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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190화 (190/326)
  • < 근원의 나무 2 >

    [생명의 근원. 근원의 나무를 지탱하는 힘이 된다. 신이 내린 세 가지 선물 중 하나. 파편의 흔적에 닿아있다.]

    내용을 확인한 현석의 눈이 살짝 커졌다.

    설마 여기서 신의 파편에 대한 정보를 획득할 수 있을 줄은 몰랐다.

    ‘하긴, 담긴 마력의 양이 이 정도로 엄청나려면 그 정도는 되어야지.’

    신의 파편이 보여줬던 그 강대한 힘을 생각하면 이 정도 마력이야 우습다.

    거기에 닿아있다면 그저 흘러들어오는 마력만으로도 이 정도 힘은 응축되어 있어야 말이 될 테니까.

    “소감이 어떻소?”

    족장이 현석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의 표정에는 숨길 수 없는 기대감이 어려 있었다.

    현석은 그런 족장의 표정을 보며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내게 뭘 기대하는 거지?’

    생각해보면 이 숲의 종족은 너무나 순진했다. 자신이 누군 줄 알고 여기까지 순순히 안내한단 말인가.

    그리고 이 족장은 또 뭘 믿고 이렇게 간단히 생명수를 보여준단 말인가.

    지금 상황에서 현석이 마음만 먹으면 이 생명수에 독을 풀어 오염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숲의 종족이 허술하고 순진해서 그렇다고 할 수도 있지만 현석이 보기엔 딱히 그런 것도 아니었다.

    “대단하군요.”

    현석은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말했다. 생명수는 정말 대단했다. 그 마족들이 이걸 얻으려고 마수까지 부린 이유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생명수의 마력은 마족들이 가진 마력과는 좀 성질이 달랐다.

    아마 마족들이 이 생명수를 이용하려면 뭔가 특별한 방식이 필요할 것이다.

    아니면 이 생명수를 각성에 이용하려던 마족, 마두스는 다른 마족들과 좀 다르거나 말이다.

    “이걸 이렇게 쉽게 보여줘도 됩니까?”

    현석이 족장을 보며 물었다. 족장의 레벨은 정확히 207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단숨에 죽일 수도 있었다.

    아마 족장도 자신과 현석의 격차가 그 정도로 심하다는 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간단히 생명수를 보여주다니.

    현석이 보기에 족장이 굳이 이걸 감추려고 마음먹었다면 그 누구도 생명수를 얻지 못할 것이다.

    현석은 여기 오면서 봤던 그 거대한 마법진이 어떻게 작동하는 건지 이 생명수를 보고 깨달았다.

    그건 생명수를 태워 작동하는 마법진이었다.

    도저히 상대할 수 없는 강대한 적이 쳐들어오면 작동하게 되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걸 결정하는 건 이 족장이 아니라 근원의 나무 자체였다.

    족장이 할 수 있는 건 나무와의 소통이었다.

    어쨌든 나무와 소통할 수 있다는 건 생명수를 꽁꽁 감출 수도 있다는 뜻이다. 한데 현석에게 너무 선뜻 생명수를 보여줬다.

    “우리 숲의 종족에게는 아주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설이 하나 있소.”

    “전설?”

    “신의 선택을 받은 자에 대한 전설이오.”

    현석은 물끄러미 족장을 쳐다봤다. 그래서 그 선택받은 자가 자신이란 얘긴가?

    족장은 현석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안다는 듯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세상의 열쇠가 되는 존재가 나타나 우릴 찾아올 거라는 전설이오.”

    “세상의 열쇠…….”

    문득 현석은 자신이 투명 던전을 열심히 열고 다닌 일이 떠올랐다.

    설마 그것 때문에 열쇠라는 건 아니겠지만, 어쨌든 참으로 묘한 기분이 들긴 했다.

    “그래서 그 열쇠라는 자와 내가 무슨 상관입니까?”

    현석이 담담한 얼굴로 묻자, 이번엔 오히려 족장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내 생각엔 당신이 그 열쇠가 아닐까 하고 있소.”

    “내가 이 근원의 나무를 열었기 때문입니까?”

    족장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아까 현석이 나무의 문을 활짝 열었을 때는 정말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랐다.

    이 근원의 나무는 숲의 종족, 그 중에서도 족장인 자신 외에는 아무도 소통하거나 다루지 못한다.

    종족의 다른 사람들이 이 나무를 이용하는 건 그들이 족장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족장이 그들에게 힘을 나눠주고 있다는 뜻이다.

    만일 지금이라도 족장이 그들에게 나눠주는 모든 힘을 끊어버린다면, 그들은 이 나무에 갇힌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가만히 잠만 자야 할 것이다.

    숲의 종족이 이렇게 나무 안에서 마을을 건설해 살아갈 수 있는 건, 모두 족장 덕분이었다.

    한데 그 근원의 나무를 마치 제집처럼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이 있으니 얼마나 놀랐겠는가.

    심지어 현석은 나무의 문을 열 때, 족장보다 더 쉽고 간단하게 열었다.

