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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178화 (178/326)
  • < 신의 파편 2 >

    무수하게 떠 있는 투명한 판이 각기 다른 색으로 은은하게 빛나는 광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이곳, 신의 파편이 활성화 되었다.

    현석은 탑 안이 신비로운 빛으로 가득 찬, 이 순간이 되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 이곳, 신의 파편은 잠들어 있었다는 것을.

    마치 동면에 빠진 곰처럼 모든 활동을 정지한 채 이 상태를 끊임없이 유지만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현석의 뇌리에 글자가 떠올랐다.

    [퀘스트 완료]

    신의 파편을 깨운 것만으로 퀘스트가 완료되었다.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는 굳이 의문을 가질 필요도 없었다.

    한 줄기 빛이 현석에게 내리 꽂혔다.

    그 빛은 탑 안에 있는 모든 투명한 판으로부터 기인한 빛이었다.

    모든 판이 탑 중앙을 향해 빛줄기를 쏘았고, 그 빛이 정확히 탑의 중앙, 그러니까 탑의 무게중심의 위치에 해당하는 곳에 모였다.

    그곳이 바로 현석의 위 200미터 지점이었다.

    그곳에 모인 빛줄기가 빛 덩어리를 만들었다. 그 빛 덩어리는 마치 태양처럼 찬란히 빛났다.

    태양처럼 빛나는 빛 덩어리에서 아래로 거대한 빛줄기가 내리 꽂혔다.

    그것이 지금 현석을 감싼 빛의 정체였다.

    현석은 빛을 맞는 순간 어마어마한 고양감에 휩싸였다.

    마치 세상과 하나 되는 듯한 기분이었다.

    처음 탑을 깨울 때, 탑의 마력과 하나가 되는 기분이 들었는데, 지금은 그 감각이 크게 확장한 느낌이었다.

    ‘이게 신과의 소통인가?’

    현석의 감각이 끝없이 넓어지다가 벽을 만나 턱 멈췄다. 그게 바로 이 던전 세상의 끝이었다.

    신의 파편이 있는 던전은 어마어마하게 넓다. 현석이 용을 타고 빠른 속도로 날아 24시간이나 이동하고서야 탑에 도착했을 정도니까.

    게다가 이 탑, 신의 파편은 이 던전의 중심에 위치했다. 그러니 정말 어마어마하게 넓은 던전이었다.

    현석은 마치 하늘 높은 곳에서 이 던전 모든 지역을 내려다보는 느낌이 들었다.

    실제로 그러고 있었다. 현석의 시야가 하늘 꼭대기에 있었다.

    게다가 시야가 어찌나 밝은지 바닥에 굴러다니는 돌멩이, 아니, 흙 알갱이까지 세세히 확인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이 세상은 마수로 꽉 차 있었다. 그것도 그냥 마수가 아니라 엄청나게 강한 마수들이었다.

    최하 100레벨이 넘는 플레이어가 죽을 각오를 하고 덤벼야 간신히 이길 수 있을 만한 마수가 이곳에서 가장 약했다.

    그나마 약한 놈이 그렇지 가장 흔한 마수는 150레벨이 넘는 플레이어가 죽음을 각오해야 이길 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200레벨이 넘는 플레이어라 해도 쉽게 상대하기 어려울 만한 마수들도 간간이 보였다.

    물론 직접 싸워본 것도 아니고, 현석이 아는 마수도 아니었다. 하지만 척 보면 느낌이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게다가 지금 이렇게 다른 시야로 보니 그런 것들을 훨씬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다.

    그냥 아는 것이다.

    현석은 그제야 이 시야가 신의 파편을 통해 그의 힘과 권능에 의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니 이렇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느낌과 지식은 현석의 것이 아니라 신의 파편으로부터 기인한 것이다.

    지금 현석이 몸으로 받아들이고 느끼는 감각은 신의 파편이 가진 진짜 힘의 극히 일부일 뿐이었다.

    만일 신의 파편이 가진 모든 힘을 받아들이면 그 순간 뇌가 터져 죽어버릴 것이다.

    아무리 신의 파편이 특별한 권능을 통해 현석을 보호하고 있다고 해도 말이다.

    그 정도로 신의 파편이 가진 힘은 굉장했다.

    어쨌든 현석은 그런 정보들도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렇게 받아들인 정보들은 현석의 뇌리 한구석에 차곡차곡 쌓였다.

    현석은 신과의 소통이 끝나면 이 거대하고 세밀한 감각이 사라지고 만다는 사실이 좀 아쉬웠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다행스럽기도 했다.

    이런 감각을 항상 갖고 산다면 아마 살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을 테니까 말이다.

    그건 어쩌면 차라리 시력을 잃고 사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쨌든 현석은 신과의 소통을 무사히 끝냈다. 그리고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자신이 가진 스킬, 심안이 한 단계 훌쩍 성장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심안의 성장은 퀘스트의 보상 같은 거였다. 하지만 신의 파편이라는 거창한 이름의 퀘스트 보상으로는 좀 미진한 것도 사실이었다.

