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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161화 (161/326)
  • < 엠페러 타워 2 >

    현석은 방에 들어가 일부러 만들어 온 짐을 풀었다.

    이런 짐 하나 만드는 건 일도 아니었다. 현석의 아공간에는 수십 개의 컨테이너 박스가 들어 있었으니까.

    열 개 정도는 텅 빈 박스였는데, 아마 이번에 그 열 개의 빈 컨테이너 박스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현석은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 다음, 모든 감각을 마력과 청각에 집중했다.

    이번 계획에서 가장 중요한 건 감시의 눈길을 피하는 것이다. 아마 이 방에도 감시 카메라가 장치되어 있을 확률이 높았다.

    현석의 예민한 청력은 감시카메라가 작동하는 미세한 소리까지 잡아낼 수 있었다. 물론 마력을 이용해 청력을 증폭할 수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또한 무수한 소리들 사이에서 정확히 원하는 소리를 잡아낼 수 있는 능력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회귀 전에 현석은 오감을 총동원해서 싸웠다.

    그렇기에 이렇게 원하는 소리만 잡아내는 것 외에 냄새를 통해 상황을 파악하는 것도 가능했다.

    물론 지금은 소리와 마력만 감지 중이었다.

    이 방을 감시하는 감시카메라는 없었다. 애초에 그럴 생각 자체가 없는 모양이었다.

    ‘다른 방식으로 감시하겠다 이건데…….’

    호텔에 들어온 순간 감시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꽂히는 걸 느꼈다. 그러니 어떤 방식으로든 감시 중일 것이다.

    현석은 더욱 집중했다.

    방음이 제법 철저히 된 방이었기에 옆방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지 확인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현석은 마력까지 이용해 그것을 가능케 했다. 마력을 이용해 청력을 증폭했고, 또 그로인해 마력을 통해 음파의 일부를 잡아낼 수 있었다.

    현석은 옆방과 위아래 층의 소리를 확인했다. 역시 모든 곳에 감시하는 자들이 있었다. 이쪽의 소리를 수집하는 중이었다.

    간단히 대화만 들어도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저들은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할 것이다. 저런 걸 무력화 시키는 방법이야 얼마든지 있으니까.

    현석은 마력을 뽑아내 사방 벽을 얇은 마력의 막으로 싹 발라 버렸다.

    아마 저들은 더 이상 새로운 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다.

    그 작업을 마무리한 현석은 눈을 뜨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창가로 다가갔다.

    이 방을 감시할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원거리에서 창문을 통해 확인하는 것이다.

    창가에 선 현석은 근처 빌딩에서 이쪽을 감시하는 자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정말 많군.’

    이 창을 주시하는 자들이 스무 명이 넘었다. 다들 각자의 장비를 이용해서 감시 중이었다.

    몇몇에게 마력이 움직이는 게 느껴지는 걸로 봐서 아티팩트를 쓰는 자들도 있는 듯했다.

    아마 이 안을 감시하는 아티팩트도 제대로 된 정보를 얻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방금 현석이 취한 조치 때문이다.

    현석은 마력의 막으로 방 전체를 감쌌다.

    물론 현석이 이 방에서 나가면 사라질 존재이긴 하지만, 어쨌든 지금 당장은 이 방에서 일어나는 그 어떤 정보도 외부로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있었다.

    정보를 그냥 차단하는 게 아니라, 마력의 막이 생길 당시의 정보만 계속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마력을 이용한 정보의 왜곡이었다.

    현석은 품에서 마정석 하나를 꺼냈다.

    마력의 막을 유지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했다. 마정석을 이용해 계속 마력을 공급해 주면 된다.

    물론 그냥 마정석만 갖다 놓는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다. 특별한 장치가 필요했다.

    지금도 마정석을 이용한 장치들이 제법 나오고 있긴 하지만 효율이 너무 떨어지기에 당장은 정제 후 뽑아낼 수 있는 에너지 쪽에 이용이나 연구가 편중되어 있었다.

    하지만 미래에는 분명히 마정석을 이용해 마력을 유지하거나 특별한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장치가 나올 것이다.

    현석도 그런 장치를 많이 봐왔고, 또 많이 써봤다.

    하지만 그걸 만들 수는 없었다.

    지금 현석이 하려는 것은 특별한 마력패턴을 이용하는 방법이었다.

    현석이 경험적으로 터득한 비법이기도 했다.

    현석은 마정석을 방 한가운데 내려놓았다. 이 정도 크기의 마정석이면 이 방을 감싼 마력의 막을 6시간 정도 유지할 수 있다.

    현석은 마정석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마력을 천천히 컨트롤하기 시작했다.

    마정석 주변에 흩어진 마력이 복잡한 패턴을 그리며 안착했다.

    그러자 마정석과 방안을 감싼 마력의 막이 쩍 달라붙었다.

