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눈 뜨고 레벨업-174화 (174/326)
  • < 황제의 사면령 1 >

    현석은 J호텔에서 빠져나오자마자 곧장 투명던전이 있는 고가도로로 향했다.

    굳이 차를 탈 필요도 없었다. 시간이 적절했다. 지금은 깜깜한 밤이었다.

    현석은 근처 빌딩을 타고 올라가 옥상으로 간 다음, 빌딩에서 빌딩을 뛰어넘으며 이동했다.

    J호텔에서 고가도로까지는 금방이었다. 거리가 문제가 아니라, 현석이 달리는 속도가 정말 빨랐다.

    이번에 황궁에 다녀오면서 현석은 그 이전과 전혀 다른 존재가 되었다.

    이젠 마력패턴을 자유자재로 이용했다. 달릴 때도 그것을 이용했다.

    발을 디딜 때마다 바람을 폭발시켜 추진력을 얻었다. 그러면서 근처 공기의 흐름을 조절해 마찰을 최소화했다.

    어느새 고가도로에 도착한 현석은 근처에 다가가지 못하고 멀리서 멈췄다.

    “뭐지?”

    고가도로는 지금 통제 중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고가도로 전체를 통제하는 게 아니라 특정한 부분만 통제 중이었다.

    다른 곳은 차가 다녀도 아무 문제없었다.

    중요한 건 그 특정한 부분이 현석이 가야 할 목적지라는 점이었다.

    그곳을 통제하고 있었다. 그리고 정확히 현석이 가야 할 투명던전의 입구에 복잡해 보이는 장비를 갖다 놓고 뭔가를 하고 있었다.

    “뭘 하는 건지는 몰라도…… 저기에 뭔가가 있다는 사실을 저놈들이 알아챈 건 확실하군.”

    투명 던전의 존재를 알아차렸을지도 모른다.

    현석은 주변을 둘러봤다. 그리고 저들이 왜 저러는지 알아차렸다.

    “카메라에 찍혔군.”

    저기서 나올 때의 상황이 워낙 다이나믹했기에 별로 주변을 신경 쓰지 못했다.

    사람들의 시선만 확인하고 바로 자리를 떴는데, 설마 카메라가 이렇게 많이 설치되어 있을 줄은 몰랐다.

    현석은 섣불리 그곳으로 다가가지 않았다. 일단 근처에 괜히 어설프게 다가갔다가 카메라에 찍히는 일은 없어야 한다.

    저들이 모르게 던전에 들어가거나, 아니면 저들을 모두 치워 버리고 들어가야 한다.

    ‘뭐…… 저런다고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아니지만.’

    투명 던전은 각각 암호화 패턴을 갖고 있었다. 그러니 그 패턴을 모르면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하다.

    게다가 현석은 자신이 발견한 투명 던전의 패턴을 자신만의 패턴으로 다 바꿔 버렸다.

    그러니 설사 원래의 패턴을 알고 있는 사람이 온다 하더라도 쉽게 던전에 들어갈 수는 없다.

    그러니 일단 아무도 모르게 자신만 들어가면 된다. 그 뒤의 일은 그 다음에 해결하면 된다.

    한국에 돌아가려면 저곳 투명던전을 통과해야 한다.

    만일 다른 루트로 돌아가려면 또 뭔가 복잡한 일을 거쳐야 한다.

    물론 양동욱에게 연락하면 바로 해결해주긴 할 것이다. 하지만 현석은 그렇게 하기 싫었다.

    지금 당장 저기에 들어가서 이번에 얻어온 황제의 사면령을 써먹고 싶었다.

    그 사면령은 오직 아르포르 기사단에만 적용된다.

    마치 긴 퀘스트를 하나 끝내는 듯한 기분이었다.

    지하감옥을 찾고, 그곳을 지키던 흑철간수를 처리했다.

    그리고 갇혀 있던 아르포르 기사단을 구해냈고, 기사단장인 케틀러로부터 황제의 사면령을 받아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리고 황궁으로 가는 길을 발견해 역경을 헤치고 나아가 황궁에 들어갔으며, 결국 황제를 만났다.

    그렇게 황제로부터 사면령을 받아 다시 이곳으로 왔다.

    이것이 퀘스트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뭐…… 메인퀘스트까지는 아니고 비밀퀘스트나 서브퀘스트 정도 되겠지만.’

    현석은 플레이어와 던전이 관계된 이 모든 일에는 메인퀘스트가 반드시 있을 거라 믿었다.

    처음에 현석이 회귀했을 때는 그저 눈앞에 마주친 과거의 악연을 정리하고, 회귀 전에 현석에게 인간 이하의 짓을 한 놈들에게 한 방 먹여주겠다는 마음 정도가 다였다.

    그리고 누구도 건드릴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지겠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점점 그 두 가지를 위해 달려오다 보니, 현석의 감을 계속 간질간질 건드리는 뭔가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것이 바로 메인퀘스트였다.

