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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194화 (194/326)
  • < 세 번째 증표 2 >

    갈대밭을 지나가는 동안에는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근처에 뭔가가 있는 건 확실했다. 갈대를 잘라 만든 길을 걸으니 느낌이 더 확실해졌다.

    이 갈대밭 안에 뭔가가 있었다.

    현석은 조금도 방심하지 않고 모든 감각을 예리하게 다듬으며 이동했기에 약간의 변화도 모두 캐치할 수 있었다.

    갈대밭 중간쯤을 지나던 현석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바닥을 내려다봤다.

    밑둥이 잘려나간 갈대들이 바닥에 촘촘히 나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잘린 갈대들이 쓰러져 있었다.

    현석의 눈이 번득였다. 그리고 즉시 위로 뛰어올랐다.

    촤아악!

    높이 점프한 현석의 발아래로 갈대 모양의 날카로운 칼날이 지나갔다.

    밑둥이 잘린 갈대가 다시 자라나며 현석을 공격한 것이다. 칼날 같은 갈대가 허공을 쫙쫙 훑고 지나갔다.

    점프했던 현석은 허공에 뜬 채 검을 뽑아 다시 휘둘렀다.

    촤촤촤촤촥!

    칼날 갈대들이 우수수 잘려나갔다.

    그리고 멀쩡한 갈대들이 더 길게 자라나며 현석을 휘감으려 했다.

    마치 가느다란 로프들이 현석을 잡으려고 날아오는 듯했다.

    현석은 침착하게 검을 휘두르며 이동했다.

    슈가가각!

    갈대들이 힘없이 잘려 나갔다.

    대응하지 않으면 무시무시한 공격이었지만, 갈대 자체는 별로 강하지 않았다.

    가벼운 칼질에도 쉽게 잘렸고, 속도도 생각보다 빠르지 않았다.

    하지만 현석은 방심하지 않고 빠르게 앞으로 이동하며 검을 정신없이 휘둘렀다.

    슈가가가각!

    날아온 갈대들이 우수수 잘려 쏟아졌다.

    아무리 검을 휘두르고 있다지만, 현석의 속도가 워낙 빨랐는지라 갈대밭을 빠져나오는 건 순식간이었다.

    갈대밭을 빠져나온 현석의 등을 노리고 무수한 갈대들이 쭉쭉 자라나 창처럼 찔러 들어갔다.

    현석은 부드럽게 몸을 돌리며 검을 크게 휘둘렀다. 현석의 검에는 마력이 가득 담겨 있었다.

    쉬아아아악!

    거대한 마력의 칼날이 현석이 휘두르는 검의 궤적을 따라 쭈욱 뻗어 나갔다.

    초승달처럼 생긴 마력의 칼이 갈대밭을 그대로 휩쓸고 지나갔다.

    슈가가가가가각!

    처음 현석이 갈대밭에 들어오기 전에 만든 거대한 부채꼴 모양의 길이 또 한 번 생겨났다.

    물론 이번에는 훨씬 더 넓은 길이 만들어졌다.

    정확히 그 순간, 그러니까 마력의 칼이 현석의 검에서 떨어져 나간 순간 바닥에서 시커먼 그림자 세 개가 동시에 솟아올랐다.

    그 세 그림자는 현석의 뒤를 노리고 그대로 덮쳤다.

    마치 검은 보자기를 덮어씌우는 듯했다.

    아마 지금까지 이 갈대밭을 지난 사람은 이와 똑같은 패턴의 공격을 받았을 것이다.

    이건 미리 준비된 공격이었다. 그 정도로 모든 타이밍과 상황이 딱딱 맞아 떨어졌다.

    만일 현석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대부분 여기 걸려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석은 이미 이에 대한 대비를 하고 있었다.

    갈대밭을 지난 순간 바닥에 써 있는 글을 읽었기 때문이다.

    [그림자 보자기]

    세 개의 그림자 보자기가 바닥에 착 달라 붙어 있었다. 그러니 어떻게 모를 수가 있겠는가.

