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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189화 (189/326)
  • < 근원의 나무 1 >

    현석은 검을 늘어뜨린 채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나동그라졌던 마족이 몸을 벌떡 일으키며 현석을 노려봤다. 새까만 몸을 가진 인간형 마족이었다. 이마에 다섯 개의 짧은 뿔이 나 있었다.

    뿔이 너무 짧아서 얼핏 보면 혹 같기도 했다.

    현석은 다섯 뿔 마족에게 다가갔다. 그러다가 벼락 같이 양 옆을 검으로 푹푹 찔렀다.

    꽈득! 꽈득!

    허공에 녹아든 채 숨어있던 마족 두 마리가 또 걸려들었다. 그나마 그들은 현석의 검을 간신히 팔로 막아냈다.

    물론 그 대가로 팔이 부러져야 했지만 말이다.

    현석은 그 즉시 어딘가로 몸을 날려 검을 길게 내리그었다.

    꽈드득!

    허공에서 마족 하나가 나타났다. 그 마족은 새로로 서서히 쪼개지고 있었다.

    푸화학!

    사방으로 검은 연기가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갔다.

    현석이 검에 담은 힘이 너무 컸기에 그것을 감당하지 못하고 몸이 폭발해 버린 것이다.

    마족이 죽으면서 내뿜는 검은 연기는 굳이 접해서 좋을 게 없었다.

    현석은 뒤로 쭉 물러나 그것을 피했다. 그리고 나동그라졌던 두 마족 중 하나의 목을 가볍게 쳐냈다.

    슈각!

    현석은 거기서 또 몸을 피하며 나머지 마족의 목까지 쳐냈다.

    슈각!

    다시 뒤로 물러난 현석은 여전히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마족을 쳐다봤다.

    “인간이…… 대체 여기에 왜 있는 거지?”

    마족은 마족의 언어로 말했다. 그도 말하면서 자신의 말을 현석이 알아들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한데 놀랍게도 현석은 아주 능숙한 마족의 언어로 말했다.

    “인간이 여기 있으면 안 될 이유라도 있나?”

    마족의 얼굴에 경악이 떠올랐다.

    “내 말을…… 알아들었어?”

    현석이 피식 웃었다.

    “인간은 마족의 말을 하면 안 되는 건가? 마족 중에도 인간의 말을 하는 놈들이 제법 있던데?”

    “그거야…….”

    그거야 마족의 언어보다 인간의 언어가 훨씬 쉽기 때문이다. 마족의 언어구조는 정말 복잡해서 발음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그에 반해 인간의 언어는 마족에게 있어서 어린애 장난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그나마도 귀찮아서 익히지 않은 마족이 훨씬 많지만 말이다.

    현석은 마족을 향해 휘적휘적 걸어갔다.

    마족이 화들짝 놀라며 뒤로 후다닥 물러났다. 자신이 절대 대적할 수 없을 정도의 강자였다. 정면으로 달려들면 그냥 개죽음을 당할 것이다.

    그럴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살아남아 강한 인간이 나타났다는 사실을 알려야 한다.

    “내가 궁금한 게 몇 가지 있는데 말이야.”

    현석은 그렇게 말하며 가볍게 몸을 날렸다.

    후웅!

    꽈득!

    어느새 현석의 손이 마족의 목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

    “크허허헉!”

    마족은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었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되는 건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런 걸 파악하기에는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저 나무를 왜 노리는 거지?”

    “커허허헉!”

    마족은 고통스러운지 대답을 하지 못했다. 현석은 손을 조금 느슨하게 해 주었다.

    “크허헉! 허억! 허억!”

    마족이 두려운 눈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현석은 그런 마족을 보며 새로운 느낌을 받았다.

    기존의 마족들은 사실 마족이라기보다는 마수에 더 가까웠다.

    현석이 보기엔 그랬다.

    이성이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이성보다는 본능에 훨씬 더 가까운 행동을 하는 놈들이었으니까.

    한데 이 마족들은 좀 달랐다.

    “생명수를 얻으러 왔다.”

    “생명수? 그게 뭐지?”

    “근원의 나무를 지탱하는 힘이다.”

    “그래서 힘을 얻고자 이 나무를 공격했다 이건가? 그럼 이 나무가 근원의 나무이고?”

    사실 물을 필요도 없었다. 애초에 나무에서 마력이 느껴진 순간 심안을 통해 이름을 확인했으니까.

    “그렇다. 마두스님의 각성을 위해 반드시 생명수가 필요하다.”

    “마두스?”

    마족이 지금까지와 달리 살짝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세상을 지배하실 위대한 분이시지.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강하신 분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그 위대한 힘을 내려주실 분이기도 하고.”

    거기까지 말한 마족이 이번엔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떤가? 나와 함께 생명수를 취해 마두스님께 바치지 않겠는가? 아마 너라면 마두스님께서도 크게 아껴주실 것이다.”

