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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169화 (169/326)
  • < 황궁에서 1 >

    쩌저저저저정!

    현석과 스켈레톤은 바짝 붙어서 서로의 검을 마구 휘둘렀다.

    현석의 검은 스켈레톤의 방패에 막히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스켈레톤의 검이 현석을 건드리지도 못했다.

    현석은 엄청나게 민첩한 몸놀림으로 스켈레톤의 공격을 모조리 피하면서 동시에 공격까지 했다.

    실로 어마어마하게 수준이 높은 공방이 끝없이 이어졌다.

    싸우는 내내 현석의 표정은 점점 더 즐겁게 변해갔다. 그리고 그렇게 표정이 변해갈수록 현석의 검도 더욱 빠르고 날카로워졌다.

    둘의 움직임이 점점 더 빨라졌다. 현석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지금 현석은 한계를 쥐어짜고 있었다. 이미 한계에 도달한 지 오래지만, 억지로 버텨냈다.

    힘들었다. 하지만 또 힘들지 않았다. 그건 기대감 때문이었다. 이런 고통을 견뎌내면 그 다음은 희열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화아아악!

    현석의 몸에서 눈부신 빛이 쏟아져나왔다. 한계를 돌파한 것이다.

    현석이 휘두르는 검이 더욱 빠르고 강해졌다.

    쩌저저저저정!

    스켈레톤은 방패를 교묘히 비틀면서 현석이 휘두르는 검을 모조리 흘려냈다. 그러면서 검이 흘러간 순간 방패를 튕겨 충격까지 주었다.

    정말 굉장한 방패술이었다.

    물론 현석도 그런 충격에 호락호락 당할 만큼 무르지 않았다. 현석도 검을 교묘하게 흔들고 비틀며 그 충격을 무마시키며 공방을 이어갔다.

    현석은 내심 스켈레톤의 실력에 감탄을 거듭했다. 만일 황궁으로 오는 길에서 수라장을 겪어 실력이 상승하지 않았다면 결코 이 싸움에서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현석은 이를 악물고 또 한 번 한계를 쥐어짰다.

    쩌저저정! 퍼버버벅!

    현석의 검이 스켈레톤의 몸에 적중하기 시작했다. 한계의 한계에 이르러서야 간신히 스켈레톤을 압도하기 시작한 것이다.

    현석의 얼굴이 희열로 물들었다.

    콰득! 콰득! 콰득!

    스켈레톤의 몸 곳곳이 부서져 나갔다. 물론 부서졌던 뼈가 다시 달라붙어 곧바로 재생했지만 어쨌든 타격이 먹히기 시작한 것이다.

    현석의 머리에서 뿌연 김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눈에 핏발이 섰다.

    “으아아아아!”

    현석은 비명에 가까운 기합을 내지르며 검을 휘둘렀다.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검격이 스켈레톤을 향해 쏟아졌다.

    꽈과과과광!

    스켈레톤이 방패술을 미처 발휘할 수도 없을 정도였다. 충격을 이기지 못한 방패가 우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방패로 미처 막지 못한 부분이 터져 나갔다.

    퍼버버버벅!

    쩌저정!

    퍼버버벅!

    스켈레톤이 검을 들어 막았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검이 뒤로 튕겨났고, 그 뒤로는 일방적인 공격이 이어졌다.

    뻐버버버버벅!

    스켈레톤의 온몸이 부서졌다. 그리고 그 와중에 핵이 드러났다.

    현석의 눈이 번득였다. 그와 동시에 그의 검도 번득였다.

    번쩍!

    스켈레톤의 핵이 두 조각으로 갈라졌다.

    드디어 싸움이 끝났다.

    파스스스.

    스켈레톤은 뼛가루가 되어 그대로 무너졌다. 스켈레톤이 들고 있던 검도, 방패도 모두 가루가 되어 쏟아져 내렸다.

    무기조차 다 뼈로 이루어진 것이다.

    “후욱! 후욱! 후욱!”

    현석은 손으로 무릎을 짚은 채 숨을 몰아쉬었다. 호흡이 점점 가빠졌다. 정말 더럽게 힘들었다.

    “후우우욱!”

    숨을 길게 몰아쉰 현석이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체력이고 마력이고 모조리 뽑아 쓰는 바람에 당분간은 아예 움직이지도 못할 것 같았다.

    그냥 뽑아 쓴 게 아니라 한계의 한계까지 쥐어 짰기 때문에 쉽사리 회복이 되지 않았다.

    자연회복이라는 사기적인 회복 스킬이 패시브로 발동하고 있는데도 그랬다.

    현석은 그 자리에 벌렁 드러누웠다.

    만일 적이 남아 있다면 기습하기 딱 좋은 자세였다. 하지만 적은 남아있지 않았다.

    저 굳게 닫힌 황궁의 문이 열리고 마수가 우르르 나타난다면 모를까.

