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눈 뜨고 레벨업-200화 (200/326)
  • < 새로운 모험 1 >

    “여긴가요?”

    류지혜는 눈앞에서 일렁이고 있는 화이트홀을 바라보며 심호흡을 했다.

    나머지 팀원들도 모두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여길 오기 위해 비행기까지 타야 했다. 저 화이트홀에 들어가려고 미국까지 온 것이다.

    “아마 지금까지 가던 던전들이랑은 많이 다를 거야. 이 안은 또 다른 세상이나 다름없으니까.”

    “또 다른 세상…….”

    다섯 사람의 얼굴에 어린 긴장감에 묘한 기대감이 섞여 들어갔다.

    두근거리는 그들의 심장소리가 현석의 귀에 천둥처럼 쿵쿵 울렸다.

    “그 세상은 다른 던전이랑은 달리 날씨가 존재하고 사람이 살고 있어.”

    “사람이 살고 있다고요? 던전에요?”

    류혜연이 깜짝 놀란 눈으로 현석을 바라보며 물었다.

    다들 마찬가지로 정말 크게 놀랐다. 던전에 사람이 살고 있다니. 그럼 마수와 인간이 공존하고 있단 말 아닌가.

    “지금까지 상대하던 마수들은 잊는 게 나을 거야. 그렇게 순한 놈들은 이제 더는 나오지 않을 테니까.”

    “그 마수들이…… 순한 거라고요?”

    현석의 말에 긴장감이 높아졌다.

    ‘뭐…… 아예 틀린 말은 아니니까.’

    현석은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말을 이었다.

    “심지어 인간이 아닌 다른 종족들도 있어.”

    점입가경이었다. 다섯 사람은 멍하니 현석과 화이트홀을 번갈아 바라봤다.

    안 그래도 플레이어 생활을 하면서 던전이라는 것에 대한 의문이 항상 들었었는데, 이젠 그 의문이 더욱 짙어졌다.

    “아마 너희만 저 안에 들어가면 제대로 여행을 시작하기도 전에 다 죽을 거다.”

    “그, 그 정도로 위험한 곳인가요?”

    “위험한 곳도 있고, 그렇지 않은 곳도 있지. 일단…… 초기 시작점의 주변을 다 정리하긴 했는데…….”

    남아 있는 숲의 종족이 문제였다.

    그들은 상당히 폐쇄적이다. 아마 현석 없이 이들만 들어간다면, 팀 메인퀘스트는 숲속에서 숲의 종족을 상대로 싸우는 최악의 길을 걸어야 할 것이다.

    숲의 종족은 숲에서 훨씬 강해진다. 또한 훨씬 은밀해진다.

    그들이 작정하고 숲에 숨으면 웬만한 사람은 그들의 코앞을 지나가도 발견하지 못할 정도였다.

    또한 그들은 숲에서는 몸놀림이 몇 배로 민첩해진다. 그리고 힘도 몇 배로 강해진다.

    한 마디로 숲의 축복을 받은 종족이었다.

    더구나 이젠 근원의 나무가 제대로 깨어나 힘을 뿌려대고 있다. 숲의 종족은 한동안 점점 더 빠르게 강해질 것이다.

    그러니 그들이 사는 숲 한가운데에 이들을 떨어뜨려 놓으면 무슨 꼴을 당하겠는가.

    아마 몇 시간 살지도 못하고 다 죽을 것이다.

    ‘레벨은 다들 200에 근접하긴 했는데…….’

    200을 넘지 못해 좀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그 짧은 시간 동안 이 정도 성장을 이뤘으면 충분히 대단한 일이었다. 칭찬받아 마땅했다.

    아마 저 안에 들어가 좀 구르다 보면 금방 200레벨은 넘을 것이다.

    현석이 고개를 돌려 문 쪽을 쳐다봤다.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돌아갔다.

    막 방으로 들어서는 두 사람이 있었다.

    그 두 사람을 본 다섯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라이언?”

    라이언은 다섯이 합창하듯 내뱉은 자신의 이름을 듣고는 씨익 웃었다.

    “역시 1등한 보람이 있군.”

    세계 제일의 플레이어인 라이언의 얼굴은 상당히 잘 알려져 있었다. 물론 플레이어들 사이라는 조건이 붙긴 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추광열도 라이언만큼은 아니더라도 제법 잘 알려져 있었다. 다만 지금은 라이언의 그림자에 살짝 가려졌을 뿐이었다.

    “젠장. 날 알아보는 사람은 하나도 없는 건가? 이거 서러워서 내가 1등 해버려야지, 원.”

    라이언이 그런 추광열의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려 주었다.

    “나 여기 있소, 광고하고 싶으면 그렇게 하든가.”

    “닥쳐.”

    추광열은 인상을 쓰며 입을 꾹 다물었다.

    반쯤은 농담 삼아 한 말이었다.

    레벨 측정을 하면 바로 추광열이 1등으로 올라갈 수 있지만, 그렇게 하면 자신의 위치만 공개하는 꼴이 된다.

