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시 크락실리아 1 >
래리는 렉스턴 에너지에서 지원해준 다섯 명의 플레이어를 데리고 새로 생긴 암시장으로 향했다.
“볼텍스 암시장이라니. 이름 하곤…….”
래리는 암시장 이름도 마음에 안 들었다.
보통 암시장의 이름은 누가 지어준다고 생기는 게 아니라 아주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회자되며 형성된다.
대부분 암시장이 있는 지역의 이름을 따거나 암시장의 주인 이름을 따서 부른다.
몇몇 예외가 바로 피라밋 암시장과 중국의 흑시, 그리고 이제 곧 생겨날 렉스턴 에너지의 엠페러타워였다.
사실 이렇게 이름을 자기들이 붙여봐야 사람들이 불러주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피라밋 암시장이나 중국의 흑시는 거기에 성공한 것이다. 이유는 하나다. 그들은 힘이 있는 것뿐이다. 그리고 이름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 왔다.
사실 래리는 볼텍스 암시장이라는 이름 자체에 불만이 있는 게 아니었다. 불만이 아니라 불안한 것이었다.
이들의 뒤에 미래산업이 있는 게 분명했다. 그 미래산업에게 불안함을 느끼는 것이다.
미래산업은 어마어마하게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시장을 강타했다.
이제 미래산업이 생산하는 페레인 엑기스는 그야말로 불티나게 팔리고 있었다.
생산량이 판매량을 따라가지 못해 항상 부족했다.
페레인 엑기스는 이제 플레이어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 되어 버렸다.
그뿐인가. 힐링포션과 파워업키트도 플레이어들의 필수품이었다.
물론 그 중에서 파워업키트는 저레벨 플레이어들에게나 쓸모가 있는 물건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파워업키트의 효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특히 성장을 원하는 길드나 조직에서는 많은 양을 쌓아두고 지냈다.
신입 조직원을 영입했을 때, 그를 빠르게 성장시킬 방법이 되니 말이다.
힐링포션은 더더욱 유용했다. 그건 레벨에 상관없이 여벌의 목숨을 들고 다니는 거나 다름없었으니 말이다.
플레이어의 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를 봤을 때, 힐링포션의 판매량은 앞으로도 계속 늘어나면 늘어났지 절대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힐링포션과 파워업키트가 아무리 선전을 해봐야 페레인 엑기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페레인 엑기스는 플레이어들에게만 효과적인 것이 아니었으니까.
페레인 엑기스의 가격이 그리 낮지 않음에도 일반인 중에 그걸 쓰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거의 중독이라고 할 정도의 수준이었다.
쓰다가 안 쓰면 그 차이가 몸으로 체감이 되니 어찌 중독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물론 그렇다고 페레인 엑기스가 중독성을 가진 건 아니었다. 그저 사람들은 그것이 주는 힘에 중독되어갈 뿐이었다.
그나마 늘어나는 힘과 체력이 미미하니 이 정도지, 그게 아니었다면 정말 한바탕 난리가 났을 것이다.
어쨌든 이 볼텍스 암시장은 그런 미래산업의 후원으로 운영된다는 소문이 정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래리가 이렇게 직접 와서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다.
“다들 긴장 풀지 말고.”
“예. 걱정 마십시오. 우리가 어디 이런 일 한두 번 합니까. 그리고 솔직히 뭘 하러 온 것도 아니잖습니까. 그냥 둘러보기만 하고 가는 거 아니었습니까?”
“뭐, 하긴…….”
오늘은 딱히 뭔가 특별한 걸 하러 온 게 아니라 그저 정찰의 의미가 강했다.
물론 볼텍스 암시장을 이용하는 다른 사람들보다는 훨씬 더 많은 걸 확인하고 올 생각이긴 했지만 말이다.
“저깁니다.”
“듣던 대로 암시장이 있을 것 같지가 않군.”
“예. 한데 다녀온 사람들 얘기를 들으면 정말 이상하답니다. 대체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한지 이해를 못하더군요.”
래리는 자신이 직접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끼기 전에는 그 어떤 판단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암시장이 있다는 건물로 들어갔다.
“건물은 허름한데 내부는 제법 잘 되어있군.”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솔직히 건물에 들어와 느낀 건, 암시장이라기보다는 쇼핑몰이나 백화점이 더 어울린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1층에는 커다란 로비를 비롯해서 주변에 작은 패스트푸드점이나 커피숍, 혹은 기념품을 판매하는 상점들이 곳곳에 비치되어 있었다.
2층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가 중앙에 있었는데, 보아하니 2층에는 식당도 있는 듯했다.
하지만 여기가 보통 쇼핑몰이 아니라는 건 금방 알 수 있었다. 돌아다니는 사람들 대부분이 플레이어였다.
“정말 특이하군.”
