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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175화 (175/326)
  • < 황제의 사면령 2 >

    “정말…… 정말 폐하의 사면령을 가져왔군. 진짜 사면령이야.”

    케틀러의 목소리는 사정없이 떨리고 있었다. 그 안에는 회한과 원망, 용서, 격동, 충성심 등등의 온갖 감정이 담겨 있었다.

    그 감정들이 고스란히 느껴져 현석은 사면령을 든 채 가만히 입을 다물고 서 있었다.

    나머지 아르포르 기사단이 천천히 황제의 사면령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잠시 그렇게 서서 사면령을 구경하던 케틀러가 입을 열었다.

    “자, 이제 우리를 이 지독한 속박에서 풀어주게. 드디어 마음 편히 사라질 수 있겠군.”

    케틀러를 비롯한 아르포르 기사단은 진심으로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들은 너무 오랜 세월을 지하감옥에서 보냈다. 이제 존재 자체가 지겨워질 때도 되긴 했다.

    현석은 사실 자신의 예상과 조금 달라 아쉽긴 했지만 그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기에 그들의 선택을 존중해줄 생각이었다.

    만일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한다면 자신도 그런 선택을 했을지 모른다.

    “뭐 하고 있나? 어서 우릴 풀어주지 않고.”

    작은 문제 하나가 생겼다.

    “사면령을 가져오면 끝나는 거 아니었어? 내가 또 뭔가를 해야 하는 건가?”

    그냥 사면령만 받아왔지 사용법 따위는 전혀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이 황금패에 기이한 힘이 담겨 있다는 건 알 수 있지만 그걸 분석할 만한 능력이 지금의 현석에게는 없었다.

    “왜 망설이지? 설마 이제 와서 생각이 달라진 건가?”

    “그럴 리가.”

    현석은 그렇게 대답하고는 사면령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살폈다.

    “쓰는 법을 모르는군?”

    케틀러가 그제야 짐작했다는 듯 말했다. 현석은 피식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황당하군. 사면령만 받아오고 사용법은 안 받아왔다고?”

    “그냥 받아만 오면 끝나는 줄 알았지. 그런데 너도 모르나? 황제의 사면령쯤 되면 굉장히 유명한 거 아냐?”

    “유명하지. 너무 유명해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그럼 잘 됐군. 네가 알려줘. 시키는 대로 하지.”

    물론 쓰면서 어떤 작용과 변화가 일어나는지 잘 파악해 보는 건 덤이었다.

    “나도 모른다.”

    “뭐?”

    현석은 이 의외의 상황에 케틀러를 가만히 쳐다봤다. 설마 모른다는 답을 들을 줄이야.

    “모른다고?”

    “사용법을 아는 분은 폐하뿐이다. 당연히 사면령을 받을 때 어떻게 쓰는지도 알아왔어야지.”

    현석은 황당했지만 차분히 다시 물었다.

    “그래도 황제 직속 기사단인데 사면령을 써본 적이 한 번도 없나?”

    케틀러는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당연히 여러 번 써봤지. 하지만 그건 못 쓴다.”

    이어지는 케틀러의 설명을 모두 들은 현석은 할 말이 없었다.

    황제의 사면령은 사용법이 모두 다르다. 그 사용법을 정하는 것이 바로 황제였다.

    그렇기에 사면령을 써봤다고 해서 다른 사면령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러니 케틀러가 아무리 많은 사면령을 써봤어도 새로운 사면령을 받으면 그걸 쓰기 위해서 황제의 설명을 들어야만 하는 것이다.

    “보통은 어떻게 쓰지?”

    “방식이 여러 가지다. 약속의 언어를 읊어야 할 수도 있고, 마력을 불어 넣는 방식도 있지.”

    “약속의 언어?”

    “거의 쓰일 일 없는 뜬금없는 단어가 주로 선정되지. 엉뚱한 곳에서 사면령이 쓰이면 큰일이니까.”

    만일 이 사면령이 약속의 언어로 열어야 하는 거라면 포기해야 한다. 대체 그게 무슨 말인지 알고 읊는단 말인가.

    ‘마력으로 어떻게 해보는 것도 안 될 것 같은데…….’

    현석이 그동안 전가의 보도처럼 써왔던 마력 컨트롤 능력도 이 사면령 앞에서는 거의 무용지물이었다.

    이건 훨씬 고도의 수법이 들어간 물건이었다. 마력을 움직이는 정도로는 아마 사용하지 못할 것이다.

    현석은 잠시 고민했다.

    ‘다시 황궁에 다녀와야 하나?’