    앞에 선 다섯 사람이 너무 긴장하고 있는 것 같아 살짝 풀어주고자 한 말이었다.

    “추, 추광열까지?”

    다들 멍하니 추광열과 라이언을 번갈아 바라봤다.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당황스러움과 어리둥절함이 적절히 뒤섞인 표정을 짓고 있는 다섯 사람을 보며 라이언이 씨익 웃었다.

    그는 화이트홀로 다가가 그 옆에 서며 그들에게 말했다.

    “이거 원래 내 거였어.”

    라이언은 그렇게 말하고는 현석을 힐끗 쳐다봤다.

    “뭐…… 이젠 아닌 거 같지만.”

    현석은 얘기가 길어지자 앞으로 나섰다.

    “이제 우린 여기에 같이 들어갈 거다. 이 안을 모두 확인하기 전까지는 돌아오지 않을 생각이다.”

    현석의 말에 양세희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그 기간이…… 얼마나 될까요?”

    “그건 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하지만…… 아주 길게 잡는 게 좋을 거다.”

    다들 침음을 흘렸다. 던전에서 사냥을 해봤기에 저 안에서 오랫동안 버틴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다들 잘 알고 있었다.

    아마 정말 쉽지 않은 사냥이 될 것이다. 아니, 쉽지 않은 모험이 될 것이다.

    표정이 살짝 어두워진 팀 메인퀘스트에 비해 라이언과 추광열은 한껏 들떠 있었다.

    “이제 드디어 우리도 호수를 넘어가는 건가?”

    “그 저주스러운 그림자 인간들도 다 사라졌으니 이제 배타고 곧장 가면 되겠어.”

    류지혜는 두 사람의 반응을 보며 현석에게 물었다.

    “이분들과 함께 가는 건가요?”

    그녀의 표정에는 기대감도 있었지만 불안감도 함께 있었다. 라이언과 추광열이 얼마나 대단한 플레이어인지는 잘 안다.

    하지만 그들과는 호흡을 맞춰본 적이 없었다.

    강자가 팀에 들어온다고 무조건 환영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강한 사람일수록 혼자 치고 나갈 확률이 높기에 팀웍에는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었다.

    류지혜는 팀장답게 그 점부터 걱정했다.

    “걱정할 거 없다. 동행하지만 따로 움직일 테니까. 정확히는 전투만 따로 하게 될 거다.”

    그제야 류지혜가 안도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녀의 반응에 라이언과 추광열이 어이없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허어. 이거 뭐지? 방금 내가 짐짝 취급을 당한 거 같은데? 내가 잘못 들은 건가?”

    “아니, 제대로 들었어. 나도 방금 방해꾼 취급을 당한 것 같아.”

    두 사람의 말에 류지혜가 당황했다. 그런 의도로 말한 건 아니었지만 충분히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

    그녀는 두 사람에게 사과하려고 했다. 하지만 라이언의 말과 행동이 더 빨랐다.

    라이언은 빙긋 웃으며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마음에 들어. 아무래도…… 진짜 제대로 된 팀을 만난 거 같은데? 안 그래?”

    추광열도 씨익 웃으며 맞장구쳤다.

    “내 말이 그 말이야. 정말 기대되는데?”

    류지혜를 비롯한 팀 메인퀘스트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두 사람을 바라봤다.

    역시 아무나 세계 제일이 되는 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 잡담은 여기까지 하고, 필요한 거 있으면 준비해. 정확히 세 시간 후에 출발한다.”

    현석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라이언과 추광열이 팀 메인퀘스트에게 다가갔다.

    “우리가 밖에 나갈 수 없는 형편이라서 그러는데, 이것 좀 사다주지 않겠어?”

    두 사람이 각자 뭔가를 잔뜩 적은 쪽지를 류지혜에게 건넸다.

    류지혜는 쪽지를 확인하고는 황당한 눈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다가 이내 한숨을 푹 내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다 드릴게요.”

    두 사람이 빙긋 웃었다.

    “고마워.”

    왠지 팀 메인퀘스트와 두 사람 사이의 유대감이 조금 더 깊어진 듯했다.

    류지혜는 쪽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거기에는 초콜릿과 캔디를 비롯한 달콤한 군것질거리들이 잔뜩 쓰여 있었다.

    * * *

    “우와아.”

    팀 메인퀘스트는 화이트홀에 들어오자마자 일제히 탄성을 흘렸다.

    이렇게 풍부한 마력이 느껴지는 던전은 처음이었다.

    밀림 형태의 던전도 몇 번 겪어보긴 했지만, 나무나 풀이 주는 느낌 자체가 전혀 달랐다.

    “현실감이 넘치네요.”

    보통의 던전에는 미묘하게 현실감이 떨어지는 부분이 있었다. 웬만한 플레이어는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아주 예민한 사람은 묘한 위화감을 느끼곤 한다.

    팀 메인퀘스트가 딱 그랬다. 그들은 여타의 플레이어들에 비해 감각이 상당히 예민한 편이었다.

