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눈 뜨고 레벨업-180화 (180/326)

< 아르포르 2 >

양동욱의 추진력은 정말 대단했다. 현석은 새삼 또 한 번 양동욱을 영입한 건 그야말로 신의 한 수였다는 걸 인정했다.

양동욱은 일단 종로 암시장에 연락을 넣어 미국에 새로운 암시장을 만드는 것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그러면서 미국에서 암시장을 만들 준비를 동시에 시작해 버렸다.

암시장을 만들려면, 그것도 그냥 암시장이 아니라 엠페러타워를 씹어 먹을 정도의 암시장을 만들려면 엄청난 물자가 필요했다.

암시장이 그냥 장소만 제공한다고 끝나는 게 아니었다.

거기서 팔 물건이 있어야 하고, 그곳에서 장사를 할 상인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총괄할 책임자도 필요했고, 암시장을 지킬 무력도 필요했다.

또한 그보다 더 중요한 것들도 있었다.

암시장이 열릴 나라와의 관계를 부드럽게 잘 유지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런 면에서 양동욱은 렉스턴 에너지에 비하면 정말 어려운 상황이었다.

렉스턴 에너지는 이미 미국의 정계와 재계에 엄청난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으니까.

그들과 대적하려면 그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어떻게든 비빌 언덕 몇 개는 만들어 둬야만 했다.

그 언덕을 만들기 위해서는 능력이 뛰어난 로비스트들이 필요했다.

그리고 막대한 자금도 필요했다.

양동욱은 이번 기회에 현석이 준 아이템을 갖고 미국 진출을 시도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좀 부족한 감이 있었다.

양동욱이 가진 아이템은 오직 플레이어들에게만 효과가 있는 것들이었다.

반면 렉스턴 에너지는 실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에너지 산업을 꽉 쥐고 있었다.

어느 쪽이 더 유용하고 힘과 영향력이 강할지는 굳이 비교해보거나 붙어보지 않아도 뻔히 알 수 있었다.

“이거…… 이대로는 해보나 마나겠는데?”

양동욱의 고민이 깊어졌다. 이대로는 안 된다.

플레이어들에 대한 영향력은 분명히 크게 확대될 것이다. 하지만 일반인에 대한 영향력은 거의 제자리나 다름없을 것이다.

물론 암시장을 여는 거니 일반인보다는 플레이어에 대한 영향력이 훨씬 중요하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일반인에게도 먹힐 만한 아이템이 하나 필요했다. 그것도 파워업키트 정도 되는 강력한 아이템이 말이다.

카워업키트와 힐링포션은 벌써 한국 내에서는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었다.

특히 레드드래곤 길드가 앞장서서 그 두 가지 아이템에 대한 광고를 톡톡히 해주고 있었다.

레드드래곤은 가장 먼저 그 두 아이템을 이용해 거의 특혜나 다름없을 정도의 성장을 이뤄냈다.

이제는 그 두 아이템이 아무리 시장에 많이 풀려도 별 상관이 없었다. 이미 완벽하게 자리를 잡았으니까.

레드드래곤 길드는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최고의 길드가 되었다.

더불어 세계적으로 봐도 손꼽히는 길드가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되고 나서야 삼현그룹이 부랴부랴 레드드래곤 길드의 후원자가 되겠다고 나섰다.

당연히 레드드래곤 길드는 그 제안을 보기좋게 걷어차 버렸다.

이젠 아쉬울 게 전혀 없었다.

아마 당장은 어려워도 시간이 제법 지나면 레드드래곤 길드의 명성이나 힘이 삼현그룹을 넘어서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레드드래곤 길드의 마스터, 한중현의 뜻이자 포부였다.

그 한중현이 양동욱을 전폭적으로 밀어주겠다고 약속했다.

미국에 암시장을 열 때, 힘이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을 달라고 했다.

정말로 가뭄의 단비 같은 제안이었지만, 양동욱은 레드드래곤 길드에 손을 벌리지 않기로 했다.

레드드래곤 길드를 이용하는 건 양날의 검이다.

혹시라도 그들의 힘을 쓰게 된다면 그건 훨씬 더 먼 훗날, 더 위험한 상황에서야만 한다.

“그럼 내가 비빌 언덕은 딱 하나뿐이지.”

양동욱은 전화기를 들고 현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럴 때 자신의 문제를 가장 명쾌하게 잘 해결해줄 수 있는 사람이 현석 말고 또 누가 있겠는가.

그리고 현석의 지시를 이행하기 위해 생긴 문제이니 현석이 해결해 주는 게 맞지 않겠는가.

현석과 통화를 한 양동욱의 표정이 점점 밝아졌다.

“예. 그럼 잘 다녀오십시오. 다녀오실 때까지 기초는 다 다져놓겠습니다.”

