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운 모험 2 (8권 끝) >
다음 날부터 일행은 강행군을 시작했다.
사실 라이언과 추광열은 근처를 좀 더 둘러봐야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현석이 저렇게 가는데 굳이 태클을 걸고 싶지는 않았다.
일행은 처음 정한 방향으로 똑바로 나아갔다.
가면서 마수라도 한 번쯤 만날 법도 한데, 그런 것도 없었다.
그저 끝없이 황무지만 이어졌다.
문득 라이언이 말했다.
“그런데 우리 어디로 가는 중이지?”
“호수 밖 세상.”
“호수 밖?”
라이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호수 밖 세상이라니. 그럼 여긴 호수 안 세상이란 말인가?
현석은 라이언을 슬쩍 보며 말했다.
“이 던전의 구조를 확인해 본 적 있나?”
“응? 그게 가능해? 여긴 그러기엔 너무 넓어서 안 될 거 같은데?”
현석은 라이언의 말에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
라이언은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봤다. 그리고 깜짝 놀라 현석을 바라봤다.
“너, 날 수도 있는 거야? 하늘에서 이 던전의 구조를 확인했구나. 맞지?”
현석은 거기에 대한 대답 대신 구조를 설명했다.
“이 던전은 거대한 호리병 모양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가 지금 가는 길이 병목이고.”
윗부분에 비해 아랫부분은 열 배가 넘을 정도로 크다고 했다.
사실 윗부분을 이루는 곳도 굉장히 넓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라이언과 추광열은 윗부분에 대해서만큼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곳을 모두 탐험했으니까.
방금 그들이 지나온 숲이 굉장히 넓긴 하지만, 그 숲은 윗부분의 전체 규모에 비하면 정말 얼마 안 되는 크기였다.
그 정도로 넓은 곳이 바로 호리병 윗부분이었다.
한데 그것의 열 배가 넘는 크기가 아래에 또 있다니, 대체 여긴 얼마나 넓은 던전이란 말인가.
하지만 호수에서 만난 놈들을 떠올리면 충분히 그럴 법도 했다. 그때 있던 종족의 수도 제법 많았고, 인간들도 제법 많았다.
게다가 그들은 다들 세력을 이루고 있는 것 같았다. 어쩌면 국가도 있을지 모른다.
거기 있던 인간들은 대부분 귀족의 인장을 가지고 있었다. 그건 나라나 거대한 세력이 형성되지 않으면 존재하기 어려운 물건 아닌가.
어쨌든 호리병의 병목을 막고 있는 것이 바로 호수였고, 일행은 그 호수를 지나 병목을 지나가는 중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아무것도 없고, 이대로 쭉 가기만 하면 되는 거였군.”
라이언은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길 지나가면 진짜 넓은 세상이 나타날 것이다. 그 세상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또 무슨 일이 있을지 기대되어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현석과 라이언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류지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여기가 던전이 맞긴 한 건가요? 왠지 다른 던전들과는 많이 다른 것 같은데…….”
대답은 라이언이 해 주었다. 아주 단호했다.
“던전 맞아.”
“그렇…… 군요.”
“호리병 윗부분은 내가 다 확인했거든. 끝으로 가면 다른 던전이랑 똑같이 막힌 곳이 나와. 그냥 진짜같은 사진만 펼쳐진 벽 말이야.”
류지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거라면 이곳이 던전이라는 걸 확신할 수 있다.
라이언은 류지혜가 수긍하고 물러나는 걸 보며 빙긋 웃었다. 왠지 더 팀에 대해 호감이 들었다. 자신들의 역할을 아마 톡톡히 해줄 것이다.
‘그나저나…….’
라이언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양파 같은 사람이라는 말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정말 까도까도 새로운 게 계속 나오니 이젠 감탄을 넘어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하늘을 날 수 있다니. 그게 말이 되긴 하는 건가?’
라이언은 플레이어의 정점에 선 사람이다. 물론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걸 스스로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쨌든 정점에 가까운 사람 중 하나다.
그렇기에 플레이어가 가진 한계에 대해서 제법 잘 안다고 할 수 있었다.
플레이어가 강한 건 맞고, 레벨업을 통해 육체적, 정신적으로 끝없이 강해질 수 있는 것도 맞다.
또한 특별한 스킬을 통해서 인간은 엄두도 낼 수 없는 희한한 일을 해낼 수 있다는 것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하늘을 난다는 건, 특히 이 넓은 세상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높이 날아오른다는 건 또 다른 얘기였다.
그건 육체적 능력이나 단순한 스킬 한두 개로 해결할 수 없는 기술이었다.
“정말 하늘을 날 수 있는 건가? 대체 어떤 스킬을 얻으면 그게 가능해지는 거지? 아니, 아티팩트인가? 그렇군. 그런 아티팩트가 있는 거였어.”
