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눈 뜨고 레벨업-163화 (163/326)

< 엠페러 타워 4 >

꽈아아앙!

강력한 폭발이 일어났다. 건물이 흔들리며 돌가루가 우수수 떨어질 정도로 강력한 폭발이었다.

“무슨 일이야!”

“어디야!”

“잡아!”

수십 명의 플레이어들이 폭발음이 울린 쪽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소리의 진원지를 파악했기에 그곳을 중심으로 넓은 포위망까지 구축했다.

그러는 사이 반대쪽에서 또 폭발이 일어났다.

꽈앙!

건물이 우르르 뒤흔들렸다. 그와 동시에 동굴 입구 쪽에서도 폭발이 일어났다.

꽈아아앙!

동굴의 울림 때문에 훨씬 큰 소리가 울렸다.

여기저기서 플레이어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폭발한 곳을 모두 포위하기에는 수가 모자랐다. 결국 그저 달려갈 수밖에 없었다.

적이 있으면 그냥 싸워야 한다.

하지만 달려간 누구도 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누군가가 폭탄만 던지고 다시 숨은 것 같았다.

다들 우왕좌왕하며 숨은 적을 찾아다녔다.

그런 소란이 엠페러타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 현석은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목표로 한 엘리베이터에 들어가 천장을 뜯고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현석은 엠페러타워 곳곳을 돌아다니며 아공간 아티팩트를 뜯어냈다. 그러면서 중간 중간 도청 아티팩트와 마력감지 아티팩트를 심어뒀다.

그 아티팩트들은 사실 두 가지 기능을 가진 아이템이었다.

하나는 도청이나 마력감지의 능력이었다. 주변의 소리나 마력을 포착해, 현석이 가진 무지갯빛 펜 모양의 아티팩트로 계속 전송하는 기능이 있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가 바로 자폭기능이었다.

버튼을 누르면 그동안 모은 마력을 일시에 폭발시켜 주변을 싹 날려버리는 기능이었다.

물론 폭발력이 엄청나게 대단하진 않다. 하지만 증거를 인멸할 수 있고, 또, 때에 따라서는 지금 한 것처럼 이용할 수 있기에 상당히 유용한 기능이었다.

이 아티팩트는 현석이 따로 만든 것이었다. 마력패턴을 끊임없이 연구하고 수련하다가 우연히 만든 것을 여러 번 개량해서 완성시킨 아티팩트였다.

그동안 수련을 겸해서 잔뜩 만들기만 했지 써먹을 일이 없었는데, 이번 기회에 만든 모든 물량을 싹 털어버렸다.

그리고 덕분에 이렇게 쉽게 빠져나올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말이다.

현석은 엘리베이터를 움직이는 케이블을 잡고 위로 계속해서 올라갔다.

아마 시간은 제법 걸릴 것 같았다.

아직 호텔에 남겨둔 마정석의 마력이 남아있을 테니 제 시간에 돌아가기만 하면 정말 아무 의심도 받지 않고 하룻밤 호텔에서 쉬다가 밖으로 나올 수 있을 것이다.

현석이 올라가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그렇게 얼마나 올라갔을까. 현석은 결국 꼭대기에 도착했다. 엘리베이터 입구가 보였다.

도착했다고 무작정 문을 열어선 안 된다. 기척을 충분히 살펴야 한다.

시간은 이른 아침이었기에 아차하면 오가는 사람들의 눈에 띌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 여긴 아무도 없는 듯했다.

현석은 엘리베이터 문을 열고 재빨리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서둘러 문을 닫고 근처에 몸을 숨겼다.

이곳은 공원의 화장실 근처였다.

화장실 근처에 있는 제법 큰 조각이었는데, 거기에 지하로 가는 엘리베이터 입구가 만들어져 있었다.

물론 밖에서 보기에는 전혀 티가 나지 않아서 거기에 엘리베이터가 있는지 알 수 있는 사람은 없을 듯했다.

더구나 이 엘리베이터를 작동하려면 뭔가 특별한 키가 있어야 하는 것 같았다.

현석이야 안쪽에서 힘으로 열고 나왔지만 말이다.

아직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인적이 없었다. 현석은 자리를 이동했다. 조금 더 가니 산책로가 나타났다.

수많은 사람들이 조깅을 하고 있었다.

이제 보니 이른 아침이라 사람이 없는 게 아니라 애초에 인적이 없는 장소였던 모양이다.

현석은 조깅하는 사람들을 보며 근처 벤치로 가서 앉았다.

벤치에 앉아 신문을 보거나 빵을 먹는 사람들도 종종 보였기에 현석이 거기 있다고 해서 위화감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음?’

현석은 갑자기 들려오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봤다. 헬기 한 대가 배회하고 있었다.