    또한 퀸급 던전에서 많은 경험을 쌓으며 그 위화감을 좀 더 명확히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더 놀라웠다. 이 던전은 그런 식의 위화감이 전혀 없었다.

    “그나저나 나무가 정말 많네요.”

    양세희가 주위를 둘러보며 그렇게 말하자, 라이언이 피식 웃었다.

    “여기가 원래 눈밭이었다고 하면 놀라겠군.”

    “예? 눈이요? 여기 원래 눈이 있었다고요?”

    “원래 이 던전 입구는 눈 내리는 산이었어.”

    “정말요? 던전에서 눈이 내린다고요?”

    라이언과 추광열은 씨익 웃었다. 이런 상황도 나름 즐거웠다.

    “그런데 우리 대장이 이렇게 만들어 버렸지. 정말…… 대단한 양반이야.”

    팀 메인퀘스트는 초롱초롱 빛나는 눈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그동안도 보통 사람이 아니라고 여겼지만, 이런 얘기를 듣고 나니 더더욱 대단해 보였다.

    “쓸데없는 얘기는 나중에 하고 가자. 일단 오늘 중으로 호수를 건널 테니까.”

    “호수를 건넌다고?”

    라이언이 놀란 눈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여기서 호수까지 가는 데에만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근원의 나무 주변으로 펼쳐진 울창한 숲을 지나가는 데에만도 열 시간이 넘게 걸릴 테니까.

    하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만일 여기 올 때처럼 숲의 종족이 나타나 길을 안내해 준다면 얘기가 좀 달라질 테니까.

    어쨌든 일단 지금은 서둘러야 한다. 일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니 말이다.

    현석을 중심으로 한 일행이 빠르게 산을 내려갔다. 그리고 최대한 서둘러 숲을 가로질러 지나갔다.

    나무가 너무 울창해서 하늘도 잘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고작 며칠 지났을 뿐인데 숲이 더욱 울창해졌다. 또한 숲을 채운 마력도 훨씬 짙어졌다.

    “여기 정말 장난 아닌데요?”

    숲을 헤치며 달려가는 류지혜가 혀를 내둘렀다. 그녀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따라가던 네 팀원도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무가 너무 많으니 똑바로 달려가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그래도 어찌어찌 빠르게 이동하고는 있었다. 가장 앞에서 길잡이 역할을 하며 일행을 이끄는 현석의 덕이 컸다.

    현석이 그렇게까지 빠르게 이동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팀 메인퀘스트가 쫓아가기에는 살짝 버거운 속도였다.

    그렇게 달리던 현석이 갑자기 멈춰 섰다.

    류지혜를 비롯한 팀 메인퀘스트는 의아한 표정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하지만 라이언과 추광열은 기대감 어린 눈으로 사방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들은 이미 한 번 겪었기에 숲의 종족이 도와주러 왔다는 걸 알아차린 것이다.

    갑자기 현석 앞에 숲의 종족 하나가 나타났다.

    다들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정황상 그는 그곳에 숨어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주변 환경에 동화되어 숨어 있다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한데 아무도 그가 거기에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다들 놀랐다. 특히 라이언과 추광열은 감탄을 넘어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숲에서 숲의 종족을 상대하는 건 미친 짓이라는 게 이거구나.’

    그 얘기를 해준 사람은 현석이었다. 두 사람이 숲의 종족에 대해 너무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어서 한 마디 해준 것이다.

    그 얘기를 들을 때만 해도 별 생각 없었다. 하지만 이젠 그렇지 않다.

    저런 귀신같은 은신술을 가진 종족을 상대로 어떻게 숲에서 싸운단 말인가.

    ‘뭐…… 진짜 마음먹고 싸우면 지지야 않겠지만.’

    라이언과 추광열의 눈에서 투지가 살짝 타올랐다가 사라졌다.

    숲의 종족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현석에게 정중히 인사를 하고는 일행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마치 나무가 알아서 길을 비켜주는 듯했다.

    조금 가다보니 뻥 뚫린 도로가 갑자기 눈앞에 나타났다.

    일행은 신기한 표정으로 사방을 둘러보며 빠르게 달려갔다.

    그렇게 예상보다 세 배나 빠르게 숲을 벗어날 수 있었다.

    * * *

    밤이 되었다.

    팀 메인퀘스트는 던전에서 겪는 또 한 번의 새로운 경험에 또 두근두근 하고 있었다.

    밤이 되니 하늘에 쏟아질 것처럼 많은 별이 보였다.

    모닥불이 피어오르고 있었고, 그 주위에 다들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다.

    몇몇은 모닥불에 끓인 차를 마시는 중이었고, 몇몇은 아직 채 끝내지 못한 식사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저 운치 있지만은 않았다.

    묘한 불길함이 사방에 촥 내리깔려 있었다.

    그렇게 화이트홀에서의 첫날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일행의 위치는 호수 한가운데 있는 섬이었다.

    < 새로운 모험 1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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