생각이 아티팩트에 미치자 라이언도 수긍할 수 있었다. 아티팩트는 플레이어가 가진 스킬과는 많이 다르다.
그건 일종의 전자장비나 기계장비와 비슷하다. 라이언이 생각하기엔 그랬다.
그러니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는 아티팩트가 하나쯤 있다고 해서 이상할 건 없었다.
현석은 자기 멋대로 이해하고 상황을 받아들인 라이언을 보며 잠시 고민했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어차피 하루이틀 같이 지낼 사이도 아니고, 결국 언젠가는 이들도 봐야 할 테니, 이들도 알고 있는 게 나았다.
“나와라.”
“응?”
라이언은 현석의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순간적으로 자신이 잘못 알아들은 거라 여기며 그게 무슨 말이냐고 다시 물으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라이언은 현석 근처에 있던 다른 사람들의 표정을 볼 수 있었다.
‘저놈들 왜 저래?’
다들 경악을 넘어 얼빠진 표정으로 멍하니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대체 뭐가 나왔기에…….”
라이언은 일행을 따라 고개를 돌려 뒤에 있는 무언가를 확인하고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커다란 용 한 마리가 온몸에서 뇌전을 파직거리며 서 있었다.
금방이라도 입을 벌려 벼락을 콰아아 쏟아낼 것 같은 모습이었다.
다들 뭘 어찌 해야할지 몰라 패닉 비슷한 상황에 빠졌다. 저 용에게 덤벼야 할지, 아니면 도망쳐야 할지 판단조차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
모두가 내린 답은 하나였다. 그들은 현석을 바라봤다.
현재 일행의 리더이자 최고 결정권자는 현석이었으니까.
“내 소환수다.”
“헐!”
다들 똑같은 소리를 냈다. 표정이 확 풀어졌다. 그리고 용과 현석을 번갈아 바라봤다.
이젠 더 놀랄 힘도 없었다. 아니, 이건 놀랍다기보다는 경이로웠다.
소환수라니.
플레이어에게 소환수라는 것이 허락되어 있다는 사실조차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한데 소환수라니. 그것도 개나 고양이도 아닌 용이라니.
“멋지다…….”
류혜연의 눈이 살짝 풀리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녀는 반짝반짝 빛나는 눈이 되어 현석을 바라봤다.
“어떻게 얻으신 거예요? 저도 소환수를 얻을 수 있을까요?”
현석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우연히 얻었다. 방법은 나도 모른다.”
너무나 허무한 대답에 다들 맥이 살짝 빠졌다. 하지만 용이라는 마수 자체를 처음 접하는 사람도 있기에 신기한 시선은 여전했다.
“그러니까…… 이 용을 타고 날아서 정찰을 한 거로군?”
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말하면, 아직 시도는 제대로 안 해봤지만 하늘을 날아오르는 것이 불가능할 것 같지 않았다.
용이 어떻게 날아오르는지 원리를 모두 파악했기에 그걸 조금 비틀어 적용시키면 사람도 충분히 날아오를 수 있지않을까?
“이 용…… 나도 탈 수 있나?”
라이언의 말에 다들 탐욕어린 눈으로 용과 현석, 그리고 라이언을 번갈아 바라봤다.
현석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타는 거야 누구든 상관없지.”
다만 견뎌야 할 뿐이다. 저 용의 등에 흐르는, 또 온몸에 흐르는 저 뇌전을 말이다.
그리고 날아 이동할 때, 온몸을 덮치는 바람의 저항도 견뎌내야 한다.
그걸 용이 따로 보호해 주지는 않는다. 용이 보호해주는 대상은 정확히 주인뿐이었다.
괜찮다는 말에 신나서 타겠다고 나섰다가 그 얘기를 듣고 입이 쭉 나와 물러나는 라이언의 모습에 다들 빙긋 웃었다.
어쨌든 놀란 건 놀란 거고 그 와중에도 다들 걸음을 멈추지는 않았다.
어느새 용도 돌아갔고, 저 멀리 뭔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저게 뭐죠?”
멀리 있어서 처음엔 잘 몰랐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거대한 숲이 펼쳐져 있었다.
“또 숲이네요.”
양세희가 질린 눈으로 숲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황무지 끝에 펼쳐진 숲은 그야말로 끝없이 좌우로 펼쳐져 있었다.
그걸 보면 앞으로 그들이 지나가야 할 길이 얼마나 멀고 험난할지 예상이 가능했다.
“숲의 종족 한 명만 데려오면 안 되나?”
라이언이 그렇게 중얼거렸을 정도로 숲의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그리고 숲에서부터 흘러나오는 분위기나 마력도 심상치 않았다.
저 숲은 정말 위험한 곳이다. 다들 그 점 하나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크지 않으니 걱정할 거 없다.”
그 말에 다들 반색하며 현석을 바라봤다. 다른 사람이 저 말을 했다면 코웃음부터 날려줬겠지만, 현석이 했다면 얘기가 다르다.
