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래산업 5 >
“알아냈습니다!”
문을 박차고 들어온 래리의 외침에 칼슨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굳이 무엇을 알아냈느냐고 물을 필요도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 래리가 저렇게 흥분해서 알아냈다고 하면 딱 그거 하나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그게 대체 뭔가?”
“정말로 영양제였습니다. 한데 좀 특별합니다.”
“특별한 영양제?”
“신체의 모든 능력을 향상시켜줍니다.”
칼슨이 눈살을 찌푸렸다. 딱히 저렇게 호들갑떨 만한 일은 아닌 것 같아서였다.
“일시적으로 인체의 모든 능력이 향상되는 약입니다. 아무래도…… 암시장을 통해 유통할 거 같습니다. 허가 받기가 어려울 테니까요.”
“인체의 모든 능력을 향상시킨다는 게 대체 정확히 어떤 뜻이지?”
“일단 시력이 두 배쯤 좋아집니다.”
“시력?”
“그리고 청력도 두 배쯤 좋아집니다. 모든 감각이 두 배 정도 예민해집니다.”
“정말 특이하군.”
“예. 그리고 근력도 약간 향상됩니다. 사람마다 적용되는 효과가 조금씩 다르다고 하는데, 수치로 보면 5%정도인 듯합니다.”
“5%라…… 애매하군.”
“예. 거기에 지구력도 향상됩니다. 체력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건 10%정도인 걸로 보입니다.”
칼슨은 황당한 눈으로 래리를 바라봤다. 고작 약 하나 먹었다고 저렇게 많은 능력치가 향상되면 저걸 누가 안 사겠는가.
“결정적으로 정력에도 큰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지속 시간은?”
“한 시간 정도입니다.”
“없어서 못 팔겠군.”
아마 던전이 없는 세상에 저런 약이 나왔다면 일단 사기로 매도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세상이 아니다.
던전과 플레이어라는 세상의 규격에서 벗어난 존재들과 함께 하는 세상이다.
렉스턴 에너지도 결국은 그 규격 외의 물건을 이용해 돈을 버는 회사 중 하나 아닌가.
그러니 아마 저 페레인 엑기스라는 것을 세상이 받아들이는 속도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알아내.”
“예?”
“페레인 엑기스 만드는 법. 알아내라고.”
“아, 예. 지금도 꾸준히 조사 중입니다. 한데 저번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이놈들 보안 수준이 엄청납니다.”
“그놈들이 연다는 암시장은 어떻게 되었지?”
“조만간 열릴 것 같습니다. 지금 대대적으로 홍보 중이니까요.”
“일단…… 거기부터 작살을 내 버려야겠군.”
“은밀히 준비하겠습니다.”
칼슨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을 내저었다.
“그래. 알아서 준비해 봐.”
래리가 밖으로 나가자, 칼슨은 인상을 쓰며 주먹을 꽉 쥐었다.
“젠장. 일이 계속 꼬이고 있어.”
이럴 때 미카엘은 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단 말인가.
본인이 직접 오지 못할 거면 도움이 될 만한 물건이나 정보, 아니면 인재라도 던져주고 가야 할 것 아닌가.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아 한숨을 내쉰 칼슨은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일이 복잡하게 꼬이니 편두통이 오는 듯했다.
똑똑!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칼슨은 의아한 표정으로 문을 바라봤다.
지금 이 시간에 자신을 찾아올 사람이 없었다. 래리 외에는 아무도 오지 말라고 미리 얘기를 해뒀기 때문이다.
‘누구지?’
만일 누군가 손님이 왔다면 비서실에서 먼저 연락이 왔을 것이다. 한데 그런 연락도 없이 노크 소리가 들리니 대번에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들어가도 됩니까? 저, 수상한 사람 아닙니다.”
문밖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칼슨이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들어오시오.”
어차피 상대가 자신에게 해코지를 할 사람이라면 들어오지 말라고 한다 해서 안 들어올 것도 아니고, 또 능력이 뛰어나다면 어떻게 막든 소용이 없을 것이다.
칼슨은 자신이 플레이어가 아니라는 사실이 조금씩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혹시 미카엘에게 플레이어 각성법을 물어보면 알려주려나? 잠재력이 없는 사람도 플레이어로 만들 방법이 분명히 있을 것 같은데…….’
칼슨이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문이 열렸다. 그리고 흑인 사내 한 명이 들어왔다.
“미카엘님이 보내셔서 왔습니다.”
“미카엘! 지금 미카엘은 어디 있나?”
칼슨은 미카엘이라는 말에 반색을 했다. 역시 미카엘이었다. 어떻게 이런 상황을 예측해서 사람을 보냈단 말인가.
분명히 뭔가 중요한 선물을 가져왔을 것이다.
“지금 미카엘님은 아프리카 쪽을 돌아보고 계십니다.”
“끄응. 아프리카라니…….”
아시아를 돌아다닌다고 난리를 피웠던 게 벌써 몇 년 전 일이다. 한데 이젠 아프리카라니.
