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래산업 3 >
“그런 거 안 했으면 좋겠군.”
현석의 말에 케틀러가 일어나면서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냥 인사 같은 거라고 생각해. 우린 이게 편하거든.”
현석은 아무리 말려도 케틀러가 듣지 않을 거란 걸 알고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하든 말든 별 상관없었다. 그러면 마음 편한 대로 하면 되는 것 아닌가.
“맘대로 해라.”
“그보다 우리가 여기서 정확히 해야 할 일이 뭐지? 아까 저 친구는 쳐들어올 놈이 있다고 하던데.”
“그럴 거야.”
현석의 대답에 케틀러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더니 벽으로 가서 여기저기를 툭툭 두드려 봤다.
“이 건물…… 생각보다 별로 안 튼튼해 보이는데?”
케틀러의 말에 자레드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나섰다.
“그럴 리가요. 리모델링하면서 내구성에 신경을 정말 많이 썼습니다. 미사일 같은 거에 맞으면 모를까, 절대 무너질 일 없을 겁니다.”
“그럼 여기서 싸워도 되는 건가?”
“예?”
자레드는 눈을 크게 뜨고 케틀러를 바라봤다. 그러다가 도와달라는 듯 시선을 돌려 현석을 바라봤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자레드는 현석이 누군지 알 수 없었다. 자레드가 아는 건 딱 양동욱 까지였다.
양동욱 근처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몰랐다.
그러니 현석도, 심지어 양동욱의 여동생인 양세희조차 한 번도 만난 적 없었다.
그러니 자레드는 현석이 자신을 도와줄 거란 생각을 하지 못했다.
“당연히 싸울 때는 다른 곳에서 싸워야지.”
“역시 그렇지? 그런데 적들이 그런 사정을 봐줄까? 그냥 다짜고짜 쳐들어와서 힘을 쓰기 시작하면 어떻게 할 수가 없을 것 같은데?”
“그건 아마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러기엔 이 건물이 너무 약해 보이는데?”
케틀러는 그렇게 말하며 벽을 툭툭 건드렸다.
쩌저적!
벽에 금이 쩍쩍 갔다.
“이것 보라고. 이렇게 부실하잖아. 여기서 제대로 몇 방만 때리면 아마 건물 무너질 걸?”
그걸 보고 있는 자레드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는 저 벽이 얼마나 단단한지 아주 잘 안다.
그런 벽을 저렇게 툭툭 건드리는 것만으로 금이 가게 만들다니.
‘저걸 보수하려면 골치 좀 아프겠네.’
그냥 겉에만 금이 간 거라면 그나마 좀 낫겠지만 속까지 다친 거라면 내부를 또 보강해야 하기에 수리가 좀 복잡해진다.
“이 건물은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 평범하게 일하는 곳이라서 찾아올 사람이 없어. 안 그래?”
현석이 자레드를 쳐다봤다.
자레드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은 그렇습니다. 여긴 미래산업의 본사 건물로 쓸 예정이니까요. 하지만…….”
자레드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
“예전 렉스턴 에너지 본사도 습격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사실 방심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저희도 나름대로의 보안과 경비대책은 세우고 있긴 합니다만…….”
자레드는 거기까지 말하고 케틀러를 바라봤다.
아무리 그래도 저렇게 강력한 사람이 지켜준다면 그보다 더 든든한 일은 없을 것이다.
“케틀러는 암시장 쪽을 맡을 거야.”
“암시장…….”
자레드는 암시장이라는 말에 입을 다물었다. 사실 그는 아직 암시장이 어디에 만들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저 그런 걸 회사가 만드는 중이라는 것만 알 뿐이었다.
암시장에 관한 모든 것이 베일에 싸여 있었다. 아직까지는 말이다.
“한데…… 암시장이 우리 회사 건물에 만들어진다는 소문이 있던데…… 그게 정말입니까?”
“정확히는 옆 건물이다.”
현석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사실 딱히 비밀도 아니었다. 앞으로는 플레이어들 사이에 이 소문이 쫙 퍼지게 할 작정이었으니까.
어디에 뭐가 있는지 알아야 사람들이 와서 암시장이 활성화할 것 아닌가.
“옆 건물이라면…….”
자레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옆 건물은 투자회사가 쓰는 건물이었다.
투자회사 하나가 쓰는 건물도 아니었다. 건물의 크기도 상당히 컸고, 수십 개의 회사가 함께 쓰는 건물이었다.
그런 건물에 암시장을 만든다니. 그게 과연 가능할까?