    그러니 족장이 현석을 특별한 존재라고 여기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게다가 전설에 나오는 선택받은 자는 달리 세상의 열쇠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 얼마나 절묘한 상황인가.

    현석은 족장의 반응을 보고는 피식 웃었다.

    “그저 단순한 마력 컨트롤 능력일 뿐입니다. 그걸 가지고 세상의 열쇠이니, 신의 선택을 받았느니 하는 건 너무 앞서나가는 것 같군요.”

    “그럴지도 모르오. 하지만…… 그걸 판단하는 것 역시 내 소관이오. 난…… 당신이 그 전설의 인물이라고 잠정적으로 결론을 내렸소.”

    족장의 결연한 표정을 보니, 생각을 쉽게 돌릴 것 같지 않았다.

    사실 현석은 족장이 자신을 어떻게 판단하건 별 상관이 없었다.

    그가 어떤 선택을 하건, 현석은 자신의 뜻을 관철하고,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일 뿐이었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생각해보니…… 신의 파편이라는 퀘스트를 진행 중이니, 그것 역시 신의 선택을 받았다고도 할 수 있겠네.’

    어쩌면 자신이 전설의 그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다.

    하지만 그래서 뭘 어쩌란 말인가.

    그 자리는 현석이 원해서 된 게 아니었다. 그러니 그걸 위해 뭔가를 해야 한다고 해서 그걸 반드시 해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지나칠 정도로 담담하고 관심이 없어 보이는 현석의 표정을 확인한 족장이 나직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는 지금까지 아주 오랜 세월을 살아왔다. 그 동안 당연히 인간들과 접한 적도 있었다.

    족장이 보기에 현석은 지금 그가 해준 말에 어떤 흥미도 못 느끼는 것 같았다.

    인간을 다룰 때 가장 중요한 건 욕망을 자극하는 것이었다. 한데 지금 현석은 아무런 자극도 못 받은 모양이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끝까지 할 말은 해야지.

    “그 전설의 인물을 우리가 왜 기다렸느냐 하면…… 그가 우릴 이 감옥에서 풀어줄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이오.”

    “감옥? 여기가 감옥이란 말입니까?”

    현석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 근원의 나무가 감옥이라니.

    현석이 보기에 이곳은 이 숲의 종족을 지켜주는 성채이자 방패였다. 그리고 그들에게 힘을 주는 보금자리였다.

    한데 그게 감옥이라니.

    “우린 절대 이곳을 벗어날 수 없소. 그저…… 그저 지켜야 하지.”

    현석은 족장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대체 뭘 지키기에 이렇게 비장하단 말인가.

    “마두스가 원하는 게 생명수인 것 같지만, 엄밀히 따지면 그게 아니오.”

    현석의 눈이 반짝 빛났다. 역시 그게 아니었다. 이 생명수는 지나치게 깨끗하다. 마족의 마력과는 상성이 별로 좋지 않았다.

    아마 이런 걸로 각성을 하려다가는 오히려 몸이 망가질지도 모른다. 마두스가 현석이 흔히 알고 있는 그런 마족이라면 말이다.

    족장이 현석을 보며 물었다.

    “이 생명수를 원하시오?”

    현석은 고개를 저었다. 생명수가 놀라운 마력을 품고 있긴 하지만, 사실 그게 다였다.

    이 생명수는 근원의 나무에 있어야 비로소 의미가 있는 물이었다.

    굳이 떠가봐야 딱히 쓸모가 없었다.

    차라리 이 생명수보다는 현석이 만든 마력수가 훨씬 쓸모 있었다. 지금 당장은 말이다.

    ‘뭐…… 나중에 쓸모를 찾을 수 있으려나?’

    강력한 마력이 깃든 물인데 쓸 곳이야 찾으면 없겠는가.

    ‘음?’

    현석은 문득 레인보우 엘릭서가 떠올랐다. 만일 레인보우 엘릭서를 만들 때 저 생명수를 쓰면 어떻게 될까?

    갑자기 그게 궁금해졌다.

    “저 생명수 좀 가져가도 됩니까?”

    족장이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저건 이 근원의 나무에 흐르는 수액이오. 몽땅 빼내면 나무가 말라죽겠지만, 웬만큼 뽑아내는 건 아마 티도 안 날 거요.”

    족장은 그렇게 말하며 생명수가 찰랑거리는 나무등걸 테이블에 손을 올렸다.

    그러자 나무등걸이 위로 쭉 솟아났다. 그것은 그대로 거대한 물통이 되었다.

    “이 정도면 되겠소?”

    정말 엄청난 양이었다. 족장의 그 커다란 방이 꽉 찰 정도로 거대한 나무등걸 물통에 생명수가 가득 들어 있었으니까.

    현석이 고개를 끄덕이자, 족장이 나무등걸 물통을 가만히 쓰다듬었다.

    그러자 나무등걸 물통의 위가 봉해졌다. 거대한 나무의 밑둥을 뚝 잘라낸 듯한 모양이 되었다.

    현석은 잠시 신기한 눈으로 그걸 보다가 생명수가 든 거대한 나무물통을 아공간에 넣었다.

