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눈 뜨고 레벨업-196화 (196/326)

< 세 번째 증표 4 >

“키에에에에에엑!”

“크윽!”

“큭!”

라이언과 추광열은 인상을 찡그리며 얼른 귀를 막았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정말 소름끼치는 괴성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지?”

“글쎄. 다신 듣고 싶지 않은 소리야.”

“나도. 아깐 몰랐는데 이거…… 온몸이 부서지는 것 같네. 끄응.”

두 사람은 온몸을 주물렀다. 그냥 괴성이 아니라 지독한 성질의 마력이 가득 담긴 외침이었다.

아마 그 두 사람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멀쩡히 앉아있지도 못했을 것이다.

아니, 그 두 사람도 이렇게 성장하기 전이었다면 아마 위험했을 것이다.

“그나저나…… 슬슬 시간이 되어 가는 거 같은데…….”

추광열은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살펴봤다. 슬슬 마력을 뽑아갈 시간이 되어 가는데 그림자 인간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추광열과 라이언은 서로를 바라봤다.

“이거…… 설마…… 어쩌면……!”

기대에 찬 추광열의 말에 라이언이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아까 그놈 기억 안 나?”

추광열의 얼굴에 떠올랐던 기대감이 다시 푹 가라앉았다.

“후우. 젠장. 차라리 지금 자살할까?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감시하는 놈들도 안 보이는데.”

“하긴. 죽을 시간은 있을 것 같군.”

한데 막상 죽겠다고 생각하니 뭔가 허무했다. 예전에는 그렇게 죽으려고 애썼는데, 지금은 선뜻 그런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이 그렇게 망설이고 있을 때, 어딘가에서 강한 바람이 불었다.

콰아아아아아!

그냥 강하다고 하기 어려울 정도로 굉장한 바람이었다. 이 정도면 폭풍이나 태풍이라고 얘기해야 맞을 것 같았다.

게다가 놀랍게도 그 바람에 마력이 잔뜩 담겨 있었다.

“크응! 이게 또 무슨 일이지?”

“아무래도…… 뭔가 일이 벌어져도 단단히 벌어진 거 같은데?”

두 사람의 얼굴에 불안감이 떠올랐다.

“누군가 온다!”

라이언과 추광열은 거의 동시에 인기척을 느꼈다.

누군가 저 멀리서 다가오고 있었다. 굳이 기척을 감출 생각도 없어 보였다.

다가오는 자의 존재감이 엄청났다. 만일 저자가 마음먹고 기척을 감췄으면 지척에 다가올 때까지 알아차리지 못했으리라.

“어라?”

추광열이 얼빠진 표정으로 다가오는 사람을 바라봤다.

“왜? 아는 사람이야? 역시 렉스턴인가?”

추광열이 멍하니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바로 저자야.”

“응? 저자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만나기로 한 사람 말이야.”

라이언이 눈살을 찌푸렸다.

“만나기로 해? 그게 무슨…… 아! 그 내기!”

라이언이 새삼스러운 표정으로 다가오는 사람, 현석을 바라봤다.

“그나저나…… 너무 멀쩡한데? 여긴 그런 허술한 곳이 아닌데 말이야.”

라이언의 말에도 추광열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대체 현석이 여기 왜 있단 말인가.

설마 내기 때문에 여기까지 찾아온 건가?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자신이 여기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았으며, 또 그림자 인간을 어떻게 처리했단 말인가.

추광열의 표정이 점점 복잡해졌다.

현석은 철창 앞에 서서 묘한 눈으로 그 안에 있는 두 사람을 쳐다봤다.

“한 사람은 알겠고…… 그쪽이 라이언?”

현석의 물음에 라이언이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내가 라이언이야.”

현석은 그런 두 사람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242레벨? 언제 이렇게 레벨을 올렸지?’

둘 다 242레벨이었다. 예전의 레벨을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성장세였다.

물론 현석의 지금 레벨을 생각하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니었지만 이들과 현석은 상황과 주어진 힘 자체가 다르지 않은가.

“다 부서진 철창에서 뭐 하는 거지?”

현석의 말에 두 사람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솔직히 이건 부끄러운 일이었다. 스스로 철창에 걸어 들어와 갇히다니 말이다.

“오다가 그림자 인간 못 봤나? 한둘이 아니었을 텐데?”

라이언이 대답 대신 물었다. 사실 그게 제일 궁금했다.

“다 정리했다.”

“뭐?”

“다 정리했다고? 네가?”

“그래.”

“혼자서?”

현석은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지금 그런 건 다 쓸모없는 대화에 불과했다.

이미 끝난 일을 돌아봐서 뭐 하겠는가.

“그보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두 사람은 또 얼굴을 붉혔다.

“뭐…… 여러 일이 있었지. 그동안 여기서 우리가 당한 건…… 마력 갈취라고나 할까…….”

