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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192화 (192/326)

< 두 번째 파편 >

끝을 알 수도 없고, 천장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동공이었다.

현석은 그 동공의 중심에 서 있었다.

그리고 그 동공은 아까 봤던 그 덩굴로 꽉 채워져 있었다.

현석이 이곳을 신의 파편이라고 확신한 건 바로 그 덩굴들 때문이었다.

덩굴들이 기묘한 문양을 이루고 있었다.

그 문양의 모습이 첫 번째 신의 파편에서 본 그 투명한 판에 그려져 있던 문양과 상당히 흡사했다.

물론 근본적으로는 다른 문양이었다. 그려진 방식이 비슷할 뿐이지 전혀 다른 문양이라는 건 금방 알 수 있었다.

어쨌든 현석은 사방을 둘러보며 감탄했다. 덩굴로 저렇게 마법진을 만들 수도 있다니 말이다.

덩굴로 만들어졌기에 모든 마법진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다.

심지어 바닥과 벽을 뒤덮은 덩굴들조차 특별한 문양을 이루고 있었다.

현석은 덩굴들의 내부를 지나가는 미약한 마력의 흐름을 캐치해냈다.

하긴 당연한 일이었다. 마력이 흐르지 않으면 저걸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테니까.

기본적으로 저건 마력패턴이었다. 마력패턴이라는 건 마력을 특별하게 배열해서 효과를 얻어내는 기술이다.

그러니 마법진을 제대로 작동시키려면 문양에 원하는 만큼의 마력이 흐르게 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문양을 이루는 모든 선에 균일한 마력이 배분되는 게 아니었다. 어떤 곳은 조금, 또 어떤 곳은 많이 필요했다.

그뿐 아니라 마력이 흐르는 속도도 조절해야 한다.

그러니 그저 단순한 패턴이라 하더라도 그 안에서 무궁무진한 변화가 가능했다.

가장 파악하기 어려운 패턴은 변화하는 패턴이었다. 문양은 그대로인데, 그 안에 들어가는 마력의 양이나 속도가 매순간 달라지면서 변화하는 패턴이 가장 파악하기 어려웠다.

보통 아공간의 보안에 그런 방식의 패턴이 쓰인다.

그리고 그 비슷한 방식이 투명 던전의 출입구에서도 가끔 발견할 수 있었다.

방금 들어온 신의 파편의 수준이 딱 그 정도였다.

아마 예전의 현석이라면 이렇게 쉽게 들어오지 못했으리라.

어쨌든 현석은 덩굴이 만든 문양을 충분히 감상하고 분석해봤다.

머리가 팽팽 돌다가 과부하가 걸릴 정도로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방식의 마법진이었다.

신의 파편이라는 이름이 정말 잘 어울리는 듯했다.

정말 신이 아니라면 이런 마법진을 만드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것 같았으니까.

첫 번째 신의 파편을 깨울 때는 당시 그 탑의 마력과 현석이 동화하는 방식을 썼다.

딱 그 방법이 떠올랐고, 그건 제법 잘 먹혔다.

한데 왠지 여기서는 그걸로는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일단 이곳 내부에 있는 마력의 양이 너무 적었다. 마력에 동화를 하건, 그 마력을 어떻게든 움직여보건 기본은 마력이 존재해야 한다.

위에서 볼 때는 분명히 이곳에 거대한 마력이 있는 것 같았는데, 막상 바닥에 내려오니 마력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그나마 있는 것이 덩굴 속에 있는 있으나마나할 정도로 미약한 마력이 전부였다.

대체 아까 느꼈던 그 거대한 마력의 덩어리는 뭐였을까?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군.’

현석은 살짝 난감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그리고 아래를 내려다봤다.

바닥도 덩굴로 꽉 채워져 있었다. 물론 덩굴은 이리저리 휘고 꺾여 특별한 문양을 이루고 있었다.

‘이 안에다가 마력을 채우기만 하면 되는데…… 그럼 내 마력을 주입해 볼까?’

