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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183화 (183/326)
  • < 미래산업 2 >

    머미킹과 블러디퀸의 일은 싱거울 정도로 간단히 끝나 버렸다.

    현석은 머미킹과 블러디퀸이 원래 하나에서 시작되었다는 걸 알고, 머미킹의 핵을 블러디퀸에 흡수시켜 버렸다.

    둘 다 플레이어로 각성하기 직전의 상태였기에 마력을 강제 주입해서 동시에 각성시켜 버렸다.

    예전이라면 이렇게 쉽고 간단하게 해낼 수 없었겠지만, 지금은 정말 별 거 아닌 일이었다.

    그렇게 플레이어로 각성 시키고 나니, 둘을 하나로 만들 방법이 심안을 통해 자연스럽게 보였다.

    그리고 그냥 그렇게 해 버렸다.

    블러디퀸을 모체로 할지 머미킹을 모체로 할지 선택할 수 있었고, 당연히 블러디퀸을 모체로 했다.

    현석이 피라밋 암시장에 도착하자마자 벌어진 일이었다.

    * * *

    현석은 다시 공항에 있었다. 일을 해결했으니 굳이 여기 남아있을 필요가 없었다.

    “이제 어디로 가실 건가요?”

    블러디퀸의 물음에 현석은 잠시 고민했다.

    “일단…… 뉴욕에 가봐야 할 것 같군요.”

    “뉴욕이요? 미래산업의 일을 처리하실 계획인가요?”

    “그거야 양동욱이 알아서 할 일이고.”

    현석은 그렇게 말하고는 시선을 힐끗 돌려 임형석을 쳐다봤다.

    “어르신은 같이 안 가실 겁니까?”

    “뭐…….”

    임형석은 선뜻 대답하지 않았다. 이곳에서의 생활이 썩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블러디퀸이 얼른 임형석의 팔에 매달리다시피 했다.

    머미킹의 힘까지 흡수해 예전의 딱 두 배로 강해진 그녀의 모습은 그동안과는 많이 달랐다.

    예전에는 우아한 중년 부인의 모습이었는데, 지금은 그보다 훨씬 젊고 아름답게 변했다.

    게다가 나이를 통해 얻은 우아함도 여전히 간직하고 있어 정말 치명적인 매력을 풀풀 날렸다.

    결정적으로 그녀는 마력의 힘을 얻었다. 각성과 동시에 레벨이 100을 넘어간 사람은 아마 그녀가 거의 처음일 것이다.

    현석은 그녀가 각성하는 순간을 확인하고는 그 미지의 플레이어에 대한 의문이 살짝 풀렸다.

    그 사람도 어쩌면 원래 강했던 자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각성과 동시에 높은 레벨을 획득한 것이고 말이다.

    물론 그 모든 것은 그저 추측일 뿐이었다.

    진실은 그를 직접 만나, 심도 깊은 대화를 통해서만 알 수 있을 테니까.

    현석은 더 이상 임형석에게 묻지 않았다. 어쩌면 그냥 여기서 이렇게 사는 것이 훨씬 더 행복할 수도 있었다.

    여기라고 던전이 없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리고 임형석은 믿을 만했다. 아마 현석과 있었던 일은 절대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을 것이다.

    현석은 문득 회귀 전에 임형석이 죽기 직전 플레이어로 각성했던 일이 떠올랐다.

    그리고 임형석이 왜 그때 각성했는지 이유를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이번에 블러디퀸과 머미킹에 대한 일을 해결하면서 그 부분에 대한 확신을 얻었다.

    현석이 임형석을 보며 말했다.

    “각성하고 싶으면 언제든 연락 주시죠.”

    임형석이 피식 웃었다.

    “각성? 그런 걸 내가 왜 해? 지금도 충분히 괜찮은데.”

    그렇게 말하는 임형석의 눈이 번득였다. 현석은 그걸 보며 씨익 웃었다.

    의지가 한 풀 꺾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 사람은 새로운 길을 개척할 생각인 거다.

    그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다음에 만날 때는 지금이랑은 많이 다를 거다.”

    임형석의 말에 현석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그렇겠죠.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현석은 돌아서서 걸음을 옮겼다.

    이제 이곳을 떠날 시간이 되었다.

    * * *

    케틀러는 제법 편안한 생활을 영위했다. 아르포르 기사단은 엄밀히 진짜 인간이 아니었다. 그저 영혼만 가진 자들이었다.

    그렇기에 먹을 필요도 없고, 잘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케틀러는 그 두 가지를 충분히 즐겼다. 물론 맛도 못 느끼고 잠잔다고 해봐야 그저 누워 있는 게 전부였지만, 그래도 꾸준히 그렇게 했다.

    케틀러만 그러는 게 아니라 아르포르 기사단 전원이 그 생활을 즐겼다.

    물론 막상 임무에 들어가면 두 가지를 단숨에 포기해 버릴 것이다. 어차피 정신적 위안 외에는 아무 의미가 없는 행동이었으니까.

    그들이 머무는 집은 상당히 허름했다. 하지만 아무도 거기에 대해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이곳은 그들에게는 너무나 생소한 세상이었다.