“특이할 게 뭐 있겠습니까. 위장의 일종 아니겠습니까?”
그렇다고 볼 수도 있긴 하다. 하지만 래리가 보기엔 위장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사람을 끌어들이려고 작정을 한 것처럼 보였다.
“암시장이 이래도 되나?”
래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쨌든 암시장이라는 건 불법적인 곳이다.
그러니 쉬쉬하며 알음알음 찾아오게 만들어야 한다. 한데 이곳 볼텍스 암시장은 그런 게 없었다.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는 이미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엄청난 홍보가 이루어졌다.
심지어 일반인들 중에도 이곳을 아는 사람이 제법 많았다. 홍보의 영역을 살짝 넓힌 효과였다.
래리는 플레이어들을 이끌고 위로 올라갔다. 진짜 암시장은 3층부터 있었다. 그것 역시 볼텍스 암시장의 홍보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이었다.
2층은 역시나 식당가였다. 별의 별 식당이 다 있었다. 웬만한 프랜차이즈 식당은 거의 다 있었다.
이쯤 되니 이게 암시장인지 아니면 다른 곳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래리는 2층을 대충 훑어보고는 위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에 올라탔다.
3층부터는 2층과는 분위기가 좀 달랐다. 넓은 홀이 있었고, 홀의 끝을 빙 둘러 문이 착착착 서 있었다.
오로지 홀과 방으로만 이루어진 층이었다. 당연히 홀에는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저 사람들은 플레이어도 아닌 것 같은데? 아닌가?”
“제가 봐도 아닌 것 같습니다.”
문제는 저들이 딱히 암시장에서 뭔가를 살 만한 사람으로도 안 보인다는 점이었다.
대여섯 명으로 이루어진 일행이 마치 놀러온 것 같은 복장으로 와서는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래리의 표정이 묘해졌다. 여기 오기 전에 들은 정보들이 떠오른 것이다.
“여기 진짜 놀러오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인데? 그게 말이 되나?”
정보를 보고도 믿지 않았던 일인데, 그게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정말 안에 들어가면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지나? 공기 좋고 물 좋은 그런 곳? 멋진 성도 우뚝 서 있고?”
래리가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솔직히 그 정보를 들었을 때 반신반의했다.
한데 막상 여기 와 보니 그것이 좀 과장된 정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안에는 그런 것을 만들 공간 자체가 부족했다.
“아마 저 방으로 들어가면 지하로 연결된 통로가 있겠지? 아니면 옥상이거나.”
하지만 옥상은 아니다. 옥상에 그런 공간이 있다면 렉스턴 에너지의 위성이 그 모습을 잡아내지 못했을 리 없으니까.
“일단 들어가 보시죠. 뭐가 어떻게 되었든 눈으로 봐야 알지 않겠습니까?”
플레이어의 말에 래리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수많은 문 중 하나를 골라 안으로 들어갔다.
방안의 모습은 너무나 예상 외였다.
“이게 뭐지?”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리 크지도 않은 방이었다. 그 한가운데 문이 하나 서 있었다.
그것도 붉은 벽돌을 차곡차곡 쌓아 만든 벽에 붙어있는 문이었다.
“저걸 열고 들어가란 뜻인가?”
말 그대로 벽에 붙은 문이었다. 래리는 가까이 다가가 문 주변을 유심히 살폈다.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혹시 우리가 오는 걸 알고 미리 함정을 판 거 아닐까?”
충분히 그런 생각을 할만 했다. 방 한가운데 문만 덩그러니 놓여 있으니 말이다.
“일단…… 들어가 봐야 하지 않을까요?”
맞다. 문에도 그렇게 써 있었다. 두려워하지 말고 들어가라고 말이다.
문을 여니 더 황당했다. 붉은 벽돌로 쌓아 만든 벽이 서 있었다.
“그러니까…… 저 벽에 대가리를 갖다 박으라 이건가?”
뒤에 서 있던 플레이어가 쓴웃음을 지으며 앞으로 나섰다.
“제가 먼저 해보겠습니다.”
그는 열린 문으로 들어갔다. 벽에 닿기 직전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그가 안으로 쑥 들어갔다.
“헉! 이게 뭐야!”
“사라졌어!”
“설마 공간이동 계열의 아티팩트인가?”
다들 황당한 표정으로 동료를 삼켜버린 붉은 벽돌 벽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머지 플레이어들이 하나둘 그 안으로 사라졌다.
마지막 남은 래리는 한동안 심각한 표정으로 벽을 살폈다.
손바닥을 벽에 갖다 댔다. 그리고 그 순간 그대로 벽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눈앞이 순간적으로 핑 돌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래리는 주위를 둘러봤다. 동료들이 근처에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근처에 세워진 무수한 문들이 보였다. 건물의 각 방이 이렇게 이곳과 연결된 모양이었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하늘을 바라보니 너무나 새파래서 오히려 현실감이 떨어졌다. 마치 던전에 들어온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던전은 아니야.’
