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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176화 (176/326)
  • < 퀘스트 (7권 끝) >

    퀘스트라니. 아무리 자신이 게임 시스템처럼 심안을 이용하고 있다지만, 설마 정말로 퀘스트가 나올 줄은 몰랐다.

    물론 황궁에서 사면령을 받아올 때에는 그게 꼭 퀘스트 같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하지만 그건 그런 생각일 뿐이지 진짜 퀘스트가 아니었다. 이건 엄연한 현실이지 게임이 아니었으니까.

    한데 난데없이 퀘스트라니. 대체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한단 말인가.

    현석은 신과의 소통이라는 퀘스트의 정보를 쫙 펼쳤다.

    [신과 소통하여 심안을 진화시켜라. 그동안 보지 못했던, 혹은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일 것이다. 이곳에 답이 있다.]

    정말 단순한 퀘스트였다. 신과 소통하면 끝난다. 하지만 절대 쉬운 내용은 아니었다.

    일단 너무 뜬금없지 않은가. 다짜고짜 신과 소통하라니. 그럼 기도라도 하란 뜻인가? 그럴 리 없다. 그렇다면 대체 뭘 어쩌란 말일까?

    현석은 몇 번이고 퀘스트 내용을 다시 확인했다.

    ‘이곳에 답이 있다?’

    마지막 문구가 계속 눈에 밟혔다. 저 퀘스트가 언제 생겼을까? 워낙 구석진 곳에 작게 숨어 있어서 하마터면 발견하지 못할 뻔했다.

    게다가 현석은 자신의 상태창 확인을 자주하지 않는다.

    그 얘기는 만일 이 퀘스트가 오래전에 생긴 거라면 퀘스트에서 말하는 이곳이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일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현석은 그래도 일단 여기를 기준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지금 이 상황에서는 그것이 최선이니까.

    만일 저 장소가 황궁이라면 또 엠페러타워에 잠입해서 들어가야 한다.

    황궁으로 가는 길이 그리 가까운 것도 아니니 제법 오랫동안 달려야 하고 말이다.

    현석은 저 신과의 소통이라는 단어에 시선을 두었다.

    신과의 소통이라는 말을 들었으니 저 퀘스트가 생긴 것 아니겠는가.

    ‘그건 그렇다 치고…….’

    현석은 주위를 둘러봤다. 이곳은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니 특별히 살펴볼 만한 장소도 없었다.

    사방을 둘러싼 숲 어딘가에 뭔가가 있을까?

    현석은 여전히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아르포르 기사단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검은 붕대를 둘둘 감은 자들이 100명이나 자신을 둘러싼 채 주시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왠지 웃음이 나려 했다.

    사실 이 상황에 생소한 사람이라면 무서워할 만한 광경인데 현석에게는 왠지 친근하게 느껴졌다.

    “부탁하나 하지.”

    현석의 말에 케틀러가 물었다.

    “그 부탁이라는 것이 사면령 사용법을 알아내기 위한 과정인가?”

    현석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다.”

    “부탁이 뭐지?”

    “이 근처를 샅샅이 뒤져서 뭔가 이상하거나 특이한 점이 있으면 나에게 알려줘.”

    현석의 말에 케틀러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렵지 않지. 이 주위를 둘러싼 숲에 뭔가 있을지도 몰라서 하는 부탁이지?”

    “정확하다.”

    그 얘기는 즉, 숲에 아무것도 없을 확률이 높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확인하지 않고 넘어갈 수는 없지 않은가.

    케틀러가 돌아서서 한 손을 척 들어 올렸다.

    그러자 아르포르 기사단이 절도있게 움직여 케틀러 앞에 도열했다.

    겉모습은 영락없는 미이라인데, 이런 걸 보니 정말 대단한 기사단 같았다.

    “목표는 우리를 둘러싼 숲이다. 목표를 발견하면 바로 신호를 보내도록.”

    “하!”

