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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188화 (188/326)
  • < 화이트홀 2 >

    새하얀 풍경이 현석을 반겼다.

    세상이 온통 눈밭이었다. 눈 덮인 산의 중턱쯤 되는 곳이었다.

    전부 눈에 덮여 있기에 화이트홀도 잘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하늘에서 계속 눈이 내리고 있었다.

    ‘눈이 내린다고?’

    현석의 눈에 살짝 놀람이 어렸다.

    지금까지 던전에 와서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던전에 온도차나 밤낮이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게 변하지는 않는다.

    밤인 던전은 항상 밤이고, 낮인 던전은 계속 낮이었다.

    그리고 더운 던전은 항상 덥고, 추운 던전은 언제나 추웠다.

    심지어 안개가 낀 던전도 있었다. 그런 던전은 항상 안개에 덮여 있다.

    그 안개는 평소 흔히 접할 수 있는 안개가 아니라 마력에 의해 생겨난 안개이기 때문에 불을 통해 없앤다거나 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어쨌든 그런 다양한 던전이 존재하지만 딱 한 가지 없는 던전이 있었다.

    뭔가가 내리는 경우였다.

    예를 들어 비가 오는 던전은 없다. 그리고 눈이 오는 던전도 없었다.

    지금까지는 말이다.

    한데 여기서 처음으로 눈이 내리는 던전을 만난 것이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지?’

    현석은 왜 눈이나 비가 내리는 던전이 없는지 알고 있었다. 던전에는 하늘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공기의 흐름이 없기 때문이다.

    바람도 불지 않고 진짜 구름도 없으며, 그러니 눈도 비도 내리지 않는다.

    던전에서 보이는 구름은 진짜 같아 보이는 사진이나 다름없었다.

    모든 던전은 사방이 다 막혀 있었다.

    한데 여긴 눈이 내린다. 그게 의미하는 게 뭘까?

    ‘여긴…… 다른 던전과 다르다.’

    정말 특별한 던전이었다. 현석은 그제야 라이언과 추광열이 어떻게 그렇게 빠른 레벨업을 했으며, 그런 특이한 아티팩트를 얻을 수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현석은 일단 산에서 내려갔다.

    걷다보니 눈이 그쳤다. 정말로 날씨가 존재하는 던전이었다.

    현석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저 하늘에는 끝이 없을까? 다른 던전이랑 다르게 말이다.

    간단한 방법으로 대충 확인하는 건 가능했다.

    현석은 하늘을 향해 손가락총을 만들어 겨눴다.

    우우웅!

    현석의 손끝에 막대한 양의 마력이 모여 응축했다.

    콰우우우!

    마력의 탄환이 하늘 높이 치솟아 올랐다. 색을 띤 마력이었다.

    붉은 꼬리를 남기며 마력의 탄환이 끝없이 하늘로 올라갔다.

    애초에 엄청난 힘을 동원해 쏘아 올렸기 때문에 쉽게 사라지거나 흔들리지 않았다.

    만일 보통 던전이라면 벌써 천장에 부딪혀 폭발을 일으켰어야 한다.

    한데 지금은 그야말로 끝없이 위로, 또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얼마나 올라갔을까. 마력의 탄환에 담긴 힘이 다했다.

    마력을 단단히 응축하고 있던 힘이 흩어지며 마력도 흩어져 버렸다.

    그때까지도 천장은 나타나지 않았다.

    ‘여긴…… 진짜 세상에 가까워.’

    아무리 그래도 여긴 던전이다. 그러니 진짜 세상이 아닐 확률이 훨씬 높았다.

    그러니 가장 답에 가까운 유추는 진짜 세상과 비슷할 정도로 규모가 어마어마한 던전일 것이다.

    바람이 불고 구름이 생성되며, 눈과 비가 내리는 진짜 세상에 가까운 던전 말이다.

    현석의 눈에 흥미와 호기심이 어렸다.

    이런 던전이 있을 줄이야.

    그래도 제법 던전에 대해서는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 던전이라는 건 언제나 현석의 상상을 훌쩍 훌쩍 뛰어넘는 듯했다.

    지금 들어온 눈이 내리는 화이트홀도 그러지만 얼마 전에 본 신의 파편도 절대 평범한 던전은 아니었다.

    신의 파편이 떠오른 현석은 문득 자신의 상태창을 확인하고 싶어졌다.

    이제 레벨이나 스탯을 확인하는 건 별 의미가 없었다. 그래서 상태창을 보는 일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퀘스트를 확인하려면 상태창을 열어야 한다.

    상태창을 연 현석은 아래쪽을 살폈다.

    지난 번 퀘스트를 생각해보면, 아주 자세히 살펴야 한다. 워낙 작은 점처럼 되어 있어서 대충 확인하면 절대 발견할 수 없으니까.