현석은 그 생각이 들자마자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었다. 이 거대한 덩굴의 속을 모두 마력으로 채우려면 대체 얼마나 막대한 마력이 필요하겠는가.

아무리 현석이 가진 마력이 많아도 그건 불가능했다.

게다가 이게 다가 아닐 수도 있었다. 현석은 어쩌면 지금 이곳에 있는 덩굴뿐 아니라 여길 이루고 있는 케이크 모양의 산 자체가 모두 이어져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절벽과 폭포, 그리고 밀림에도 덩굴은 얼마든지 있었다. 어쩌면 그 덩굴들 모두가 하나로 이어져 있을지도 모른다. 또한, 다들 어떤 특별한 역할을 하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 모든 덩굴에까지 마력이 닿아야 하는데, 현석이 가진 마력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잠시 고민하던 현석의 눈이 번쩍 빛났다.

생각해보니 이럴 때 정말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는 것이 하나 있었다.

원래는 없었지만 여기 들어오기 전에 받은 물건이 있지 않은가.

바로 생명수였다.

현석은 엄청난 양의 생명수를 따로 받아왔다. 어쩌면 그걸 이용해 여길 깨울 수 있지 않을까?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바로 하면 된다. 현석은 아공간에서 생명수가 담긴 거대한 물통을 꺼냈다.

나무등걸 모양의 물통은 단단히 밀봉되어 있었다. 현석은 물통 아랫부분에 손가락으로 구멍을 뚫었다.

생명수가 구멍을 통해 졸졸졸 흘러나왔다.

보기에는 그냥 물이지만 이 물에는 엄청난 마력이 응축되어 있었다.

현석이 몸에 보유한 마력보다 이 물 한 모금에 들어간 마력이 아마 더 많을 것이다.

물론 마력의 종류가 다르기에 양으로 비교하는 건 의미가 없었지만, 어쨌든 생명수는 그 정도로 막대한 마력이 담긴 물이었다.

졸졸 흘러나오는 물이 바닥을 타고 흘렀다. 바닥도 온통 돌로 이루어져 있었기에 어딘가에 스며들거나 하지는 않았다.

현석은 자신의 마력을 뭉텅 쏟아내 바닥에 고이고 있는 생명수를 덮었다.

모든 마력 컨트롤 능력을 거기에 집중했다.

이제 이 생명수를 덩굴 안으로 집어넣어야 한다.

만일 이게 그냥 물이었다면 아예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건 물이 아니라 생명수였다.

특별한 마력으로 이루어진 물이 바로 생명수다.

그렇기에 현석의 마력컨트롤 능력에 따라 이걸 덩굴 안으로 밀어 넣을 수 있었다.

조금씩 덩굴 안으로 생명수가 스며들어갔다.

생명수를 흡수한 덩굴에서 은은한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현석은 그런 것에 신경을 쓸 겨를도 없었다. 졸졸 흐르는 생명수를 덩굴에 집어넣는 것에 모든 정신이 집중되어 있었다.

바닥에 고였던 생명수가 빠르게 사라졌다. 졸졸 흘러나오는 생명수의 양보다 덩굴로 스며들어가는 양이 더 많아진 것이다.

정확히 그 순간 현석은 구멍 하나를 더 뚫었다.

흘러나오는 생명수의 양이 대번에 두 배로 늘었다.

다시 바닥에 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간이 좀 지나자, 고였던 물이 서서히 줄어들더니 이내 깨끗이 사라져버렸다.

현석은 구멍 하나를 더 뚫었다.

그렇게 물이 고였다가 사라지고 구멍이 하나 더 늘어나는 일이 기계적으로 반복되었다.

바닥을 가득 메우고 있던 모든 덩굴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 빛이 점차 위로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빛으로 이루어진 물이 점차 위로 차올라가는 듯한 광경이 펼쳐졌다.

바닥의 덩굴을 모두 채운 생명수가 위를 가득 메우고 있는 덩굴로 올라가고 있는 것이다.

