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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173화 (173/326)
  • < 탈출 >

    “라이트닝 드래곤? 대체 그게 왜 갑자기 거기 나타나?”

    칼슨은 전화를 신경질적으로 끊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위험하긴 하겠지만 일단 그쪽으로 가봐야 했다. 물론 지하로 들어가진 않을 것이다. 지상에서 그저 보고만 받고, 영상만 확인할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그곳에 가야했다.

    옥상으로 올라간 칼슨은 미리 준비된 헬기에 올라탔다. 그리고 J호텔 쪽으로 날아갔다.

    그리 멀지 않았지만 이렇게 이동해야 약간의 시간이라도 줄일 수 있다.

    호텔에 도착한 칼슨은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주차장까지 곧장 이동했다.

    이미 인원 통제를 하고 있어 지하 주차장에는 차가 한 대도 없었다.

    이곳에 있는 자들은 오직 렉스턴 에너지의 인물들뿐이었다.

    “어떻게 됐나?”

    “이걸 좀 보십시오.”

    칼슨은 플레이어 하나가 내미는 커다란 페드를 확인했다. 엠페러타워의 모습을 촬영하고 있는 영상이었다.

    실시간 촬영이었는데, 난리도 아니었다.

    “저거 대체 뭐야?”

    화면에는 거대한 용이 벼락을 쏟아내고 있었다. 숨결 자체가 벼락으로 이루어진 듯했다.

    지금까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강력한 용이었다.

    “지금 저기에 누가 가 있나?”

    “로간 팀이 첫 조우와 보고를 했고, 그 뒤로 로버트, 엘런, 코너 팀이 들어갔습니다.”

    칼슨은 눈살을 찌푸리며 영상을 계속 확인했다. 용의 위력은 어마어마했다.

    “로간은 당했군.”

    “예. 너무 빨리 당해서 손 쓸 도리가 없었습니다.”

    세 팀도 지금 고전 중이었다. 영상을 통해 뒤쪽에 보이는 건물도 곳곳이 부서져 있었다.

    아마 저걸 다시 공사하려면 시간이나 공이 제법 들어가야 할 것이다.

    칼슨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그래서 지금 다들 여기서 구경만 하고 있을 건가?”

    “예?”

    “싹 들어가서 저놈을 당장 잡아!”

    “아, 예! 아, 알겠습니다!”

    그곳을 지키고 있던 플레이어들이 우르르 엘리베이터로 몰려갔다.

    엘리베이터가 정신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알아서 사방에 연락을 넣어 다른 플레이어들도 드래곤 레이드에 참여하도록 지시를 내렸다.

    칼슨은 그런 그들을 가만히 노려보다가 다시 영상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 미친……! 대체 여기 왜 드래곤이 나타나! 이게 말이 돼?”

    마수는 던전 속에서나 존재한다. 그게 세상으로 나올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문득 칼슨은 예전 미카엘이 지나가듯 던진 말이 떠올랐다.

    ‘마수가 던전 밖으로 나오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그때는 농담인 줄 알았다. 그래서 웃으며 현대의 최신 무기를 동원해 잡아 마정석을 캐낼 수 있다고 얘기하고 넘어갔다.

    한데 지금 저 모습을 보니 왠지 그때 미카엘이 했던 말이 농담이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카엘…… 설마 네가 벌인 일은 아니겠지? 응?’

    칼슨의 시선이 다시 영상으로 향했다. 때마침 도착한 무수한 플레이어들이 함께 힘을 모아 드래곤 레이드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드래곤의 벼락 브레스 때문에 피해가 속출했지만, 이내 탱커들이 이를 악물고 그것을 막아내며 공격할 틈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플레이어들의 공격이 조금씩 드래곤의 몸에 적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드래곤은 그 위명에 걸맞게 체력도 엄청났다. 아무리 공격을 받아도 끄떡없어 보였다.

    물론 타격이 계속 쌓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드래곤에게 주는 피해에 비해 이쪽이 받는 피해가 너무 컸다.

    그래도 어찌어찌 레이드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이대로 특별한 변수가 없다면 충분히 물리칠 수 있을 것이다.

    사냥을 지켜보던 칼슨은 계속해서 떠오르는 미카엘의 잘생긴 얼굴을 고개를 흔들어 억지로 지웠다.

    “후우. 얼른 좀 끝내자. 이래서야 엠페러타워를 대체 언제 열지?”

    칼슨의 한숨이 깊어졌다.

    * * *

    현석은 용을 소환한 다음 모습을 감췄다. 저렇게 한바탕 난리를 피우고 나면 반드시 빈틈이 생길 것이다.