‘이것도 족히 몇 년은 필요하겠는데?’
칼슨은 문득 이 흑인 사내로부터 묘한 느낌을 받았다. 그동안 미카엘을 비롯한 강한 플레이어들과 자주 접하며 얻은 감이 발동했다.
“제법 뛰어난 플레이어로군? 미카엘이 도와줬나?”
사내가 씨익 웃었다.
“예. 미카엘님은 제 은인이십니다. 목숨도 구해주시고, 이렇게 힘도 주셨죠. 제게는 신과 같은 분입니다.”
“신이라……. 아무튼 잘 왔네. 인재는 언제든 환영이니까. 그보다…… 미카엘이 뭐 전해주라는 건 없었나?”
“있습니다.”
사내는 그렇게 말하고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작은 가죽주머니 하나를 꺼냈다.
딱 어른 주먹만 한 크기의 가죽주머니였는데, 입구를 가죽 끈으로 단단히 묶어서 봉해놓았다.
사내는 그것을 칼슨 앞에 있는 책상에 내려놓았다. 그러면서 칼슨을 한 번 바라보고는 씨익 웃었다.
“마요트입니다.”
칼슨은 그의 이름에는 별 관심 없다는 듯 가죽주머니에 집중했다.
척 봐도 알 수 있었다. 아니, 추측할 수 있었다. 이건 아공간 주머니가 분명하다.
과연 여기에 뭐가 들어 있을까?
칼슨은 마요트를 힐끗 쳐다봤다. 과연 그가 보는 앞에서 이걸 열어도 되나 잠깐 고민한 것이다.
하지만 이걸 가져온 장본인이 마요트다. 게다가 미카엘이 보낸 사람이다.
칼슨은 가죽 끈을 풀고 주머니를 열었다.
“뒤집으시면 됩니다.”
마요트를 바라보자, 그가 씨익 웃었다.
칼슨은 주머니를 뒤집었다. 이 작은 주머니에 들어있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물건들이 투두둑 쏟아졌다.
일단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커다란 수정구슬이었다.
칼슨은 그것을 들고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수정구슬 내부에 뭔가 기이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대체 어떻게 새긴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리저리 돌릴 때마다 문양의 모양이 바뀌었다.
일단 그것을 내려놓고 다른 물건들을 확인했다.
검도 있었고, 부츠도 있었다. 척 보기에도 좋은 아티팩트였다. 휘하 플레이어들에게 주면 될 것이다. 아니면 보관하고 있다가 적절한 순간에 써먹거나.
그밖에 유리병도 하나 있었다. 그 안에는 푸르스름한 액체가 꽉 차 있었다.
칼슨의 눈을 휘어잡은 건, 그런 것들이 아니었다. 서류뭉치였다.
“이건…….”
칼슨의 눈이 빛났다. 그는 서류뭉치를 들어 찬찬히 확인했다. 그의 얼굴이 환해졌다.
“역시 미카엘이야.”
그 서류는 새로운 상품에 대한 것이었다.
그것도 플레이어들을 단박에 휘어잡을 만한 대단한 상품이었다.
사실 원래부터 계속 연구하던 물건이었다. 한데 가장 중요한 공정 하나가 제대로 되지 않아 애먹이고 있었다.
한데 그 중요한 공정을 해결할 방법이 이 서류에 적혀 있었다.
그 외에도 몇 가지 자잘한 아티팩트 제조법이 쓰여 있었는데, 칼슨의 눈에 그런 건 아예 들어오지도 않았다.
물론 이 공정을 확인한다고 당장 물건이 나오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것만 제대로 확인되면 그 뒤의 일은 그야말로 시간 문제였다.
“드디어……!”
칼슨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유리병을 집어 그 안에 든 액체를 이리저리 살펴봤다.
이 액체가 핵심이었다. 이 액체의 재료를 어디서 구하고 어떻게 만드는지가 핵심 중의 핵심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내용이 이 서류에 들어 있었다.
칼슨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마요트를 바라봤다.
기분이 좋아서 그런지 마요트를 보는 눈에 호감이 가득했다. 이런 좋은 소식을 가져온 사람 아닌가.
“미카엘님께서 그 수정구슬이 굉장히 중요한 물건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거?”
칼슨의 시선이 다시 수정구슬로 향했다.
마요트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한 달 동안 에너지를 흡수했다가 단숨에 방출할 수 있는 아티팩트입니다.”
칼슨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테스트는 해봤나?”
“제가 직접 해봤습니다. 웬만한 마을 하나는 그냥 날아가 버리던데요?”
마요트는 그렇게 말하며 씨익 웃었다.
칼슨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났다. 이제야 미래산업 놈들에게 한 방 먹여줄 방법들이 하나둘 생겨나고 머릿속에서도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보다 마요트라고 했나? 레벨이 어떻게 되지?”
마요트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212레벨입니다.”
칼슨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그런 칼슨의 표정을 확인한 마요트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 * *
미래산업에서 출시한 상품들이 미국 플레이어 시장을 강타했다.
