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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202화 (202/326)
  • < 조우 >

    개구리 인간은 첫 돌격만 조심하면 그 뒤는 상대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수가 많은 것이 어려운 점 중 하나였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이상의 실력을 가진 사람에게는 별로 문제될 것이 없었다.

    그래서 생각보다 수월하게 늪지대를 벗어날 수 있었다.

    “저놈들 창이라도 모아서 가져가면 돈이 좀 되지 않을까요?”

    류지혜가 아쉬운 눈으로 늪에 둥둥 떠 있는 개구리 인간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개구리 인간들이 들고 있던 창은 여전히 그들 손에 있었다.

    나중에 보니 그냥 만든 창이 아니라 개구리 인간의 뼈가 창처럼 변형된 것이었다.

    저건 재료로 암시장에 팔면 제법 돈이 될 게 분명했다. 지금까지 저런 종류의 재료나 무기는 한 번도 나온 적이 없었으니까.

    아마 연구 차원에서라도 비싼 값에 팔릴 것이다.

    아까 상대해본 바에 따르면 강도도 상당해서 싸우다가 저 창을 부순 사람은 현석이 유일했다.

    라이언이나 추광열조차 저 창을 부수지 못했다. 그러니 강도 하나는 인정할 만했다.

    “여기 사람들도 산다고 했잖아요. 그럼 저런 걸 갖고 가야 나중에 생활하거나 여행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류지혜는 미련이 남는지 연신 고개를 돌려 개구리 인간의 창을 바라보곤 했다.

    현석은 그런 그들의 모습에 그럴 필요 없다는 듯이 말했다.

    “금만 있으면 된다.”

    “예? 금이요?”

    “여기서도 금이나 은은 귀한 물건이니까. 어딜 가든 돈으로 쓸 수 있는 물건은 금과 은뿐이지.”

    다들 어이없는 눈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그 얘기를 지금 해주시면 어떡해요? 알았으면 미리 준비했을 텐데…….”

    그들은 현실에서 상당한 부자다. 특히 라이언이나 추광열은 상상을 초월하는 부를 쌓았다.

    그러니 마음먹고 금을 구하면 정말 엄청나게 구할 수 있다. 이곳에서 금의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어디 가서 떵떵거릴 정도는 충분히 가져올 수 있었으리라.

    그런 생각이 드니 너무나 아쉬웠다. 왜 편히 할 수 있는 여행을 굳이 어렵게 만든단 말인가.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 모였을 때, 현석이 나직이 말했다.

    “사람이다.”

    현석의 말에 다들 황급히 정면으로 몸을 돌려 앞을 확인했다.

    저 멀리 무기를 든 일단의 무리가 서 있었다.

    “가만있자…… 하나, 둘…… 모두 마흔세 명이군.”

    라이언은 느긋하게 그들의 수를 셌다. 풍기는 느낌이 그다지 강자 같지 않아서였다.

    던전에서 강약을 확인하는 방법은 아주 단순했다. 마력의 향기가 짙으면 강하고 옅으면 약하다.

    물론 그 구분법이 100% 확실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걸로 구분하면 별로 틀릴 일이 많지 않다.

    라이언과 추광열은 긴장을 풀었다. 물론 방심하지는 않았다. 이곳에서 방심하다가 어떤 지독한 꼴을 당할지 알 수 없으니까.

    이미 경험도 한 번 하지 않았던가.

    어쨌든 그 두 사람에 비해 팀 메인퀘스트는 상당히 긴장했다. 던전에서 만난 플레이어가 아닌 사람이라니. 충분히 그럴 만했다.

    “무기도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군. 차라리 저기 개구리 인간들이 더 강할 거 같은데?”

    확실히 그래 보였다.

    겉모습만으로 판단하면, 저들은 이 근처에서 일을 하는 용병쯤으로 보였다.

    “어쩌지? 그냥 가볼까?”

    라이언이 현석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런 돌발 상황에서는 대장인 현석의 의견과 결정이 가장 중요했다.

    “기다려.”

    현석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고 앞에 있는 사람들을 그저 쳐다보기만 했다.

    잠시 후, 자기들끼리 쑥덕거리던 사람들이 천천히 이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다들 가죽갑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리 질이 좋아 보이진 않았다.

    들고 있는 무기도 검, 도끼, 창, 활 등등 다양했는데, 그것 역시 갑옷과 마찬가지로 질이 낮았다.

    당연히 아티팩트 같은 건 갖고 있을 리 없었다.

    우락부락한 인상의 사내가 가장 앞에서 무리를 이끌고 있었는데, 그는 현석 일행에게 가까이 다가가자, 한 손을 옆으로 들었다.

    그러자 따라가던 무리가 다들 걸음을 멈췄다. 우락부락한 사내는 혼자서 현석 앞으로 다가갔다.

    사내의 안목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처음 딱 보고 현석이 일행의 리더라는 걸 바로 알아차렸다.

