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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185화 (185/326)
  • < 미래산업 4 >

    자레드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이리저리 휙휙 돌리며 사방을 둘러봤다.

    “여, 여기가 대체 어디지?”

    아무리 둘러봐도 아무도 없었다. 한데 그 순간 허공에서 현석과 케틀러가 불쑥 튀어나왔다.

    “으아악!”

    자레드는 혼비백산해서 뒤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리고 앉은 채로 후다닥 물러났다.

    하지만 이내 두 사람의 정체를 알아보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대, 대체 여기가 어딥니까?”

    “알아서 짐작해.”

    현석은 그 말만 남기고 앞으로 걸어갔다.

    그들이 있던 곳은 휑한 공터였는데, 사방을 빽빽한 나무숲이 둘러싸고 있었다.

    숲 한가운데 자연스럽게 생긴 공간인 모양이었다.

    자레드는 그렇게 생각하며 주위를 둘러보고는 현석과 케틀러의 뒤를 따랐다.

    공터, 아니, 숲에서 나가는 길은 딱 하나뿐이었다. 나무는 물론이고 풀조차 나지 않은 단단한 길이 약간 구불구불하게 나 있었다.

    옆에는 높다란 나무들이 벽처럼 솟아있었고, 하늘은 새파랬다.

    ‘가만, 지금이 낮이었나?’

    분명히 밤이 되었던 것 같은데 언제 이렇게 날이 밝았는지 알 수 없었다.

    어쨌든 공기도 상쾌하고 분위기가 좋긴 했다. 웬만한 공원을 걷는 것보다 훨씬 괜찮았다. 여기가 어딘지 몰라 불안한 것만 빼면 말이다.

    숲은 그리 크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숲에서 빠져나갈 수 있었다.

    숲을 벗어난 자레드는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흘렸다.

    “우와.”

    그 정도로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숲은 살짝 높은 지대에 형성되어 있었다. 즉, 그들이 선 곳은 높은 언덕 위였다.

    그래서 언덕 아래 광경을 위에서 조망하듯 내려다볼 수 있었다.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넓은 들판이 쫙 펼쳐져 있었고, 그 들판을 가로지르는 강도 있었다.

    강은 빛을 반사해 온통 반짝였는데, 마치 황금으로 만든 강처럼 보였다.

    그리고 들판을 가득 채운 이름 모를 풀과 꽃들이 정말로 아름다운 광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 들판의 끝에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성 하나가 우뚝 솟아 있었다.

    아마 목적지가 바로 저 성인 모양이었다.

    바보가 아니라면 누구라도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기에 자레드는 자신이 먼저 걸음을 옮겼다.

    얼른 저 아름다운 들판을 지나 저 멀리 보이는 웅장한 성에 들어가 보고 싶었다.

    들판에도 어김없이 길이 나 있었다. 잡풀 하나 나지 않은 단단한 땅으로 이루어진 길이 말이다.

    자레드가 앞장서서 빠르게 걸어가자, 현석과 케틀러가 그 뒤를 느긋하게 따라갔다.

    “여기도 입구가 두 개 있나보지?”

    “지금까지는 몰랐는데 그런 던전이 생각보다 많이 있더라고.”

    “던전이라…… 너희는 이 공간을 그렇게 부르나보군.”

    “그럼 원래 다른 이름이라도 있나?”

    케틀러가 고개를 저었다.

    “내가 있던 곳이 왜 그렇게 됐는지도 모르는데 내가 이름까지 알 것 같은가? 그저…… 그저 좀 신기해서 그래. 그리고 궁금하기도 하고.”

    “사실 이젠 나도 궁금해. 대체 여긴 뭐 하는 세상이고 무슨 일이 벌어졌기에 이렇게 조각조각 나뉘어 흩어졌는지.”

    “저 친구 저렇게 우리랑 멀리 떨어져서 가도 되나? 아무래도 여긴…… 아직 정리가 다 안 된 것 같은데. 아닌가?”

    현석이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많이 위험하지는 않아. 별 거 아닌 놈들이라 일부러 남긴 것도 제법 되니까.”