    하지만 현석은 그럴 리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이 근처에는 그 어떤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력을 품은 존재도 없었다.

    그래서 그나마 편히 쉴 수 있었다.

    “그나저나…… 강하기는 제일 강한 놈인데 아무것도 없나?”

    현석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리고 방금 그 스켈레톤이 무너진 자리를 쳐다봤다. 그곳에 있는 뼛가루 무더기에서 뭔가 순간적으로 반짝 빛났다.

    현석은 그곳으로 다가갔다. 뼛가루 무더기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무더기를 발로 슥슥 헤치니 그 안에서 팔찌 하나가 나왔다.

    아마 이 팔찌가 빛났던 모양이다. 무더기 속에서 난 빛이 현석에게 보였다는 게 좀 이상하긴 했지만, 현석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 사소한 것까지 신경 쓰기엔 요즘 생각할 일이 너무 많았다.

    팔찌를 든 현석은 그것을 이리저리 돌려 모양을 확인했다. 좀 특이한 모양의 팔찌였다.

    마치 검을 구부려 둥글게 만든 것 같은 모양이었다. 검끝이 손잡이 끝을 찌르고 들어가 있었는데, 꼭 힘주어 빼면 빠질 것 같았다.

    현석은 일단 팔찌의 정보부터 확인했다.

    [신검 켈루안]

    [제국 최고의 명장 켈루안이 신의 계시를 받아 만든 검. 켈루안이 10년에 걸쳐 만들었으며, 검의 완성과 동시에 목숨을 잃었다. 절대 부서지거나 날이 상하지 않는다. 스킬 신력을 쓸 수 있다. 힘+50, 민첩+100, 체력+50, 마력+1000]

    현석은 정보를 확인하고는 혀를 내둘렀다. 이 정도로 좋은 아티팩트는 아마 없을 것이다. 스탯 상승치가 상상을 초월했다.

    게다가 절대 부서지지 않고 날이 상하지도 않는다니.

    용기사 메겔루를 처리하고 얻은 검보다 몇 배나 더 좋은 검이었다.

    현석은 검에 깃든 스킬, 신력을 확인해봤다.

    [신력-30분 동안 모든 스탯과 속성력이 두 배로 늘어난다. 또한 보유한 모든 스킬의 위력이 세 배로 늘어난다. 시간이 지나면 극심한 탈력에 의해 무기력 상태에 빠진다. 하루에 한 번 사용 가능하다.]

    정말 어마어마한 스킬이었다. 반작용도 만만치 않지만, 만일 현석이 지금보다 더 성장한 상태에서 이 스킬을 쓰면 그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물리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현석의 레벨은 200을 넘은 상태다. 만일 이 스킬을 쓰면 단순 수치만으로 400레벨이 넘게 된다.

    하지만 이 스킬은 고작 그 정도 위력이 아니었다. 모든 속성력도 두 배가 되고, 스킬의 위력이 세 배가 된다.

    자연회복 같은 스킬이 세 배의 위력을 발휘하게 된다면 아마 현석은 거의 불사신에 가까운 몸이 될지도 모른다.

    물론 30분이라는 시간제한이 걸려 있지만, 그 정도로 강해진다면 30분은 정말 긴 시간이었다.

    현석은 팔찌를 좀 더 이리저리 살피다가 그것을 손목에 채웠다.

    이번 던전 최고의 소득은 바로 이것, 신검 켈루안이다.

    아마 이후 다른 어떤 것을 얻더라도 이보다는 못하리라.

    현석은 다시 자리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아직 회복되려면 멀었다. 충분히 쉬어 완벽한 몸 상태를 만들기 전에는 황궁 안으로 들어갈 생각이 없었다.

    현석은 아공간에서 식량이 든 컨테이너 박스를 꺼내 일단 밥부터 해결했다.

    든든히 먹고 푹 쉬어야 회복이 빠를 테니까.

    * * *

    황궁의 정문 앞에 선 현석은 심호흡 후, 두 손으로 힘껏 문을 밀었다.

    끼이이익!

    기름칠을 오랫동안 하지 않았기에 문이 열리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어쩌면 안에 있는 놈들이 이 소리를 듣고 몰려나올지도 모른다. 만일 안에 무언가가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현석은 안에 아무도 없다고 믿었다. 문을 열기 전까지는.

    문을 연 현석은 황당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문을 열자마자 황궁 안쪽에서 무수한 기척이 느껴졌다. 마치 문을 통해 안의 기척을 막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 기척의 정체는 마수 같지 않았다. 만일 마수라면 좀 더 난폭하고 거칠어야 한다. 한데 아주 차분했다.

    마력을 가진 존재도 종종 있었는데, 그들이 가진 마력도 차분하기 그지없었다. 아주 제대로 정제된 마력이었다.

    현석은 기대감 어린 눈으로 걸음을 옮겼다.

    정문을 넘어서자, 갑자기 느껴지는 분위기가 확 달아졌다. 정문을 경계로 마치 전혀 다른 세상에 들어온 것 같았다.

