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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182화 (182/326)
  • < 미래산업 1 >

    현석은 이집트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피라밋 암시장으로 향했다.

    굳이 여기까지 온 것은 이번 일을 제대로 마무리하고 피라밋 암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함이었다.

    피라밋 암시장이 안정되어야 앞으로도 계속 렉스턴 에너지를 견제할 대항마 중 하나로 버틸 수 있을 테니까.

    렉스턴 에너지는 보이는 게 다가 아니었다. 저들은 정말로 거대한 제국이었다.

    그건 미래를 겪고 다시 과거로 회귀한 현석이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일이었다.

    미래의 플레이어 세상은 렉스턴 에너지의 세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사실 플레이어 세상만 그런 게 아니었다.

    렉스턴 에너지는 전 세계의 경제를 야금야금 장악해 나갔다. 현석이 회귀할 무렵에는 그저 영향력만 거대할 뿐이었다.

    하지만 아마 그 이후 그리 오래지 않아 세계의 경제를 지배할 것이 분명했다.

    그 다음은 당연히 정치로 가는 것이 수순일 것이다.

    세계의 왕이 되는 것이 렉스턴 에너지의 목표임이 분명했다.

    현석은 절대 그렇게 둘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두지 않으려면 렉스턴 에너지를 꾸준히 견제할 세력들이 필요했다.

    지금 당장은 피라밋 암시장과 중국의 흑시밖에 그럴 만한 조직이 없었다.

    사실 그 두 조직의 힘만으로는 렉스턴 에너지를 견제하기 버거웠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씩 얘기가 달라질 것이다.

    현석도 나름대로 힘을 쌓아왔으니까.

    ‘문제는…… 그놈이야.’

    현석의 뇌리에 예전 장춘이 말했던 자가 떠올랐다.

    미지의 플레이어. 추정레벨이 무려 300에 달하는 놈, 아니, 어쩌면 그보다 훨씬 높을지도 모른다.

    왠지 현석은 그놈이 렉스턴 에너지와 관계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일 그렇다면 지금 가진 것만으로는 안 된다. 훨씬 더 큰 힘과 세력이 필요했다.

    ‘뭐…… 일단은 피라밋 암시장부터.’

    현석은 그런 걱정은 나중에 하기로 하고 일단 지금 할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러는 사이 현석을 태운 차는 어느새 피라밋 암시장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 * *

    “생각보다 나쁘지 않군요. 아니, 이 정도면 예전이랑 별 차이 없는 것 같은데요?”

    현석은 암시장에 들어서자마자 자신을 찾아온 웨인에게 말했다.

    웨인은 그 말에 고개를 저었다.

    “겉으로 보는 것만 그렇습니다. 속은…… 텅텅 비었습니다. 물건이 잘 돌지 않고 있습니다. 신뢰도가 하락한 거죠.”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머미킹이라는 전설에서나 나올 법한 놈이 나타나 세력다툼을 시작했으니 말이다.

    그 싸움이 거의 마무리 단계에 왔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아직 완벽하게 끝난 게 아니니 사람들의 마음에 남은 불안감도 여전할 것이다.

    그 불안을 끝장내려면 머미킹을 박살 내면 된다.

    머미킹을 완벽하게 정리하면 서서히 신뢰도가 회복되면서 예전의 성세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피라밋 암시장은 피라밋 암시장만의 강점이 있었다.

    일단 세탁이 쉬웠다. 예전에 양동욱이 렉스턴 에너지의 아티팩트를 처분할 때 괜히 피라밋 암시장을 권한 게 아니었다.

    중국의 흑시도 제법 세탁에 능하지만, 이곳 피라밋 암시장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와중에도 피라밋 암시장을 이용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 것이다.

    물론 예전 한창 때에 비하면 절반 정도밖에 안 되지만 말이다.

    “머미킹은 찾았습니까?”

    웨인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대체 어디로 숨었는지 찾을 수가 없습니다. 사실…… 암시장 어딘가에 있는 게 분명한데…….”

    피라밋 암시장은 한 번 들어오면 나가기도 쉽지 않았다. 아주 긴 통로를 지나서 지하로 들어와야 하니 말이다.

    물론 곳곳에 빠져나갈 비상 탈출구가 있긴 하지만 그런 탈출구 역시 모두 블러디퀸 측에서 장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상대는 전설에나 등장하는 머미킹이었다. 그가 마음먹으면 아무리 상태가 안 좋다 해도 빠져나가지 못할 리 없었다.

    그런데도 웨인은 그 부분에 대해서는 대단한 확신을 가진 듯했다.

    “여길 유지하기 위해선 머미킹의 힘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역도 성립합니다. 머미킹이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선 이 장소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 말에 현석은 웨인을 가만히 쳐다봤다.

    “장소 문제가 아니라 사람 문제입니다.”

    “사람 문제?”

    점점 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저러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을 거라 여겼다.

    현석은 일단 그 얘기는 여기서 마무리했다.

