 회귀 전에 그녀가 했던 건 황혼을 맞이해 스러져가는 던전관리센터의 부활을 위해 온몸을 바친 것이었다.

    지금은 그 모든 열정을 팀에 쏟고 있었다. 그러니 사실 팀이 발전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류지혜에게는 그럴 능력이 충분했다. 또한 팀원들도 모두 그 부분에 대해서는 크게 인정했다.

    그녀가 여자이고 나이가 가장 많은 것도 아니지만 팀의 리더로서 인정받는 건 그 무엇보다 실력이 뛰어나고 팀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넘쳤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그런 류지혜의 질문이었기에 현석도 나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어둠의 숲으로 간다. 어둠의 숲에 대한 정보를 따로 정리했으니 이동하면서 읽어보도록.”

    현석은 종이 몇 장을 내밀었다.

    그걸 받으며 류지혜는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설마 이렇게까지 해줄 줄은 몰랐다. 그녀는 현석에게 인정받은 기분과 그의 배려가 주는 고마움에 가슴이 한껏 뛰었다.

    “고마워요.”

    류지혜는 현석에게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뒤로 살짝 물러났다.

    그리고 일행들의 가장 뒤로 이동한 다음 정보부터 확인했다.

    어둠의 숲은 이곳 던전에서도 상당히 특이한 포인트 중 하나였다.

    일단 접근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물론 예전에는 어둠의 숲을 토벌하겠다고 나선 귀족들이 몇 있었다.

    특히 어둠의 숲과 비교적 가까이 있는 도시들이 그런 시도를 많이 했다.

    하지만 그 도시 중 하나가 완벽하게 몰락한 이후부터는 그런 시도 자체가 아예 사라졌다.

    다만 그 뒤로도 가끔 모험가들이 파티를 이뤄 어둠의 숲에 들어가곤 했다.

    어둠의 숲에서만 구할 수 있는 특별한 약초가 있는데, 그 약초를 구하기 위함이었다.

    한 뿌리에 금화 1000개와 바꿀 수 있을 정도로 귀한 약초였다.

    그러니 모험가들이 목숨을 걸고서라도 한 번쯤 도전해 볼만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모험가조차 없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어둠의 숲에 들어갔다가 살아 돌아온 사람이 없기 때문이었다.

    어둠의 숲에는 미친 흑마법사가 살고 있다.

    물론 그 흑마법사를 직접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고서야 벌어질 수 없는 일이 너무 자주 일어났다.

    어둠의 숲을 토벌하려다가 역으로 당한 도시 역시 흑마법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숲에 사는 미친 흑마법사가 도시를 궤멸시킨 것이다.

    물론 그 도시는 어둠의 숲 정벌에 실패하는 바람에 재정적이나 군사적으로 상당한 타격을 받는 바람에 휘청휘청 하고 있긴 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 어둠의 숲에는 언데드들이 우글거리는 곳이었다.

    숲 자체가 어둠과 죽음 성향에 맞물려 있기 때문에 그곳에 존재하는 언데드들은 다른 언데드에 비해 상당히 강력했다.

    보통은 좀비 한 마리를 병사 하나가 너끈히 상대하고도 남지만, 어둠의 숲에 사는 좀비는 병사 서넛이 달려들어도 쉽게 제압하기 어려웠다.

    고작 좀비가 그런데 스켈레톤 같은 마물들은 얼마나 상대하기 까다롭겠는가.

    그런 언데드들이 우글거리는 곳이 바로 어둠의 숲이었다. 그러니 거기에 간다는 건 거의 자살행위라고 봐도 좋았다.

    류지혜는 어둠의 숲에 대한 정보를 확인한 다음 살짝 굳어진 표정으로 마수왕의 탑에 대한 정보을 읽었다.

    현석의 진짜 목적은 어둠의 숲이 아니라 어둠의 숲 근처에 있는 마수왕의 탑이었다.

    하지만 마수왕의 탑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었다. 당연히 정보량도 어이없을 정도로 부족했다.

    이번에 받은 마수왕의 탑에 대한 정보도 사실 그동안 돌았던 소문을 모은 것에 불과했다.

    류지혜는 그 모든 정보를 다 확인한 다음 결론을 내렸다. 어둠의 숲에 가야 한다고 말이다.

    왠지 마수왕의 탑과 어둠의 숲이 어떤 관계가 있을 것만 같았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주어진 정보만으로 유추하면 그랬다.

    ‘과연 우리가 이 어둠의 숲을 공략할 수 있을까?’