    이 그림자 보자기들의 능력이 조금 더 특별해서 현석의 심안을 벗어날 수 있었다면 얘기가 조금 달라질 수도 있었겠지만, 아쉽게도 그 정도는 아니었다.

    현석은 벌써 이들의 존재를 파악하는 건 물론이고 약점까지 확인한 뒤였다.

    퍼버벅!

    “키에에에에엑!”

    뭔가 터지는 소리가 세 번 울림과 동시에 괴성을 내지르며 그림자 보자기들이 펄럭펄럭 뒤로 날아갔다.

    어느새 그들의 모습이 똘똘 뭉쳐 마치 검은 공처럼 변해버렸다.

    그림자 보자기의 약점은 쫙 펼쳤을 때 나타난다. 그 지점이 워낙 바늘귀처럼 작아서 발견하기 어려울 뿐이었다.

    하지만 현석 정도 되는 실력자가 미리 대비하고 있다면 그걸 발견해 핀포인트로 찌르는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었다.

    약점을 훤히 드러내고 공격하는 셈이었으니까.

    문제는 공격에 빛속성을 담아야 한다는 점이었는데, 현석은 빛속성도 충분히 갖고 있었기에 그것 역시 어렵지 않았다.

    현석은 공처럼 말려 뒤로 날아가는 그림자 보자기를 빠르게 쫓아갔다.

    일단 약점을 얻어맞아 저렇게 되었을 뿐, 아직 죽은 게 아니었다.

    현석은 검에 빛속성을 가득 담아 공 하나를 그대로 내리그었다.

    서걱!

    공처럼 말린 그림자 보자기가 둘로 쩍 쪼개졌다.

    파사삭!

    쪼개진 그림자 보자기는 검은 연기가 되어 허공에 흩어졌다.

    그걸 본 순간 현석은 아공간에 보관 중인 마두스의 영혼이 떠올랐다.

    갑자기 그게 이 순간 왜 떠올랐는지 모른다. 현석은 즉시 그걸 꺼냈다. 검은 구슬이 현석의 손에 생겨났다.

    그러자 허공에 흩어지던 검은 연기가 그대로 그 구슬로 흡수되었다.

    “키에에에에엑!”

    소름끼치는 비명과 함께.

    현석은 잠시 그대로 서서 손에 든 마두스의 영혼을 가만히 내려다봤다.

    더 달라는 듯 새까만 빛을 번들거리고 있었다.

    현석은 고개를 들어 저 멀리 멀어져가는 그림자 보자기들을 쳐다봤다.

    그리고 힘껏 몸을 날려 나머지 두 그림자 보자기도 처리해 버렸다.

    죽고 사라지는 연기는 마두스의 영혼에 흡수시키고 말이다.

    마두스의 영혼은 마수가 흩어지면서 생겨난 검은 연기를 게걸스럽게 흡수했다.

    ‘이건…… 나중에 생각하자.’

    무슨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았다. 신의 파편이 준 보상이었다. 득이 되면 되었지 해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현석은 완벽하게 마음을 놓지 않았다. 마음 한구석에 약간의 의심을 남겨 두었다.

    그래야 혹시 모를 사태가 벌어졌을 때, 제대로 대처할 수 있을 테니까.

    마두스의 영혼을 다시 아공간에 넣은 현석은 눈앞에 펼쳐진 거대한 숲을 쳐다봤다.

    이제 여기 들어갈 것이다.

    라이언과 추광열은 아마 분명히 저 숲 안에 있을 것이다.

    * * *

    “크윽.”

    라이언이 비틀거리며 철창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추광열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더니 이내 바닥에 벌렁 누워 버렸다.

    그의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지독한 놈들.”

    라이언의 중얼거림에 추광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철창 앞을 지키는 새까만 그림자 인간을 쳐다봤다.

    마치 인형 같은 놈이었다. 얼굴이 있는 부분에는 눈 두 개만 뻥 뚫려 있었는데, 거기가 진짜 눈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었다.