    이제 웬만한 힘으로 이 마정석을 건드려도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이 마정석을 움직이려면 마력패턴을 분석해 해체시키거나, 아니면 마정석에 담긴 마력보다 더 큰 힘을 쓰는 수밖에 없었다.

    현석은 마정석이 패턴에 안착한 걸 확인한 다음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이 방을 빠져나갈 시간이 되었다.

    굳이 J호텔에 머문 이유는 이곳 지하에 엠페러타워로 가는 입구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자신이 이 방에 있다는 사실만 감시자들이 믿게 만들면 그 뒤는 무슨 일을 하든 상관없었다.

    현석은 방문으로 다가갔다. 일단 복도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해야 하고, 복도를 비추는 CCTV도 피해야 한다.

    복도를 사이에 두고 마주한 방에도 감시자가 있었다. 정말 철두철미한 놈들이었다.

    문이 열리고 닫히는 모습이 보여선 안 된다.

    현석은 마력을 단단히 뭉쳐 문밖으로 내보냈다. 마력패턴을 잘 이용하면 아주 유용한 일을 할 수 있다.

    마주한 방문에 달린 렌즈를 통해 이쪽 방문을 감시하고 있었다.

    현석은 세 개의 마력 덩어리를 날려 보냈다.

    하나는 마주한 문의 렌즈에, 나머지 두 개는 이쪽을 감시하는 CCTV의 렌즈로 날아갔다.

    아주 순간적으로 마력 덩어리들이 패턴 하나를 만들었다.

    그리고 정확히 그 순간 현석이 문을 열고 나가 복도를 지나쳐 CCTV의 사각지대로 들어갔다.

    1초 남짓한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현석에게는 아주 충분한 시간이었다.

    아마 감시하던 자들은 자신의 시야가 잠깐 깜깜해졌다는 사실도 모를 것이다.

    눈을 깜빡인 것과 비슷한 효과였으니까.

    또한 CCTV도 잠깐 노이즈가 잔뜩 끼었겠지만 그걸 알아차릴 수는 없을 것이다.

    나중에 녹화한 영상을 확인하지 않는 이상 말이다.

    어쨌든 현석은 아주 간단히 상대의 감시망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즉시 비상계단으로 나갔다.

    엘리베이터 앞에는 CCTV가 있었다. 하지만 비상계단은 무방비상태였다.

    이곳에서 주의할 건 동작감지 센서를 이용해 켜지는 전등이었다.

    그리고 현석은 그런 센서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갖고 있었다.

    현석은 빠르게 계단을 타고 아래로 쭉쭉 내려갔다.

    계단은 지하 주차장까지 이어져 있었는데, 비상계단의 문은 계단 쪽에서는 열 수 없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물론 그런 것 역시 현석에게는 아무 소용 없었다.

    현석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주차장으로 나갔다.

    주차장에는 수많은 차들이 주차되어 있었는데, 현석은 그 차들을 이용해 CCTV의 사각으로만 이동했다.

    엠페러타워의 입구는 아주 교묘하게 위장되어 있었다. 벽에 거의 붙다시피한 기둥에 만들어져 있었는데, 그 기둥 양옆으로 큰 차가 주차되어 있기에 아무도 근처에 다가갈 일이 없는 곳이었다.

    현석은 최대한 CCTV를 조심하며 거기까지 달려갔다. 마력을 이용해 CCTV에 노이즈를 만드는 것까지 거침없이 이용했다.

    아마 이곳을 제대로 감시하고 있는 인력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더더욱 잠깐씩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노이즈에 신경 쓸 일은 없을 것이다.

    현석은 그렇게 입구 앞에 섰다. 입구는 기둥에 붙어 있었는데, 겉보기에는 기둥과 똑같았다. 교묘하게 도색을 해서 그냥 기둥과 구분이 가지 않았다.

    게다가 엘리베이터 내부도 기둥과 똑같은 색으로 칠해서 설사 문이 열린다 하더라도 거의 구분이 가지 않았다.

    물론 나중에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플레이어들이 이 근처를 지키고 감시할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지만 말이다.

    어쨌든 엠페러타워로 들어가는 입구는 엘리베이터였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깊은 곳으로 내려가야 엠페러타워에 들어갈 수 있었다.

    당연히 현석은 엘리베이터를 탈 생각이 전혀 없었다.

    현석은 강제로 문을 열었다. 아래로 뻥 뚫린 구멍이 보였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를 움직이는 케이블이 보였다.

    케이블을 잡은 현석은 다리와 발을 이용해 케이블에 몸을 고정시킨 다음, 문을 다시 닫았다. 최대한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게 중요했다.

    문을 닫은 현석은 망설임 없이 아래로 뛰어내렸다.

    슈우우우!

    거친 바람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아래로 쭉 떨어져 내리던 현석은 케이블을 꽉꽉 잡으며 떨어지는 속도를 줄여 나갔다.

