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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159화 (159/326)
  • < 머미킹 2 >

    “이것이 그동안 조사한 모든 것입니다.”

    양동욱이 내민 서류를 받아든 현석은 그것을 찬찬히 살폈다.

    확실히 양동욱의 능력이 뛰어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벌써 암시장이 세워질 위치를 모두 파악한 걸 보면 말이다.

    엠페러타워는 지하로 내려간 탑이었다. 그리고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였다.

    그 여러 개의 지하탑이 하나로 이어져 있어서 마치 지하 왕국을 새로 건설한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거대한 규모를 자랑했다.

    총 15개의 타워가 지하 깊은 곳을 통해 이어져 있었는데, 양동욱은 그 중에서 무려 일곱 군데를 알아냈다.

    물론 현석에게는 필요 없는 정보이긴 했다. 15개 타워의 위치를 모두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밖에 나머지 작은 정보들은 현석이 보기에도 제법 유용한 것들이 몇 가지 있었다.

    현석은 그 모든 정보를 머릿속에 입력한 다음 서류를 양동욱에게 돌려줬다.

    “피라밋 쪽은?”

    “도착했답니다.”

    현석의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맴돌았다. 반면 양동욱은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과연…… 괜찮을까요? 그분 스타일 상…… 이번 일에는 왠지 잘 안 맞을 것 같은데…….”

    임형석은 무조건 돌진하는 스타일이다. 벽이 있으면 벽을 부수고 바위가 있으면 바위를 부숴버리고 지나가는 사람잉었다.

    하지만 이번 일은 머미킹을 그런 식으로 박살 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재봉인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함부로 박살 냈다간 큰일 나는 것이다.

    게다가 양측 세력으로 나뉘어 세력다툼을 하고 있는 상황인데, 싸움이 끝나면 상대측 세력을 끌어안아야만 한다.

    이런 여러 가지 복잡한 상황이 얽혀있는데 과연 임형석이 그걸 잘 해결할 수 있을까?

    양동욱은 아무리 생각해도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고개가 좌우로 움직였다.

    “착각하지 마라. 일을 해결하는 건 블러디퀸이니까.”

    “아…….”

    양동욱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너무 혼자 모든 일의 중심에 있다 보니 무조건 자신이 나서서 해결해야 하는 버릇이라도 든 모양이었다.

    맞다. 그쪽의 일은 블러디퀸과 웨인이 알아서 할 것이다. 임형석과 진영관은 그저 도움을 줄 뿐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임형석이라는 카드는 정말 든든한 힘이 될 것이 분명했다.

    ‘과연 얼마나 힘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현실적인 힘으로 따지면 총을 든 놈이 최고다. 물론 임형석이 총 든 사람한테 당할 것 같진 않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거야 두고 보면 될 일이다. 이제 남은 건 현석이었다.

    “그럼 이제…… 어쩌시겠습니까?”

    양동욱은 하나마나한 질문을 했다. 뭘 어쩌겠는가. 당연히 미국으로 날아가겠지.

    “이 엠페러타워가 만들어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생각해봤나?”

    “글쎄요. 일단…… 암시장의 흐름이 바뀌겠지요.”

    엠페러타워의 규모를 생각하면 역대 최고의 암시장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놈들은 왜 암시장을 만든 걸까요? 렉스턴 에너지 정도면 그냥 합법적인 시장을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은데…….”

    현석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왜 그런지는 알아서 생각해봐. 그리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도 생각해보고.”

    양동욱은 황당한 표정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하지만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하긴 해야 할 일이었다.

    엠페러타워가 성장하면 렉스턴 에너지의 힘이 될 것이다. 그리고 렉스턴 에너지가 그런 엠페러타워를 세상을 위해 운영할 리 없었다.

    양동욱은 품에서 여권을 꺼내 내밀었다.

    “이번에도 따로 준비했습니다. 그 쪽지에 있는 연락처로 연락하시면 변장하는 데 도움을 줄 겁니다.”

