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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171화 (171/326)
  • < 황궁에서 3 >

    -마족의 침공이지. 그저 단순한 전쟁일 뿐이야.

    황제의 대답이 너무 단순했기에 현석은 얼른 추가 질문을 던졌다.

    “밖의 스켈레톤들도 모두 마족 때문에 생겨난 겁니까?”

    -마왕의 힘이지. 그놈들이야 원래 그런 족속들이니까. 오염시키고 어둠에 물들이고. 죽이고, 증오하고.

    현석은 문득 이 도시 안에 있던 사람들의 수가 너무 적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 다른 도시에 갔을 때도 그렇고, 다들 피신한 걸로 여겼다.

    한데 그랬다면 왜 황제가 여기 남아있을까? 누구보다 먼저 피신했어야 할 존재 아닌가.

    ‘그러니까…… 피신은 아니라는 건가?’

    현석의 의문을 풀어준 건 황제였다. 그는 이번에도 마치 현석이 그런 의문을 가졌다는 걸 알고 있기라도 하듯 대답해주었다.

    -내 백성들이 피신하지 못했는데, 내가 먼저 피신할 것 같은가? 난 모두의 위에 군림하는 존재. 그 이전에 모두를 보호할 의무를 가진 존재다.

    현석은 황제의 말에 순간 입을 다물었다. 갑자기 복잡하던 생각이 싹 날아가 버렸다.

    저 말이 정말이라면…… 참으로 대단한 사람 아닌가.

    ‘도시에 남아 있던 스켈레톤은…… 미처 피신하지 못한 자들이로군. 그리고 황궁을 지키던 스켈레톤은…… 마지막까지 황제를 지키던 기사고.’

    이제야 이야기가 딱딱 맞아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럼 이 안에는 오직 황제만 남아있단 말인가?

    -나만 남았지. 이 황궁은 오직 황제인 나를 위해 존재하는 장소니까. 이 황궁을 이용해 마족을 섬멸할 수 있는 사람도 오직 나뿐이었지.

    현석이 다급히 물었다.

    “그럼 마족의 침공을 홀로 막아내신 겁니까?”

    -마족의 침공이야 막아냈지. 다만…… 그게 고작 선봉대라는 게 문제일 뿐.

    거기까지 말한 황제가 회한에 젖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이 나 혼자라는 게 문제야. 아마…… 다들 모르고 있을 텐데. 정말 걱정이로구나.

    딱 거기까지였다.

    황제의 태도와 분위기가 갑자기 달라졌다. 마치 현석이 처음 여기 들어왔을 때 같았다.

    -시간이 다 했노라. 이만 돌아가라.

    황제가 옥좌에 앉아 손을 휘 내저었다.

    갑자기 어마어마한 압력이 몰려와 현석을 뒤로 쭉 밀어냈다.

    현석은 저항할 수도 있었지만 굳이 그러지 않았다. 더 있어봐야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이제 차라리 그 대마법사를 만나는 게 더 나을 것이다.

    어쩌면 그라면 뭔가 더 알고 있는 게 있지 않을까?

    ‘그런데…… 황제가 이 황궁에는 자기 혼자 남았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대마법사와의 만남이라니. 어쩌면…… 없는 보상을 선택한 건 아닐까?

    현석은 불안감을 안고 뒤로 쭉 밀려나 홀에서 나갔다.

    쿵!

    홀의 문이 닫혔다.

    그러자 온몸을 옥죄던 압력이 씻은 듯이 사라져 버렸다.

    현석은 주위를 둘러봤다. 아까 지나왔던 그 복도가 아니었다.

    같은 문을 나왔는데, 전혀 다른 장소에 온 것이다.

    “여기가 대마법사가 있는 곳인가? 설마…… 마법사의 시체가 있는 건 아니겠지?”

    현석이 피식 웃으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굳이 소리를 내서 말한 건, 그만큼 불안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래도 현석은 자신의 감을 믿었다.

    그 순간 발동한 감은 그동안 그의 목숨을 몇 번이나 구해주고, 특별한 보상을 얻게 해준 그런 감이었으니까.

    아까는 문을 향해 복도가 쭉 나 있었다면, 이번엔 옆으로 나 있었다.

    홀로 들어가는 문이 복도 중간쯤 있는 셈이었다.

    현석은 문득 궁금해서 홀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 보았다.

    끼이이익!

    문이 열렸다. 역시 예상대로 그 안은 전혀 다른 곳이었다.

    사방이 책으로 꽉 찬 서재였다. 서재라기보다는 도서관에 훨씬 가까운 규모였다.

    현석은 그 안으로 들어가 주위를 슥 둘러보고는 책 한 권을 뽑았다.