    “하긴, 정말 별 거 아닌 것 같긴 하다만…… 내가 보기엔 저 친구도 딱히…….”

    둘이 그렇게 얘기를 주고받고 있을 때, 갑자기 자레드가 비명을 지르며 달려왔다.

    “으아아악! 마수다! 마수가 나타났다!”

    반대로 달려가면 내리막길이라 훨씬 빠르고 힘도 덜 들텐데, 자레드는 굳이 현석과 케틀러가 있는 위로 달려오고 있었다.

    “대체 마수가 왜 여기 있는 겁니까!”

    자레드는 비명에 질문까지 섞어 던졌다.

    그런 그의 뒤로 쥐처럼 생긴 얼굴을 가진 사람 하나가 돌도끼를 들고 껑충껑충 뛰어 쫓아가고 있었다.

    쥐새끼처럼 온몸을 짧은 털이 쫙 덮고 있었는데, 그래서 더 기괴해 보였다.

    하지만 보기보다는 그리 강한 놈이 아니었다.

    정말 일부러 남겨 놓은 바위들쥐 일족이었다. 마정석을 품고 있지도 않았고, 사체에도 쓸만한 게 전혀 없는 놈들이었다.

    게다가 번식력이 엄청나기 때문에 잠깐 방심해도 수가 급격히 불어나는 종족이었다.

    저 성도 원래는 이 바위들쥐 일족이 장악하고 있었다.

    그걸 현석이 혼자 모조리 정리한 것이다.

    “살려주십시오!”

    자레드가 소리쳤다.

    현석은 가볍게 손을 내저었다.

    후웅!

    “키에엑!”

    바위들쥐가 무슨 충격을 받았는지 뒤로 훙 날아가 버렸다.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 아래로 쭉 내려갔는데, 몸을 일으키고는 어딘가로 후다닥 도망쳐 버렸다.

    “뭐, 뭡니까? 저 마수 대체 뭡니까?”

    “바위들쥐.”

    현석의 말에 자레드가 고개를 휘휘 저었다. 자신이 묻는 건 그게 아니지 않은가.

    “아니, 대체 여기 왜 마수가 있느냔 말입니다. 설마 마수를 인위적으로 사육이라도 하시는 겁니까?”

    현석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해봤다. 과연 이걸 사육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사육은 아닌 것 같군. 어차피 지들끼리 알아서 번식하고 자라는 거니까.”

    “예에?”

    자레드가 황당한 표정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정말…… 정말 마수를 던전 밖으로 끌어내신 겁니까? 대체 왜 그런 위험한 일을 하신 겁니까!”

    “별로 위험한 놈들 아니다.”

    “그거야 플레이어들 입장에서나 그렇죠! 아까 저만 해도……!”

    “그리고 던전 밖으로 끌어내지도 않았다.”

    “그럼 방금 그건…….”

    자레드는 그렇게 중얼거리다가 안색이 확 변했다. 그는 다시 한 번 정신없이 고개를 휙휙 돌리며 주변을 살폈다.

    “서, 설마…… 설마 여기…….”

    “그래. 던전이다.”

    현석은 그렇게 대답하고는 자레드를 지나쳐 휘적휘적 앞으로 걸어갔다.

    케틀러가 현석 옆에 나란히 붙어 걸어갔다. 그리고 자레드 옆을 지날 때, 슬쩍 눈길을 줬다.

    자레드는 케틀러와 눈이 마주치고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자, 잠깐만요! 저, 저도 데려가셔야지요!”

    자레드가 황급히 정신을 차리고는 현석과 케틀러 뒤에 바짝 따라붙었다.

    그들은 그렇게 성까지 걸어갔다.

    중간에 바위들쥐가 간간이 모습을 드러냈지만 현석과 자레드를 보고는 한참동안 망설이다가 다시 사라지곤 했다.

    “아직도 이해가 안 가는군. 저 성 안에 있는 사람들 중에도 저 친구처럼 약한 자들이 제법 있는 것 같은데…… 왜 저 마수들을 그냥 내버려 두는 건가? 싹 쓸어버리면 귀찮을 일도 없을 텐데.”

    “나중에 쓸모가 있을 것 같아서.”