    현석은 약간의 수고 끝에 깨알만 한 점 하나를 발견했다. 호기심과 흥분으로 현석의 눈이 반짝였다.

    일단 점에 집중하니 그것이 커다란 창으로 바뀌었다.

    새로운 퀘스트가 생겨난 것이다.

    [퀘스트-신의 파편]

    이번엔 퀘스트 이름이 아예 노골적으로 신과의 파편이었다. 무슨 퀘스트인지는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혹시 모르니 확인은 했다.

    [모든 신의 파편을 찾아 그것을 깨워라. 모든 파편을 깨우면 진정한 신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1/8]

    현석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예상하긴 했지만 퀘스트를 완료했을 때의 결과는 사실 좀 놀랄 만했다.

    신의 파편이 8개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첫 번째 파편을 깨우면서 그 정보가 뇌리에 새겨졌으니까.

    ‘진정한 신의 모습이라…….’

    여덟 개의 파편이 하나로 모이면 진짜 신이 된다는 걸까? 아니면 저 파편 말고 본체가 있어서 그 다음 퀘스트가 생겨나는 걸까?

    ‘그럼 이 퀘스트는 신이 내리는 건가?’

    별 생각이 다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 생각을 하든 그저 유추이고 추측일 수밖에 없었다.

    진실을 알기 위해선 퀘스트를 진행하는 수밖에 없다.

    ‘그나저나…… 대체 어디 가서 파편을 찾지?’

    그것도 문제다. 정말 쉽지 않은 퀘스트였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왠지 그냥 흐름대로 흘러가다보면 신의 파편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걷던 현석은 문득 저 멀리 커다란 나무가 하나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직감적으로 저 나무에 뭔가가 있을 것 같았다. 아니면 최소한 뭔가의 흔적이라도 있을 듯했다.

    현석은 속도를 높였다.

    눈은 그쳤지만 상당히 추웠다. 물론 현석은 거의 추위를 느끼지 못했지만, 웬만한 플레이어라면 덜덜 떨었을 것이다.

    그 정도로 차가운 바람이 쌩쌩 불었다.

    그 차가운 바람을 가르며 달려가니 얼마나 더 춥겠는가. 나중에는 현석조차도 살짝 추운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어쨌든 현석은 그렇게 빠르게 이동해 커다란 나무에 도착했다.

    “정말…… 크군.”

    멀리서 봤을 때부터 큰 나무라는 건 알고 있었다. 이렇게 크지 않았다면 그 정도로 떨어진 거리에서조차 커다랗게 보이진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컸다.

    마치 100층짜리 거대한 빌딩이 하나 서 있는 것 같았다.

    아니, 그보다도 더 컸다.

    그리고 나무에서 기묘한 마력의 흐름이 느껴졌다. 이건 절대 보통 나무가 아니었다.

    물론 크기에서부터 보통 나무와는 이미 거리가 멀었지만 말이다.

    현석은 나무를 따라 빙 둘러 걸었다. 그러면서 나무가 내뿜는 마력의 흐름을 파악해봤다.

    나무를 확인하는 현석의 얼굴에 묘한 미소가 떠올랐다. 뭔가 재미난 걸 발견한 표정이었다.

    현석은 더욱 나무에 집중하며 걸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어딘가를 쳐다봤다.

    “뭔가가 오는데?”

    난폭한 마력의 흐름이 이쪽으로 쏟아지고 있었다. 이런 난폭한 마력을 품은 존재가 무엇일지는 굳이 보지 않아도 뻔하다.

    마수가 오고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이 마수를 다 정리하고 간 건 아닌 모양이네.”

    정황 상, 라이언과 추광열은 이곳에 자주 들락거린 게 분명했다.

    그런데도 저렇게 난폭한 마력을 내뿜는 마수가 존재한다는 건, 저 눈 덮인 산 근처도 제대로 토벌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하긴, 이 던전이 넓긴 할 테니까.”

    마수까지 싹 토벌하면서 돌아다니기에는 던전의 규모가 너무 컸다.

    아마 새로운 장소를 개척하는 데 더 중점을 둔 모양이었다.

    어쨌든 현석은 이쪽으로 달려오는 마수들을 그냥 둘 생각이 없었다. 오지 않는다면 모를까, 온다면 싹 정리해 버릴 것이다.

    이내 마수들이 보였다.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수백 마리는 되는 듯했다. 멧돼지 모습을 한 마수였다.

    겉모습은 영락없는 멧돼지였지만 이마에 불이 타오르고 있었고, 앞으로 튀어나와 긴 곡선을 그리며 휘어진 어금니에서는 뇌전이 파직거렸다.