아니, 비단 플레이어 시장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어마어마한 반향을 일으켰다.
당연했다. 부작용이 없는데다가 지속적으로 복용하면 영구적인 능력 향상이 이뤄지는 약을 대체 누가 마다한단 말인가.
가격이 좀 비싼 편이긴 했지만 다들 충분히 인정했다. 그 정도 돈을 내고서라도 반드시 구하고 싶은 약이었다.
페레인 엑기스는 먹기 좋게 알약 형태로 나왔는데, 입에 넣으면 자연스럽게 녹아 식도를 타고 넘어간다.
그리고 신체의 모든 능력을 약간씩 상승시킨다.
그건 한 번 겪은 사람은 절대 끊을 수 없는 마약 같은 느낌을 선사했다.
물론 정식으로 출원한 약은 아니었다. 특허 등록을 한 것도 아니었다.
FDA승인을 기다리고 있긴 하지만 승인이 날 확률은 바닥에 가까웠다.
이미 전방위적인 로비가 판을 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 가장 막강한 로비 세력은 단연 렉스턴 에너지였다.
물론 미래산업은 그걸 정상적인 방법으로 팔지 않아도 된다. 페레인 엑기스는 암시장을 통해 대량으로 유통되었다.
그리고 미국 구석구석으로 스며들어갔다.
결국 FDA에서도 승인해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페레인 엑기스는 부작용이 전혀 없는 완벽에 가까운 약이었으니까.
그렇게 승승장구하는 미래산업의 뉴욕 지사 빌딩을 향해 은밀히 접근하는 일단의 무리가 있었다.
“아무리 파도 안 나온다니까 진짜 짜증나네.”
“그거야 우리 생각이고 책상머리에 앉은 사람들 생각은 다를 테니까.”
“맞아. 우리가 제대로 못 찾았다고 여기는 거지.”
“그렇게 못 미더우면 자기들이 직접 오라고 하지?”
“우리 말고도 스파이가 잔뜩 움직이고 있어. 사무직으로 위장해 취업한 놈들도 있으니까.”
“그럼 그놈들한테 알아내라고 하면 되잖아.”
“다들 실패만 거듭하고 있으니까 우릴 보낸 거지.”
“후우. 그래서 대체 뭘 원하는 거야?”
“페레인 엑기스 공장의 위치.”
“그거 공장 위치도 안 알려진 거야? 그게 말이 돼?”
“위치가 저 빌딩으로 나와 있어. 실제로 뭔가 공장 비슷한 구조를 가진 방이 있긴 하다더라고.”
그런데 그건 위장일 뿐이라는 건 어린애들도 다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시중에 도는 페레인 엑기스의 양은 그런 소규모 공장에서 나올 만한 물량이 아니었다.
“그럼 뭐야, 저 안에 들어가서 서류란 서류는 싹 뒤지라 이거야?”
“아니지. 중요한 서류만 챙기면 돼. 금고는 있을 테니까.”
“그것도 아니면 알 만한 사람 하나 납치하면 되지 뭐.”
납치를 마치 길다가 사탕 까먹는 것처럼 간단히 말한 사내가 앞장서서 이동했다.
그들은 모두 다섯의 플레이어로 이루어진 팀이었다.
다섯 플레이어가 미래산업 빌딩 옆에 난 골목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벽을 타고 위로 쭉쭉 올라갔다. 벽을 발로 툭툭 디딜 때마다 수 미터씩 위로 치솟았다.
그렇게 그들은 빌딩 옥상에 도착했다.
옥상을 통해 들어가는 편이 감시가 덜해 편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사무원으로 위장취업한 자들이 미리 미래산업 빌딩에 대해 조사한 내용을 바탕으로 짠 계획이었다.
그렇게 옥상에 오른 그들은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으로 향했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한데 계단 입구를 누군가가 막고 서 있었다.
온몸이 새까매서 얼른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이런…… 들킨 건가?”
다섯 플레이어들은 긴장하며 슬그머니 뒤로 물러났다. 여차하는 순간 도망칠 작정이었다.
지키는 자가 소리라도 지르거나 신호를 보내면 낭패니까.
한데 그는 그저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뭐지?”
“저거 그냥 인형 같은데? 철로 만든.”
“어?”
다들 플레이어답게 야간 시력도 상당히 좋았다.
“저렇게 새까맣게 칠해 놓으니까 잘 안 보이지. 하여간 이놈들 잔머리 장난 아닌데?”
“딴 놈들이었으면 놀라서 도망쳤을 거야.”
그들은 그렇게 말하며 천천히 계단 입구를 향해 다가갔다. 혹시 모르니 긴장을 풀지 않았다.
그렇게 가만히 서 있는 검은 인형에게 가까이 붙었을 때, 그 검은 인형이 눈을 번쩍 떴다.
섬뜩한 섬광이 근처를 한 차례 훑고 지나갔다.
싸한 긴장감이 옥상을 휘감았다.
< 미래산업 5 > 끝
ⓒ 김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