    나중에 레인보우 엘릭서를 만들게 될 날이 기대되었다.

    현석이 아공간에 생명수를 담자, 족장이 살짝 긴장한 눈으로 현석을 바라보며 말했다.

    “안내해드릴 곳이 있소.”

    족장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아까 마두스가 진정으로 원하는 건 생명수가 아니라고 한 말, 기억나시오?”

    당연히 기억난다. 방금 한 얘기를 설마 생명수 좀 얻었다고 잊었겠는가.

    현석이 고개를 끄덕이자, 족장이 진지한 눈으로 현석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게 뭔지 보여드리겠소.”

    현석의 눈에 강렬한 호기심이 일어났다. 그리고 또 기대감도 함께 일어났다.

    아까 생명수의 정보를 확인했을 때 본 단어 때문이었다.

    이 생명수는 신의 파편과 관계있었다.

    어쩌면 족장이 보여주려는 것이 신의 파편과 관계된 무언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석의 표정을 본 족장의 얼굴에 그제야 화색이 돌았다. 그동안 눈빛에서 그 어떤 욕망도 못 읽어내서 당황스러웠는데, 이제야 그 비슷한 걸 봤다.

    문득 족장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일 현석이 정말로 자신이 기다리던 전설의 존재라면, 자신이 뭔가를 의도해서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전설이 이뤄지지 않을까?

    그리고 그에게 뭔가를 시키도록 강요하거나 수작을 부리는 것이 오히려 독으로 작용하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자, 족장은 오히려 더 편안한 표정을 지을 수 있었다.

    “이쪽이오.”

    족장은 현석을 데리고 방 한가운데로 갔다. 방금까지 나무등걸 테이블이 있던 자리였다.

    지금은 그 테이블이 거대한 물통으로 자라나 사라졌기에 바닥은 평평했다.

    족장은 정확히 테이블이 있던 자리에 손바닥을 갖다 댔다. 그러자 그의 손을 중심으로 바닥이 한 차례 꿀렁거렸다. 마치 젤리를 툭 건드린 것 같았다.

    현석은 그걸 신기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손 하나만 갖다 대면 이 근원의 나무 안에서는 뭐든 족장 마음대로 되는 것 같으니 너무나 신기했다.

    어쩌면 저 족장이 마음먹으면 뾰족한 나무창을 만들어 나무 외부로 쏘아내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어쩌면 그런 방식으로 지금까지 마두스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는지도 모르지.’

    그리고 이번에 힘을 모으고 모아 작정한 마두스의 공격을 현석이 막아낸 것이고 말이다.

    꿀렁거리던 바닥에 구멍이 뻥 뚫렸다.

    일직선으로 쭉 난 구멍이었는데, 내벽을 덩굴이 쫙 감싸고 있었다.

    그 덩굴을 사다리처럼 잡고 내려가야 하는 모양이었다.

    “저 아래에 있소.”

    족장은 그렇게 말하고 자신이 먼저 구멍에 뛰어들었다. 사다리처럼 덩굴을 이용할 거라 생각했던 현석의 예상을 가볍게 뛰어넘은 것이다.

    놀랍게도 덩굴이 자라나 구멍 중심으로 떨어지는 족장의 발을 단단히 받쳤다.

    덩굴이 꿈틀꿈틀 움직이며 족장을 아래로 쭉 내려보냈다.

    “정말…… 재미있군.”

    족장이 이 근원의 나무를 다루는 방식이 참으로 재미있어 보였다.

    현석은 족장이 했던 대로 구멍에 휙 뛰어들었다.

    어느새 자라난 덩굴이 현석의 발밑을 단단히 받쳤다.

    굳이 따로 균형을 잡으려 애쓸 필요도 없었다. 덩굴이 자체적으로 움직여 균형까지 잡아줬다.

    현석은 그저 움직이지 않는 평평한 바닥에 서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현석을 받친 덩굴은 빠르게 현석을 아래로 내려보내고 있었다.

    정말로 빠르고 안정적인 이동수단이었다.

    그렇게 아래로 아래로 계속 내려갔다. 느낌으로는 나무뿌리를 지난 것 같은데도 계속 아래로 내려가고 또 내려갔다.

    현석의 느낌을 증명이라도 하듯 주변 내벽이 나무에서 흙으로 바뀌었다.

    물론 그 흙에는 나무의 잔뿌리들이 잔뜩 있었다. 이곳이 나무의 내부는 아니지만 여전히 나무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곳임은 분명했다.

    그렇게 내려가다 보니 어느새 바닥에 도착했다.

    지하수가 흐르는 작은 동굴 같은 곳이었는데, 그 지하수에 담긴 마력이 상당했다.

    아마 근원의 나무가 이 지하수를 뽑아 올려 생명수로 바꾸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지하수가 흐르는 동굴 끝부분에 투명던전이 있었다. 그리고 마치 그것을 지키듯 석상들이 서 있었다.

    현석은 투명던전의 이름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신의 파편]

    역시 두 번째 신의 파편이 여기 있었다.

    < 근원의 나무 2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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