    저 용은 현석의 소환수이기 때문에 적절한 순간 소환을 해제하면 된다.

    죽지만 않으면 충분히 다시 회복시킬 수 있기에 부담도 별로 없었다.

    일단 멀리서 용이 날뛰는 모습을 지켜봤다. 교감을 통해 용이 어떻게 날뛸지 조절할 수 있는데, 그러려면 계속 지켜봐야만 했다.

    현석은 일단 빈틈이 생길 때까지만 지켜보기로 했다.

    건물이 제법 부서졌을 때, 20명이나 되는 플레이어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하지만 그들 정도로는 현석의 용을 막을 수 없었다. 현석의 용은 용 중에서 가장 까다롭다는 전격 계열의 용이었다.

    꽈릉! 꽈릉! 꽈르르릉!

    연이어 벼락을 쏟아내며 플레이어들을 처리한 용은 더욱 거칠게 날뛰었다.

    그리고 그때 우르르 수십 명의 플레이어들이 달려왔다.

    ‘탱커가 있군.’

    현석은 빠르게 다음 일을 계획했다. 탱커가 있어도 저들의 수준을 보니 결국은 밀릴 것이다.

    그렇다면 그 뒤에 추가 병력이 도착할 확률이 높았다. 그러지 않으면 엠페러타워고 뭐고 다 끝장 날 테니까.

    ‘그때가 기회다.’

    현석이 눈을 빛냈다. 그때가 바로 탈출할 타이밍이었다.

    전투는 정확히 현석이 예측한 대로 흘러갔다. 타이밍이 딱딱 맞는 걸 보니 외부에서 이곳을 지켜보는 사람이 있는 모양이었다.

    현석은 주위를 확인해 카메라를 찾았다. 신경을 안 써서 그렇지 조금만 신경 쓰면 카메라가 숨겨져 있건 아니건 찾아내는 건 일도 아니었다.

    잠시 후,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그야말로 사방에서 개미떼처럼 달려들었다.

    레벨이 높은 플레이어가 앞에 서고, 그렇지 않은 플레이어들은 뒤에 포진했다.

    일단 한 방이라도 공격을 명중시키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달려드는 모양이었다.

    드디어 용이 크게 밀리기 시작했다. 이대로는 오래 버티지 못한다.

    현석은 눈을 빛내며 품에서 비수들을 꺼내 사방으로 던졌다.

    퍼버버버버벅!

    현석이 1차적으로 노린 것은 당연히 카메라였다. 이곳을 누군가 지켜본다면 그 시야를 최우선 적으로 차단하는 것이 전투의 기본이었다.

    카메라를 무력화시킨 현석은 빠르게 이동해 플레이어들 사이로 낮게 파고들었다.

    현석이 노린 건 레벨이 높은 탱커들이었다.

    일단 탱커만 없어도 이들이 이렇게 수월하게 용을 상대할 수는 없었다. 그것도 전격 계열의 용을 말이다.

    목표를 세운 현석은 절대 손에 사정을 두지 않는다.

    현석의 검이 탱커들의 급소를 푹푹 찌르고 지나갔다. 탱커들은 자신들이 어떻게 당하는지도 모르고 그 자리에 풀썩풀썩 주저앉았다.

    현석은 굳이 큰 힘을 쓰지 않았다. 마력을 이용해 그저 잠깐 동안 마비시켰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탱커가 무력화된 상황에서 용이 날뛰기 시작하면 그건 말 그대로 재앙이니까.

    현석이 마지막으로 한 일은 용에게 다가가 자신이 가진 힐링포션을 마구 쏟아 부은 것이었다.

    용을 타고 올라가 미리 커다란 통에 담아둔 힐링포션을 머리 위에서 그대로 끼얹었다.

    그리고 다시 내려와 마력을 이용해 용의 입으로 힐링포션 덩어리를 밀어 넣었다.

    크워어어어어어!

    용이 포효했다. 거센 마력의 파동이 용을 중심으로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 나갔다.

    “용이 미쳐 날뛴다!”

    “막아!”

    용을 공격하던 플레이어들은 이 황당한 상황에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제대로 대형을 갖추고 싸워도 쉽지 않은 마당에 그렇게 우왕좌왕하면서 용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을 리 없었다.

    더구나 탱커도 없는 상황에서 말이다.

    현석은 그 일만 마치고 스윽 빠져나왔다. 화면을 모두 죽였으니 모습이 드러날 일도 없었다.

    물론 그나마도 변신 덕분에 얼굴이 거의 드러나지 않았지만 말이다.

