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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177화 (177/326)
  • < 신의 파편 1 >

    현석은 신의 파편이라는 이름을 가진 투명던전 앞에서 심호흡을 통해 마음을 가라앉혔다.

    지금까지 본 던전의 이름 중 가장 인상적이었다.

    신의 파편이라니.

    이름만 딱 봐도 신과 소통하라는 퀘스트에 꼭 필요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름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아마 절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성장에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퀘스트도 완료하고 성장도 하고. 일석이조 아닌가.

    현석은 일단 던전의 마력패턴부터 맞췄다.

    신의 파편이라는 이름답게 마력패턴을 맞추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다.

    만일 마법의 기초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아마 이걸 제대로 맞추는 건 어림도 없었을 것이다.

    다른 투명던전과 달리 마력패턴이 몇 겹이나 중첩되어 있었다.

    그 모든 패턴을 하나로 딱 맞춰야 하는데, 제대로 된 마력패턴의 분석이 없으면 아예 시도 자체가 불가능했다.

    어쨌든 지금의 현석은 그걸 할 수 있었다.

    던전의 마력패턴을 맞춘 현석은 그 안으로 성큼 들어갔다.

    세상이 와르르 무너졌다.

    * * *

    던전에 들어가서 가장 먼저 보인 광경은 새까만 밤하늘이었다.

    마치 쏟아질 것처럼 무수한 별이 반짝이고 있었다.

    지평선이 쫙 펼쳐져 있었는데, 그 지평선 끝에 뾰족한 탑 하나가 보였다.

    워낙 멀어서 탑이 높은지 아니면 낮은지조차 구분이 가지 않았다.

    현석이 서 있는 곳은 사방이 깎아지른 듯한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상당히 높은 장소였는데, 그렇게 높은 곳에 있는데도 지평선 끝에 뾰족하게 솟은 탑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니 저 탑이 얼마나 멀리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척 보기에도 저 탑에 가야 한다. 아마 저 탑이 신의 파편일 것이다.

    문제는 탑까지의 거리가 멀다는 게 아니었다.

    절벽 아래를 꽉 메우고 있는 마수들이었다.

    이곳은 마수의 세상이었다. 그것도 무시무시한 마수들이 가득했다.

    근처에서 풍기는 마수의 위험한 향기가 온몸을 찌릿찌릿 자극했다.

    마수들이 절벽으로 기어오르려고 꿈틀거렸다. 현석의 존재가 워낙 이 공간에서 이질적이라 근처의 모든 마수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그러니 저 탑까지 가기 위해선 이 끝이 보이지 않는 들판을 가득 메운 마수들을 모조리 처리해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현석이 보통 플레이어라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석은 보통 플레이어가 아니었다. 자그마치 용의 주인이었다.

    “나와라.”

    마력이 담긴 현석의 명령에 즉시 용이 소환되었다.

    몸통이 크고 커다란 날개가 달린 용이었기에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용들은 장시간 비행할 수 없다.

    일단 하늘에 날아오르면 짧은 거리만을 이동할 수 있기에 아마 무작정 용을 타고 날아가면 얼마 가지도 못해서 착륙해야 할 것이고, 그때부터는 마수들과 싸워야 할 것이다.

    하지만 다 방법이 있다.

    현석은 용에 올라탔다. 현석의 용은 전격 계열의 속성을 가진 용답게 비행 속도가 상당히 빨랐다. 그리고 움직임이 거칠었다.

    방심하고 있다간 떨어질 수도 있었다.

    후우웅!

    현석을 태운 용이 바람을 아래로 내뿜으며 떠올랐다. 용이 내뿜는 바람은 마력의 방출이었다.

    파지지직!

    용을 타고 전류가 한 차례 흘렀다.

    전격 계열의 용은 빠르고 강하지만 마력 소모가 상당히 크다는 단점이 있었다.

    현석은 용에 바짝 엎드리며 명령을 내렸다.

    “출발.”

    꽈르르릉!

    뇌전 한 줄기를 남기며 용이 쭉 날아갔다.

    10분쯤 이동하자 용의 마력이 바닥나는 것이 느껴졌다. 이대로 방치하면 고도가 낮아질 것이다.

    그 뒤는 끝없는 싸움이 기다린다. 끝도 없이 몰려드는 마수와 계속해서 싸워야 할 것이다.

    이 던전에 있는 모든 마수들이 사라질 때까지 말이다.

    현석은 자신의 마력을 움직였다.

    샤아아아아!

    현석의 마력이 용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용은 마치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아 마시듯 그걸 탐욕스럽게 받아들였다.

    점점 낮아지던 고도가 다시 서서히 올라갔다.

    하지만 현석이 주는 마력의 양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걸로 용의 비행을 유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현석은 다시 마력을 약간 넣어 주었다. 용이 게걸스럽게 마력을 받아먹었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마력을 용에게 건네 주었다.