    “우리 어르신은 어디 있습니까?”

    “여왕과 함께 있습니다. 명색이 여왕의 호위 아닙니까.”

    웨인은 그렇게 말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임형석을 여왕의 호위로 둔 건 그야말로 신의 한 수였다.

    물론 그렇게 하는 게 좋다고 얘기해준 건 양동욱이었지만 말이다.

    “대체 어떤 훈련을 하면 그렇게 강해지는 겁니까?”

    웨인의 물음에 현석은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걸 왜 자신에게 묻는단 말인가. 임형석 본인에게 물어야지.

    현석이 대답하지 않자, 웨인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걸음을 좀 더 서둘렀다.

    아무래도 현석이 임형석을 빨리 만나고 싶어서 이러는 거라고 여겼다.

    이내 두 사람은 암시장 깊숙한 곳으로 들어왔다.

    암시장의 중앙에 있는 작고 예쁘게 생긴 건물이 보였다. 웨인과 현석은 그 안으로 들어갔다.

    겉으로 가늠한 것보다는 제법 넓었다. 아무래도 옆 건물이나 뒤에 있는 건물과도 연결된 듯했다.

    건물 내부도 바깥과 마찬가지로 아기자기하고 예뻤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내부 인테리어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앉아 있었다.

    임형석이었다.

    “어이! 오랜만이네!”

    임형석은 현석을 보자마자 씨익 웃으며 손을 번쩍 들고 휘휘 흔들어 주었다.

    현석도 그런 임형석을 보고는 피식 웃으며 안으로 슥 들어왔다.

    그 순간, 임형석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뒤로 후다닥 물러났다.

    그의 얼굴은 당황으로 얼룩져 있었다.

    “너…… 뭐, 뭐야! 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임형석은 놀란 표정으로 현석에게 물었다.

    현석은 오히려 그런 임형석의 반응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는 대체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임형석을 쳐다봤다.

    “왜 그러십니까?”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네놈이 더 잘 알거면서!”

    “아! 그거 때문인가?”

    현석은 문득 자신이 예전 임형석과 헤어질 때보다 레벨이 좀 급격히 올랐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임형석이 이집트로 떠난 뒤로 현석에게 제법 많은 일이 있었다.

    황궁으로 가는 길에 강한 마수를 제법 많이 쓰러뜨렸고, 또 퀘스트까지 이행했다.

    그러니 그때와 비교해 지금 엄청나게 강해진 건 맞다.

    하지만 그걸 대번에 알아차린 임형석도 보통은 아니었다. 진영관만 해도 저렇게 아무것도 못 알아차리고 있지 않은가.

    진영관은 지금 막 건물에 들어서고 있었다. 그역시 현석을 발견하고 반갑게 인사를 했다.

    “왜 거기서 그러고 계십니까?”

    진영관이 임형석에게 물었다. 그러자 임형석은 한심하다는 듯 진영관을 보며 혀를 찼다.

    진영관은 울컥했지만 꾹 눌러 참았다. 저번에 한 번 그렇게 욱해서 덤볐다가 정말 이대로 죽을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 적이 있었다.

    그 뒤로 다시 임형석에게 덤비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진짜 괴물 같은 노인네야.’

    임형석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강해졌다. 마치 인간이 강해지는 데 한계는 없다고 몸으로 말하는 듯했다.

    “아무튼 우리 대장님이 오셨으니 이제 여기 일도 끝나겠군요.”

    진영관은 그렇게 말하며 현석을 바라봤다. 그리고 빙긋 웃었다.

    그의 웃음과 표정, 눈빛에 담긴 기대감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현석은 진영관뿐 아니라 웨인과 임형석도 비슷한 얼굴로 자신을 보고 있다는 걸 확인하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제 우리가 뭘 하면 되는지 알려주시죠. 그 붕대인간이 어디 있는지만 알면 단숨에 해치울 수 있을 것 같은데.”

    “흥. 잘도 그러겠다. 아직 그놈이 한 수 위야.”

    “압니다. 그래도 이제 부상이 심하니까 저한테 안 될 겁니다.”

    임형석의 핀잔에 진영관이 씨익 웃으며 대꾸했다.

    “그놈이 아직도 다친 채로 있을 거 같아? 그놈, 그냥 사람이 아니야.”

    “그래도 힘은 줄어들었을 거 아닙니까.”

    “그걸 누가 장담해?”

    진영관은 입을 다물었다.

    머미킹이 부상을 입고 도망친 건, 그가 괜히 블러디퀸을 기습하려 했기 때문이다.

    혼자 온 게 아니라 그가 이끄는 수하들과 한꺼번에 들이닥쳐 기습했는데, 모조리 박살 났다.

    블러디퀸을 지키는 임형석이라는 존재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머미킹의 실책이었다.

    그 한 번의 기습으로 머미킹은 자신이 부활하면서 함께 깨어난 부하들을 모두 잃어야만 했다.