    현석은 빠져나오면서 용에게 가장 큰 위협이 될 만한 플레이어 셋의 등에 칼을 한 방씩 푹푹푹 선물해주고 빠져나왔다.

    그들 역시 용에 온통 신경을 쓰고 있을 때, 불시에 당한 기습인지라 손 쓸 도리가 없었다.

    꽈르르르르르릉!

    거대한 벼락이 플레이어들을 단숨에 휩쓸었다.

    크워어어어어!

    빠지지지지직!

    용이 포효하며 사방으로 전격을 날렸다. 굳이 브레스를 통하지 않아도 이렇게 타격을 줄 방법이 얼마든지 있었다.

    현석은 뒤로 쭉 빠져나와서 그 광경을 힐끗 확인한 다음 유유히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엘리베이터가 움직이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다. 카메라가 망가졌으니 이제 직접 확인하러 와야 할 테니까.

    현석은 엘리베이터 옆에 숨어 있었다.

    이내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그 안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다시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현석은 그들이 좀 더 멀어지길 기다렸다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로 올라갔다.

    저들은 아마 지금 엘리베이터가 움직이고 있다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상황이 워낙 안 좋았으니까.

    현석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엘리베이터 천장에 붙어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꼭대기에 도착하고 문이 열렸다.

    문 밖에 사람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현석을 막을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현석은 빠르게 빠져나가며 엘리베이터 앞을 지키고 있던 경비병들을 모조리 기절시켰다.

    어마어마한 속도로 일을 처리해 버렸기에 그들은 현석의 공격을 막을 수도, 또 다른 곳에 신호를 보낼 수도 없었다.

    현석은 빠르게 지하주차장을 가로질러 달려갔다.

    주차장을 막아놨지만 그것 역시 현석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현석은 차가 다니는 길을 따라 순식간에 주차장에서 빠져나가 버렸다.

    주차장 CCTV에는 찍혔겠지만, 그것 역시 별 의미가 없었다.

    그렇게 현석은 J호텔을 빠져나갔다.

    * * *

    “이게…… 이게 대체 뭐야!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야!”

    칼슨이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저기서 난리치는 용 때문에 무서워서 근처에 다가가진 못하지만 상황이 심각하다는 건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칼슨은 얼른 전화부터 했다.

    “이쪽으로 몽땅 와! 무조건 와! 용이야! 용이라고!”

    칼슨의 분노에 전화를 받는 상대는 찍소리도 못하고 알았다는 대답과 함께 이쪽으로 달려올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오는 동안 칼슨은 날뛰는 용을 무시무시한 눈으로 노려봤다.

    힐링포션에 의해 몸이 완벽하게 회복된 용의 위력은 그야말로 무시무시했다.

    게다가 탱커들도 다 당했고, 가장 강력한 딜러 셋도 당했다.

    나머지는 그저 오합지졸에 불과했다. 물론 용의 입장에서 그랬다. 나머지 플레이어들도 밖에 나가면 제법 힘깨나 쓰는 자들이었으니까.

    어쨌든 그렇게 날뛰는 용으로부터 이리저리 휘둘리고 휩쓸리는 플레이어들을 보는 칼슨의 속은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이사님!”

    “어디 계십니까!”

    칼슨은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반색하며 돌아봤다. 고레벨 플레이어들이 드디어 도착했다.

    “와이어트! 이쪽이야! 어서 저 빌어먹을 용을 처리해!”

    칼슨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와이어트라 불린 플레이어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그를 지나쳐 용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 뒤를 열 명의 플레이어가 빠르게 따라갔다. 와이어트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들의 속도도 엄청났다.

    꽈과과과과광!

    용의 몸에서 엄청난 폭음이 울렸다. 그리고 용이 사방으로 브레스를 쏟아냈다.

    꽈르르르르릉!

    무수한 플레이어들이 거기에 휘말렸다. 하지만 와이어트 일행은 모두 용의 브레스를 피해냈다.

    “끝이다!”

    와이어트가 긴 창을 찌르며 용에게 돌진했다.

    퍼억!

    창날이 용의 몸에 깊이 박혔다.

    와이어트는 그대로 창으로 용을 꿰뚫고자했다.

    한데 그 순간 용이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와이어트는 황당한 눈으로 사방을 둘러봤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용은 없었다.

    그저 용이 남긴 처절한 흔적만 보일 뿐이었다.

    건물은 절반 정도 무너졌고, 바닥 곳곳이 파여 정비가 필요했다.

    그리고 무수한 플레이어가 당했다.

    와이어트는 고개를 돌려 칼슨을 바라봤다.

    칼슨이 길게 한숨을 내쉬는 모습에 다시 고개를 돌렸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 탈출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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