    기사단이 일제히 괴성에 가까운 기합을 내질렀다. 그리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 일사불란함과 빠른 움직임에 현석은 속으로 살짝 감탄했다. 아마 결과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나올 듯했다.

    케틀러는 사방으로 흩어지는 기사들을 둘러보는 현석에게 말했다.

    “이쪽은 우리가 책임질 테니, 넌 너 할 일을 해라.”

    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하지. 뭔가 발견하면 바로 알려주고.”

    “걱정 마라. 우리는 하나나 다름없으니까.”

    케틀러가 한 말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지만 현석은 일단 알았다고 하고는 지하감옥으로 향했다.

    사실 이곳에 답이 있다는 얘기는 저 지하감옥을 뜻하는 말이 거의 틀림없었다.

    아르포르 기사단을 움직인 건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를 의외성 때문이었다.

    현석은 지하감옥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예전의 지하감옥은 온통 암흑석으로 뒤덮여 있어서 빛 한 점 들지 않는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현석이 모든 암흑석을 제거했기에 너무나도 환했다.

    이곳은 의외로 통풍도 잘 되고 채광도 좋은 시설이었다.

    현석은 감옥 하나하나를 유심히 살피며 안으로 들어갔다. 어차피 구조가 일자형으로 단순했기에 차근차근 살피기에는 좋았다.

    중간쯤 가니 바닥에 특이한 문양이 있었다.

    예전엔 보지 못했던 문양이었다. 현석은 그것이 마력패턴의 일종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문양에 마력이 흐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문양의 구성이 기초적인 마력패턴 위에 복잡한 응용이 덧씌워져 있었다.

    예전이라면 이것이 마력패턴인 줄도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이젠 알 수 있다.

    마력패턴, 아니, 마법의 기초는 현석에게 작은 날개 하나를 달아주었다.

    ‘어쩌면…… 나중에 마법의 심화과정이나 응용과정에 대해서 들을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지.’

    아니, 분명히 있을 것 같았다. 이건 확신에 가까운 예감이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틀리지 않은 예감 말이다.

    현석은 바닥에 새겨진 마법을 차분히 살펴봤다.

    일단 예전엔 보지 못했던 것을 발견했으니 이것이 퀘스트에서 말한 답일 가능성이 있다.

    가능성이 있으면 끝까지 매달려 봐야하지 않겠는가.

    현석은 바닥의 문양에 마력을 살짝 흘려 넣었다. 그리고 그걸 이용해 땅 밑으로 층층이 쌓인 마력패턴을 차근차근 확인했다.

    처음 하나는 정말 별 거 아니었는데, 한 층이 더해질 때마다 몇 배로 복잡하고 난해해졌다.

    이건 정말 굉장한 마법진이었다.

    그리고 이걸 제대로 활성화하기 위해선 제법 커다란 마정석이 필요했다.

    그것도 순도 높게 정제한 마정석이 말이다.

    다행히 현석에게는 정제한 마정석이 여러 개 있었다.

    단순히 마수를 사냥해서 얻은 마정석은 당연히 정제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마족을 죽이고 얻은 전리품 중에는 그런 마정석이 제법 많았다.

    일단 얼마 전에 해체하는 데 성공한 아공간 아티팩트 안에서 나온 마정석들은 모두 제대로 정제한 순도 높은 마정석이었다.

    현석은 일단 정제한 마정석 하나를 꺼냈다. 정제한 마정석은 다른 마정석과 다르게 투명했다. 그리고 흠잡을 곳 없을 정도로 매끈한 구슬 모양이었다.

    인위적으로 마정석을 깎아 만든 듯한 모습이었는데, 마정석은 제대로 된 정제를 거칠수록 더 투명하고 정확한 구체가 된다.

    현석은 마정석을 마법진 위에 올려놓았다. 이건 그냥 놓는 것만으로 작동하는 마법진이 아니었다.

    약속된 방식이 있었다.