    입도 없었는데, 말을 할 때 보면 입 부분이 쩍 벌어져 굉장히 기괴해 보였다.

    그림자를 모아 사람 모양으로 대충 빚어 놓은 것처럼 생긴 마수였다.

    그리고 실제 능력도 그림자 같은 놈이었다.

    지금이야 인형처럼 저렇게 서서 건들건들하고 있지만 막상 싸우게 되면 바닥에 짝 달라붙어 상대의 그림자로 쏙 들어가 버린다.

    그럼 게임 끝이다. 갑자기 자신의 그림자가 벌떡 일어나 싸움을 거는데 능력이나 스킬이 자신과 아주 똑같았다.

    게다가 싸움 스타일까지 똑같았다. 정말 자신과 싸우는 것 같았다.

    당연히 금방 승부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적은 한 놈이 아니었다. 다른 그림자 인간들이 다가와 또 바닥에 짝짝 달라붙어 그림자가 되어 스며든다.

    그러면 똑같은 능력을 가진 놈이 하나씩 더 늘어나는 것이다.

    하나도 버거운데 둘을 어떻게 이기겠는가.

    더 미치게 하는 건 고작 둘로 끝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추광열은 처음 그놈들과 싸울 때 다섯 놈을 상대해야 했다. 당연히 처참하게 깨져 사로잡혔다.

    라이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 두 사람에게 지옥이 열렸다.

    “아…… 진짜 미쳐버리겠다. 차라리 죽어버리고 싶을 지경이야.”

    라이언의 중얼거림에 추광열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 생각도 당연히 해봤다. 한두 번이 아니라 매번 한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저 지독한 놈들은 자살도 못하게 한다. 자살 시도 한 번 했다가 그동안 겪은 지옥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험한 꼴을 당한 뒤로, 다시는 시도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마력을 빨아가는 거야 참을 만한데, 그 대롱만 안 꽂아도 좋겠는데. 젠장!”

    라이언과 추광열은 하루에 두 번 어딘가로 끌려가 온몸의 마력을 쪽쪽 빨리고 온다.

    한데 그 과정이 지독하기 그지없었다.

    몸에 있는 구멍이란 구멍에는 모두 굵직한 대롱을 꽂는데, 그 과정이 어찌나 고통스러운지 절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한데 비명을 지를 수도 없었다. 입에도 그 거대한 대롱이 들어가니까.

    그뿐 아니었다. 온몸에 바늘을 푹푹 꽂는데, 그것 역시 미칠 정도로 괴로웠다.

    어찌 그렇게 아픈 곳만 골라서 꽂는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였다.

    아무래도 신경에 직접 닿도록 하는 것 같은데, 그래서 그런지 그 고통은 이루 형언할 수가 없었다.

    그 상태로 마력을 쫙 빨린다.

    그때의 고통도 엄청났다. 하지만 그 전에 겪은 고통이 워낙 커서 상대적으로 그나마 견딜 만했다.

    어쨌든 매일 두 번씩 그 일을 겪으니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았다.

    아직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것 자체가 용했다.

    “누가 이 지옥에서 우리 좀 구해주지 않으려나…….”

    라이언의 말에 추광열이 피식 웃었다.

    “우리가 여기 있는지 어떻게 알고?”

    “그래도 우리가 가진 화이트홀은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추광열이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가능성 있지. 렉스턴 에너지가 어쩌면 찾았을지도 모르고. 우리가 사라진 지 제법 됐잖아? 그놈들 꾸준히 우리한테 영입 제안을 해왔고.”

    “그렇지! 그러니까 그놈들이 우릴 구해주기만 하면!”

    “그러면? 영입제안에 응하려고?”

    “그래도 되지 않아? 난 날 여기서 구해주기만 한다면 그 사람이 설사 악마라 해도 손을 잡을 거야. 고개를 숙이고 밑으로 들어갈 거라고.”

    “난…… 그냥 죽여주기만 해도 그럴 수 있을 거 같아.”