    표지에는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았다.

    ‘책을 찾고 정리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겠군.’

    현석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책장을 펼쳤다. 제국어로 쓰인 일종의 소설이었다.

    별로 관심이 가는 내용은 아닌지라 다시 꽂고는 다른 책을 뽑았다.

    그렇게 몇 권을 뽑았는데, 그렇게 뽑은 책이 전부 소설이었다.

    이 근처는 모두 소설만 모아놓은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색이 다르네?”

    책표지의 색이 달랐다. 보니까 색깔별로 분류를 해놓았다.

    현석은 얼른 가서 다른 색깔의 책을 뽑아 안을 확인했다.

    그리고 다시 탁 접었다.

    더럽게 복잡한 수식이 가득 채워진 책이었다. 이쪽은 수학 서적인 모양이었다.

    몇 권을 더 뽑아서 확인했지만 마찬가지였다. 봐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수식만 가득 적혀 있었다.

    현석은 또 다른 색의 책이 꽂힌 책장으로 갔다.

    “음?”

    마력에 대한 책이었다. 한데 내용이 너무 어렵고 복잡해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이걸 이해하려면 수십 번 반복해서 읽어봐야 할 듯했다.

    현석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다시 책을 꽂았다.

    그 뒤로 이 안에 있는 모든 색을 다 확인했다. 일단 어떤 종류의 책이 있는지만 확인한 것이다.

    제법 관심이 갈 만한 것들도 있었다. 예를 들어 검술 서적 같은 것들 말이다.

    물론 고급 검술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 하지만 기초를 한 번 확인한 것만으로도 제법 괜찮았다.

    물론 성과가 있는 건 아니었다. 검술은 성과를 얻으려면 직접 몸으로 움직여야 한다.

    게다가 현석은 기본적으로 실전을 통해 검술을 수련하고 다듬어왔다. 여기에 어설픈 이론을 덧씌우다간 자칫 퇴보할 수도 있었다.

    어쨌든 그렇게 모든 책을 확인하고는 서재에서 나왔다.

    서재에서 나온 현석은 문득 떠오른 생각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역사에 관한 책은 없는 모양이네.”

    보통 이렇게 많은 책을 구비하면 그 중에 반드시 역사서가 끼어 있는 법이다.

    아마 가장 큰 비중인 것이 보통이리라.

    사실 현석은 역사서를 좀 보고 싶었다. 그랬으면 뭔가 이 세상에 대한 비밀도 좀 알 수 있을 것 같았고, 답답하게 막혀 있던 것이 뻥 뚫릴 것 같았다.

    하지만 없는 걸 어쩌랴. 현석은 깔끔하게 미련을 접은 다음 복도의 양쪽을 번갈아 확인했다.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 보기 위함이었다. 보아하니 어느 쪽으로 가도 상관 없을 듯했다.

    복도가 완만한 곡선을 이루고 있는 걸 보니, 커다란 원형 건물의 가장자리를 복도로 쓰는 것 같았다.

    생각해보니 방금 확인한 서재도 원형의 케이크를 한 조각 떼어낸 듯한 구조였다.

    아마 다른 방도 비슷하리라.

    현석은 오른쪽으로 걸어갔다. 한참을 가도 그저 복도뿐이었다. 이걸 보면 이번에 나올 방은 정말로 큰 모양이었다.

    어쩌면 방금 들어갔던 서재를 제외한 나머지가 모두 하나의 방일지도 모른다.

    현석은 그 생각을 떠올리고는 피식 웃었다.

    “그럴 리가 없지.”

    그리고 발견한 문을 보고는 왠지 조금 전 떠올린 것이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의 좌우로는 시야에 닿는 한 모조리 벽이었다. 대충 감각으로 계산하면 이 문의 정반대쪽에 서재가 있었다.

    그러니 커다란 원형 건물에 케이크 한 조각 부분만 서재고 나머지가 바로 이 방이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이 방에 그 대마법사가 살고 있을 것이다.

    현석은 두 손을 문에 대고 천천히 밀었다.

    끼이이익!

    오래 되었다는 걸 증명하듯, 문이 비명을 지르며 천천히 열렸다.

    활짝 열린 문 앞에 선 현석은 놀란 눈으로 안을 들여다봤다. 설마 이런 광경이 펼쳐져 있을 줄은 몰랐다.

    안에는 새까만 색의 높다란 석판이 무수히 세워져 있었다. 그 높은 천장에 닿을 듯이 서 있었는데, 석판 하나의 넓이는 양팔을 활짝 벌린 성인 남자가 다섯 명쯤 나란히 설 수 있을 정도였다.

    석판 하나의 두께는 1미터쯤 되는 듯했다.