    “케렌스 용병단의 단장 케렌스입니다.”

    케렌스는 제법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눈앞에 있는 사람들의 복장만 봐도 보통 사람은 아니라는 걸 확실히 알 수 있었으니까.

    게다가 현석 일행이 들고 있는 무기는 어디에 가도 쉽게 볼 수 없을 정도로 잘 만들어진 명품이었다.

    어쩌면 말로만 듣던 아티팩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귀한 걸 아무렇지도 않게 들고 다니는 사람의 정체가 뭐겠는가. 필시 어딘가에 있는 대단한 가문의 귀족들이 분명했다.

    현석은 그저 고개만 한 번 끄덕였다.

    케렌스는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아니, 그걸 보고는 상대가 진짜 귀족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저…… 실례가 안 된다면…… 귀하신 분들께서 해치우신 저 마수들을 저희가 처리해도 되겠습니까?”

    그 말에 현석이 고개를 힐끗 돌려 늪지대에 흩어져 둥둥 떠 있는 개구리 인간들의 사체를 슥 둘러봤다.

    그리고 현석 일행은 흥미진진한 눈으로 현석과 케렌스를 번갈아 바라봤다.

    “안내꾼이 필요하다.”

    현석의 말에 케렌스가 깊이 허리를 숙였다.

    “저희 케렌스 용병단의 특기가 바로 길안내입니다. 맡겨만 주십시오.”

    현석은 고개를 가볍게 한 번 끄덕이고는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근처에 있는 넓적한 바위에 걸터앉았다.

    일행들은 잠시 그런 현석을 바라보다가 이내 똑같이 걸어가 현석 근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케렌스가 동료들에게 손짓을 하자 다들 화색이 가득한 얼굴로 우르르 달려가 늪지대로 뛰어들었다.

    철벅거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하지만 누구도 떠들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개구리 인간들을 일단 늪 밖으로 끌어냈다.

    그렇게 늪에서 꺼내 쌓아 놓으니 양이 상당히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엄청난 수의 개구리 인간들이 달려들었고, 현석 일행은 똑바로 이동하면서 덤비는 모든 개구리 인간을 박살 냈다.

    당연히 사체의 수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케렌스 용병단은 다들 입이 찢어질 듯 웃었다. 물론 소리 내서 웃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들은 무조건 정숙을 유지해야 한다는 사명이라도 받은 듯 절대 소리를 내지 않으려 애썼다.

    눈에 띄는 대부분의 개구리 인간을 끌어낸 케렌스 용병단은 각자 적당한 거리를 띄워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빠르게 개구리 인간들을 해체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쓰는 해체용 칼은 오히려 그들의 무기보다 훨씬 뛰어났다. 날이 잘 살아 있었고, 내구력도 좋았다.

    보아하니 사냥이나 전투보다는 마수 해체를 전문으로 하는 용병단 같았다.

    그들은 상당히 서둘렀다. 마수를 주워오는 것도 서둘렀고, 해체 작업도 서둘렀다.

    너무 서두르는 바람에 늪에 흩어져 있는 마수 중 일부를 아예 못 가져오기도 했다.

    어쨌든 그렇게 서두른 덕분에 얼마 지나지 않아 마수를 모두 해체해 쓸모없는 건 늪에 버리고 딱 필요한 것들만 정리해서 챙겼다.

    그들이 가장 중점적으로 챙긴 건 개구리 인간의 창과 쓸개였다.

    그리고 비교적 깨끗한 가죽도 따로 챙겼다.

    “끝났습니다.”

    케렌스가 달려와 현석에게 꾸벅 허리를 숙이며 보고했다.

    그리고는 처분만 기다리는 죄인의 표정으로 현석의 대답을 기다렸다.

    “위험한 곳을 찾고 있다.”

    “예? 위험한 곳 말씀입니까?”

    케레스는 현석이 뭘 원하는지 얼른 알아듣지 못했다. 케레스 입장에서는 널리고 널린 것이 위험한 곳이었다.

    “아무도 정복하지 못한 곳 말이다.”

    케레스의 뇌리에 몇 가지 지명이 스쳐 지나갔다. 저 말을 들으니 현석이 뭘 원하는지 알 것 같았다.

    “당장 떠오르는 곳이 세 군데 있습니다.”

    현석이 얼른 말해보라는 듯 케레스를 쳐다봤다.

    “어둠의 숲, 공허의 산맥, 마수왕의 탑입니다.”

    현석의 눈이 순간 반짝 빛났다. 마수왕의 탑을 말할 때였다.

    “설명해 봐라.”

    케레스는 살짝 의아한 표정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물론 그건 아주 짧은 순간에 불과했다.

    방금 말한 세 군데는 너무나 유명해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장소였다.

    물론 정확한 위치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거기 얽힌 얘기 정도는 어린아이도 안다.