    추광열의 말에 라이언이 힘없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도 그래. 그냥…… 죽여줬으면 좋겠어.”

    둘이 그렇게 얘기하고 있을 때, 철창 문이 열렸다.

    철컹!

    두 사람은 반사적으로 깜짝 놀라 문을 바라봤다. 하지만 안으로 들여오는 엄청난 양의 음식을 보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얼마나 시달렸으면 철창 문 여는 소리에 이렇게 경기를 하겠는가.

    어쨌든 저 음식은 다 먹어야 한다. 남기면 또 어떤 지독한 꼴을 당할지 알 수 없으니까.

    ‘이것도 고역이야.’

    이곳에서 내주는 음식은…… 정말로 맛이 없었다.

    * * *

    현석은 숲으로 들어가며 새로 얻은 타이틀의 효과가 발동하는 걸 느꼈다.

    모든 스탯이 10씩 올라가니 힘이 불끈 솟았다.

    현석은 숲에 들어가며 묘한 느낌을 받았다. 마치 모든 숲이 자신을 관찰하고 주시하는 듯했다.

    ‘숲이 살아있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들어 유심히 살폈지만 딱히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한데 왜 이렇게 많은 시선이 느껴지는 걸까?

    문득 현석의 뇌리에 아까 갈대밭을 나오자마자 달려들던 그림자 보자기가 떠올랐다.

    그렇다면 여긴 그림자 형태의 마수나 마족이 사는 곳일지도 모른다.

    ‘그럼 말이 좀 되지. 한데…… 심안에 안 걸려드는 건가?’

    어쩌면 그림자 속에 숨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아까 그림자 보자기는 그냥 맨바닥에 붙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곳을 숲속이었다. 온통 그림자로 뒤덮인 곳이니 그림자 속에 숨을 수 있는 놈들에게는 최적의 장소였다.

    현석은 심안에 좀 더 집중했다. 평소처럼 그냥 단순히 펼치기만 하는 게 아니라 심안 자체에 마력을 집중해 능력을 훨씬 높게 올리는 방식이었다.

    그러자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들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림자 인간]

    현석은 사방에 깔린 그림자 인간들을 슥 둘러보며 씨익 웃었다.

    더 자세한 정보를 보고 싶었는데, 저놈들이 그림자 속에 숨어있는 한, 이게 한계인 듯했다.

    그나마도 심안의 능력이 올라가지 않았다면 이조차 확인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림자 인간들은 한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수는 상당히 많았는데, 움직이지 않으니 숲 안으로 들어가도 상관은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현석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놈들 봐라?’

    현석은 이들의 목적이 자신을 죽이는 데 있는 게 아닌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건 그저 감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현석의 감은 한 번도 주인을 배신하지 않았다.

    ‘아까 그림자 보자기도 그렇고…….’

    그림자 보자기도 현석을 사로잡으려 했다.

    아까 거기에 갇혔으면 현석은 공간이 뒤틀린 곳에 끼어서 그놈들이 원하는 장소까지 끌려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물론 그 상황에서 쓸 수 있는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놈들은 현석을 사로잡는 게 목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꼭 그게 목적이 아니더라도 내가 그냥 돌아가는 걸 방치할 리는 없어.’

    이 섬 자체가 지나가는 사람을 끌어들이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숲에 들어와 보니 아주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이곳이 거대한 마력의 흐름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결정을 내린 현석은 거침없이 움직였다.

    그대로 뒤돌아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이 숲에서 빠져나가려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숲에 잔뜩 흩어져 자리를 잡고 있던 그림자 인간들이 우르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일제히 현석을 쫓아갔다.

    하지만 현석은 아직 숲 초입에 있었다. 너무나도 여유롭게 숲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현석을 따라 나온 그림자 인간들, 밝은 빛 아래에 놓인 그림자 인간들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현석의 심안이 엄청난 마력을 뭉텅 가져갔다. 이내 그림자 인간의 정보가 쫙 펼쳐졌다.

    < 세 번째 증표 2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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