    어쩌면 류지혜를 중심으로 하는 팀을 결성할 때, 그 이름을 메인퀘스트라고 굳이 지어준 것도 그때부터 어렴풋이 그에 대해 느끼고 있어서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메인퀘스트를 클리어하기 위해선 아르포르 기사단이 반드시 필요할 것 같단 말이지.’

    그것 역시 그냥 느낌일 뿐이었다. 왠지 모를 확신이 드는 느낌 말이다.

    물론 사면령을 통해 그들의 죄를 없애 준다고 해서 그들이 현석의 말을 따를지 아닐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그것 역시 그럴 것 같았다.

    그건 처음 아르포르 기사단의 단장인 케틀러로부터 사면령 얘기를 들었을 때부터 짐작하던 사실이었다.

    아마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다.

    그게 안 된다면 되게 만들 것이고 말이다.

    ‘그리고 그러려면 저기에 들어가야 한다 이거지.’

    현석은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들키지 않고 들어가려면 들킬만한 것을 모두 제거하면 된다.

    그렇다면 일단 카메라부터 없애는 게 순서였다.

    현석은 카메라의 위치를 확인했다. 정말 많은 카메라가 곳곳에 숨겨져 있었다.

    하지만 위치만 알고 있으면 카메라를 무력화 하는 건 정말 별 거 아니었다.

    현석에게는 마력이 있었고, 또 마력을 패턴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그리고 전격 계열의 속성이 상당히 높았다.

    전격을 마력에 실어 카메라 내부에서 풀어놓는 정도는 정말 간단한 일에 속한다.

    하지만 한꺼번에 여러 개를 동시에 작업하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물론 현석은 충분히 자신 있었다. 지금 그는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레벨은 물론이고 마력 컨트롤 능력도 황궁에 다녀오기 전후가 달랐다.

    거기서 언데드들을 상대하며 써먹은 거대한 규모의 마력패턴 덕분에 마력 컨트롤 능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이런 식으로 가면 조만간 마력의 주인을 넘어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어쨌든 현석은 마력을 툭툭 잘라내 허공에 띄웠다.

    허공으로 뚝뚝 떨어져 나간 마력이 마치 찰흙처럼 뭉개지며 모양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마력패턴에 파직거리는 전격이 실렸다.

    현석의 몸에서 거의 동시에 수십 개의 마력이 떨어져 나와 동시에 모양이 만들어지고, 또 일제히 거기에 전격이 실렸다.

    현석은 각각의 마력덩어리들을 휙 날려보냈다.

    그것들은 정확히 하나당 하나의 카메라에 스며들었다.

    마력이기 때문에 카메라 내부로 아주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만일 카메라에 특별한 마력패턴을 새겨 놓았거나, 마력에 대한 방비를 해뒀다면 이렇게 간단히 스며들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고작 도로를 찍는 무수한 카메라에 그런 걸 해뒀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렇게 마력패턴이 제대로 새겨진 카메라는 더 이상 그냥 카메라가 아닌 아티팩트가 될 테니까 말이다.

    현석은 모든 마력패턴이 카메라에 스며든 걸 확인하고는 손가락을 가볍게 튀겼다.

    딱!

    빠지지직!

    일제히 전격이 방출되며 모든 카메라가 망가져 버렸다.

    지금은 렉스턴 에너지에서도 카메라를 확인하고 있는 사람은 없었기에 그 사실을 알아차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카메라를 무력화 시킨 현석은 천천히 목표를 향해 다가갔다.

    다가가다보니 대체 투명던전에 뭘 갖다 놓은 건지 궁금해졌다.

    그냥 겉으로 보기에는 전자장비인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안에서 희미한 마력이 느껴졌다.

    마력이 담긴 전자장비를 가져온 것이다.

    호기심이 발동한 현석은 좀 더 빠르게 움직였다.

    그 자리를 지키는 플레이어들이 있었지만 별로 신경 쓰일 정도는 아니었다.

    모두 여덟 명이었는데, 네 명은 한쪽에 마련된 숙소에서 자고 있었고, 나머지 네 명이 그 장비를 가지고 뭔가를 하고 있었다.

    원래는 훨씬 많은 인원이 있었지만, 엠페러타워에서 갑자기 나타난 마수 때문에 그쪽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이곳을 지키는 플레이어는 그야말로 최소한의 수였다.

    그들도 설마 지금 이 순간 무슨 문제가 생길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현석은 전자장비로 바짝 다가갔다.

    묘한 마력파장이 가느다랗게 흘러나오는 장치였다. 그 마력파장이 투명던전 입구를 계속 자극하고 있었다.

    ‘이건…… 좀 놀라운데?’

    이들은 지금 특수한 방법을 통해 투명던전 입구에 마력을 공급하고 있었다.

    투명던전은 패턴을 잠갔기 때문에 웬만한 마력은 그냥 통과해버린다.