한데 느낌이 묘했다. 척 보니 아까 그 화장실 근처를 감시하기 위해 나온 것 같았다.

사방에서 플레이어들의 마력이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현석은 자연스럽게 일어나 그 자리를 피했다. 이제 호텔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잠시 후, 현석이 나왔던 엘리베이터 근처를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감시하기 시작했다.

‘아슬아슬한 건가?’

어쩌면 호텔 쪽은 좀 늦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감시를 확대하기 시작하면 호텔에서 타겟이 되었던 자신을 가장 먼저 확인하지 않을까?

‘마정석이랑 마력패턴은 못 찾았으면 좋겠는데…….’

무슨 대단한 비밀이 있는 건 아니었고, 또 마정석을 발견한다고 해서 마력패턴을 쉽게 알아보거나 찾아낼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왠지 꺼림칙했다.

현석은 공원에서 나가 택시를 탔다. 그리고 J호텔로 향했다. 이제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방으로 돌아갈 일만 남았다.

그리고 그건 별로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쪽의 감시자가 그대로 남아있을 리가 없으니 말이다.

공원은 J호텔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10분만에 호텔에 도착한 현석은 감시자들부터 확인했다.

역시나 절반 이하로 확 줄어 있었다. 그리고 방을 아직도 확인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거 타이밍이 너무 잘 맞으니까 슬슬 무서워지는데?’

현석이 빠르게 이동해 방으로 숨어들자마자 감시자들이 방을 확인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감시 인력이 대폭 줄어들자, 더 이상 타겟을 유지하는 게 의미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 호텔의 손님 중에 타겟이 된 사람은 현석 하나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 모든 타겟을 거의 동시에 확인하고 있었다.

현석은 아예 저들이 확인하기 편하게 해주기로 했다.

방에 들어와 일단 마정석부터 챙기고 마력패턴을 깔끔하게 지웠다. 물론 마력의 흔적을 지우는 것이기에 겉으로 보이는 건 아무 변화가 없었다.

그리고 편한 옷으로 얼른 갈아입은 다음 짐을 챙겨서 문을 열고 나갔다.

마침 맞은 편에서 감시하던 자들이 현석의 방을 확인하려고 막 다가와 문에 귀를 대려던 찰나였는데, 문이 벌컥 열리니 다들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났다.

설마 이렇게 타이밍 좋게 문이 열릴 줄은 그들도 전혀 예상치 못했다.

다들 멈칫거리며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있을 때, 현석이 그들을 보며 빙긋 웃으며 손을 슬쩍 흔들어 주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가벼운 인사와 함께 가방을 어깨에 둘러메고 복도를 걸어가는 현석의 뒷모습을 그들이 멍하니 바라봤다.

그러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몇 명은 현석이 있던 방에, 그리고 나머지는 현석의 뒤를 따랐다.

왠지 필요 없는 짓인 것 같지만 그래도 일단 목표로 잡혔던 사람이니 메뉴얼에 충실히 따를 의무가 있었다.

* * *

칼슨은 골치 아픈 표정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두통이 심해지고 있었다.

“그래서…… 결국 못 잡았다고? 뜯어간 금고 아티팩트도 못 찾고?”

비서는 고개만 푹 숙인 채 대답을 하지 못했다.

따지고 보면 그의 잘못은 아니었다. 그는 그저 보고를 하고 있을 뿐이었다.

말만 전하는 건데 왜 이런 죄책감이 든단 말인가. 그리고 왜 이렇게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든단 말인가.

칼슨은 얼굴을 비비며 물었다.

“내부자 단속은 어떻게 되고 있지? 아니, 당시 보안 상황이 기록되어 있나?”

“아! 예! 여, 여기 있습니다.”

비서가 기다렸다는 듯이 얼른 서류를 내밀었다.

칼슨은 그것을 받아 찬찬히 확인했다. 그의 표정이 점점 굳어갔다. 그러더니 일그러지기 시작했고, 보고서를 모두 읽었을 때는 끝내 화가 머리끝까지 난 표정으로 그것을 박박 찢어버렸다.

“이따위로…… 보안이 엉망이었다고?”

“그, 그게 그쪽에는 워낙 출입 자체가 어려운 곳이고, 거기에 대해 아는 사람도 없는지라…….”

“그래서 그 결과가 이건가?”

비서는 억울했다. 보안을 담당한 건 자신이 아니지 않은가. 보안을 담당하던 놈은 이미 죽고 없었다.

일이 여기저기서 터지는 바람에 대체자를 선정하지 않은 칼슨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얘기를 지금 해선 안 된다. 죽기는 싫었으니까.

칼슨은 벌떡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벽 전체가 유리로 이루어진 창이었다. 창이라기 보다는 투명한 벽이었다.