    게다가 엄청나게 거대했다. 보통 멧돼지의 다섯 배는 되는 크기였다.

    현석도 처음 보는 마수였다. 그래서 반사적으로 이름을 확인했다.

    [불벼락 멧돼지]

    생긴 거에 참으로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현석은 달려오는 멧돼지들을 보며 가볍게 몸을 풀었다. 그리고 손목에 채워진 검, 신검 켈루안을 검으로 만들어 쥐었다.

    강력한 힘이 온몸에 짜르르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가만히 멧돼지들을 보던 현석의 눈이 번득였다. 저 멧돼지들의 목표는 자신이 아니었다.

    ‘저놈들 이 나무를 노리고 있는 것 같은데?’

    현석은 방금 확인했던 나무의 기묘한 마력 흐름을 떠올리며 슬쩍 웃었다.

    후웅! 후웅!

    검을 몇 번 허공에 휘둘러 본 현석은 그대로 앞으로 튀어나갔다.

    꽈앙!

    바닥에서 폭음이 울렸다. 방금 현석이 디뎠던 바닥에 마치 폭탄이라도 터진 것처럼 커다란 크레이터가 생겨났다.

    어마어마한 속도로 달려 나간 현석은 콧김을 씩씩 내뿜으며 돌진하는 불벼락 멧돼지들을 향해 크게 검을 휘둘렀다.

    스아아악!

    바람 가르는 소리와 함께 가장 앞에서 달려오던 수십 마리의 멧돼지들이 그대로 양단되었다.

    촤아아악!

    피를 뿌리며 위아래로 절단 된 멧돼지들이 달려오던 관성에 의해 우수수 날아올랐다.

    현석은 쏟아지는 핏방울들 속으로 몸을 던졌다.

    촤촤촤촤촤촥!

    현석의 검이 빠르고 날카로운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달려드는 불벼락 멧돼지들이 말 그대로 갈려 나가기 시작했다.

    물론 모든 멧돼지를 다 막아낸 건 아니었다.

    달려드는 멧돼지의 수는 무려 수백 마리에 달했다. 그 많은 멧돼지들이 돌진하고 있는데, 그걸 일일이 다 막아내는 건 아무리 현석이라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현석이 막아낸 건 절반 정도에 불과했다. 그나마도 현석이 좀 일찍 달려들었기에 가능했다.

    만일 조금만 더 망설였다면 채 2할도 없애지 못했을 것이다.

    어쨌든 그렇게 현석을 지나친 불벼락 멧돼지들이 나무에 이마를 들이박았다.

    꽈과과과과광!

    놀랍게도 나무에서 반탄의 마력이 흘러나와 멧돼지의 박치기를 막아냈다.

    물론 그것 역시 한계가 있긴 했다. 나중에는 그저 몸으로 막아내야 했다.

    한 번 머리를 박은 멧돼지는 다시 뒤로 물러나 콧김을 씩씩 내뱉으며 또 달려들었다.

    멧돼지의 이마에 있던 불이 나무에 조금씩 옮겨 붙었다.

    아마 이대로 계속 내버려두면 나무가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현석은 피식 웃고는 나머지 멧돼지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싸움은 순식간에 끝났다.

    * * *

    현석은 나무 등걸에 앉아 잠시 쉬었다. 솔직히 힘들진 않았다. 호흡조차 그대로였다.

    멧돼지들이 제법 강력한 마수이긴 했지만, 현석의 힘이 너무 대단했다. 게다가 멧돼지들은 현석은 아예 거들떠 보지도 않고 오로지 나무만 노렸기 때문에 더 쉽게 해치울 수 있었다.

    ‘그나저나…… 저 안에 누군가가 있는 것 같은데…….’

    나무 안에서 묘한 마력의 흐름이 느껴졌다. 아까는 그저 발견만 했는데, 이렇게 앉아서 차분히 살펴보니 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저 나무 안에 누군가 있었다. 그리고 그 누군가가 라이언이나 추광열은 절대 아니었다.

    제법 강한 마력을 지닌 존재들이 여럿 있었다. 그들이 나섰다면 아마 아까 멧돼지들도 좀 더 빠르고 쉽게 잡았을 것이다.

    한데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안 나오는 걸 보면 뭔가 이유가 있음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 이유는 금세 알 수 있었다.

    현석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몸을 날렸다. 현석의 몸이 빠르게 앞으로 돌진해 허공의 한 점을 검으로 푹 찔렀다.

    꽈득!

    “커어억!”

    허공에 녹아들 듯 숨어있던 무언가가 현석의 검에 맞아 피를 뿌리며 날아갔다.

    현석은 뒤로 날아가 바닥에 나동그라지는 놈을 보고는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마족이었다.

    < 화이트홀 2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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