    마력패턴을 따로 만들어 위에 겹치는 방식이었는데, 그건 이 마법진을 작동하는 열쇠 같은 거였다.

    우우웅!

    마법진에서 은은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마정석이 아래로 천천히 스며들어갔다.

    마정석은 그렇게 층층이 쌓인 마법진의 중앙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정확히 제자리를 찾자, 맹렬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강력한 마력이 마법진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넘쳐 흐르기 시작했다.

    현석은 뭔가 위험한 느낌이 들어 뒤로 쭉 물러났다.

    이내 빛이 사라졌다. 하지만 위험한 느낌은 여전했다.

    꽈득! 꽈득! 꽈드드득!

    마법진이 있던 자리가 이리저리 뒤틀리더니 뭔가가 조금씩 솟아나기 시작했다.

    마치 마수가 바닥을 뚫고 올라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올라오고 있는 건 마수 따위가 아니었다.

    현석은 심안을 통해 확인한 이름을 보고는 눈을 빛냈다.

    [흑철간수]

    지금 땅에서 흑철간수가 자라나고 있었다. 마법금속인 에르네움으로 만들고, 그 위에 흑철을 덧씌운 지하감옥의 지배자, 흑철간수가 말이다.

    “이래서 위험한 느낌이 든 건가?”

    현석은 허리춤에 찬 검을 꽉 쥐었다. 예전에 저 흑철간수를 만났을 때와는 달랐다.

    지금은 그때보다 몇 배나 더 성장했다.

    아니, 몇 배가 뭔가. 단순히 레벨만으로 따지지 않고 진짜 얼마나 강해졌나를 확인하면 열 배가 넘게 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니 아무리 흑철간수가 상대하기 까다로운 놈이라 해도 현석은 조금도 긴장하지 않았다.

    물론 방심하면 안 된다. 흑철간수는 방심하면서 대충 상대해도 괜찮을 정도로 약하고 단순한 놈이 아니었다.

    꽈드드드득!

    이내 모든 몸체가 위로 올라왔다. 흑철간수는 현석을 바라봤다. 흑철간수의 눈에서 강렬한 섬광이 뿜어져 나왔다.

    쿵! 쿵! 쿵! 쿵!

    흑철간수가 천천히 현석을 향해 다가왔다. 검을 쥔 현석의 손에 힘이 더욱 꽉 들어갔다.

    검을 쥐고 있던 현석은 문득 자신에게는 지금 허리춤에 있는 진마검만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석의 팔에 채워진 팔찌가 바로 신검 아닌가.

    ‘그건 나중에. 이거 습관이 무섭긴 하네.’

    신검을 제대로 쓰려면 쓰는 연습을 좀 해둬야 할 것 같았다. 그동안 해오던 대로 너무 자연스럽게 허리춤으로 손이 갔으니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현석의 앞에 흑철간수가 다가와 멈춰 섰다.

    현석은 단숨에 발검을 통해 흑철간수의 목을 베겠다고 마음먹었다.

    한데 그 순간, 흑철간수가 천천히 몸을 낮추더니 한 쪽 무릎을 꿇었다.

    쿵!

    현석은 막 발검을 하려던 자세로 멈춰서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려 애썼다.

    상황 파악은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흑철간수의 몸에 깃든 마력이 현석의 것과 아주 똑같다는 걸 발견한 것이다.

    다른 마력은 다 배제하는 놈이 현석의 마력은 아무 제한 없이 마구 받아들였다.

    덕분에 현석은 흑철간수의 몸을 세심히 확인할 수 있었다.

    아까 바닥에 있던 그 여러 층으로 이루어진 마법진이 흑철간수의 몸속에 남아 있었다.

    정제된 마정석은 사라진 뒤였다. 흑철간수를 만들고 가동시키는 와중에 모두 날아간 모양이었다.

    현석은 한 쪽 무릎을 꿇고 앉은 흑철간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새 부하가 하나 생긴 건 좋은데, 과연 이놈을 어디에 써먹을 수 있을까?