    사실 그들이 보기에는 이 집에 있는 모든 물건들이 신기했다.

    물론 예전 그들이 살던 제국에도 이와 비슷한 물건들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제국의 문명 수준은 상당히 높았다. 다만 그것을 영위하는 자들의 범위가 좁았을 뿐이었다.

    정말 제대로 된 높은 수준의 혜택은 극소수의 왕족이나 귀족들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아래에 있는 비교적 넓은 층의 귀족이나 기사들이 영위하는 삶의 질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케틀러는 그 제법 높은 질의 삶을 영위하는 계층 중 하나였다.

    그런 케틀러에게도 이곳의 문명은 참으로 신기한 것투성이였다.

    “다른 건 몰라도 저건 정말 신기하군.”

    케틀러는 TV화면을 멍하니 보면서 중얼거렸다. 그들이 살던 제국의 최전성기에도 저런 건 없었다.

    더구나 이런 허름한 집에까지 놓여 있을 정도로 대중화 되어 있다니.

    “대체 얼마나 많은 마법이 저 안에 들어가 있을까?”

    케틀러의 중얼거림에 옆에 있던 사내, 자레드가 말했다.

    “마법 같은 건 없습니다. 그냥 과학이죠.”

    “과학?”

    케틀러가 피식 웃었다.

    “그 물이 어떻게 흐르고 위에서 아래로 떨어질 때 어떤 힘이 있고, 각도가 어쩌고 하는 그거 말인가? 그런 거라면 우리 제국에서도 제법 하는 자들이 있었지.”

    자레드는 그 말에 그저 쓴웃음을 지었다. 더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자신 역시 과학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으니까.

    좀 깊은 설명을 하는 건 자레드가 아닌 누구도 쉽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 쓰는 데 집중하지, 그 원리나 누가 어떻게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으니까.

    자레드도 쓰는 사람이지 만드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 걸로 만들 수 있는 물건이 아닌 것 같은데? 저기에는 분명히 마법이 들어가 있어.”

    자레드는 더 이상 그 부분에 대해서는 대꾸하지 않았다. 이곳에서 저들을 돌보라는 명령을 받고 이틀 째 생활하고 있지만, 아무리 봐도 이상한 자들이었다.

    ‘저 답답한 후드 좀 벗으면 안 되나?’

    실내에서 생활하는데 아무도 후드를 벗지 않았다. 후드가 어찌나 크고 깊은지 얼굴을 확인할 수가 없었다.

    마치 다들 자신의 얼굴을 보여주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행동하니 더더욱 답답하고 궁금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몰래 후드를 벗기고 싶은 생각까지는 없었다.

    저들이 저래 보여도 정말 무서운 자들이다.

    자레드는 저기 앉은 케틀러라는 자가 실수로 문고리를 부수는 광경을 봤다.

    그냥 부순 게 아니라 마치 종이로 만든 문고리를 구기듯 우그러뜨려 버렸다.

    그렇게 약한 줄 몰라서 실수했다고 하는데, 절대 그럴 리 없었다.

    ‘나한테 보라고 한 거지. 협박이야. 아차하는 순간 내 머리나 주먹이 그렇게 뒬 수도 있다고 말한 거지.’

    그래서 그 뒤로 최대한 조심하고 있었다. 이렇게 대화를 할 때도 자신이 혹시 선을 넘은 건 아닐까 노심초사했다.

    그렇다고 대화를 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적당한 대꾸를 해주지 않으면 무시당했다고 여겨 무슨 짓을 당할지 알 수 없으니까.

    아무튼 그런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생활이 이어지고 있었다. 자레드는 빨리 이 상황이 종료되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그러려면 이 전화기가 울려야 한다.

    자레드는 폰을 들어 멍하니 그걸 내려다봤다. 그리고 그 순간 마치 거짓말처럼 전화가 울렸다.

    “헉!”

    너무 놀라 하마터면 전화기를 놓칠 뻔했다. 자레드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차분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자레드입니다.”

    전화를 통해 전달되는 명령을 듣는 자레드의 표정이 점점 밝아졌다.

    “예. 알겠습니다. 즉시 이행하겠습니다. 예.”

    전화를 끊은 자레드는 케틀러를 바라봤다.

    “집을 옮긴다고?”

    “아…… 예.”

    자레드는 당황하지 않았다. 저런 괴물 같은 자가 전화기에서 들리는 소리를 못 알아들었을 리 없으니까.

    “여기 말은 그래도 단순하고 배우기 쉬워서 좋아.”

    케틀러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뒤를 돌아봤다. 그곳에는 100명의 아르포르 기사단이 도열해 서 있었다.

    “그러니 너희들도 빨리 말을 익혀. 언제까지 내가 통역해 줄 수는 없으니까.”

    마지막 말은 제국어였다. 그렇기에 자레드는 무슨 말인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저 이 세상에 저런 종류의 언어가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만 들었다.

    몇 번 듣지 않았지만 저건 언어라기보다는 신음이나 비명, 괴성이나 소음에 더 가까웠다.

    물론 그걸 제대로 듣기 위해선 마력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자레드는 전혀 알지 못했다.