    “나중에? 저 마수들을 쓴다고? 흐음.”

    케틀러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내 신경을 껐다. 자신이 더 생각해봐야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동안 현석을 지켜본 바로는 어설픈 일에 심력소모를 하지 않았다.

    또한 뭔가를 마음먹으면 반드시 이뤄냈다.

    그러니 아마 저것도 분명히 뭔가가 있긴 있을 것이다. 케틀러가 상상도 못할 무언가가 말이다.

    어느새 그들은 성 입구에 도착했다.

    사실 생각보다 거리가 멀지도 않았다. 그저 가벼운 대화를 나누며 걷다보면 금세 도착할 수 있을 정도의 거리였다.

    가까이서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성이 훨씬 더 컸다. 성문도 굉장했다.

    커다란 컨테이너 트럭 대여섯 대가 나란히 지나가도 충분할 정도로 거대했다.

    그리고 거대한 해자가 성을 둘러싸고 있었다. 해자 안에는 물이 흐르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물 안에 뭔가가 있었다.

    “물고기도 사는 겁니까?”

    자레드가 고개를 슥 내밀어 물에 뭐가 있는 건지 자세히 보려고 했다.

    그 순간 뭔가가 물에서 튀어나왔다.

    촤악!

    “으헉!”

    자레드는 누군가 뒷덜미를 잡아당기는 바람에 깜짝 놀랐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자신의 머리가 있던 곳을 덥석 무는 거대한 물고기 모양의 마수를 보고는 더 놀랐다.

    “뭐, 뭐, 뭐, 뭡니까! 저, 저게 뭐냐고요!”

    케틀러는 자레드의 목덜미를 툭 놓으며 말했다.

    “보면 모르나? 마수잖아. 해자에 마수를 키우는 건 아주 전통적인 방법이지. 보아하니…… 칼장어 같은데? 해자용 마수로는 최상급이라 할 수 있지.”

    “카, 칼장어…….”

    “이빨이 칼처럼 날카로워서 붙은 이름이야. 입이 또 어찌나 큰지 웬만한 맹수는 반토막을 낼 수 있거든.”

    자레드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방금 자신이 그 반토막 난 맹수꼴이 될 뻔했다.

    끼이이이!

    쿵!

    도개교가 내려왔다.

    현석 일행은 해자 위에 놓인 다리를 건너갔다.

    자레드는 다리의 정중앙을 따라 걸었다. 옆으로 갔다가 마수가 달려들까봐 숨도 제대로 못 쉬었다.

    ‘괜히왔어. 내가 왜 여길 온다고 했을까.’

    후회해 봤자 이미 늦었다. 이따가 돌아갈 생각을 하니 또 앞이 캄캄해졌다.

    그렇게 세 사람은 성 안으로 들어갔다.

    성 안의 모습은 바깥에서 본 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사방에 판매부스가 늘어서 있었다.

    그리고 한가운데 편평한 돌이 쫙 깔린 길이 있었는데, 성으로 이어진 길이었다.

    “이런 식으로 암시장이 이루어져 있군요. 하지만 규모가…….”

    길옆에 부스가 엄청나게 많긴 하지만 그 정도로는 종로 암시장에도 안 된다.

    자레드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여겼는지 후다닥 달려가 암시장 내부를 샅샅이 뒤지고 다녔다.

    그리고 성 내부도 확인했다.

    그렇게 내린 결론은 정말 대단하다였다.

    이 정도면 피라밋 암시장보다도 규모가 훨씬 컸다.

    게다가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몰라도 밖에서 보는 성의 크기와 내부의 규모가 전혀 달랐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깜짝깜짝 놀라야 했다. 복도만 하나 꺾어도 무슨 운동장만 한 공간이 쫘악 펼쳐져 있었다.

    성 내부에 그런 운동장만 한 공간이 수십 개나 있으니 아차하는 순간 길을 잃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 공간이 층층이 있으니 대체 얼마나 규모가 크단 말인가.

    ‘이 정도면…… 그때 들었던 그 엠페러타워보다 훨씬 더 규모가 큰 거 아닌가?’