    ‘밖에 가지고 나가 집이라도 지키게 해야 하나?’

    아마 흑철간수가 지키는 집은 세상에서 방비가 가장 튼튼한 집이 될 것이다.

    현석은 흑철간수가 솟아났던 그 자리에 가서 바닥을 확인해 봤다.

    마법진이 흔적만 남아 있었다. 그리고 세상의 마력을 서서히 빨아들이며 다시 마법진을 구성하고 있었다.

    ‘이 지하감옥 자체가 거대한 마법진으로 이루어져 있어.’

    현석은 이런 방식의 건물을 하나 본 적이 있었다. 바로 황궁이었다.

    ‘정말…… 이들은 상상을 초월하는구나.’

    현석은 그렇게 생각하며 아공간에서 빈 컨테이너 박스 하나를 꺼내 거기에 흑철간수를 넣었다.

    틈날 때마다 와서 마법진을 확인해볼 생각이었다.

    마법진이 다시 생길 때까지 얼마나 긴 시간이 필요한지는 모르지만 타이밍을 잘 맞추면 흑철간수를 제법 많이 모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쨌든 이건 아닌 것 같고…….”

    흑철간수가 태어나는 마법진은 신기하긴 했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이곳은 퀘스트에서 말하던 답이 아니었다.

    현석은 복도를 따라 더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대로 끝까지 가면 지하묘지로 통하는 화이트홀이 나온다.

    일단 거기까지는 가볼 생각이었다. 세심하게 중간에 있는 모든 감옥을 다 확인하면서 말이다.

    감옥의 끝에 도착할 때까지 별다른 게 하나도 없었다. 결국 현석은 마지막에 있는 화이트홀 앞에 섰다.

    이제 남은 건 이 지하묘지로 가는 화이트홀 하나뿐이었다.

    ‘여기로 들어가서 지하묘지도 확인해 봐야 하나?’

    만일 위에서 주변을 샅샅이 뒤지고 있는 아르포르 기사단이 별다른 특별한 걸 찾아내지 못한다면 정말 이곳에는 답이 없다는 뜻이다.

    그럼 다른 곳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지 않은가.

    하지만 여기까지 오면서 예리하게 갈린 현석의 감은 다른 곳으로 가봐야 소용 없다고 외치고 있었다.

    답이 있는 곳은 바로 여기라고 말이다.

    현석은 눈앞에 있는 화이트홀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화이트홀은 일정한 속도로 빙글빙글 회전하고 있었다.

    새하얀 소용돌이를 가만히 쳐다보던 현석은 문득 묘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소용돌이가 어느 순간 엇박자로 도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 엇박자가 아니라 도는 중간에 뭔가 다른 게 얼핏 보인 것 같았다.

    “뭐지?”

    현석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다가 퍼뜩 뭔가를 깨닫고는 살짝 커진 눈으로 화이트홀을 쳐다봤다.

    등줄기를 전율 한 줄기가 툭 치고 지나갔다.

    현석은 화이트홀에 조심스럽게 손을 갖다 댔다. 그리고 마력을 움직였다.

    현석의 손에 깃든 마력이 특별한 흐름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특별한 흐름은 현석의 손에 있는 마력과 화이트홀의 마력을 적절히 뒤섞었다.

    현석은 천천히 손을 당기며 뒤로 조금씩 물러났다. 다른 던전을 움직일 때보다 훨씬 세심하게 신경을 썼다.

    예상이 맞는다면 그렇게 해야만 했다.

    현석의 손을 따라 화이트홀이 천천히 끌려왔다. 그렇게 현석은 화이트홀을 한쪽으로 치웠다.

    화이트홀이 사라진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현석은 그걸 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보기에만 아무것도 없을 뿐, 그곳에는 분명히 뭔가가 있었으니까.

    [신의 파편]

    지금까지 찾던 답으로 보이는 투명던전이 그곳에 있었다.

    < 퀘스트 (7권 끝)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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