이제 통에 남은 생명수가 거의 다 사라졌다. 하지만 덩굴의 빛은 절반도 차지 않았다.

현석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통에서는 이제 생명수가 방울방울 떨어지고 있었다.

현석은 손바닥으로 가볍게 통을 때렸다.

쩡!

현석의 손바닥이 때린 부분을 중심으로 거미줄 같은 금이 쩍쩍 가기 시작했다.

꽈드드득!

그리고 통이 산산이 부서졌다.

그나마 통에 남아있던 생명수가 모조리 바닥에 쏟아졌다. 양이 제법 많았지만 그것 역시 금세 덩굴 안으로 스며들었다.

현석은 주위를 둘러봤다.

일단 할 수 있는 만큼은 했다. 이곳에 있는 모든 덩굴을 빛으로 채우는 건 이제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몇 통 더 가져올걸 그랬나?”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곳 던전을 뒤덮은 덩굴의 양이 얼마나 많은데 고작 생명수 세 통으로 해결되겠는가.

사실 현석은 시작의 불씨만 당기면 결국 신의 파편이 활성화될 것이라 여기고 이 일을 한 것이다.

이걸로 안 되면 생명수가 세 통 아니라 열 통이 있어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이제는 그냥 기다리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현석은 가만히 생명수의 흐름을 느껴봤다.

생명수는 이름에 걸맞게 덩굴 안에서 정말로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마력으로 이루어진 물답게 그 안에서 마력이 마구 꿈틀거리는 중이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생명수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폭발적으로 그 양이 증가했다.

담긴 마력의 합이야 똑같겠지만 상태가 달라지면서 부피 또한 늘어나게 된 것이다.

정체되어 있던 빛의 수면이 갑자기 위로 쭉쭉 올라가기 시작했다.

허공을 가득 메우고 있던 덩굴로 이루어진 마법진에 툭툭 빛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일단 완벽한 개체를 이루는 마법진 하나가 빛으로 채워지면 거기에서부터 마력이 급격히 늘어나 옆에 있던 마법진으로 마력을 공급했다.

그렇게 허공을 가득 메우고 있던 모든 덩굴에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말이다.

퍼버버버버버벅!

빛이 마법진 하나를 밝힐 때마다 뭔가 가볍게 터지는 소리가 났다.

현석은 그 소리가 마법진에서 마력이 뿜어져 나오는 소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마력이 거의 없던 공간에 점차 마력이 채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마력의 농도가 점점 올라가고 있었다.

[퀘스트 완료]

현석은 자신의 눈에 떠오른 문구를 보며 씨익 웃었다. 그리고 지그시 눈을 감았다.

본능적으로 제대로 된 보상을 받으려면 그렇게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다.

예전에 신의 파편을 깨웠을 때와 비슷한 상태에 빠졌다. 한 번 해봐서 그런지 그때보다 훨씬 빠르게 이곳, 신의 파편과 동화되었다.

현석은 갑자기 시야가 달라지는 걸 느끼며 슬쩍 미소를 지었다.

현석의 시야는 점점 위로 올라갔다. 이내 던전 전체를 조망할 수 있었다.

던전을 잔뜩 뒤덮은 덩굴들이 빛을 내고 있었다. 그 빛이 던전 전체로 쫘악 퍼져 나가는 중이었다.

그 광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한데 그걸 보면서도 시야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더 위로 올라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다가 던전을 벗어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생각대로 되었다. 시야가 던전을 벗어났다. 놀랍게도 벗어나니 땅속이었다.

아까 거기였다. 신의 파편이란 이름을 가진 투명 던전이 있던 동굴 말이다.

거기서 더 위로 올라갔다.

결국 근원의 나무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근원의 나무를 중심으로 어마어마하게 넓은 세상이 모조리 한 눈에 들어왔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근원의 나무를 중심으로 바닥에서 갑자기 싹이 나더니 쭉쭉 자라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수가 어마어마했다. 원래는 허허벌판이던 곳을 순식간에 나무로 뒤덮어 버렸다.