    “흥미롭군.”

    “그렇지? 너 정도라면 마두스님의 아래에서 세상을 지배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현석은 그 말에 피식 웃었다.

    “그런데 왜 그 대단하신 마두스님이 직접 안 오고 어설픈 마수들이나 보내고 있는 거지?”

    “아직 각성 전이기 때문이지. 각성의 시간이 되면 굳이 이런 짓을 하지 않아도 상관없는데, 지금은 시간이 없다. 서둘러 각성하시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야. 그래서 생명수가 필요하다.”

    “아까 불벼락 멧돼지들 같은 마수가 얼마나 있지? 설마 아까 그게 다는 아니겠지?”

    “그럴 리가! 불벼락 멧돼지야 이제 더 없지만 아직 칼날독수리들이 남았지. 그놈들을 모조리 끌고오면 이딴 나무쯤 단숨에 박살 낼 수 있어.”

    “그런데 왜 안 데려온 거야?”

    “그럴 일이 있다.”

    마족은 거기에 대해서는 굳은 표정으로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현석도 더 이상 마족에게 듣고 싶은 말이 없었다.

    “그럼 그 칼날독수리는 올 일이 없다는 거로군.”

    “그게…… 컥!”

    그게 아니라고 말하려던 마족이 눈을 크게 떴다. 현석은 무심한 얼굴로 마족의 목을 단숨에 부러뜨렸다.

    꽈득!

    현석은 절명한 마족을 휙 던져 버렸다.

    푸화하학!

    그 마족 역시 검은 연기가 되어 흩어져 버렸다. 죽은 다른 마족들도 모두 검은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좀…… 다른 것 같긴 하네.’

    던전이 특이해서 그런지 이 안에 있는 마수나 마족들도 특이했다.

    “자, 그럼…….”

    현석은 몸을 돌려 근원의 나무를 쳐다봤다. 나무에서 흐르는 마력의 흐름이 미묘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었다.

    그 변화를 알아차린 현석이 씨익 웃었다.

    “닫힌 문부터 열어볼까?”

    그 말에 나무에 흐르는 마력이 조금 거칠어졌다. 마치 당황하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 * *

    현석은 신기한 눈으로 앞에 앉은 사람들을 쳐다봤다.

    그들은 초록색 몸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자신들을 숲의 종족이라고 소개했는데, 정말로 풀냄새가 나는 자들이었다. 풍기는 느낌도 식물에 가까웠다.

    ‘야채인간이로군.’

    현석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숲의 종족들을 유심히 살폈다.

    심안을 통해 확인한 바로는 150레벨 언저리의 전사들이었다.

    낮은 레벨은 아니지만, 또 그렇다고 높은 레벨도 아니었다. 아까 나무 밖에서 느꼈던 그 강대한 마력을 가진 사람은 여기 없었다.

    ‘대충…… 200레벨이 훌쩍 넘을 것 같았는데.’

    지금 현석은 근원의 나무 안에 들어와 있었다.

    근원의 나무 안은 마치 복잡한 미로처럼 이리저리 굴이 뚫려 있었다.

    강제로 뚫은 게 아니라 숲의 종족들이 근원의 나무와 소통하면서 조금씩 길을 만들어 나간 것이다.

    그렇게 수천 년의 세월이 쌓여 이런 복잡한 미로가 완성되었다.

    나무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않고 내부의 구조와 모양만 변형시켜 완성한 그들만의 도시였다.

    미로처럼 얽힌 길에는 항상 끝이 있었고, 그 끝마다 커다란 혹처럼 방이 하나씩 딸려 있었다.

    현석이 지금 있는 장소가 그런 방의 한가운데였다.

    나무등걸처럼 생긴 테이블을 앞에 두고 역시나 나무등걸처럼 생긴 의자에 앉아 있었다.

    현석 앞에는 숲의 종족이 세 명 앉아 있었는데, 다들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일단…… 우리 일족을 공격하는 마족을 물리쳐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현석은 그들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툭 말을 던졌다.

    “마족들이 생명수를 가지러 온 모양이던데. 그게 뭔지 좀 볼 수 있습니까?”

    “그건…….”

    다들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서로를 바라봤다.

    하지만 이내 한 명이 굳은 표정으로 현석을 보며 말했다.

    “일단…… 생명수에 대한 모든 결정은 족장님께서 하십니다. 저희에게는 권한이 없습니다. 그러니…… 족장님께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현석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죠.”

    사실 그저 생명수가 뭔지 궁금했을 뿐이지 그걸 얻겠다거나 하는 생각은 없었다.

    생명수 말도고 현석에게는 강해질 방법이 얼마든지 있었다. 레인보우 엘릭서의 재료도 잔뜩 있었고 말이다.