    하지만 케레스는 성심을 다해 설명했다.

    “어둠의 숲은 미친 흑마법사가 사는 곳입니다. 무시무시한 언데드들이 득실거리는 숲인데, 거기 들어간 사람은 아무도 다시 나오지 못했습니다.”

    소문에 의하면 흑마법사가 연구에 쓸 만큼 쓰고 남은 시체를 가지고 언데드를 만든다고 한다.

    그밖에도 거기 얽힌 괴담 같은 얘기들을 몇 가지 덧붙여 주었다.

    “공허의 산맥은 세상을 빙 두르고 있는 산맥입니다. 아무도 오를 수가 없어서 그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근처에 다가가기만 해도 벼락을 맞아 죽으니 누가 거기 오를 수 있겠습니까.”

    현석은 물론이고 그 얘기를 듣는 모든 일행이 흥미진진한 표정을 지었다.

    그 얘기에 아무 감흥이 없는 사람들은 저 멀리 떨어져서 대화가 언제 끝나나 초조하게 기다리는 용병들뿐이었다.

    “마지막으로 마수왕의 탑은 그 위치가 확실히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어둠의 숲 근처 어딘가라는 소문만 좀 돌고 있습니다.”

    마수왕의 탑은 근처에 워낙 강한 마수들이 많아 접근조차 어렵다고 한다.

    그리고 탑에 도착한다 하더라도 선택받지 못한 사람은 거기에 들어갈 수가 없다고 한다.

    “듣기로는 무슨 열쇠인지 증표인지가 필요하다고 하는데,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대충 설명을 들은 현석은 어디로 가야 할지 금방 정할 수 있었다.

    “어둠의 숲으로 가야겠군. 제일 가까운 도시가 어느 방향에 있지?”

    케레스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방향을 찾으라니. 하지만 그는 사방을 둘러보며 머릿속으로 뭔가를 골똘히 계산하더니 한 쪽을 가리켰다.

    “아마 이쪽에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길을 찾으시는 편이 아마 훨씬 빠를 겁니다.”

    당연하다. 길이 아닌 곳으로 가면 어떤 위험을 만날지 모르는 곳이 바로 이 세상이니까.

    “가자.”

    현석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리고 일행을 슥 둘러봤다.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 떠날 준비를 했다.

    케레스가 다급한 표정을 지었다.

    “저…… 물건은…….”

    “다 너희가 가져라.”

    케레스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저걸 다 가지라니. 그게 정말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그런 초보적인 실수를 해선 안 된다.

    귀족들 중에는 자신의 말에 명예와 자부심을 담는 자들이 있다. 그런 자들이 한 말에 일말의 의심이라도 표하면 죽음으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케레스는 다시 한 번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감사 인사는 백 번이라도 할 수 있지만 그래선 안 된다. 케레스는 얼른 동료들에게 눈짓을 했다.

    지금은 서둘러 길을 안내하는 것이 그들이 가장 신경 써야 할 일이었다.

    “제가 도시까지 안전하고 빠르게 모시겠습니다.”

    케레스의 말에 현석은 그를 힐끗 쳐다보더니 걸음을 옮겼다. 방금 도시가 있는 쪽이라고 했던 방향이었다.

    “못 쫓아오겠으면 신호를 보내라.”

    현석은 그렇게 말하고 달리기 시작했다.

    “가면 간다고 신호나 좀 보내라!”

    라이언과 추광열이 황급히 그 뒤를 쫓아 달려갔다.

    그리고 팀 메인퀘스트도 허겁지겁 달려갔다. 물론 앞서 달려나간 세 사람에 비해 월등히 느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케레스 용병단이 보기엔 그들이 달려가는 속도가 인간의 것 같지가 않았다.

    “사람이 맞긴 한 건가?”

    케레스는 저 멀리 점이 되어 멀어져가고 있는 현석 일행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단장, 뭐해? 우리도 얼른 가자. 여기 있다가 망할 개구리들이 나타나면 다 죽어.”

    그 말에 케레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늪지대에서 벗어난 장소이긴 했지만 그래도 마수의 영역 안이었다. 서둘러 벗어나지 않으면 정말 큰일이 날 수도 있었다.

    케레스는 서둘러 자리를 뜨며 외쳤다.

    “일단 도시로 간다. 서둘러!”

    용병단은 케레스의 명령에 따라 우르르 움직였다.

    얻은 게 많으니 근처 마을에서 헐값에 판매하느니 좀 멀더라도 도시까지 가서 직접 파는 게 훨씬 나았다.

    아마 이걸 다 정리하면 당분간은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것이다.

    케레스 용병단은 밝은 분위기로 빠르게 이동했다.

    그리고 그들을 가장 앞에서 이끌어가는 케레스의 뇌리는 가는 내내 현석 일행에 대한 생각으로 꽉 차 있었다.

    < 조우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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