그건 단언할 수 있었다. 여긴 던전이 아니다. 던전이라면 저렇게 일반인들이 마음대로 들어와 활보할 수 없을 테니까.
래리는 주위를 둘러봤다. 넓은 들판이 쫙 펼쳐져 있었다. 그들은 지금 언덕 위에 서 있었는데, 저 멀리 성이 보였다.
“끝내주네. 대체 여긴 어디지?”
래리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성을 향해 걸어갔다. 성은 해자로 둘러싸여 있었고, 해자에는 물이 흐르고 있었다.
성 앞 해자에 도착한 래리는 해자를 내려다봤다. 그리고 기겁하며 뒤로 훌쩍 물러났다.
“왜 그러십니까?”
“저 안에…… 마수가 있어.”
“예에? 마수가요? 그럴 리가요. 마수는 던전에서 못 나오지 않습니까.”
사내가 그렇게 말하며 해자로 다가갔다가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났다.
정말로 마수가 있었다. 그것도 왠지 사내가 알고 있는 마수 같았다.
“이거…… 제가 아는 마수 같은데요? 물에 들어가지만 않으면 안전할 거 같습니다.”
다들 얼빠진 표정으로 해자를 멍하니 바라봤다.
래리는 그렇게 해자를 보다가 갑자기 섬뜩한 느낌이 들어 옆을 쳐다봤다.
들판을 가득 메우고 있는 수풀이 묘하게 움직인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사이로 분명히 뭔가가 보였다.
‘설마…… 여기 마수가 돌아다니고 있는 건 아니겠지?’
래리는 고개를 흔들었다.
‘말도 안 되는 억측이야.’
물론 이 일에 대해서는 제대로 보고할 것이다.
그래야 칼슨도 제대로 계획을 세울 테니까.
‘아무래도…… 막는 건 쉽지 않겠어.’
래리는 웅장한 성을 올려다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이제 볼텍스 암시장을 막는 건 어렵다. 아마 엠페러타워의 문을 열면 이곳과 정말 박 터지게 경쟁해야 할 것이다.
‘이런 겉모습이 뭐가 중요해? 물건이 중요하지.’
래리의 그런 생각이 바뀌는 데에는 몇 분 걸리지 않았다. 물건이 나쁠 리 없었다. 애초에 엠페러타워를 빵 띄우기 위해 준비한 물건들이었으니까.
물론 제대로 세탁을 거쳐서 말이다.
* * *
현석은 적당히 속도를 조절하면서 달렸다. 도저히 못 쫓아오겠으면 신호를 보내라고 했지만, 아마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아슬아슬 쫓아갈 수 있을 정도로만 속도를 냈으니까.
그야말로 길이 없는 곳을 뚫고 지나가는 거라서 앞장서서 가는 사람이 가장 힘든 게 정상이었다.
한데 이들은 쫓아가는 쪽이 훨씬 힘들어했다.
현석은 전력을 다하지 않았고, 나머지는 전력을 다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현석의 속도를 그나마 제대로 쫓아가며 약간이라도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은 라이언뿐이었다.
라이언은 현석 옆으로 바짝 따라붙었다. 이대로 따라가기만 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우리 제대로 가고 있는 거 맞아?”
“대충은.”
“대충?”
현석은 그저 케렌스가 가리킨 쪽으로 달리는 중이었다. 케렌스가 아주 정확히 방향을 정했으면 이리로 달리면 제대로 도착할 것이다.
하지만 그랬을 리가 없지 않은가.
각도가 조금만 틀어져도 멀리 떨어진 곳에서는 그 차이가 어마어마하다.
하물며 대충 찍은 방향으로 달리는데 어떻게 제대로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겠는가.
“차이가 많이 날 거 같은데…….”
“그래도 멀리 돌아가는 것보다는 빨라.”
현석의 말에 라이언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린 플레이어니까.”
그것도 고레벨 플레이어다. 감각이 보통 사람과는 완전히 다르다.
더구나 현석에게는 용이라는 소환수까지 있다.
아마 적당히 달리다가 용으로 날아올라서 위치를 확인하면 금방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하여간…… 제대로 설명해주면 어디가 어떻게 돼?’
라이언은 속으로 투덜거리며 슬쩍 뒤로 물러났다. 앞에서 현석과 나란히 달리면 훨씬 힘들다. 앞에 나타난 장애물을 다 치우면서 가야 하니 말이다.
그렇게 일행은 케렌스가 말한 도시에 도착했다. 딱 한 번 용을 소환하는 것만으로 말이다.
< 도시 크락실리아 1 > 끝
ⓒ 김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