    정보에 의하면 이 어둠의 숲이라는 곳은 정말로 무시무시한 곳이었다.

    과연 팀 메인퀘스트가 여기서 버텨낼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류지혜는 입을 앙다물었다. 안 된다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리고 아직 될지 안 될지 해보지도 않았다.

    ‘내가 어떻게든 되게 만들 거야.’

    아직 팀 메인퀘스트는 무궁무진한 성장을 이뤄낼 가능성이 있었다.

    어쩌면 이번 어둠의 숲 공략이 메인퀘스트에게 큰 도움이 될 수도 있었다.

    아니, 무조건 도움이 되도록 할 것이다.

    류지혜가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일행의 이동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고 있었다.

    지도에 의하면 크락실리아에서 어둠의 숲까지 직선으로 질러가는 길은 없었다.

    중간에 제법 위험한 숲도 있고, 강, 호수도 있었다.

    만일 그 숲과 호수를 돌아서 간다면 몇 개의 도시를 거쳐야만 했다.

    하지만 현석은 지금 당장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일행은 그런 현석의 의지에 따라 그 위험한 숲을 정면으로 돌파해야만 했다.

    그것도 워낙 빠르게 달리는 바람에 지칠 대로 지친 상태에서 말이다.

    현석을 제외한 나머지는 그야말로 죽을 고생을 했다. 그냥 고생이 아니라 정말로 몇 번이나 죽을 위기에 처했다.

    지친 상태로 위험한 마수들을 상대해야 하니 당연한 일이었다.

    게다가 현석은 자비없이 이동했다.

    마수들이 몰려오는데도 그저 달려드는 놈들을 검으로 슥슥 썰어버리며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당연히 그 뒤를 따라가는 일행들만 죽을 맛이었다.

    달려드는 마수를 처리하랴, 현석을 쫓아가랴, 갈피를 못 잡고 헤매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렇게 하니 확실히 숲을 빠져나가는 속도만큼은 발군이었다.

    던전 세상에 사는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깜짝 놀라 기절할 정도로 짧은 시간 만에 숲을 돌파했다.

    물론 그 대가로 크고 작은 상처들을 온몸에 새겨야 했지만 말이다.

    숲에서 빠져나와 강을 앞에 두고서야 현석이 이동을 멈췄다.

    다들 숨을 헐떡이며 그 자리에 대자로 뻗어 버렸다.

    “여기서 하루 자고 내일 강을 건넌다.”

    다들 질린 표정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그냥 이대로 누워서 자버릴 생각이었다.

    먹을 거고 뭐고 다 필요없었다.

    그렇게 누워 있는 일행에게 갑자기 물벼락이 쏟아졌다.

    촤아악!

    “커억! 어푸어푸!”

    갑자기 쏟아진 물에 다들 기겁을 하며 몸을 벌떡벌떡 일으켰다.

    하지만 이내 상황을 깨닫고는 다들 멍하니 현석을 바라봤다.

    그들이 뒤집어 쓴 것은 힐링포션이었다.

    말 그대로 힐링포션으로 샤워를 한 것이다. 아마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서 그들뿐이리라.

    덕분에 온몸에 나 있던 크고 작은 상처들이 말끔히 사라졌다.

    그리고 힐링포션이 증발하고 땅에 스며들면서 근처의 마력 농도가 짙어졌다.

    아마 플레이어가 이 안에서 휴식을 취하면 체력 회복 속도가 조금 더 빨라질 것이다.

    그래도 힘들고 피곤한 건 마찬가지였기에 다들 다시 벌러덩 누워 버렸다.

    그리고 그대로 잠을 청하려 했다.

    하지만 코를 자극하는 냄새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어느새 현석이 조리 기구를 꺼내 요리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고기를 잔뜩 굽고 있었는데, 그 냄새가 어찌나 기가 막히는지 입에서 침이 줄줄 흘렀다.

    “에잇! 도저히 못 참겠다!”

    가장 먼저 일어난 사람은 라이언이었다. 그는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표현하는 데 언제나 거침이 없고 망설임도 없었다.

    “대체 뭘 굽는데 이렇게 맛있는 냄새가 나는 거야?”

    라이언은 현석에게 다가갔다. 현석은 돌로 만든 커다란 불판을 올려놓고 거기에 고기를 굽고 있었다.

    돌판 아래에는 커다란 모닥불이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대체 장작은 또 언제 구해온 거야?”

    당연히 아공간에 넣어서 가져온 거지만 굳이 대답해주지 않았다. 그저 고기만 열심히 구웠다.