양동욱은 전화를 끊고 황급히 메일을 확인했다.

“있다.”

현석이 오늘 아침에 보낸 메일이었다. 아직까지 확인을 하지 않아서 이런 메일이 왔는지도 몰랐다.

아마 전화를 하지 않았다면 내일도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메일에는 이번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비책 하나가 담겨 있었다.

양동욱의 입가에 맺힌 미소가 점점 짙어졌다.

그는 손바닥을 비비며 기대감 어린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자…… 그럼 슬슬 시작해 볼까? 이집트에 다녀오려면 적어도 일주일은 걸리겠지만…… 시간이 아주 빠듯하네.”

현석은 지금 이집트로 가고 있었다. 이번 머미킹과의 싸움을 마무리 하기 위해서였다.

현석은 머미킹을 굳이 살려두지 않고도 이번 일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래서 직접 가서 머미킹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자 했다.

물론 지금 피라밋 암시장은 서서히 안정기에 들어가고 있었다.

머미킹이 워낙 크게 패배하는 바람에 그를 따르던 세력이 심각하게 위축되었다.

세력을 갈아타는 사람도 많이 나왔고 말이다.

어쨌든 이대로만 계속 흘러가도 블러디퀸의 승리는 확실했다.

하지만 현석은 더 빠르고 확실한 결과를 원했다.

“아마…… 분명히 해결하겠지.”

양동욱은 그 점에 대해서는 일말의 의구심도 없었다. 현석이 직접 나선 이상, 무조건 성공할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남은 건 자신의 문제였다. 양동욱은 눈을 빛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곧 미국에 진출하게 될 것이다.

아주 새로운 아이템을 들고 말이다.

* * *

칼슨의 눈매가 날카롭게 번득였다.

그는 최근 연이어 타격을 입고 일이 꼬이는 바람에 감정이 심각할 정도로 예민해져 있었다.

그의 입가가 묘하게 비틀렸다.

“그래서, 한국 놈들이 여기 미국에다가 암시장을 만들려 한다고?”

“예.”

칼슨은 얼마 전에 그동안 일하던 비서를 다른 곳으로 보내 버렸다.

아마 지금쯤 피눈물을 흘리고 있을 것이다. 좀 더 잘할 걸 그랬다고 후회하면서 말이다.

지금 보고하고 있는 자는 래리라는 플레이어였다.

플레이어로서의 레벨이나 능력은 조금 우수한 정도였지만, 이런 식의 일처리 능력이나 정보를 관리하는 능력이 상당히 뛰어났다.

“어떤 놈들이지?”

“종로 암시장 놈들입니다. 한국에서는 최고라고 보시면 됩니다.”

칼슨의 입가가 더욱 비틀렸다.

“분수를 모르는 놈들이로군. 좁은 곳에서 제일이 되었다고 이제 꿈이 생겼다 이건가?”

“일단 주변을 샅샅이 캐고 있습니다. 한데 정말 암시장을 만들려고 하는 건지 좀 의심스럽습니다.”

“의심스럽다고?”

“암시장은 핑계고 이쪽으로 던전 관련한 새로운 사업을 진출하려는 것 같습니다.”

“암시장 놈들이 사업을?”

칼슨의 입가에 비웃음이 걸렸다. 암시장과 양지에서의 사업은 근본부터가 다르다.

이쪽에서는 무수한 제약이 따른다. 암시장에서 굴러먹던 감각으로 사업을 벌이면 백중 백 모두 망한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그건 불법을 저지를 수밖에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니면 불법적인 돈을 계속 끌어오거나.

그들을 흔들려면 그 부분을 찌르면 된다.

렉스턴 에너지에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정보력도, 경제력도, 또 정치력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직접 나서서 박살 내버릴 수 있는 무력도 갖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정말 별 거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쉽게 생각하시면 안 될 것 같습니다.”

래리가 경계의 눈빛으로 그렇게 말했다. 칼슨의 눈에 살짝 짜증이 어렸다.

예전 같으면 절대 이러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예민해졌는지 알 수 있었다.

래리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사업에 진출하는 놈들은 종로 암시장이 아니라 다른 놈들입니다. 종로 암시장을 연막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다른 놈들이라고? 대체 뭐 하는 놈들인데?”

“혹시 파워업키트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칼슨은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가장 이슈가 된 아이템인데 그 얘기를 못 들었을 리 없지 않은가.

“그걸 만든 회사가…… 미래라고 했던가?”

“예. 맞습니다. 미래산업이라는 이름으로 등록이 되어있습니다.”

“그놈들이 힐링포션도 만들지?”

“예. 플레이어들에게만 적용되는 포션입니다. 효과가 아주 탁월하다고 합니다.”

“흥. 떼돈을 벌고 있겠군.”