    그런 석판 수천 개가 서로의 공간을 침범하지 않도록 이리저리 잘 꿰맞춰져서 서 있었다.

    검은 석판 위에 황금빛 문양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척 봐도 석판을 파낸 다음 황금빛 금속을 녹여 정교하게 채워넣은 것 같았다.

    그 황금빛 금속의 정체는 켈리움이었다.

    칸두스 금화의 50프로를 차지하는 바로 그 켈리움, 마력 전도율이 가장 높은 금속이라는 그 켈리움 말이다.

    “대마법사라서 그런가? 뭔가…… 보통 사람은 아닌 것 같네.”

    저런 걸 방안에 가득 채워 놓은 걸 보면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당연하지. 난 사람이 아니라 대마법사니까.

    현석은 사방을 울리는 목소리에 주위를 둘러봤다. 정확히 어디서 오는 소리인지 알 수가 없었다.

    마치 이 안에 있는 모든 석판들이 동시에 소리를 낸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니, 실제로도 그랬다. 집중해서 두 번째 말을 들어보니 확신할 수 있었다.

    -자네가 보고 있는 모든 것이 바로 나일세.

    현석은 황당한 표정으로 사방을 둘러봤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어마어마한 넓이의 방이었다. 그곳에 검은 석판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거의 원형에 가까운 방이었기에 질서정연하게 나란히 세우지는 못했고, 서로 비스듬하게 겹쳐서 세워 뒀기에 사람이 지나다니는 데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다만 이리저리 복잡하게 움직여야 할 뿐이었다.

    현석은 그렇게 석판들을 헤치고 지나가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결국 이 거대한 방이 온통 석판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만 확인할 수 있었다.

    바닥을 내려다보니 바닥도 황금빛 문양으로 꽉 채워져 있었다. 천장을 보니 천장도 그랬다.

    이 방 자체가 온통 황금빛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제 다 확인했나?

    현석은 어느새 방 한가운데 서 있었다. 그곳에 있으니 목소리가 더욱 또렷하게 들렸다.

    애초에 소리가 가운데에 모이도록 설계된 듯했다.

    현석이 고개를 끄덕이자, 목소리가 이어졌다.

    -대마법사의 방에 온 걸 환영하네.

    “대마법사의 방?”

    -마법의 모든 것이 기록된 장소라네. 물론 황궁의 힘으로 모은 것들이지.

    이곳은 마법의 데이터베이스 같은 장소였다. 현석은 눈을 빛냈다.

    -자, 편한 마음으로 대화를 해볼까? 지금 자네에게 허락된 것은…… 생각보다 많지 않군.

    “허락된 모든 걸 듣고 싶군요.”

    -굳이 들을 필요 없네. 머리에 새겨줄 테니까.

    머리에 새겨준다는 말에 현석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그런 표정 지을 거 없네. 정말 별 거 아니니까. 두뇌를 직접 건드리는 게 아니라 인간의 잠재의식을 이용한 간단한 기억마법일세.

    현석의 앞에 서 있는 석판에서 황금빛 문양이 빛나기 시작했다. 한데 놀랍게도 문양이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석판에 새겨진 길이 변하면서 황금빛 금속이 그쪽으로 흘러가 문양 자체가 달라진 것이다.

    ‘액체?’

    저 황금빛 금속은 놀랍게도 고체가 아니라 액체였다.

    어쨌든 달라진 문양이 빛나며 빛가루가 쏟아져나왔다.

    샤아아아아.

    -받아들이게. 저항하면 기억을 새길 수 없으니까.

    현석은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빛가루들이 일제히 현석의 머리에 달라붙었다.

    현석은 머릿속으로 마력이 스며들어오는 걸 느꼈다. 언제든 방어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뇌로 직접 마력이 흘러들어오지 않고 외부만 빙글빙글 돌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자극이었다.

    그렇게 빙글빙글 돌던 마력이 갑자기 씻은 듯이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현석의 눈이 살짝 커다래졌다.

    갑자기 없던 기억이 확 생겨났기 때문이다. 물론 이 기억은 휘발성이 아주 강했다. 그러니 한 번 되새겨 놓지 않으면 금세 사라질 것이다.

    현석의 머리에 새로 들어온 기억의 가장 첫 부분이 바로 이 기억의 휘발성에 대한 것이었다.

    그래서 현석은 일단 받아들인 기억을 제대로 머릿속에 안착시키는 작업부터 했다.

    황궁의 대마법사가 현석에게 준 지식은 마법의 기초였다. 하지만 그것은 그 어떤 것보다 현석에게 대단한 힘을 준 셈이 되었다.

    “마력패턴이…… 그게 마법이었어?”

    < 황궁에서 3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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