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눈 뜨고 레벨업-168화 (168/326)
  • < 황궁으로 가는 길 4 >

    현석의 눈앞에 서 있는 용은 푸른빛이 감돌았다. 아니, 정확히 파란색은 아니었다. 여러 가지 색이 조금씩 섞여 있었다.

    군데군데 황금빛도 보였고, 또 군데군데 어두운 부분도 있었다. 새하얀 부분도 있었고 말이다.

    하지만 그 모든 색이 너무나 잘 어우러지고 조화를 이루고 있었기에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용은 정말 아름다웠다.

    현석은 그 용을 보자마자 바로 알 수 있었다. 자신과 교감을 이룬 자신의 용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던 용인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아, 그것도 알겠다.”

    이제 이 지식들이 어디서 나온 건지 답에 가까운 추측을 할 수 있었다.

    메겔루의 검이었다.

    그 검에 깃들어 있던 지식이었고, 그 검에 깃들어 있던 용이었다. 그리고 그 검에 깃들어 있던 힘이었다.

    아까 환상에서 봤던 용과는 같으면서도 달랐다.

    아까의 용은 푸른빛이 아닌 붉은빛이 감도는 용이었다. 생김새는 똑같았다.

    다만 품고 있는 힘이 다른 듯했다.

    아까의 용은 불의 힘을 가졌다. 한데 이 푸른 용에서는 벼락의 힘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현석이 가진 속성 중 전격 계열 속성력이 가장 높아서 뭔가 영향을 받은 모양이었다.

    어쨌든 이 용은 현석에게 가장 최적화 된 용이었으니까.

    파지지직!

    용의 몸체에 전격의 파도가 한 차례 몰아쳤다.

    현석은 용과 자신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 건지 확인했다.

    “마력으로 이루어진 존재로군.”

    이 용은 실체가 있는 게 아니라 마력이 실체화한 것이었다.

    현석은 용과 자신의 정신이 단단히 결합되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용을 부리는 건 그냥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인식이 되었다.

    “그럼…… 타볼까?”

    현석은 용의 등에 훌쩍 올라탔다.

    용의 몸체에 연이어 전격이 흘렀다. 하지만 그 전격은 현석에게 그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았다.

    현석은 용을 움직여 황궁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아무래도…… 숙련할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군.”

    그냥 단순히 조종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용과 함께 제대로 싸우려면 지금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았다.

    용은 또 하나의 무기와도 같았다. 상당한 훈련을 거치지 않으면 진짜 중요한 전투에는 써먹지 못한다.

    ‘뭐…… 스탯을 추가로 얻은 것만으로도 충분하긴 하지.’

    현석은 그렇게 생각하며 용을 타고 황궁으로 향했다.

    아직 관문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관문은 아마 상상보다 훨씬 위험할 것이다.

    * * *

    현석은 높은 언덕 위에 서서, 저 멀리 웅장하게 서 있는 황궁의 모습을 내려다봤다.

    황궁을 중심으로 거대한 도시가 세워져 있었다.

    도시는 텅 비어 있었다.

    지금까지의 패턴대로라면 원래 도시에 살던 시민들이 스켈레톤으로 변해 돌아다니고 있어야 하는데,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아니, 꼭 그런 건 아닌가?’

    도시 외곽에 스켈레톤들이 보였다. 그들은 현석의 존재를 눈치챘는지 꾸역꾸역 도시의 남쪽 문을 통해 나오고 있었다.

    그 수가 지금까지 현석이 처리한 모든 스켈레톤을 합한 것보다 많았다.

    물론 현석은 그들이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다. 현석은 저들이 이곳으로 다가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일단 뭉쳐서 오고 있으니 처리하기도 편할 것이다.

    예전의 현석이라면 달려들어서 검을 휘두르고 찔러서 저들을 없앴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저렇게 다수의 적을 단숨에 처리할 무기가 생겼으니까 말이다.

    결국 도시에 있던 모든 스켈레톤들이 빠져나와 현석이 있는 곳으로 오고 있었다.

    높은 언덕 위에서 보니 마치 개미떼가 우르르 몰려오는 듯했다.

    현석은 열심히 달려오는 스켈레톤들을 보다가 마력을 움직였다.

    현석 옆에 푸른빛으로 뒤덮인 거대한 용 한 마리가 나타났다.

    용을 부르는 방법은 용의 이름을 불러주거나 이렇게 특별한 방식으로 마력을 운용하면 된다.

    용의 이름을 부를 때는 상당히 신경을 써서 간절히 불러야 한다. 이름이 깃든 힘이 마력을 움직여 용을 불러내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현석은 굳이 그렇게 할 필요 없이 마력만 움직여 용을 불러낼 수 있었다.

    제국의 용기사들은 대부분 이름을 불러 용을 불러낸다. 그것이 훨씬 간편하고 신경 쓸 일이 없으니까.

    이렇게 현석처럼 마력을 통해 용을 불러낸 사람은 메겔루 정도가 다였다.

    어쨌든 현석에 의해 소환된 용이 언덕 위에 서서 온몸에 전격을 두르며 스켈레톤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현석은 용을 움직여 브레스를 준비했다.