    “이건 무슨 고기야? 지금 먹어도 되나?”

    “바짝 익혀 먹는 게 좋을 거다.”

    라이언은 침을 뚝뚝 흘리며 고개를 끄덕이고 고기가 익기만을 기다렸다.

    고기의 질이 좋은 건지 잘 달궈진 돌판이 좋은 건지 고기는 금세 바짝 익었다.

    “이거 먹어도 되는 거지?”

    라이언은 현석이 고개를 끄덕이기 무섭게 고기 한 점을 입에 넣고 씹었다.

    “크아아아아!”

    한 번 씹고 그렇게 감탄한 다음 미친듯이 입을 놀렸다.

    정말 맛있었다. 태어나서 이렇게 맛있는 고기는 처음이라고 단언할 수 있었다.

    “뭐가 이렇게 맛있어!”

    라이언이 고기를 씹어 삼킨 다음 그렇게 소리쳤다. 그 말에 일행들이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이 벌떡벌떡 일어나 달려왔다.

    그리고 그때부터 폭풍흡입을 시작했다.

    현석은 느긋하지만 빠르게 고기를 구웠다. 신기하게도 일곱 명이나 되는 일행이 정신없이 먹어치우는 데도 고기가 전혀 모자라지 않았다.

    하지만 다들 그걸 신기해할 틈도 없었다. 고기가 워낙 맛있었기 때문이다.

    이내 다들 배를 두드리며 나가 떨어졌다.

    입은 고기를 더 원하지만 배가 너무 불러 괴로워서 더 먹을 수가 없었다.

    현석은 나머지 고기를 천천히 다 먹어치운 다음 불판과 불도 정리해 버렸다.

    “대체 우리가 뭘 먹은 거야?”

    라이언이 다시 한 번 물었다. 이건 평범한 소고기나 돼지고기가 아니었다. 닭고기는 당연히 아니었다. 붉은 고기였으니까.

    그렇다고 양고기도 아니었다. 지금까지 라이언이 먹어본 그 어떤 고기와도 달랐다.

    현석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일행의 시선을 슥 둘러본 다음 말했다.

    “나만의 비밀이다.”

    다들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특히 기대에 가득 찬 표정을 짓고 있던 라이언은 더 황당해했다.

    “그게 뭐야! 무슨 고기 정체가 비밀이야! 나중에 그걸로 뭘 하려고! 고짓집 차릴 건 아니잖아! 좀 같이 알자!”

    그 말에 현석이 라이언을 돌아보며 씨익 웃었다.

    “나중에 말 잘 들으면 또 먹여주지.”

    라이언의 표정과 몸이 그대로 굳었다. 이 무슨 유치한 짓이란 말인가.

    하지만 더 짜증나는 건, 말을 잘 들어서라도 저 고기를 또 먹고 싶다는 점이었다.

    “우와, 진짜 무서운 놈이다.”

    라이언은 그렇게 투덜거리고는 벌렁 누웠다. 배까지 부르니 잠이 솔솔 쏟아졌다.

    그렇게 모든 일행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현석은 그런 일행을 지켜보며 근처 바위에 기대 가볍게 눈을 감았다. 그리고 마력을 사방으로 풀었다.

    혹시라도 다가올지 모를 마수나 사람을 감지하기 위한 대책이었다.

    ‘아마…… 무슨 고기인지 말해주면 다신 안 먹겠지?’

    예전에 지렁이 고기로 한 번 경험했지 않은가. 그때는 현석도 대체 저들이 왜 저러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젠 그때 왜 그랬는지 알 수 있었다.

    눈을 감은 현석의 입가에 미소가 맴돌았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자신은 많이 변했다. 그리고 그렇게 변한 자신이 그리 싫지 않았다.

    그렇게 밤이 깊어갔다.

    아마 내일이면 어둠의 숲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마수왕의 탑도 찾아낼 수 있게 될 것이다.

    현석의 생각대로라면 말이다.

    현석은 빠르게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현석이 깔아둔 마력이 크고 느리게 소용돌이치며 현석과 일행을 감싸 안았다.

    근처에 깔린 마력의 농도가 일시적으로 짙어졌기에 이 소용돌이는 더 큰 효과를 가질 것이다.

    일행과 현석의 몸에 쌓였던 피로를 마력이 빨아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 활력을 채워 넣어갔다.

    아주 조금씩 천천히.

    그렇게 밤이 지나 아침이 찾아왔다.

    빛이 어둠을 밀어내고 현석 일행을 비췄다.

    < 어둠의 숲으로 2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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