현석은 하늘 높은 곳에서 이곳 던전의 전체적인 지형을 다 확인한 사람이다.
그러니 숲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충분히 파악해 뒀을 것이다.
현석이 앞장서서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나머지 사람들도 그 뒤를 따랐다.
숲에 가까이 다가가니 현석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이 숲이 바로 병목의 가장 좁은 부분이었다. 나머지 끝없이 펼쳐져 있던 숲은 모두 진짜 같은 가짜였다.
“이걸 보니 여기가 던전이라는 걸 알겠네요.”
류지혜는 그렇게 말하며 벽을 손으로 쓰다듬어봤다.
이 길목은 정말로 좁았다. 사람 열 명 정도가 나란히 걸어가면 꽉 찰 정도였다.
게다가 그 좁은 곳에 나무까지 있었다.
다만 길이는 제법 길었다. 하지만 실제 규모가 크지 않았기에 거기에 사는 마수는 없었다.
아마 마수들은 저 가짜 세상 속에 있는 모양이었다.
어쩌면 마수가 좀 있었을 수도 있지만, 이곳을 지나다니던 다른 사람들에 의해 다 죽었을 것이다.
어쨌든 일행은 대부분이 가짜로 이루어진 숲을 통과했다.
숲에서 나가자마자 늪지대가 쫙 펼쳐져 있었다. 그냥 밀림 중간에 있는 늪지대 같은 게 아니었다.
이것 역시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넓게 펼쳐져 있었다.
“이건…… 진짜겠죠?”
류지혜의 표정이 울상으로 변했다. 차라리 숲이 낫지 이런 늪지대는 오히려 더 힘들다.
일단 이동이 불편하니 힘도 몇 배로 더 들고, 체력 소모도 심했다.
“여길 지나가는 거…… 쉽지 않겠네요.”
어려우니 위쪽으로 가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 아니겠는가. 아마 이런 곳이 없다면 아래에 살던 종족이나 인간들이 벌써 위쪽으로 다 진출했을 것이다.
늪지대 곳곳에서 마수의 기척이 느껴졌다. 그냥 쉬운 마수는 절대 아니었다. 풍기는 마력의 힘이 상당했으니까.
“뭐…… 마수들이 제법 있긴 하지만 우리 상대는 아닌 거 같은데?”
라이언이 자신만만하게 나섰다. 그러자 추광열이 바짝 붙었다.
두 사람 역시 함께 다닌 세월이 있기에 둘만의 호흡이 있었다. 따로 싸우는 것보다는 둘이 같이 싸우는 것이 훨씬 안전하고 효과적이고 강했다.
그렇게 두 사람이 모이자, 팀 메인퀘스트도 자연스럽게 전투진형을 갖췄다.
가장 앞에 탱커인 양세희가 섰고, 그 뒤에 근접딜러인 권혁찬이 섰다.
그리고 권혁찬 뒤에 원거리 딜러인 박승희와 힐러인 류혜연이 섰고, 가장 뒤에 버퍼이자 리더인 류지혜가 자리했다.
그동안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며 완성한 진형이었다. 다른 방식으로 짤 수도 있겠지만 이들에게는 이게 가장 익숙하고 잘 맞았다.
“그럼 잘 따라오도록.”
현석은 그렇게 말하고 쭉쭉 앞으로 나아갔다.
두 팀이 황급히 그 뒤를 따랐다. 추광열, 라이언 팀이 왼쪽 뒤에 비스듬하게 떨어져서 따라갔고, 팀 메인퀘스트가 오른쪽 뒤를 따라갔다.
꾸룩! 꾸룩! 꾸룩!
개구리를 닮은 인간형 마수들이 사방에서 불쑥불쑥 솟아났다.
그들은 손에 길고 날카로운 창을 하나씩 들고 있었다.
꾸룩!
개구리 뒷다리처럼 생긴 다리로 한 놈이 도약했다. 엄청난 속도로 돌진해 그대로 창을 내질렀다.
꽈득!
현석이 대충 휘두른 검에 개구리 인간이 박살 나 뒤로 날아갔다.
다들 설마 이런 식으로 공격해올 줄 몰랐기에 아무도 대응하지 못했다.
만일 현석이 아닌 다른 사람을 공격했다면 제법 큰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다들 심기일전하며 눈을 번득였다.
이제 방심은 없다.
그들은 천천히 앞으로 전진했다. 사방에서 개구리 인간들이 그들을 노려보며 창을 꾹 움켜쥐었다.
전투 직전에 내려 앉는 특유의 싸한 긴장감이 좌중을 휘감았다.
그 와중에 가장 여유로운 사람은 현석이었다.
현석은 개구리 인간들의 포위망 뒤쪽 먼 곳에서 움직이는 다른 존재들을 확인했다.
그들은 분명히 인간이었다.
< 새로운 모험 2 (8권 끝) > 끝
ⓒ 김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