“마력 갈취?”

“그래. 마력이 바닥 날 때까지 쭉쭉 뽑아가더군. 정말 지독한 놈들이었어.”

말하던 추광열이 이를 부득 갈았다. 그때의 고통과 공포가 떠오르니 절로 그 그림자 인간들에 대한 증오와 분노가 샘솟았다.

“그래서 그런 건가? 이건 또 흥미롭군.”

“흥미롭다고? 우리가 당한 게 흥미롭다는 건가?”

추광열이 이를 갈며 현석을 노려봤다. 하지만 달려들지는 못했다.

그 지독한 그림자 인간들을 혼자 사냥한 놈이다. 게다가 말은 안 했지만 그 거대한 문어 그림자도 현석이 처리했을 것이다.

그런 놈에게 덤벼봐야 아주 잘 되면 죽음이다. 아차하면 이곳에서 겪었던 그 끔찍한 고통과 치욕을 또 겪게 될 수도 있다.

이곳에서의 생활이 추광열과 라이언을 크게 위축시켰다. 그래서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게 무의식이 제동을 걸었다.

“레벨이 많이 오른 것 같군.”

“뭐?”

“나중에 측정해봐라. 측정기 기준으로는 어떤지 몰라도 내가 보기엔 242레벨 정도 되는 거 같으니까.”

“뭐라고?”

두 사람은 경악했다. 242레벨이라니!

“말도 안 돼! 우린 이번에 화이트홀에 들어와서 거의 사냥을 안 했는데?”

안 한 게 아니라 못했다.

사실 화이트홀을 처음 발견한 뒤부터 꾸준히 들어와 주변을 정리하고 사냥을 해왔다.

그래서 일부나마 지도도 작성할 수 있었다.

이곳 화이트홀의 구조는 출입구가 있는 산을 중심으로 동그란 모양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확인하려던 곳이 바로 이곳 호수너머였다.

그냥 빙 돌아서 지나가도 되는데, 굳이 섬으로 온 이유는 너무나도 강렬한 끌림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 끌림 자체가 함정이라는 건 지금 와서야 알 수 있고 깨달을 수 있는 일이었고 말이다.

이번에 화이트홀에 들어올 때, 이쪽 호수 너머에 가보기로 하고 들어왔기 때문에 사실상 사냥 자체를 아예 못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사냥이라고 해봐야 갈대 좀 자른 게 전부였으니까.

갈대밭을 지나자마자 그림자 보자기에 잡히는 바람에 그 뒤로는 아무것도 못 했다.

한데 242레벨이라니! 말도 안 되는 성장이었다.

“마력을 바닥까지 뽑히는 경험이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는 뜻이겠지.”

현석의 말에 추광열과 라이언이 동시에 소리쳤다.

“네놈이 뭘 안다고! 그게 안 나쁜 거라고? 그럼 대체 뭐가 나쁜 건데!”

현석은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 했다.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그 말에 두 사람은 입을 꾹 다물었다. 생각해보면 맞는 말이다. 현석이 아는 거라고는 그들이 마력을 뽑혔고, 그걸로 인해 레벨이 올라갔다는 것뿐이었다.

그들이 무슨 일을 겪었는지는 전혀 모를 것이다.

그리고 그들도 자신들이 겪은 일이 외부에 흘러나가는 걸 원치 않았다.

그제야 두 사람은 흥분을 가라앉혔다. 굳이 이걸로 흥분해봐야 자신들만 손해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현석은 엄연히 두 사람의 은인이었다.

“아무튼…… 고맙다. 너 아니었으면 아마…… 우린 여기서 절대 풀려나지 못했을 거야.”

현석은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받았다. 확실히 그건 맞다. 자신이 아니었다면 저들은 여기서 빠져나가지 못했을 것이다.

그림자 왕을 상대해본 결과가 그랬다. 그림자 왕은 사실 마두스의 영혼이 아니었다면 현석도 그리 쉽게 해치우지 못했을 것이다.

“그보다 우리가 여기 있는 건 대체 어떻게 알았지? 여기를 찾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을 텐데.”

추광열이 신기한 표정으로 물었다.

현석이 해줄 수 있는 대답은 사실 하나뿐이었다.

“그냥 감이야.”

“뭐?”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찾아왔으니 그걸 가지고 뭐라 할 수도 없었다.

감이라니. 그런 불확실하고 비논리적인 걸 이용해 자신을 찾으려 했다니.

‘우리가 진짜 운이 좋았구나.’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작 현석은 그것을 좀 더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대체 이게 뭘까? 그냥 감이 뛰어나다는 정도로는 설명이 불가능해.’

현석의 감은 플레이어나 던전에 관계되면 더없이 빛을 발한다.