    착지할 때 소리가 나지 않게 하려면 최대한 속도를 줄여야만 했다.

    턱!

    가벼운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지붕에 착지한 현석은 눈을 감고 주변 기척을 살폈다.

    현석의 경우 시각을 차단하는 편이 다른 감각, 특히 마력에 대한 감각을 예리하게 다듬을 수 있어서 훨씬 빠르고 정확하게 주변 기척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쨌든 엘리베이터에는 아무도 타고 있지 않았다. 또한 근처에 인기척이 전혀 없었다.

    심지어 감시를 위한 CCTV도 없었다.

    아주 멀리서 한창 공사중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듯한 소음이 좀 들릴 뿐이었다.

    현석은 엘리베이터 천장에 있는 뚜껑을 열고 아래로 내려갔다. 다시 뚜껑을 닫은 현석은 엘리베이터 문을 작동시켜 열고는 유유히 밖으로 나갔다.

    거대한 공터가 보였다. 지하를 모조리 파내서 엄청나게 거대한 공터를 만든 것이다.

    그리고 그 공터 끝에 건물이 보였다. 아니, 건물처럼 만든 벽이 보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좀 떨어진 곳에서부터 커다란 동굴이 일정한 간격으로 뚫려 있었다.

    공사 소음은 건물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동굴은 다른 엠페러타워로 이동하는 통로였다.

    현석은 빠르게 움직여 일단 몸을 감췄다. 공터이긴 했지만 숨을 곳은 제법 많았다.

    공사 자재들이 곳곳에 산처럼 쌓여 있었으니까.

    현석은 몸을 감춘 채 건물 안쪽을 살펴봤다. 특별한 건 없는 듯했다.

    그저 바삐 움직이는 일꾼들만 보였다.

    ‘한데 일꾼들 모습이 왠지…….’

    왠지 그냥 평범한 사람들 같지가 않았다. 굳이 확인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저들은 불법 체류자임이 분명했다.

    아마 몇 가지 미끼를 던져 저들을 모았을 것이다. 비밀을 지켜야 하는 렉스턴 에너지 입장에서는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선택이었다.

    애초에 도덕성과는 거리가 먼 자들이었으니까.

    저들의 미래가 너무 뻔히 보였지만 지금은 어떻게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아마 현석이 저들을 탈출시켜 준다고 해도 저들이 버티고 가지 않을 확률이 높았다.

    지금 일하는 모습을 보니 억지로 하는 게 아니었다. 미끼의 효력이 다하기 전까지 저들은 저럴 것이다.

    어쨌든 그래서 그런지 감시하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현석은 건물 안으로 스며들어갔다. 감시자도 별로 없고, 다들 일하느라 바쁘니 현석의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건물에는 별다른 특별할 게 없었다. 보통 사람이 본다면 분명히 그렇게 여기고 다른 데로 갈 것이다.

    하지만 현석은 이 안에 이미 암시장을 채울 물자가 준비되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어쩌면…… 렉스턴 에너지의 창고로 쓰던 장소를 암시장으로 개조하는 중일 수도 있겠어.’

    그런 생각이 들 법도 한 게, 건물의 가장 깊은 곳, 그러니까 진짜 벽과 건물이 맞닿는 곳에 거대한 금고가 있었다.

    물론 그냥 보기에는 건물 깊은 곳의 벽이었다. 그것도 돌로 만들어진 거대한 벽이었다.

    하지만 현석이 보기에 그곳은 그냥 벽이 아니라 특별한 아티팩트가 숨겨진 벽이었다.

    그것도 그냥 아티팩트가 아닌 아공간 아티팩트였다. 아주 복잡한 마력패턴으로 잠긴 아공간 말이다.

    ‘이걸…… 해체할 수 있을까?’

    현석은 눈을 빛내며 벽을 쓰다듬었다. 주변에 아무도 없었기에 굳이 숨거나 조심할 필요도 없었다.

    겉으로 드러난 금고가 아니니 지키는 사람도 없었다. 아마 여기 금고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렉스턴 에너지를 통틀어 몇 안 될 것이 분명했다.

    아공간을 해체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거기에 보안패턴까지 첨가되어 있으니 더더욱 해체가 어려웠다.

    사실 현석은 아직도 아공간을 완벽하게 해체하는 데에 성공하지 못했다.

    어렴풋이 가능성이 보이긴 하는데, 아직 그것을 완벽하게 잡아내지 못했다.

    그러니 이 아티팩트를 해체해서 안에 든 물건들을 싹 쓸어가는 건 지금 당장은 불가능했다.

    현석은 가만히 벽을 쓰다듬으며 마력 패턴을 파악하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에 눈을 빛냈다.

    ‘굳이 아공간을 해체할 필요가 있을까?’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는 현석의 눈이 별처럼 반짝였다.

    < 엠페러 타워 2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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