    현석이 그런 생각을 떠올린 순간, 신의 파편이 담긴 탑이 새하얗게 빛나기 시작했다.

    엄청나게 뜨거운 열기로부터 나오는 빛이었다.

    탑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현석의 감각이 거칠게 요동쳤다. 신의 파편이 나직이 진동했다.

    현석은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엄청난 힘을 손에 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거대한 희열이 찾아왔다.

    번쩍!

    탑이 거대한 섬광을 뿜어냈다.

    그 섬광을 투명 던전으로 이루어진, 이 작은 세상을 모두 뒤덮었다.

    섬광이 사라지고 남은 자리는 처참했다.

    세상에 있던 그 많은 마수들이 모조리 죽은 것이다.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고.

    현석은 그 순간 찾아온 거대한 희열에 또 한 번 몸을 떨었다.

    세상 그 어떤 마약이나 타락을 통해서도 이런 희열을 느끼지는 못할 것이다.

    방금, 현석은 신의 파편과 동화된 채, 이곳의 모든 마수를 죽였다.

    그리고 그 결과를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단숨에 30레벨이 올랐다.

    200레벨이 넘은 상태에서 30레벨이 올랐다는 건 정말 어마어마한 일이었다.

    200레벨부터는 레벨을 하나 올리는 것도 쉽지가 않다. 한데 30레벨이 오르다니.

    대체 얼마나 강한 마수를 얼마나 많이 죽여야 이렇게 된단 말인가.

    이 폭발적인 레벨업은 신의 파편이라는 퀘스트에 대한 또 다른 보상이었다.

    그건 그 어떤 보상보다 달콤했다.

    * * *

    현석은 신의 파편과의 교감이 끊어지는 걸 느끼며 서서히 눈을 떴다.

    교감이 끊기고 나서야 눈을 감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것 또한 참으로 신기한 경험이었다.

    “후우우.”

    현석은 숨을 길게 내뱉었다. 몸 안에 있던 찌꺼기 같은 것이 숨을 통해 배출되었다.

    온몸이 상쾌해졌다. 그리고 힘이 넘쳤다.

    레벨을 무려 30이나 올렸으니 그럴 수밖에.

    아직 250레벨이 도달하지는 않았지만 이대로라면 오래지 않아 그것도 넘을 것 같았다.

    현석은 신의 파편에 접속해 신과의 소통을 이뤄내며 몇 가지 중요한 정보를 추가로 얻었다.

    신의 파편은 하나가 아니었다. 무려 여덟 개나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신의 파편을 하나로 묶는 존재가 있었다. 그 존재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존재한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

    아직까지는 말이다.

    현석은 고개를 슥 돌려 탑 안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모든 투명한 판이 은은히 빛나고 있었다. 투명한 판을 꽉 채우고 있는 색색의 문양들 역시 신비로운 빛을 뿌리는 중이었다.

    ‘이게 신의 파편이라고?’

    황궁에서 대마법사를 본 이후라서 그런 걸까? 왠지 신의 파편이라기보다는 그저 인간이 만든 구조물 같아 보였다.

    허공에 둥둥 떠 있는 투명한 판은 참으로 신기하긴 했다. 판을 띄우는 그 어떤 마력의 흐름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현석은 아직 자신이 가진 마력에 대한 능력이 많이 모자란다는 걸 알고 있었다.

    특히나 요즘 아주 뼈저리게 느끼는 중이었다.

    대마법사를 만나 마법의 기초를 배운 이후부터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았다.

    그리고 마력과 마법에 대한 목마름이 더욱 심해졌다.

    현석은 한참이나 신의 파편을 둘러보다가 이내 탑 밖으로 나갔다.

    탑 역시 외관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 이곳의 모든 마수를 섬멸한 그 굉장한 섬광이 사라진 뒤로 탑의 모양 자체가 달라진 것이다.

    처음에는 그저 위로 길쭉하게 솟은 거대한 탑이었는데, 이젠 사방으로 삐죽삐죽 가지가 잔뜩 튀어나온 나무 같아 보였다.

    ‘정말 나무 같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더더욱 나무 같았다. 심지어 아직도 외관이 변하고 있는데, 정말 나무처럼 가지에 싹이 돋아나고 잎이 자라나는 것 같았다.

    물론 진짜 싹과 잎은 아니었다. 그것 역시 탑의 구조물 중 일부였다.

    탑이 깨어나면서 감춰져 있던 구조가 모두 드러나는 모양이었다.

    ‘마력을…… 정말 미친 듯이 빨아들이고 있구나.’

    탑의 변화를 위해선 정말 많은 마력이 필요한 모양이었다. 마치 폭풍이라도 부는 것처럼 던전 안의 모든 마력이 탑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때마다 싹이 자라나 잎이 되었다. 그 잎은 탑 내부에 있는 투명한 판과 비슷했다.