    하지만 그 방법을 떠올림과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아마 다시 가도 황제를 만나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황궁은 이 사면령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고도의 술식이 들어간 아티팩트의 결정체였다.

    아마 그냥 들어갔다간 어디로 가게 될지 알 수 없었다.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우주 한복판에 내동댕이쳐지지 말란 법도 없었다.

    “다시 황궁에 가서 폐하를 뵙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면 버리는 게 좋을 거야.”

    “그럴 생각은 없어.”

    “잘 생각했다. 아마 허락없이 들어갔다간 우주 한복판으로 날아가 버릴걸?”

    현석은 자신이 떠올렸던 일이 실제로 벌어진다고 하니 황당한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잠시 케틀러를 쳐다보던 현석은 다시 시선을 돌려 사면령을 살펴봤다.

    한 가지 방법이 떠오르긴 했다.

    하지만 과연 그 방법이 제대로 먹힐지 알 수 없었다. 또, 그 방법을 쓰려면 대체 얼마나 시간이 필요한지도 장담할 수 없었다.

    아니, 어쩌면 아예 안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지금 해볼 수 있는 건 그것뿐인 듯했다.

    현석은 심안을 통해 황제의 사면령을 확인해봤다.

    [황제의 사면령]

    [칸두스 황제가 직접 내린 사면령. 아르포르 기사단을 사면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마지막 가능성이었다. 이 사면령에 더 깊은 설명이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사면령을 쓰는 법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심안이 한 단계 올라가면 그것이 드러날 확률이 높았다.

    “뭘 하는 건가?”

    케틀러가 물었다. 현석은 집중하기 전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는 중이었다.

    “확인 좀 하려고.”

    “확인?”

    “내 기술로 사면령 사용법을 알아낼 수도 있을 것 같거든.”

    케틀러가 황당한 눈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물론 그의 눈은 그저 까만 어둠속에 떠오른 빛일 뿐이었지만.

    “그런 게 가능할 리 없지 않은가. 자네가 전설에나 나오는 마음의 눈이라도 가진 게 아니라면 말이야.”

    현석은 집중하려다 말고 고개를 번쩍 들어 케틀러를 쳐다봤다.

    지금 분명 마음의 눈이라고 했다. 그건 심안을 말하는 게 분명했다.

    “그…… 마음의 눈이라는 것에 대해 좀 자세히 알고 싶은데.”

    “어려울 것 없지. 전설에 나오는 얘기니까.”

    현석은 흥분을 차분히 가라앉히고는 케틀러의 말에 집중했다. 어쩌면 심안을 성장시킬 수 있는 힌트가 나올지도 모른다.

    그저 황제의 사면령으로 아르포르 기사단을 풀어주고 싶었을 뿐인데, 왠지 일이 묘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 * *

    칼슨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엠페러타워는 반파되었고, 그 원흉인 용은 사라져 버렸다.

    플레이어들은 잔뜩 피해를 입었고, 그로인해 엄청난 물적 심적 시간적 손해를 떠안았다.

    한데 거기에 이젠 마력장비까지 망가지다니.

    헬기를 다시 동원해 고가도로에 도착한 칼슨은 주변 상황을 면밀히 살펴 모든 것을 확인해 보고하라고 시켰다.

    그리고 자신도 장비가 있는 곳으로 가서 근처를 확인하며 돌아다녔다.

    이내 플레이어 하나가 달려와 1차 보고를 했다.

    “카메라가 모두 망가졌습니다.”

    칼슨의 눈이 번득였다.

    “카메라가 망가져? 어떻게?”

    “내부에 강한 전류를 흘려보내 회로가 모두 타버렸습니다.”

    칼슨의 표정이 묘해졌다. 방금 확인한 마력장비도 같은 이유로 망가졌다.

    내부 회로가 다 타버린 것이다. 이건 더불어 마정석이 끼워진 부분도 망가졌고, 마정석도 망가져 다시 쓸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강한 전류 때문에 망가졌다고? 카메라가 전부 다?”

    “예.”

    ‘누군가 인위적으로 망가뜨렸다.’

    칼슨의 눈이 번득였다. 그리고 허공, 무언가가 있는 바로 그 자리를 노려봤다.

    ‘저기 뭔가가 있다는 뜻인데…….’

    그 얘기를 이렇게 요란하게 해주니 다시 확인하지 않을 수가 없지 않은가.

    “장비 새로 가져와. 저기 뭐가 있는지 반드시 밝혀내.”

    “예. 알겠습니다.”

    일단의 무리가 새 장비를 가지러 우르르 몰려가자, 칼슨은 나머지 사람들을 보며 말했다.