만일 그러려면 저 빌딩에 자리 잡은 수많은 투자회사들을 모두 내보내야 한다.
그것만으로도 일이 간단치 않을 것이다.
그렇게 내보낸 다음에도 문제다. 암시장을 만들기 위해선 내부 구조를 변경해야 한다.
보아하니 슬슬 소문이 더 크게 퍼질 텐데, 암시장 공사를 하고 있을 때, 렉스턴 에너지나 다른 조직들이 공작이라도 펼치면 정말 난감해질 것이다.
자레드가 뭘 걱정하는지 다 안다는 듯 현석이 말했다.
“이미 빌딩은 우리 소유가 됐으니 걱정할 거 없다.”
“하면 저기 일하던 사람들을 모두 내보내실 작정이십니까?”
“저들을 왜 내보내지? 저렇게 훌륭한 방패를 우리가 왜 버려야 하지?”
“예? 하면…… 적이 쳐들어왔을 때, 저들을 이용하실 거란 말입니까?”
현석이 고개를 저었다.
“적이 함부로 쳐들어오지 못할 거란 뜻이다.”
“하지만…….”
“적은 정확히 암시장에만 들어오겠지. 그게 우리가 원하는 바다.”
“저 빌딩에 암시장을 만든다면 결국은…….”
결국은 저 빌딩 자체가 싸움터로 변한다는 뜻이고, 그런 빌딩에 사는 모두를 위험에 빠트리게 될 것이다.
“나중에 보면 안다. 아마…… 너도 충분히 납득할 것이다.”
자레드는 자신이 절대 납득할 수 없다고 여겼지만 일단은 넘어갔다.
실제로 암시장이 어떻게 생겼는지 확인한 다음에 다시 애기를 해도 늦지 않으니까.
물론 그때가 되면 자신이 이 회사를 그만 두게 될 확률이 높을 테지만 말이다.
현석과 자레드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케틀러가 현석을 보며 물었다.
“우리가 그 암시장이라는 곳을 지켜야 한다면, 여기보다는 아예 거기에서 지내는 게 낫지 않을까?”
“바로 갈 수 있도록 해줄 테니 걱정할 거 없다.”
“바로 갈 수 있다고?”
현석의 그 말에는 케틀러뿐 아니라 자레드도 수긍하지 못했다.
여기서 옆 건물로 바로 이동할 수 있는 경로 같은 건 없었다.
게다가 지하로 가는 계단 쪽 통로는 아예 막아 버렸다.
여기서 밖으로 나갈 방법은 벽에 달린 문을 통하는 길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가면 이 건물의 3층과 4층 사이로 나가게 되고, 그 끝에 있는 전용 엘리베이터를 통해 지하1층으로 내려갈 수 있었다.
극단적으로 갇힌 구조였다. 그 얘기는 이 장소를 들킬 염려가 적다는 뜻도 되지만, 기동성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그걸 확인시켜주러 온 거다.”
현석의 말에 케틀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체 뭘 어떻게 확인시켜주겠다는 뜻인가?
현석은 주위를 슥 둘러봤다. 그러면서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마치 집구경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던 현석이 커다란 붙박이장 앞에 섰다.
“이거군.”
현석은 문을 열어 안쪽을 확인했다. 그냥 평범한 장이었다. 하지만 뭔가를 보관하기에는 좀 얕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걸 본 현석을 고개를 끄덕였다.
“시킨 대로 잘 만들었군.”
현석은 다시 문을 닫고 돌아섰다.
“지금 뭐 하는 거지?”
“나중에 알게 될 거야.”
그걸로 끝이었다. 다들 멍하니 현석을 바라봤다. 자레드는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이게 끝입니까?”
현석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케틀러를 쳐다봤다.
“너만 따라오면 되겠군.”
“어디를 갈 건데?”
“암시장.”
현석의 말에 자레드가 눈을 빛냈다. 그 소문의 암시장이라면 자신도 꼭 보고 싶었다.
대체 어디에 어떻게 만들었는지 너무나 궁금했다.
사실 그럴 것도 한 게, 암시장을 지금 만들고 있다는 얘기는 분명히 들었는데, 아무런 움직임을 보지도 파악하지도 못했다.
자레드의 직책은 미래산업 뉴욕지부의 부지부장이었다.
뭐, 지금이야 아르포르 기사단의 뒤치다꺼리나 하고 있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임시였다.
이제 조만간 미래산업의 중추가 되어 활발하게 움직일 것이다.