    용이 입을 벌렸다. 그러자 온몸을 흐르던 전격이 그곳에 모이기 시작했다.

    빠지지지지직!

    전격의 구가 입안에 만들어졌다. 그 구는 사방의 전격을 흡수하며 점점 더 강해졌다.

    크기가 커지지는 않았다. 전격이 압축되고 또 압축되며 점점 더 강렬한 빛을 내뿜었다.

    그것이 최고조가 되었을 때, 폭포수처럼 벼락이 쏟아져 나갔다.

    꽈르르르르르르릉!

    새하얀 뇌룡이 세상을 휩쓸고 지나갔다. 그것은 달려오는 스켈레톤들을 남김없이 먹어치웠다.

    콰우우우우우!

    모든 스켈레톤을 단숨에 휩쓸고 지나간 벼락이 도시를 둘러싼 성벽을 그대로 직격했다.

    꽈아아앙!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하지만 성벽은 멀쩡했다.

    거대한 벼락이 성벽을 때리는 순간, 성벽 전체에 기이한 문양이 잠깐 빛을 발하고는 사라졌다.

    그 잠깐의 빛이 벼락을 완벽하게 막아낸 것이다.

    현석은 그걸 보고는 눈을 빛냈다.

    어느새 용은 다시 사라졌다. 스켈레톤을 모두 없애기 위해 나왔으니 역할은 다 한 셈이었다. 고작 브레스 한 방을 날리고 돌아가긴 했지만 말이다.

    “저 문양…….”

    현석은 성벽에 나타났던 문양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그건 마력패턴의 일종이었다.

    마력패턴을 성벽에 새겨 특정 조건이 발생할 때마다 그 패턴을 따라 마력이 흐르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저 성벽에 새겨진 마력패턴에는 외부의 공격을 막아내는 힘이 담겨있음이 분명했다.

    나중에 저 패턴도 한 번쯤 연구해 보면 좋을 것 같았다.

    어쨌든 그건 나중 일이고, 지금은 황궁으로 가야 했다. 이제 다 왔다.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

    “당연히 그냥 들어가게 두진 않겠지만.”

    현석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힘차게 걸음을 옮겼다.

    용기사를 처리한 후, 세 번의 적을 더 만났다. 하나하나 결코 쉽지 않았다.

    정말로 용기사보다 강한 놈들이 차례대로 나왔다.

    현석은 싸울 때마다 목숨을 걸어야 했다. 쓸 수 있는 수단은 다 썼다.

    그리고 결국 살아남아서 여기까지 왔다.

    적을 하나 처리할 때마다 뭔가 얻는 것이 있었다.

    일단 레벨이 많이 올랐다. 아마 이 황궁에서의 일을 마무리 하고 나면 200레벨을 넘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싸울 때마다 특별한 전리품을 얻을 수 있었다.

    모든 전리품이 싸우던 상대의 특별한 힘을 품은 물건이었다. 용기사를 없애고 얻은 메겔루의 검처럼 말이다.

    현석은 이제 와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왠지 황궁으로 가는 길이라는 이 던전은 자신의 성장을 돕기 위해 일부러 만든 것 같았다.

    만일 목숨 걸고 싸워 이겼던 그 적들이 한꺼번에 나타났다면 어땠을까?

    아마 무슨 짓을 어떻게 했어도 이기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곳에서 패배란 곧 죽음을 의미하니, 현석의 목숨도 딱 거기까지였을 것이다.

    한데 마치 현석을 조금씩 성장시키고 경험을 쌓게 해주겠다고 결심이라도 한 것처럼 적이 차례대로 등장했다.

    게다가 고맙게도 뒤로 갈수록 점점 더 적이 강해졌다.

    아마 저 황궁에는 지금까지 싸웠던 그 어떤 놈보다 강한 상대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예상컨대, 그 무지막지하게 강한 놈이 마지막 관문이 될 것이다.

    현석의 걸음이 점차 빨라졌다.

    그리고 이내 도시 안으로 들어갔다.

    * * *

    “이거…… 최근에는 일이 계속 꼬이기만 하는 것 같아.”

    칼슨은 짜증이 잔뜩 묻어나는 얼굴로 술잔을 기울였다.

    마지막으로 술을 입에 댄 것이 벌써 몇 년 전인지 모른다. 그동안은 굳이 술을 마실 일이 없었다.

    한데 지금은 술 없이는 잠을 잘 수 없을 지경이었다. 엄청난 스트레스가 쌓였다.

    칼슨은 독한 위스키를 거의 반 병 정도 비우고 나서야 술을 치웠다.

    “하아.”

    한숨을 내쉰 칼슨은 보고서를 들고 다시 읽어봤다.

    “벌써 열흘이 지났는데, 아직도 못 찾았다는 게 말이 돼? 설마 빠져나간 건 아니겠지?”

    그럴 리 없다. 모든 출구를 꽁꽁 틀어막았는데, 대체 어디로 빠져나간단 말인가.

    지난 열흘 동안 안으로 들어간 건 있어도 밖으로 나온 건 단 한 개도 없었다.