칼슨은 유리벽을 통해 맨하탄의 전경을 가만히 바라봤다.

“후우우우우.”

길게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썼다. 그러면서 머리를 차갑게 식혔다.

지금은 그 누구보다 냉정한 두되로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지를 찾아내는 게 급선무였다.

이럴 때는 지금처럼 맨하탄의 전경을 내려다보는 것이 가장 좋았다. 언젠가 저 모든 것이 자신의 손아귀에 들어온다는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나아졌으니까.

‘하지만 이런 식으로는 안 돼. 다 늙어서 손에 넣어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어.’

아무리 실수를 많이 해도 언젠가는 세상 모든 것을 손아귀에 넣게 될 것이다.

렉스턴 에너지가 가진 힘은 그 정도로 대단했다. 또한 잠재력도 어마어마했다.

하지만 칼슨은 한 살이라도 더 젊을 때 모든 것을 이뤄내고 싶었다.

마음을 억지로 가라앉힌 칼슨이 다시 돌아서서 비서를 바라봤다.

“피라밋 쪽은?”

비서가 갑자기 식은땀을 뻘뻘 흘리기 시작했다. 딱 그것만으로도 상황이 녹록치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또 뭐가 잘못된 건가? 고작 하루 사이에?”

어제까지만 해도 순조롭다는 보고를 받았다. 그래서 언제 한 번 더 흔들어줄지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

한데 고작 하루 사이에, 아니, 하루도 채 되지 않아서 왜 상황이 달라진단 말인가.

“블러디퀸을 암중에서 호위하던 놈들이 몽땅 전력으로 투입되었습니다.”

“블러디퀸의 호위들이?”

칼슨은 그 말에 눈을 번득였다. 그렇다면 이건 기회 아닌가. 피라밋 암시장에서 블러디퀸을 제거할 기회 말이다.

‘하지만 그냥 단순히 죽어선 안 돼.’

방법이야 많지만 머미킹이 블러디퀸을 죽인 걸로 증거 조작을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것이다.

아마 블러디퀸의 일족은 마지막 한 놈이 소멸할 때까지 머미킹을 죽이려 덤벼들 것이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피라밋이 정리되는 거지.’

거기까지 생각하니 또 골치가 아파왔다. 지금 피라밋을 정리해서 뭐하겠는가. 엠페러타워를 오픈할 수가 없는데.

지금 피라밋이 정리되면 흑시가 엄청난 반사이익을 얻게 될 것이다.

벌써부터 피라밋의 분란 때문에 사방의 암시장들이 상당한 반사이익을 얻고 있었다.

칼슨은 속이 쓰렸다. 그 모든 반사이익이 원래는 엠페러타워를 위해 준비한 것이었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흩어져 버리다니 말이다.

“끄응.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니…… 정말 미치겠군. 타워는 언제쯤 오픈이 가능하지?”

“아무래도 물건을 다시 구해야 하기 때문에…….”

“비용은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 전 세계의 암시장과 던전관리센터를 싹슬이하는 한이 있어도 최대한 빨리 구해와.”

비서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건설 작업도 보강이 필요합니다.”

칼슨의 표정이 구겨졌다.

“보강?”

“침입자가 여기저기 터트린 폭탄 때문에 안전성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걸 완벽히 해결하지 않으면 결국 문제가 생길 겁니다.”

칼슨의 표정이 굳었다.

그건 절대 있어선 안 될 일이었다. 엠페러타워는 플레이어의 지하세계를 장악해 플레이어의 황제가 되겠다는 의미를 담은 상징적인 건축물이었다.

한데 그런 중요한 상징을 어설프게 지을 수는 없지 않은가.

“후우. 그것부터 최대한 빨리 진행해. 완벽하게 안전이 확인되면 그때 물건 구하고.”

“예!”

“그리고 피라밋 쪽은…… 상황 잘 유지해. 어느 한쪽이 결딴나서 피라밋이 흔들리면 곤란하니까. 무슨 수를 써서든 엠페러타워가 오픈할 때까지 버티게 해.”

“알겠습니다.”

비서는 즉시 대답하고 물러갔다. 이제 한시름 놓았다. 아마 안전 점검을 하고 보강작업을 하는 데 제법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남은 시간과 인력을 피라밋 쪽으로 투입하면 된다.

차근차근 세밀하게 작업을 진행해서 나중에 한 번에 터트릴 수 있도록 치밀한 계획을 세울 것이다.

비서가 물러나자 칼슨이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의자에 등을 기댔다.

그리고 의자를 빙글 돌려 창밖을 내다봤다.

맨하탄 전경이 그의 눈에 들어와 박혔다.

< 엠페러 타워 4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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