갑자기 숲이 생겨난 것이다.

그 기세는 처음 현석이 왔던 눈 덮인 산까지 이어졌다. 그곳의 눈이 모조리 녹으면서 초록으로 채워졌다.

그리고 나무가 쭉쭉 자나나기 시작했다.

현석은 그 순간 묘한 감각을 느꼈다. 근원의 나무와 하나가 되는 듯했다.

정말 놀랍게도 갑자기 자라난 숲 모두가 근원의 나무와 연결되어 있었다.

숲 자체가 근원의 나무였다.

그 모든 감각이 온몸으로 생생하게 느껴졌다.

숲에 어마어마한 수의 마수와 마족들이 갇혔다. 미처 숲에서 빠져나갈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뒤늦게라도 빠져나가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마족 근처에 있던 나무에서 날카로운 가지가 빠르게 솟아나 심장을 꿰뚫어 버린 것이다.

어찌나 강하고 날카롭고, 또 빠른지 마족이고 마수고 아무도 그 일격을 피하지 못했다.

그렇게 근원의 나무가 세력을 확장하더니 자신만의 영역을 단단하게 구축했다.

영역 안에 있던 마수와 마족까지 모조리 정리했고 말이다.

죽은 마수와 마족들은 모두 검은 연기가 되어 흩어졌다.

그리고 그 검은 연기를 숲의 나무가 모조리 빨아들였다.

현석은 그 시점에서 눈을 떴다.

온몸에서 힘이 넘쳐났다. 근원의 나무 주변에 있던 모든 마수와 마족들을 정리한 보상이 고스란히 현석의 몫으로 떨어진 것이다.

현석의 레벨이 249가 되었다.

단숨에 한계레벨에 도달한 것이다. 이제부터는 벽을 넘기 전에는 더 이상 레벨을 올릴 수 없다.

아마 보통이라면 여기서 엄청난 시간을 보내거나, 결국 포기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현석은 그럴 생각이 요만큼도 없었다.

이제 밖으로 나가면 또 한 번 목숨을 걸고 레벨업을 할 것이다.

일단 250에 도달하기가 어렵지, 벽만 한 번 넘고 나면 그 위로는 또 기계적인 영역이었다.

현석은 고개를 들어 자신이 깨운 신의 파편을 둘러봤다. 그냥 덩굴만 있었을 때도 신기했는데, 빛까지 들어오니 더더욱 신비로웠다.

한데 그때, 덩굴들이 갑자기 길을 비켜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비켜난 자리에서 검은 구슬 하나가 서서히 내려오고 있었다.

현석은 그 구슬 안에서 요동치는 불길한 마력에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심안을 통해 보이는 그것의 이름에 깜짝 놀랐다.

[마두스의 영혼]

마두스는 근원의 나무를 노리던 마족의 이름이었다. 아니, 아마 그냥 마족이 아니라 마왕이 되고자 했던 마족일 것이다.

그가 각성하려던 건 마족에서 벗어나 진정한 마왕이 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런 마족의 영혼이라니. 게다가 저 영혼에 담긴 불길한 마력의 양은 엄청났다.

마두스의 영혼은 서서히 내려와 현석의 손에 안착했다.

현석은 그것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이내 아공간에 넣어 버렸다.

어디에 쓸지는 모르지만, 일단 갖고 있다보면 결국 쓸 일이 생길 것이다.

생명수처럼 말이다.

현석의 발에 덩굴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덩굴들은 그렇게 단단히 바닥을 받친 뒤, 현석을 위로 쭉 올렸다.

그렇게 그 공간에서 빠져나간 현석은 계속해서 위로, 또 위로 올라갔다.

하늘 높이 올라간 현석은 이곳에 투명던전의 입구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까 들어왔던 출입구와는 다르지만, 그래도 역할은 같을 것이다.

그렇게 현석은 그곳에서 벗어났다.

신의 파편을 깨우고, 마두스의 영혼을 얻은 채로.

< 두 번째 파편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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