    그러면서 현석이 한 일은 용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마력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파악하는 것이었다.

    동시에 용의 마력을 장악하는 일도 함께 진행했다.

    현석의 마력이 절반쯤 사라졌을 때, 현석은 용의 마력을 완벽하게 장악했다.

    그 뒤로 자신의 마력을 아낌없이 퍼부었다. 그리고 직접 용의 마력을 움직여 비행을 보조했다.

    지금까지 용이 쓰던 마력을 훨씬 효율적으로 이용해 날아갔다.

    다른 데 들어가는 마력을 모조리 막아버린 것이다.

    예를 들어 가끔 순간 가속을 위해 벼락을 뒤로 내뿜는 일 같은 거나, 주기적으로 존재감을 나타내기 위해 온몸에 전류를 흘리는 일 같은 것들 말이다.

    또한 비행에 쓰는 마력도 현석이 정교하게 컨트롤하니 훨씬 효율이 좋아졌다.

    현석은 그렇게 자신의 마력을 이용해 용을 조종했다.

    후우우웅!

    용이 점점 더 빠른 속도로 탑을 향해 나아갔다.

    하지만 아무리 가고 또 가도 좀처럼 탑과 가까워지지 않았다.

    탑의 크기가 별로 변하지 않았다. 대체 얼마나 먼 곳에 있단 말인가.

    점점 현석의 마력도 바닥으로 치닫고 있었다. 하지만 현석은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이미 이럴 때의 대안도 세워뒀다.

    황궁의 대마법사를 만나 마법의 기초를 배운 이후, 상당히 유용한 것들을 많이 익히고 찾아낼 수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마정석에 대한 것이었다.

    현석은 정제된 마정석을 하나 꺼냈다. 용에 타기 전, 이럴 때 쓰려고 미리 준비해둔 마정석이었다.

    현석은 마정석을 손에 들고 그 위에 마력패턴을 만들어 덧씌웠다.

    투명한 구슬모양의 마정석 위에 복잡한 마력패턴이 새겨졌다.

    우우우웅!

    마정석으로부터 순도 높은 마력이 뽑혀나오기 시작했다.

    그 마력은 고스란히 현석의 몸으로 스며들어 현석의 마력으로 성질이 변환되었다.

    현석은 그렇게 변환된 마력을 용에게 주입했다.

    마정석의 마력을 뽑아내 몸으로 받아들여 성질을 바꾸는 데에는 제법 많은 심력이 필요했다.

    상당히 신경을 써야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용에게 전해준 마력을 소홀히 할 수도 없었다.

    현석은 머리에서 김이 날 정도로 신경 써서 마력을 운용했다.

    그렇게 현석의 용은 다시 안정적인 속도와 고도를 유지한 채 탑을 향해 나아갔다.

    * * *

    “설마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이야.”

    현석은 꼬박 하루를 날아서 탑에 도착했다. 정확히 24시간 동안 날았다.

    질리는 건 여기까지도 마수가 사방을 꽉 메우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탑 주변에는 마수들이 다가오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마치 탑 근처에 무슨 역장이라도 펼쳐져 있는 것처럼 마수들은 일정한 경계를 넘어오지 못했다.

    하지만 근처의 모든 마수들이 현석을 보며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내가 탑으로 내려가면, 과연 마수들이 가만히 있을까?’

    현석은 일단 마수들이 저 역장을 넘지 못할 거라고 추측했다. 하지만 어떤 일을 하건 장담해선 안 된다.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할 게 없는 게 세상이다. 특히 이 던전 속 세상은 더더욱 그랬다.

    그러니 미리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물론 지금이야 그저 긴장감을 유지하고 만에 하나의 사태에 대비해 용을 탑 꼭대기에 세워놓는 것이 할 수 있는 전부이긴 했지만 말이다.

    용이 탑 꼭대기에 가볍게 앉았다.

    뾰족한 첨탑이었지만, 용이 끝을 발톱으로 단단하게 감싸니 흔들리지 않고 앉을 수 있었다.

    이제 남은 건 이 탑 안으로 들어가는 것뿐이었다.

    현석은 용의 등에서 내렸다. 마력을 이용해 탑의 벽에 단단히 몸을 고정시켰다.

    이것 역시 마법의 기초를 배운 이후 간단히 쓸 수 있게 된 마법 기술 중 하나였다.

    현석은 용을 소환 해제한 다음,  탑의 벽을 천천히 걸어 내려갔다.

    가다가 창문이라도 있으면 안으로 들어갈 생각이었다. 한데 아무리 내려가도 들어갈 만한 구멍이 없었다.