    패턴이 정확히 맞아 떨어지는 상황에서만 문을 열게 되어 있었다.

    한데 이 장비는 그 자체를 무시했다.

    아니, 무시하는 게 아니라 의미 없을 정도로 미약한 마력을 주입해 패턴 자체가 아예 작동하지 않게 만들었다.

    아마 이들은 이곳에 있는 것이 특별한 패턴으로 잠겼다는 것도 모를 것이다.

    그저 마력을 계속 낮춰 주입하면서 투명던전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적당한 수치의 마력량을 찾아낸 듯했다.

    이게 뭐 하는 짓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아예 의미가 없는 건 아니었다.

    이대로 계속 마력을 주입하다보면 투명던전이 지금보다 훨씬 많은 마력을 품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내뿜는 마력량이 많아질 것이다.

    그때부터 마력감지기가 제 역할을 할 것이고 말이다.

    ‘뭐…… 그래봐야 패턴을 못 풀면 못 들어가지만.’

    이들은 지금 오랜 시간에 걸쳐 헛짓거리를 하는 중이었다.

    아마 이것이 유의미한 결과를 내려면 최소 한 달은 이짓을 해야 할 것이다.

    현석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마력패턴을 만들어 전자장비 안에 밀어 넣었다.

    특별한 마력장이 보호하고 있어서 반발했지만, 현석의 컨트롤 능력은 그런 보호 마력장의 빈틈을 사정없이 비집고 들어가 비틀어 넓히기까지 했다.

    그렇게 넓어진 틈으로 전격을 잔뜩 실은 마력패턴이 쏙 들어갔다.

    현석은 잠시 그곳에서 물러났다. 굳이 근처에서 모습을 들킬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이제 곧 빈틈이 생길 텐데 말이다.

    빠지지지지직!

    전격이 전자장비 내부에서 터지며 스파크가 튀었다.

    파직! 파직! 파직!

    네 명의 플레이어들이 화들짝 놀라 장비에서 물러났다.

    “뭐, 뭐야!”

    “이거 왜 이래!”

    “너 뭔가 잘못 건드린 거 아냐?”

    “그런 거 없어!”

    다들 우왕좌왕 안절부절 못했다.

    “이걸 어쩌지? 작동을 안 하는데?”

    “일단…… 안에서 자고 있는 사람들한테 알려야 할 것 같은데?”

    “그리고…… 칼슨 이사한테 보고도 하고 말이지.”

    다들 안색이 창백해졌다. 안 그래도 지금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을 텐데 이런 보고까지 겹치면 불에다가 휘발유를 끼얹는 거나 다름없을 것이다.

    “일단…… 전화 말고 직접 보고하는 걸로 하자고.”

    한 명만 자리를 지키기로 하고 나머지는 움직이기로 했다. 칼슨에게 두 명이 가고 한 명이 동료들을 깨우러 움직였다.

    그리고 그렇게 한 명의 플레이어만 남은 상황에서 현석도 움직였다.

    투명던전에 바짝 붙어있는 네 명의 눈을 피하는 건 쉽지 않지만, 고작 한 명이라면 충분히 속일 수 있으니까.

    눈 한 번 깜빡일 시간이면 투명던전 안에 들어가고도 남는다. 실제로 현석은 그가 눈을 깜빡인 순간 투명던전 안으로 스며들어갔다.

    홀로 남은 플레이어는 걱정을 태산 같이 쌓으며 불안한 눈으로 투명던전이 있는 장소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 * *

    투명던전 안으로 들어온 현석은 일단 달렸다. 아르포르 기사단을 정말로 보고 싶었다.

    이 소식을 조금이라도 빨리 알려주고 싶었다.

    케틀러가 보였다. 그는 검은 붕대로 온몸을 칭칭 감은 채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케틀러 주위로 나머지 아르포르 기사단이 같은 자세로 서 있었다.

    현석이 다가가자 케틀러가 고개를 돌려 바라봤다.

    “사면령을 가져왔나?”

    현석이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케틀러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물론 붕대로 칭칭 감겨 있어 표정따위 보이지 않았지만 느낌이 딱 그랬다.

    얼마 전 황제를 봤을 때와 비슷했다.

    “그게 정말인가? 정말 황제폐하의 사면령을 가져온 건가?”

    케틀러의 말에 나머지 아르포르 기사단이 하늘에서 시선을 떼고 현석을 바라봤다.

    그 모두의 열망과 기대감이 온몸으로 절절히 느껴졌다.

    현석은 빙긋 웃으며 품에서 황금빛 사각패를 꺼냈다.

    화아아악!

    강렬한 황금빛이 사각패에서 뿜어져 나와 마치 노을처럼 하늘을 붉게 물들였다.

    모든 아르포르 기사단이 넋을 잃은 것처럼 하염없이 그 황금 사각패, 황제의 사면령을 바라봤다.

    < 황제의 사면령 1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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