    그리고 자신도 심각한 타격을 입고 꽁꽁 숨을 수밖에 없었다.

    “에잉. 그때 아주 끝장을 내버렸어야 하는 건데.”

    끝장을 낼 수도 있었지만 블러디퀸이 말리는 바람에 그렇게 하지 못했다.

    머미킹이 소멸하면 피라밋 암시장 자체에 큰 문제가 생긴다고 하니 임형석도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지금 큰 기대감을 안고 현석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 재수 없는 붕대인간, 확실하게 처리할 수 있지?”

    “일단 한 번 보죠.”

    현석은 그렇게 말하고는 안쪽으로 들어갔다.

    웨인이 황급히 따라가 현석을 앞질러 간 다음 정중히 문을 열어 주었다.

    열린 문을 통해 자리에 앉아 있는 블러디퀸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를 본 현석의 표정이 살짝 묘해졌다.

    “생각보다 일찍 오셨군요.”

    블러디퀸은 현석을 보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반가이 맞아주었다.

    “미래산업 측으로부터 연락은 미리 받았어요. 그리고 방금 검토가 끝났고요.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블러디퀸이 현석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현석은 그녀의 손을 잡고 가볍게 흔든 다음 놓았다.

    그리고 주위를 슥 둘러봤다.

    조금 묘한 감각이 느껴졌다. 그녀로부터 말이다.

    “당신…… 경계에 있군?”

    현석의 말에 블러디퀸의 눈이 커다래졌다.

    “그걸 대체 어떻게 안 거죠? 레벨이 높아지면 그런 것도 알 수 있게 되는 모양이죠?”

    블러디퀸은 지금 플레이어와 그렇지 않은 존재의 중간에 위치해 있었다.

    보통은 이런 식이면 마력중독에 빠져들게 된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해당사항이 없었다.

    그녀는 마력보다 더 포악한 힘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 힘이 마력이 몸을 장악하는 과정을 막고 있는 중이었다. 그 균형이 무너져 그녀는 경계에 들어섰다.

    아마 균형을 계속 유지하거나 그녀가 가진 힘이 더 컸다면 계속 원래의 상태를 이어갔을 것이다.

    “머미킹도 함께 경계에 들었군. 아니, 머미킹 때문에 이렇게 된 건가?”

    블러디퀸의 눈에 조금 전보다 더한 놀람이 담겼다.

    “정말…… 보통이 아니군요. 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죠?”

    현석은 그녀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자신이 여기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강한 예감이 들면 그대로 행하는 게 답이다.

    “일단 머미킹부터 찾아보지.”

    현석은 그렇게 말하고는 사방으로 마력을 퍼트렸다.

    블러디퀸은 자신의 몸을 훑고 지나가는 마력의 느낌에 흠칫 몸을 떨었다.

    그녀는 경악한 눈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하지만 현석은 그녀의 감정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듯 끝없이 마력을 뽑아 퍼트리기만 했다. 그러다가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몸을 돌렸다.

    현석은 그대로 건물에서 나가 버렸다. 그 뒤를 나머지 사람들이 황급히 뒤쫓았다.

    현석은 암시장의 그 복잡한 골목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마치 길을 알고 찾아가는 게 아니라, 그저 길을 헤매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누구도 거기에 대해 불만을 품거나 말하지 않았다. 그저 따라가기만 했다.

    현석이 내뿜는 존재감이 워낙 거대해졌기에 다른 데에는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

    이내 현석은 작은 건물 앞에 섰다.

    “여긴가요?”

    뒤를 바짝 쫓아가던 블러디퀸이 물었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살짝 실망이 감돌고 있었다.

    이곳이라도 그녀가 확인해보지 않았을 리 없지 않은가. 이미 모두 확인하고 지나갔던 곳이다.

    한데 다시 여기로 왔으니 실망하는 게 당연했다.

    현석은 그녀의 말에 반응하지 않고 건물로 다가갔다. 그리고 손을 훅 뻗었다.

    꽈득!

    벽이 뚫렸다. 현석이 벽을 뚫고 손을 쑥 집어넣은 것이다.

    다들 놀란 눈으로 현석과 뚫린 벽을 번갈아 바라봤다.

    현석은 손을 다시 뺐다. 하지만 그냥 손만 빠진 게 아니었다.

    꽈르릉!

    벽이 무너졌다. 현석의 손에 누군가의 목이 잡혀 있었다.

    “머미킹!”

    붕대로 온몸을 칭칭 감은 인간, 머미킹이었다.

    그 역시 놀람과 불신이 뒤섞인 눈으로 현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현석은 머미킹까지 본 다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둘이 원래는 하나였군.”

    이번엔 머미킹뿐 아니라 블러디퀸의 눈도 경악으로 커다래졌다.

    아니, 지켜보고 있던 모든 사람들의 눈에 같은 감정이 담겼다.

    그들은 모두 현석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 미래산업 1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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