    “카메라 다시 설치해.”

    “예.”

    “저기 보이는 빌딩 위에도 설치해. 이렇게 빙 둘러 이곳으로 시야가 닿는 빌딩 옥상에는 모조리 다 설치해.”

    그 말에 다들 놀란 눈으로 칼슨을 바라봤다. 그렇게 하려면 모든 카메라에 망원렌즈를 달아야 한다.

    가격이 정말 만만치 않아지는 것이다.

    하지만 렉스턴 에너지에서 돈걱정을 하는 건 정말 우스운 일이었다.

    그걸 깨닫고는 다들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꾸벅 숙인 다음 우르르 물러갔다.

    칼슨의 시선은 어느새 허공, 투명던전의 입구로 향했다.

    ‘반드시 밝혀내고야 만다. 넌, 이제 죽었다고 생각하면 될 거야.’

    칼슨의 눈이 음험하게 번득였다.

    * * *

    케틀러의 설명을 모두 들은 현석은 근처 바위에 걸터앉아 생각에 잠겼다.

    별 내용은 없었다.

    마음의 눈을 가진 사람이 전설 속에 등장하는데, 그는 그 능력을 신으로부터 선물 받았다고 주장했다.

    한데 신기하게도 그는 세상 모든 것을 꿰뚫어 볼 수 있었다. 그 마음의 눈을 이용해서 말이다.

    마음으로 보기 때문에 눈을 감고 있어도 마치 눈을 뜬 사람처럼 살 수 있었다고 한다.

    케틀러는 그저 전설일 뿐이라고 했지만 현석이 보기에 그건 그냥 전설이 아니었다.

    진짜 있었던 일이 분명했다.

    현석과 아주 똑같지 않은가. 심안이라는 스킬로 마력이 담긴 모든 것을 꿰뚫어보고, 또 눈을 감고도 살아갈 수 있으니 말이다.

    물론 눈을 감고 살아가는 것과 심안은 별로 상관이 없었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래서 더 집중해서 케틀러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세상 모든 것을 마음의 눈으로 꿰뚫어 볼 수 있었는데, 그런 그도 볼 수 없는 것이 있었다.

    그건 사람의 마음이었다. 타인의 마음과 생각을 읽을 수는 없었다.

    그는 욕심을 부렸다. 자신이 모르는 것이 있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큰 힘을 갖고자 했다.

    그가 선택한 것은 신과의 소통이었다.

    그리고 큰 힘을 얻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는 없었다. 그는 더 큰 힘을 원했다.

    그는 결국 사람의 마음을 보려면 스스로 신이 되는 수밖에 없다고 여겼다.

    그리고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고 신벌을 받아 소멸했다.

    그것이 마음의 눈을 가진 사람에 대한 전설이었다.

    현석은 거기에서 심안의 성장에 대한 힌트를 얻었다.

    바로 ‘신과의 소통’이라는 부분이었다.

    현석은 심안을 꾸준히 수련해왔다. 처음에는 그걸로도 성장을 했다.

    하지만 그건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 이젠 그 성장 속도가 너무 더뎌서 거의 정체되어 있는 거나 다름없었다.

    한데 이제 위로 올라갈 길이 생긴 것이다.

    ‘신과의 소통…… 그게 뭐지?’

    왠지 자신이 전혀 모르는 건 아닐 듯했다. 뭔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신이 뭘까?’

    현석은 여기서 말하는 신이 진짜 신은 아닐 거라고 믿었다.

    뭔가 신의 역할을 하는, 혹은 그 전설의 사람이 신이라고 여길 만한 무언가였을 것이다.

    ‘내가 눈으로 설명을 읽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이 그 사람이 말했던 신 아닐까?’

    현석은 심안을 통해 글자를 본다. 이름도 글자고 정보도 글자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다면 현석의 눈에 글자가 보이게 해주는 그 무언가가 바로 신 아닐까?

    그 신과 소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현석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리고 상태창까지 불러내서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사면령을 꺼내 심안으로 사면령을 확인하고 상태창을 확인하고 또 케틀러의 정보를 확인하고 사방에 널린 모든 것을 확인했다.

    그러던 순간 현석은 자신의 상태창 맨 아래에 뭔가가 있다는 걸 발견했다.

    얼핏 보면 그냥 점 같은데, 자세히 보니 그냥 점이 아니라 아주 작은 육면체 문양이었다.

    현석은 그 육면체에 집중했다. 그러자 새로운 창이 확 하고 열렸다.

    [퀘스트-신과의 소통]

    현석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 황제의 사면령 2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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