    이 탑은 내부와 외부가 완벽하게 단절되어 있었다. 모습은 제법 화려했지만 밖으로 통하는 창이나 문이 하나도 없었다.

    바닥에 내려서고 나서야 문이 보였다. 그나마도 아주 작은 문이었다. 사람 하나 간신히 들어갈 수 있을까?

    현석은 일단 문을 열었다. 안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입구에 특별한 마법이 펼쳐져 있었다.

    시야를 완벽하게 차단하는 마법이었다. 물론 지금 현석의 수준으로는 그저 어떤 건지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고도의 마법이었다.

    현석은 망설이지 않고 탑 안으로 들어갔다.

    화아악!

    현석이 안에 들어간 순간, 현석을 기점으로 밝은 빛이 탑 내부를 환하게 조망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일순간 탑 내부에 있던 모든 어둠이 싹 사라져 버렸다.

    탑은 어마어마하게 넓었다. 밖에서 보던 크기와는 전혀 달랐다.

    밖에서 탑의 크기를 가늠해보면 높이가 거의 500미터에 달했고, 지름이 100미터는 되는 듯했다.

    그래서 딱 그 정도 공간을 예상하고 안에 들어왔다.

    한데 막상 안에 들어오니 그 정도가 아니었다. 탑 내부는 광활하기 그지없었다.

    끝이 짐작되지 않을 정도로 넓고 높았다. 높이도 어마어마했다. 처음에 들어왔을 때, 천장이 없다고 착각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현석이 진짜 놀란 건 그런 탑 내부의 규모가 아니었다.

    탑을 가득 메우고 있는 투명한 판의 향연이었다.

    그냥 글자가 아니라 투명하고 넓고 얇은 판 위에 여러 색깔로 이루어진 기묘한 문양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당연히 문양도 투명했다. 투명도가 상당해서 아무리 멀리 있는 판이라도 그 위에 그려진 문양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현석은 이와 비슷한 광경을 본 기억이 떠올랐다.

    “대마법사?”

    황궁의 대마법사가 딱 이런 식이었다. 물론 규모도 훨씬 작고, 마법의 문양이 새겨진 판이 이렇게 투명하지도 않았으며, 이 탑에서처럼 허공에 판이 둥둥 떠 있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 근본은 비슷했다.

    이들이 모여 신의 파편을 이루는 모양이었다.

    현석은 고개를 들어 천장을 올려다봤다. 너무 까마득해서 현석의 좋은 눈에도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눈에 마력을 담으니 그나마 선명히 천장을 볼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심안이 발동하며 천장에 글자를 만들었다.

    [신의 파편]

    역시 여기가 바로 신의 파편이었다.

    ‘그럼 대체 신이라는 게 뭐지? 이게 파편이면 이런 비슷한 것들이 무수히 모여서 신이 된다는 건가?’

    그리고 과연 여기서 어떻게 신과 소통을 하라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아니, 대체 신의 파편이라는 게 무엇인지부터 알고 싶었다.

    현석은 천천히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탑 안은 기이한 마력으로 꽉 차 있었다.

    그 기이한 마력의 정체가 무엇인지 유심히 살피며 주위를 둘러봤다.

    마력이 어디에서 오는 건지 알아내는 건 별로 어렵지 않았다. 탑 안을 꽉 메우다시피 한 투명한 판에서부터 흘러나오는 마력이었다.

    “대체…… 이게 뭐지?”

    현석은 신의 파편이라는 이름에 집중해서 심안을 풀가동했다. 하지만 이름 외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거기에서 오는 느낌은 감춰져서 안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그냥 정말로 설명 자체가 없는 느낌이었다.

    “이걸…… 일단 활성화 시켜야 할 것 같은데…….”

    어쩌면 신과의 소통이라는 것이 이 신의 파편을 활성화 시키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석은 어느새 탑의 중앙에 도착했다. 탑이 워낙 넓어서 거기가 중앙인지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하지만 왠지 거기가 중심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석은 그 자리에 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해봤다.

    “내가 지금 이 순간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어? 뻔하지.”

    현석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리고 사방에 흐르는 마력의 흐름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자신의 마력을 뿜어내 그 흐름에 얹었다.

    그렇게 마력과 함께 계속 흘러다녔다. 현석의 입가에 어느새 은은한 미소가 어렸다.

    현석은 마력을 컨트롤해야 한다는 사실도 잊고 그저 이 상황을 즐기기 시작했다.

    이내 어느 것이 자신의 마력인지조차 알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현석은 탑의 마력과 서서히 동화되어갔다.

    그리고 그 순간 현석의 발밑이 은은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 빛이 툭툭 떨어져 나가더니 사방에 있는 투명한 판에 쏙쏙 스며들었다.

    어느새 모든 투명한 판들이 은은히 빛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현석이 눈을 떴다.

    < 신의 파편 1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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