    자레드는 그런 생각을 하며 계속해서 성 곳곳을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성의 꼭대기 층에 도착했는데, 그곳은 통짜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역시나 밖에서 보던 성의 꼭대기 층의 규모와는 전혀 다른 거대한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특이한 것은 이곳은 장사하는 공간이 아닌 것 같았다. 뭔가를 만드는 곳이 분명했다.

    화학 실험에나 쓰는 기구들이 즐비했고, 또 단순반복 작업을 위한 기계들도 잔뜩 있었다.

    “여긴…… 대체 뭐 하는 곳이지?”

    그 대답은 어느새 뒤에 나타난 현석이 해주었다.

    “페라인 엑기스를 만드는 공장이지.”

    “으헉!”

    자레드는 갑자기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기겁을 하며 돌아섰다. 그리고 가슴을 한 번 쓸어내리고는 현석을 보며 툴툴거렸다.

    “기, 기척이나 좀 내고 다니시지. 심장이 열 개라도 모자라겠습니다.”

    그러다가 방금 현석이 한 말이 떠올랐다.

    페라인 엑기스라는 말은 이미 들어봤다.

    미래산업이 뉴욕에 자리를 잡고 판매할 물건은 아직까지는 딱 세 가지뿐이었다.

    하나는 플레이어 전용 힐링포션, 그리고 다른 하나는 역시 플레이어 전용 파워업키트였다.

    그 두 가지는 이미 제법 유명했기 때문에 그냥 그런가보다 했다. 아마 돈을 많이 벌겠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마지막 하나, 페라인 엑기스라는 영양제를 판다고 했을 때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 페라인 엑기스를 만드는 곳이 바로 여기라니 신기하면서도 궁금했다.

    “대체 페라인 엑기스가 뭡니까?”

    “페라인이 뭔지는 아나?”

    “네. 저도 나름대로 던전이나 마수에 대해 공부 좀 한 놈입니다. 굉장히 흔하고 약한 곤충형 마수 아닙니까.”

    현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레드는 신이 나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쓸모가 거의 없는 마수이기도 하죠. 약한 데다가 사체에서 뽑아 쓸 것도 없고, 마정석도 거의 안 나오는 마수 아닙니까?”

    “거의 안 나오는 게 아니라 아예 안 나온다. 애초에 마정석이 존재하지 않는 마수니까.”

    “그, 그렇습니까?”

    사실 그 부분은 자레드도 모르던 사항이었다. 애초에 마정석이 없는 마수라니. 그러니 당연히 마정석을 얻을 수 없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한데 그런 페레인으로부터 엑기스를 뽑아내면 대체 뭐가 좋은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자레드가 그런 궁금증을 얼굴 한가득 채운 채 현석을 바라봤다.

    “마정석이 없는 이유는 거기에 해당하는 힘이 온몸에 고루 분포되어 있기 때문이지.”

    자레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럼 엑기스를 뽑아내면 그게 마정석이랑 비슷해지겠군요?”

    현석이 고개를 저었다.

    “전혀 다른 성질의 물질로 변한다. 페레인의 몸에서 특수 정제가 이루어진 거나 다름없으니까.”

    “하면…….”

    “그걸 좀 특수한 방법으로 정제하면 제법 쓸 만한 영양제가 만들어지지.”

    “아…….”

    자레드는 그제야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알 수 있었다. 마수로부터 뽑아낸 영양제를 팔겠다는 얘기였다.

    ‘그런데…… 과연 그런 찜찜한 영양제를 사람들이 사서 먹을까? 워낙 지천에 깔린 마수이니 수급이야 문제가 없겠지만…….’

    그런 자레드의 생각은 이어지는 현석의 말에 깨끗이 날아가 버렸다.

    “페레인 엑기스는 인간의 모든 능력을 향상시켜주지. 시력, 청력, 근력, 지구력, 정력.”

    “예? 정력이요?”

    “게다가 부작용도 없고 꾸준히 복용하면 미미하지만 영구적 효과가 나타나지.”

    자레드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이건 어쩌면…… 마정석 정제 사업을 뛰어넘는 대박을 가져올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미래산업 4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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