    다만 투명하지 않고 진짜 나뭇잎처럼 초록빛을 띨 뿐이었다. 그 잎에는 복잡한 문양이 가득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 문양은 짙은 초록빛을 머금고 있었다.

    심지어 탑 주변에 삐죽삐죽 솟아난 가지에도 무수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이러다가 꽃도 피고 열매도 맺을 기세였다.

    현석은 그것까지 다 확인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고 몸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

    왠지 용을 타고 날아가고 싶지 않았다.

    아까 신의 파면이 만들어낸 결과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생각보다 던전은 깨끗했다.

    워낙 깔끔하게 태워 버려서 마수의 잔해도 거의 남지 않았다.

    간간이 미처 소멸하지 못한 마정석들이 굴러다녔는데, 그나마도 담긴 마력이 거의 바닥나서 쓰지 못할 정도로 망가진 상태였다.

    아니나 다를까, 시간이 지나니 그렇게 남은 마정석들이 퍽퍽 터지며 가루가 되어 허공에 흩어졌다.

    그리고 그렇게 흩어진 가루도 다시 마력으로 변환되어 공기 중에 녹아들었다.

    현석은 걸어가면서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걷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마수가 일제히 증발해 버린 바람에 이곳의 마력 상태가 장난이 아니었다.

    엄청난 마력파동이 끊임없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마력의 소용돌이도 간간히 있었다.

    현석은 걸어가며 그 불안정한 마력들이 내뿜는 파동을 온몸으로 만끽했다.

    이런 상태의 마력을 직접 경험할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마력의 성질을 이해하는 데 제법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물론 그 마력들을 끊임없이 건드리고 안정도 시켜보고 폭주도 시켜보는 일을 반복해야 했지만 말이다.

    어찌 보면 상당히 지겨운 일일 수도 있지만 현석은 아주 즐겁게 그 일을 하면서 걸었다.

    그렇게 현석이 다시 던전의 출구에 도착한 건 꼬박 사흘이 지난 후였다.

    처음 이틀은 걸었지만 나중에는 결국 다시 용을 불러서 타고 날았다.

    그때가 되어서야 마력들이 안정을 찾은 것이다.

    어쨌든 현석은 거대한 성과와 함께 던전에서 나갔다.

    * * *

    밖으로 나온 현석은 한쪽으로 치워놨던 화이트홀을 힐끗 쳐다보고는 복도를 따라 걸어나갔다.

    지하감옥 중간쯤 도착했을 때, 현석은 바닥에 있는 흑철간수를 뽑아내는 마법진이 복구되었는지 확인했다.

    “절반쯤 복구되었네.”

    마법진이 다시 자라나는 방식이라니. 어찌 보면 참으로 신선하지 않은가.

    현석은 그렇게 중얼거리고 생각하면서 문득 자신이 어떻게 이런 지식을 갖고 있는지 또 신기했다.

    자연스럽게 방금 떠나온 신의 파편이 떠올랐다.

    신과의 소통 이후 왠지 알 수 없는 지식들이 더 많아진 기분이 들었다.

    예전에도 경험해보지 못한 것에 대한 지식이 떠오르곤 해서 이상하게 여긴 적이 있었는데, 이번엔 확실한 이유가 있었다.

    신의 파편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현석은 자신이 신의 파편과 접촉한 적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현석은 고개를 저어 상념을 털어냈다. 그리고 지하감옥에서 나갔다.

    대충 시간을 가늠해 흑철간수를 뽑을 수 있을 때가 되면 다시 와서 뽑아갈 것이다.

    최대한 뽑을 수 있을 만큼 뽑아 놓으면 반드시 써먹을 일이 있을 테니까.

    밖으로 나오니 케틀러와 아르포르 기사단이 한데 모여 있는 광경이 보였다.

    그들은 가만히 서서 지하감옥의 입구만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현석은 잠시 걸음을 멈췄다가 그들을 향해 다가갔다.

    케틀러로부터 기대감 넘치는 목소리가,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사용법은…… 알아냈나?”

    현석이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격동의 감정이 케틀러를 중심으로 모든 아르포르 기사단으로 퍼져나가 넘실거렸다.

    현석은 황제의 사면령을 꺼냈다. 이 사면령을 쓰는 법은 아주 간단했다.

    현석은 사정없이 사면령을 구겨버렸다.

    꽈득!

    사면령이 현석의 손에 뭉쳐져 구겨진 휴지처럼 변해버렸다.

    다들 놀란 눈으로 그걸 바라봤다.

    그리고 그 순간, 황제의 사면령으로부터 강렬한 황금빛이 뿜어져 나왔다.

    화아아악!

    그 빛은 모든 아르포르 기사단을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가 사라졌다.

    “드디어…….”

    케틀러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드디어 해방되었다.”

    강렬한 마력의 파동이 케틀러를 비롯한 모든 아르포르 기사단으로부터 뿜어져 나와 사방을 장악했다.

    그리고 현석은 그 광경을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 신의 파편 2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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