물론 평소에도 상당히 감이 뛰어나지만, 솔직히 그건 필요 이상으로 예민한 감각과 미래에 대한 정보가 어우러져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결과였다.

하지만 던전에서의 일은 그렇지 않다.

그런데도 던전에 있다보면 중요한 순간 묘한 예감이 들곤 했다. 그 예감은 대부분, 아니, 거의 100프로에 가까울 정도로 맞아 떨어진다.

마치 누군가 길을 제시해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현석은 상념을 접고 추광열을 쳐다봤다.

“미뤘던 내기를 해야지?”

추광열은 그 말에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내기는 무슨. 우리가 갖고 있던 걸 그림자 인간들이 몽땅 가져가는 바람에 남은 게 하나도 없다.”

현석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럼 여기서 왜 이러고 있단 말인가. 다시 찾으러 가야지.

지키는 놈들도 없는데 말이다.

“여기 잡혀온 게 너희 둘뿐인가?”

현석의 물음에 두 사람이 의아한 표정을로 바라봤다.

“그게 무슨 말이지? 그럼 누가 또 있어?”

“그놈들이 마력을 갈취할 대상이 너희뿐은 아닐 것 같은데?”

그제야 두 사람이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후다닥 철창에서 나갔다.

현석은 그걸 보고는 피식 웃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섬은 제법 넓었다. 그리고 물건을 숨길만한 장소도 많았다.

하지만 예상컨대, 그걸 찾아봐야 아마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이들은 마족이다. 그리고 마족은 아공간 아티팩트의 사용에 익숙하다.

감춰둔 장소 자체가 아공간일 확률이 높았다.

“그럼 당연히 다 내 거지.”

현석은 느긋하게 마력을 흘리며 걸음을 옮겼다.

현석의 마력이 안개처럼 자욱하게 깔리기 시작했다. 그 마력의 안개는 이내 섬 전체를 뒤덮었다.

“생각보다…… 잡혀온 놈들이 많은데?”

섬 곳곳에서 마력 반응이 감지되었다. 대부분 추광열이나 라이언과 비슷한 수준의 마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니 그렇게 크게 자랐지.”

그림자 왕의 마력은 정말 어마어마했다. 하지만 이제 그 마력 대부분을 마두스의 영혼이 흡수했다.

현석은 레벨업을 했고 말이다.

현재 현석의 레벨은 258이었다. 그리고 앞으로 299까지는 벽을 만나지 않고 레벨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레벨업이 정말 어려워진다.

아마 추광열과 라이언도 앞으로는 레벨업이 쉽지 않을 것이다.

레벨은 높아질수록 하나 올리기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워지니까.

‘슬슬…… 레인보우 엘릭서가 필요할 때가 되어가는군.’

사실 처음 회귀했을 때는 200레벨부터 레인보우 엘릭서를 이용해 레벨을 올려야겠다고 계획했다.

한데 지금은 생각이 좀 달랐다.

회귀 전의 세상과 지금의 세상은 많이 달랐다.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플레이어들의 성장이 훨씬 빨라졌다.

그리고 현석의 성장도 예상보다 훨씬 빨랐다.

그래서 계획을 다시 수정했다. 300레벨 정도로 말이다.

어쨌든 앞으로는 레벨업이 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빨리 레인보우 엘릭서를 준비해야 한다.

‘어쩌면…… 렉스턴 에너지에서는 벌써 레인보우 엘릭서 제작에 성공했을지도 모르지.’

왠지 그럴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직 정체를 파악하지 못한 그 미지의 플레이어가 신경 쓰였다. 그가 렉스턴 에너지의 관계자일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보통 이런 예감은 또 안 틀리고 말이야.’

현석은 그런 생각을 하며 걸음을 옮겼다. 아공간의 위치는 벌써 파악했다.

그곳으로 마력보유자들이 속속 모여들고 있었다.

‘아공간이 하나가 아니라는 걸 아마 모르는 모양이군.’

현석의 감각에 아공간이 두 개 잡혔다. 대부분, 아니, 모두가 한 쪽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나머지 하나는 그냥 방치였다. 아마 그게 금고인지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럼 난 그쪽부터 가야겠군.’

현석은 방향을 바꿔 빠르게 걸었다. 이쪽의 아공간은 아마 크기가 작은 걸로 봐서 중요한 것만 따로 모아둔 듯했다.

현석의 입가가 슬쩍 올라갔다.

빠르게 걸어가던 현석이 멈춰서 고개를 들었다. 다들 여길 그냥 지나친 이유는 척 보니 알 수 있었다.

그저 평범한 바위 아래에 아공간이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바위 그림자 속에 아공간이 만들어져 있었다.

당연히 그냥 아공간 보다 더 은밀했고, 해체도 어려웠다.

그걸 본 현석이 씨익 웃었다.

< 세 번째 증표 4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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