칼슨은 차갑게 웃었다. 그러니 이렇게 헛된 꿈을 꾸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그래봐야 렉스턴 에너지에는 못 당한다.

“그러니까…… 한국에서 만족 못하고 전 세계를 상대로 직접 장사를 해보시겠다?”

“그리고 그 시작이 이곳 미국이고 말입니다.”

“그놈들 기술을 빼올 수는 없나?”

“일단 시도 중입니다. 하지만…… 금방 끝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생각보다 보안이 아주 철저합니다.”

칼슨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물었다.

“그놈들이 만드는 암시장의 위치를 파악할 수 없다고 했나?”

“예. 여기저기 자리를 알아보고 다니는 것 같긴 한데…… 암시장을 열기에는 지나치게 규모가 작습니다. 꼭…….”

“꼭?”

“물건을 팔려고 구한다기보다는 보안에 훨씬 더 신경을 쓰는 것 같습니다.”

“보안? 얘기가 좀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 같지 않나?”

“그래서 1차적인 제 추측은 암시장 얘기를 흘려서 미래산업이 이쪽에 진출할 때, 연막으로 써먹으려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연막이라…….”

칼슨이 흥미로운 눈으로 중얼거렸다. 뭐, 그건 차차 알아보면 된다. 그리고 그쪽을 계속 주시하다보면 뭔가 나와도 나올 것이다.

“그보다 그쪽은 어떻게 됐지? 새 장비는 잘 돌아가고 있나?”

칼슨이 말하는 그쪽이 어디인지 아는 래리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카메라와 장비를 모두 새로 맞췄습니다. 그리고 인원도 대폭 보강했습니다. 하지만…….”

“왜? 내가 너무 쓸데없는 짓을 하는 것 같나?”

래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답하지 않는다는 것이 바로 대답이나 다름없었다.

“거길 주시하고 있으면 분명히 뭔가가 나올 거야. 틀림없어. 거기 틀림없이 뭔가가 있어.”

칼슨의 말에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그러니 래리로서도 어쩔 수가 없었다.

그저 그 부분에 대해서는 시키는 대로 하는 수밖에.

“그리고 그 미래산업이라는 놈들 말인데.”

“예. 말씀하십시오.”

“정확히 여기서 뭘 팔겠다고 하는 거지?”

“일단은 파워업키트와 힐링포션입니다. 그리고…… 페라인 엑기스라는 걸 판매한다고 하는데, 거기에 대해서는 아직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페라인 엑기스?”

칼슨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페라인이라는 말이 왠지 익숙했기 때문이다. 분명히 어딘가에서 들어봤다.

“아, 그거 마수 이름 아닌가?”

“맞습니다.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는 마수입니다.”

페라인은 가장 자주 등장하는 마수 중 하나였다.

일단 10레벨만 넘으면 사냥하는 데 별 무리가 없어서 저레벨 플레이어가 자주 사냥하는 마수였다.

또한 고레벨 플레이어들이 다니는 던전에도 생각보다 자주 출몰해서 고레벨이 되더라도 자주 접하게 되는 마수이기도 했다.

하지만 워낙 쓸모가 없어서 칼슨 같은 사람의 뇌리에 살아남아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그 페라인이 맞나보군. 그놈한테서 엑기스를 뽑아내 판다고? 대체 그게 무슨 효능이 있는데?”

“그건 저도 잘…… 아무튼 아무것도 아닌데 판매할 리 없으니 계속 알아보겠습니다. 등록하기에는 영양제라고 했는데…… 고작 영양제를 가지고 이렇게 당당하게 미국 시장에 진출하겠다고 할 리 없으니까요.”

“그래. 계속 알아봐. 이상한 점 있으면 바로 보고하고.”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대충 보고가 마무리 되어갈 때, 갑자기 래리의 핸드폰에서 진동이 오기 시작했다.

칼슨이 턱짓을 하자 래리가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그의 눈이 찢어질 듯 커다래졌다.

“허공에서 사람들이 나왔다고? 장비는? 뭐? 다 부서져? 그놈들 어쩌고 있어!”

래리의 외침에 칼슨은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대번에 알 수 있었다.

계속 주시하고 있던 고가도로의 허공, 바로 거기서 사람들이 나온 모양이었다.

칼슨은 즉시 외쳤다.

“당장 잡아! 병력 더 보내! 막 보내! 경찰에 연락하고! 그놈들 절대 놓쳐선 안 돼!”

래리는 칼슨의 외침을 그대로 전달해 주었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 바라보자, 칼슨이 이를 갈며 말했다.

“우리도 가자.”

“예.”

두 사람은 즉시 방에서 나가 옥상으로 향했다.

잠시 후, 렉스턴 에너지 옥상에서 헬기 한 대가 날아올랐다.

< 아르포르 2 > 끝

ⓒ 김강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