    숲의 종족들은 조용히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나가기 전에 현석을 한 번 바라봐 따라오라는 뜻을 전했다.

    현석은 그 뒤를 따라가며 주변을 유심히 살폈다. 돌아다니는 숲의 종족은 별로 없었다.

    다들 집에서 조용히 지내는 모양이었다.

    이들은 야채인간이라고 현석이 방금 붙여준 별명이 정말 잘 어울렸다.

    조용하고 정적이며, 시끄러운 거나 분쟁을 싫어했다.

    마족이 쳐들어왔는데도 나무 안에 숨어서 그저 소극적으로 방어만 하고 있는 걸 봐도 성향을 약간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야채인간들은 잘 안 보이니 뭔가를 비교하고 확인해 보고 싶어도 별로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근원의 나무 내부에 흐르는 마력을 유심히 살피면서 걸었다.

    근원의 나무는 뿌리에서 마력을 빨아들여 위로 계속 보내고 있었다.

    그 거대한 마력의 흐름에서 살다보면 나무의 마력을 조금씩 받아들여 지금 숲의 종족처럼 되는 모양이었다.

    그 외에도 다양한 마력의 흐름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흐름들을 확인해 보면 거대한 마력패턴, 즉, 마법진을 이루고 있었다.

    규모가 너무 커서 정확히 확인할 수는 없었기에 어떤 마법진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저 평범한 마법은 절대 아니었다. 평범한 마법을 쓰는데 근원의 나무에 흐르는 모든 마력을 끌어다 쓰지는 않을 테니까.

    저 마법진은 대충 살펴본 바에 따르면 근원의 나무가 최후를 맞이한 순간에나 쓸 수 있을 법한 마법이었다.

    누군가 일부러 만든 마법진은 아닌 듯했다. 일부러 했다고 하기에는 변수가 너무 많았고, 마법진 자체가 거칠고 투박했다.

    현석은 신기한 눈으로 그런 것들을 확인하며 계속 따라갔다.

    걸어가는 내내 오르막만 올라가고 있었다. 아무래도 나무 꼭대기까지 올라가려는 모양이었다.

    이내 목적지에 도착했다. 정말로 나무 꼭대기에 올라왔다. 물론 그렇다고 나무 밖으로 나온 건 아니었다.

    “여기에 족장님이 계십니다.”

    족장의 방은 근원의 나무에서 유일하게 창문이 달린 방이었다. 밖으로 난 구멍이 있어 그걸 통해 먼 곳을 살펴볼 수 있었다.

    족장은 그 방에 있는 침대에 누워 있다가 현석이 안으로 들어가자 느릿하게 몸을 일으켰다.

    “일족을 대표해 감사드리오.”

    “인사 받으려고 한 일이 아닙니다.”

    “생명수를 보고 싶으시다고요?”

    현석은 족장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 얘기를 한 적이 없는데 대체 어떻게 알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우리 숲의 종족은 근원의 나무 안에 있으면 제법 잘 통한다오. 이 안에서 하는 말은 관심만 가지고 조금만 신경 쓰면 다 들을 수 있소.”

    그러니까 손님이 들어오면 그쪽에 신경을 집중할 테니 현석과 숲의 종족들이 하던 대화를 대부분이 다 듣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거 신기하군요.”

    현석은 정말로 신기했다. 사실 숲의 종족을 본 순간부터 신기함의 연속이었다.

    아무리 화이트홀이라지만 던전 안에 이렇게 어떤 종족이 살아가고 있을 줄은 몰랐다.

    사실 개별 화이트홀이 다른 세상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오긴 했다.

    하지만 거기에 대해서는 제대로 확인하지 못하고 회귀해 버렸다.

    한데 이 숲의 종족을 보고 아니 그때 했던 그 가정들이 어쩌면 진실로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명수를 볼 수 있습니까?”

    족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현석에게 걸어갔다.

    현석은 나무등걸처럼 생긴 테이블을 앞에 두고 앉아 있었는데, 족장이 그 테이블 위에 손바닥을 올렸다.

    현석은 그 순간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테이블에서 거대한 마력의 흐름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마치 테이블 아래가 비어있고, 그 빈 공간을 통해 엄청난 무언가가 확 밀려올라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걸 확인한 족장이 신기한 눈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아주 예민하신 분이시군. 보통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못 알아차리는데 말이오.”

    족장은 그렇게 말하고 테이블에서 손을 뗐다.

    그러자 테이블 윗부분이 희미해지더니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그 안에는 물이 찰랑찰랑 넘치고 있었다.

    그게 바로 생명수였다.

    현석은 그것이 어마어마한 마력의 응집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생명수]

    심안을 통해 이름을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현석은 이름에 집중해 생명수의 정보도 함께 확인했다.

    < 근원의 나무 1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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