한데 아직도 미래산업에 대해 이렇게나 모르고 있으니 가끔은 답답해 미칠 것 같았다.
그러니 이번 기회에 암시장이라도 보고 싶었다.
자레드는 그런 마음을 담아 현석을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봤다.
당연히 현석이 그런 자레드의 시선을 느끼지 못할 리 없었다.
“너도 따라오고 싶으면 따라오든가.”
자레드는 속으로 환호성이라도 내지르고 싶었지만, 상대가 저렇게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데, 거기에 반응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억지로 표정을 관리하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대답했다.
“예. 저도 따라가겠습니다.”
마치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 * *
“여깁니까?”
자레드가 잠시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리고 현석이 고개를 끄덕이는 걸 확인하고는 다시 시선을 돌려 앞에 있는 문을 바라봤다.
이게 암시장일 리 없다는 데 자신의 전 재산을 걸 수도 있었다.
당연했다. 작은 방 한가운데 문만 덩그러니 서 있었는데, 그것이 암시장으로 들어가는 입구라고 하니 대체 누가 그 말을 믿을 수 있겠는가.
“아무리 봐도…… 그냥 문 밖에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만…….”
“그냥 문이 아니라 옆에 벽도 같이 있잖아.”
자레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문에 벽돌 두 개 정도의 넓이로 벽도 분명히 존재했다.
하지만 이건 누가 봐도 문 옆에 장식처럼 붙어있는 벽이었다.
진짜 벽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이 문을 열면 벽밖에 없을 것 같은데…… 아닙니까?”
그래도 벽에 붙어 있긴 했으니 문을 열면 저 붉은색 벽돌들이 차곡차곡 쌓인 모양의 벽이 딱 나타날 것이다.
그러니까 이 문은, 벽둘을 차곡차곡 쌓아 적당한 크기의 벽을 만든 다음, 그 가운데 부분을 살짝 파내서 문을 달아 놓은 것이다.
그래서 문이 달려있음에도 두께는 아주 일정했다.
그렇게 보니 제법 정교한 작업을 통해 나온 작품은 분명했다.
“이건 문이라기보다는…… 조각에 더 가까운 거 아닙니까?”
자레드는 그렇게 말하고 주위를 둘러봤다.
이 사무실은 빌딩 3층에 위치해 있었다. 빌딩의 주인씩이나 되면서 고작 이만한 사무실 하나가 전부라니, 이게 말이나 되는가.
‘좀 더…… 그럴듯하게 만들었어도 괜찮았을 거 같은데…….’
자레드는 아쉬웠다. 여긴 분명히 속임수 거점 중 하나일 것이다. 이곳이 암시장이라고 속여 1차적으로 어설픈 것들을 걸러내는 장치를 만든 것이다.
고작 이 정도 정보는 가려낼 수 있어야 우리 암시장을 이용할 자격이 부여된다고 할까?
자레드가 그렇게 혼자만의 상상에 젖어 있을 때, 현석은 케틀러를 보며 말했다.
“어때? 이제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지?”
“충분히 이해했다.”
케틀러는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다가 퍼뜩 뭔가가 떠올랐는지 고개를 휙 돌려 현석을 바라봤다.
“설마…… 설마 아까 그 벽장에……!”
현석이 씨익 웃었다. 케틀러는 현석의 미소를 멍하니 보고 있다가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정말이지…… 당해낼 수가 없군. 그래. 확실히 그렇게 된다면 어떤 상황에서든 빠른 대처가 가능하지.”
“자, 그럼 들어가 볼까? 넌 어쩔 거지? 같이 들어갈 건가?”
“예? 어딜 말입니까? 거기요?”
자레드의 황당한 표정을 본 현석이 문을 열었다. 자레드의 말대로 거기에는 빨간 벽돌을 쌓아 만든 벽이 있었다.
혹시나 하고 기대했던 자레드의 표정이 다시 실망으로 물들었다.
현석은 피식 웃으며 자레드의 팔을 꽉 쥐었다.
“헉! 뭐, 뭐 하시는 겁니까!”
자레드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현석은 그런 자레드의 말은 무시하고 열린 문을 통해 드러난 벽을 향해 그를 힘껏 던졌다.
“으아악!”
자레드의 비명이 방안을 가득 울렸다.
“시끄러운 녀석이로군.”
케틀러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방금 자레드가 사라진 붉은 벽을 향해 걸어갔다.
이내 케틀러도 벽 안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현석이 벽 안으로 들어갔다.
< 미래산업 3 > 끝
ⓒ 김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