    현석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계속 안으로 들어갔다.

    황궁의 크기는 정말로 거대했다.

    정문에서 안쪽 궁까지 가는 길도 엄청나게 길고 넓었다.

    현석은 가는 내내 주위를 슥슥 둘러봤다. 정원 곳곳에 기척을 감춘 채 숨어있는 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황궁의 침입자를 잡아내거나 이 주변을 감시하는 역할을 하는 자들일 것이다.

    그들은 현석이 궁을 향해 걸어가는 데도 아무도 움직이거나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대놓고 다가가는 사람에게는 반응하지 않도록 규칙이 마련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사람인지 아닌지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현석이 궁에 다가가자, 궁의 문이 열렸다. 마치 어서 안으로 들어오라는 듯이.

    현석은 망설이지 않고 궁 안으로 들어갔다.

    큰 규모의 궁답게 안쪽도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넓은 복도를 지나 안으로 쭉 들어간 현석은 거대한 문을 볼 수 있었다.

    현석이 다가가자 그 문이 저절로 천천히 열렸다.

    끼이이이익!

    거친 소리가 관리가 안 되어 있는 티를 확 냈다. 현석은 피식 웃으며 열린 문 안으로 들어섰다.

    그곳은 거대한 홀이었다.

    바닥에 붉은빛 주단이 깔려 있었고, 그 주단의 끝에 거대하고 화려한 옥좌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옥좌에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그가 누구인지는 복장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머리의 화려한 왕관이나 황금으로 용을 수놓은 옷과 망토를 걸치고 있었는데, 그가 걸치고 있는 모든 것이 아주 특별한 아티팩트였다.

    현석은 황제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기묘한 아우라에 더 다가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 멈춰 섰다.

    화려한 옷을 입고 있지만, 그는 살아있는 사람이 아닐 것이다.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저렇게 새까만 형체만 남아있지는 않을 테니까.

    황제의 모습은 마치 그림자로 만든 사람인 것처럼 새까맸다. 과연 저 상태로 말이나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거기에 대해서는 별 걱정하지 않았다. 대화는 충분히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 투명 던전의 정체에 대한 단서도 좀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현석은 잠시 황제를 쳐다보다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 내딛자, 기이한 압력이 온몸을 옥죄어왔다. 깜짝 놀랐지만 내색하지 않고 한 발 더 걸었다.

    압력이 더 강해졌다. 두 배까지는 아니지만 만일 한 걸음 더 걸었을 때, 이 정도 비율로 강해지면 딱 두 배가 될 듯했다.

    압력이 강하긴 하지만 충분히 견딜 만했다. 현석은 몇 걸음 더 걸었다.

    세 걸음에 두 배씩 압력이 강해졌다.

    절반쯤 이동하니 상상을 초월하는 압력이 온몸에 가해졌다. 이대로 조금만 더 가면 몸이 그대로 찌부러질 것 같았다.

    현석은 고개를 들어 황제를 쳐다봤다.

    황제의 얼굴은 온톤 새까맸기 때문에 표정을 알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왠지 그저 무심하게 이쪽을 보고 있는 듯했다.

    마치 거기가 네 한계로구나, 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거…… 오기가 생기네.’

    평소에 별로 갖지 않던 감정이 떠올랐다. 냉정함이 살짝 흐트러졌다.

    억지로 세 걸음을 더 걸었다. 압력이 또 두 배 늘어났다.

    현석의 코에서 피가 주륵 흘렀다. 부릅뜬 눈에서 실핏줄이 터지며 또 피눈물이 났다.

    대체 이곳, 황궁으로 가는 길이라는 투명 던전에 들어와 몇 번이나 피눈물을 흘리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났다.

    -웃어?

    현석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어 황제를 쳐다봤다. 지금 분명히 그가 말을 했다.

    -네가 왜 힘든지 생각해 보았느냐?

    현석은 황제의 말에 그제야 이 공간이 자신에게 원하는 게 무엇인지 깨달았다.

    무릎을 꿇으라는 뜻이었다.

    아마 여기서 무릎을 꿇으면 이 모든 압력이 대번에 해소될 것이다.

    황제를 바라보는 현석의 눈이 번득였다.

    새까만 황제의 얼굴에 왠지 오만함이 깃들어 있는 것 같았다. 이렇게 느낌으로 표정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신기했다.

    어쩌면 그저 기분 탓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석은 왠지 그 기분이 들게 만든 것도 저 황제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석은 눈에 힘을 꽉 주고 황제를 쳐다봤다.

    황제는 여전히 느긋해 보였다. 현석이 무릎을 꿇든 말든 상관없다는 듯 담담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압력이 점점 강해지기 시작했다.

    어서 무릎을 꿇으라는 뜻이었다.

    황제를 쳐다보는 현석의 눈이 담담해졌다. 결정을 내린 것이다.

    < 황궁에서 1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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