    어쨌든 그렇게 이사가 결정되었다.

    “준비된 장소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자레드가 먼저 건물에서 나갔다. 이곳은 뉴욕의 뒷골목이라 할 수 있는 위험한 장소였다.

    하지만 자레드는 전혀 두렵지 않았다.

    이곳에 있는 모든 위험한 놈들을 싹 끌어와 봐야 여기 있는 101명의 사람 중 한 명도 제대로 상대하지 못한다.

    그런 강자 101명과 함께 하는데, 뭐가 두렵겠는가. 자레드가 진짜 두려워해야 할 건, 이들에게 밉보이는 거였다.

    “자, 이쪽으로 가시지요.”

    자레드의 뒤를 새하얀 로브를 입고 후드를 깊이 뒤집어 쓴 101명의 사내들이 뒤따랐다.

    마치 새하얀 물결이 흘러가는 듯했다.

    * * *

    “음? 여긴가?”

    “예.”

    자레드의 공손하면서도 자부심 넘치는 대답에 케틀러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에 머물던 곳이랑은…… 좀 많이 다르군.”

    “아무래도 그곳은 변두리인데다가…….”

    예전의 그곳은 위험한 장소였다. 인적도 별로 없었고 말이다. 그리고 살인도 종종 벌어지는 곳이었다.

    물론 그런 것들이야 케틀러에게는 전혀 상관없겠지만 말이다.

    “여긴 중심지 중에서도 가장 비싼 곳입니다.”

    확실히 그래 보였다. 사방이 높은 빌딩으로 즐비했고,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굉장히 많았다.

    아마 케틀러 일행이 커다란 버스에 타고 있지 않았다면 단번에 모두의 시선을 받았을 것이다.

    버스는 건물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빌딩 지하에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었다.

    따로 특별한 주차 공간을 만들었기에 아무도 쓰지 않는 주차장이었고, 아르포르 기사단은 그곳에서 내렸다.

    그리고 그곳에서 곧장 빌딩 위로 갈 수 있는 계단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 계단으로 올라가면 4층쯤에 문이 있었고, 그 문으로 들어가면 아르포르 기사단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오! 예전의 그곳과는 아예 딴 판인데?”

    깔끔하고 깨끗한 공간이었다. 그리고 없는 게 없었다.

    “이곳에서 지내시면 됩니다. 뭔가 필요하신 게 있다면 이 인터폰을 들고 이 버튼을 누른 다음 말씀하시면 됩니다.”

    자레드는 그렇게 집의 편의 시설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예전 집과는 아무래도 많이 달랐기 때문에 몇 가지 설명이 필요했다.

    “우리가 여기서 할 일이 뭐지?”

    케틀러는 이런 좋은 집에서 사는 것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앞으로 자신이, 또 아르포르 기사단이 무슨 일을 하게 될지가 훨씬 더 중요했다.

    그리고 거기에 훨씬 관심이 많았다. 영혼만 남았지만 왠지 두근거리는 것 같았다.

    “아마…… 여길 쳐들어오는 놈들이 조만간 생길 겁니다.”

    케틀러의 온몸에서 은은한 살기와 투기가 무럭무럭 피어올랐다.

    “여길…… 쳐들어온다고?”

    “예. 아마…… 분명히 올 겁니다.”

    “그거 아주 기대되는군.”

    자레드는 케틀러의 말을 들으며, 왠지 저 사람이 지금 분명히 웃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얼굴이 보이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손님이 오셨군.”

    “예?”

    자레드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손님이라니. 여긴 아무나 올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층과 층 사이에 존재하는 비밀 층이었고, 그걸 위해 빌딩을 리모델링 할 때 정말 신경을 많이 썼다.

    이 방, 아니, 이 층을 들락거릴 수 있는 사람은 여기에 대해 아주 잘 아는 사람이 아니면 불가능했다.

    그러니 누군가가 찾아오는 일은 없어야 한다.

    여길 설계한 양동욱이 아니라면 말이다. 하지만 양동욱이 여기에 왔을 리가 없다. 그는 지금 한국에 있으니까.

    아까 이동하기 전에 자레드와 통화한 사람이 바로 양동욱이었다. 그가 거짓말을 한 게 아니라면 한국에 있어야 정상이다.

    ‘거짓말을 할 리 없잖아. 나한테.’

    그래서 정말 이상했다. 한데 잠시 기다리니 케틀러의 말이 정말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양동욱과 자레드만 아는 문이 열리고 있었으니까.

    새하얀 벽의 중심에 새까만 선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 선이 점점 두꺼워졌다.

    벽 자체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이곳이 이 방을 들락거릴 수 있는 유일한 출입구였다.

    아까 지하 주차장으로 가는 길은 이미 폐쇄했으니까.

    문이 활짝 열렸다. 그리고 거기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현석이었다.

    케틀러와 아르포르 기사단이 현석을 보자마자 일제히 한 쪽 무릎을 꿇고 앉아 고개를 살짝 조아렸다.

    그리고 그 광경을 지켜보는 자레드의 눈이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래졌다.

    < 미래산업 2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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