    그리고 계속 반복해서 수색작업을 하고 있었다.

    엠페러타워 안으로 들어간 건 생필품이었다. 그리고 추가 병력이었다.

    그렇게 반복해서 수색하고 또 수색했지만 엠페러타워를 싹 털어간 놈은 아직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계속 인력을 추가 투입하는 중이었다. 적이 은밀하고 민첩하면 수색하는 사람을 계속 피해다닐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애초에 그런 가능성을 없애버리려면 인력을 더 투입하면 된다.

    하지만 칼슨은 왠지 이번엔 그렇게 해도 그놈을 못 잡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정말 더러운 기분이었다. 이런 더러운 기분도 술을 입에 대지 않은 뒤로는 처음이었다.

    생각해보니 예전에 술을 마셨던 것도 이 더러운 기분을 잊기 위함이었던 것 같다.

    똑똑.

    칼슨은 노크 소리에 고개를 돌려 문을 쳐다봤다. 이곳은 회사의 사무실이었다.

    하지만 이곳, 렉스턴 에너지에서 칼슨이 무엇을 하건 견제할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칼슨은 술을 한 모금 더 꿀꺽 삼키고는 말했다.

    “들어와.”

    예상대로 들어온 사람은 비서였다.

    “퇴근시간이 훨씬 지났는데, 아직 안 갔나?”

    “저…… 이걸 한 번 확인해 보셔야 할 것 같아서 왔습니다.”

    “확인? 뭘 확인하는데?”

    “이 영상입니다.”

    비서는 황급히 칼슨에게 다가가 스마트패드를 내밀었다. 거기에는 영상 하나가 띄워져 있었다.

    칼슨은 손가락으로 영상을 툭 건드려 재생시켰다.

    그것은 고가도로를 찍은 영상이었다. 칼슨이 눈살을 찌푸렸다. 대체 도로는 왜 찍어서 보여준단 말인가.

    그러다가 문득 예전 자신이 했던 지시가 떠올랐다. 갑자기 술이 확 깼다.

    칼슨은 영상에 집중했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게다가 깜깜한 밤을 찍었으니 지나다니는 차도 거의 없었다.

    그 순간, 차 한 대가 나타났다. 그리고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미끄러졌다.

    “응?”

    칼슨은 순간 자신이 잘못 본 건 줄 알았다. 차가 미끄러지는 순간 그 앞에 누군가가 있는 것 같았다.

    “보셨습니까?”

    “설마…… 이거 사람인가?”

    “예. 다른 각도로 그 장면을 찍은 영상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예전 그곳에 무수한 감시카메라를 설치해 뒀기에 여러 방향과 각도에서 그 장면을 찍은 영상이 존재했다.

    비서가 틀어주는 몇 개의 영상을 확인한 칼슨이 눈을 빛내며 턱을 쓰다듬었다.

    “허공에서 갑자기 사람이 뚝 떨어진다라…… 공간이동 능력자가 아니라면…….”

    “저 자리에 뭔가가 있다는 뜻이겠지요.”

    비서가 칼슨의 말을 받아 그렇게 말했다.

    칼슨은 씨익 웃으며 비서에게 명령했다.

    “당장 준비해. 나도 저기에 간다. 머리 쓸 수 있는 놈이랑 감각 예민한 플레이어들 싹 모아.”

    “예!”

    비서는 오랜만에 올린 성과에 어깨를 활짝 펴고 크게 대답했다.

    * * *

    도시에 들어선 현석은 황궁을 향해 똑바로 걸어갔다.

    도시의 남문으로 들어가면 마차 열 대는 한꺼번에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넓은 도로가 나오는데, 그 도로를 따라 끝까지 걸어가면 황궁이 있었다.

    그 대로의 이름이 황궁대로였다.

    현석은 황궁대로를 따라 걸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역시 아무도 없군.’

    도시는 텅 비어 있었다. 도시가 이 모양인데, 황궁이라고 별 다를 게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황궁도 텅 비어있을지 모른다. 아니, 십중팔구는 그럴 것이다.

    아니면 황궁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스켈레톤으로 변해 현석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또 용을 불러내서 벼락 한 방 날려줘야 할 수도 있었다.

    현석은 그런 생각을 하며 황궁대로를 따라 걸었다. 그리고 이내 황궁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저 사람이 마지막 관문인가보네.”

    황궁의 정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그리고 그 문 앞에 스켈레톤 한 마리가 서 있었다.

    검과 방패를 든 스켈레톤이었는데, 굉장히 질이 좋아 보이는 가죽갑옷까지 입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그 스켈레톤이 풍기는 분위기가 정말로 무시무시했다.

    스켈레톤은 움직이지 않고 현석을 향해 검을 겨눴다.

    현석은 검을 뽑으며 저벅저벅 걸어갔다.

    온몸이 찌릿찌릿할 정도의 위기감과 긴장감이 왈칵 밀려왔다.

    어느새 현석의 입에 웃음이 떠올라 있었다.

    < 황궁으로 가는 길 4 > 끝

    ⓒ 김강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