    현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여권을 받았다. 그리고 여권 사이에 끼어있는 쪽지를 확인했다. 낯익은 전화번호 하나가 적혀 있었다.

    예전에도 이용한 적 있는 사람의 번호였다.

    미국에 갈 때도, 또 이집트에 갈 때도 이 사람을 이용했다. 아주 믿을 만한 실력자였다.

    여권과 연락처를 챙긴 현석이 막 생각났다는 듯 양동욱을 보며 말했다.

    “메인퀘스트, 잘 지켜봐.”

    “예. 안 그래도 잘 지켜보고 있습니다. 성장속도가 아주 엄청난 거 같던데요?”

    그리고 그들이 가져오는 물건들로 인해 회사도 승승장구 하고 있는 중이고 말이다.

    “그래서 아주 아낌없이 지원하는 중입니다.”

    “보안유지 철저히 하고.”

    “아주 철통보안 유지하고 있으니까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렉스턴 에너지에서 노리는 장소라는 걸 아는데 어떻게 신경을 안 쓰겠습니까?”

    현석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슬슬 미국으로 또 움직여야 할 시간이 되었다.

    현석은 양동욱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어주고는 밖으로 나갔다.

    일단 얼굴부터 바꿔야 한다. 그리고 미국으로 갈 것이다. 물론 비행기를 탈 생각은 없었다.

    이제 슬슬 아르포르 기사단이 있는 그 투명 던전을 이용해도 될 테니까.

    마음을 대변하듯 현석의 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 * *

    임형석은 이집트로 가자마자 자신을 반기는 블러드퀸의 모습에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얼굴은 웃고 있는 게 분명한데, 눈빛은 그게 아니라고 악을 쓰는 것 같았다.

    블러드퀸이 바라볼 때마다 뭔가 따끔따끔한 기운이 피부를 계속 찌르는 것 같았다.

    ‘내가 뭐 잘못한 게 있었나?’

    임형석은 속으로 그렇게 고민해 봤지만 딱히 답을 내릴 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한 게 없었으니까.

    그래서 아주 반갑게 인사를 해 주었다.

    “제법 오랜만이네. 그렇지?”

    블러드퀸의 표정이 잠시 일그러졌다가 원래의 미소를 되찾았다.

    “그러게요. 정말…… 오랜만이네요. 죽이고 싶을 정도로.”

    “죽이다니. 그런 섬뜩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면 못쓰지. 하하하.”

    임형석과 블러드퀸의 대화는 계속 그런 식으로 이어졌다.

    그러니 옆에서 그 얘기를 듣고 있는 진영관만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그나마 모든 말을 다 알아듣지 못한다는 점이 다행이었다. 그는 아직 한국어를 한창 공부하는 중이었다.

    물론 며칠 안 됐으니 실력이 바닥인 건 너무나 당연하고 말이다.

    그래도 제법 재능이 있는지 웬만한 말은 곧잘 알아들었다. 지금 임형석과 블러디퀸 사이의 대화는 말을 알아들었다기보다는 분위기를 파악했다는 게 더 맞지만 말이다.

    임형석과 블러디퀸이 계속 그런 말을 주고받으며 걸어가기 시작했다.

    진영관은 조심스럽게 그 뒤를 따르며 옆에 있는 웨인에게 물었다.

    “저 두 분…… 괜찮을까요?”

    “화해의 과정입니다.”

    웨인의 말에 진영관은 그의 얼굴을 잠시동안 멍하니 바라봤다.

    ‘그건 아닌 거 같은데…….’

    물론 생각을 밖으로 내뱉지는 못했다. 대신 훨씬 더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질문을 했다.

    “이제 우리가 뭘 하면 됩니까?”

    “한 분은 여왕을 지켜주시고, 다른 한 분은 절 도와 싸우시면 됩니다.”

    진영관이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거야 얼마든지 할 자신이 있었다.

    ‘보아하니…… 여왕을 지키는 건 저 형님 몫이겠군.’

    여전히 살벌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주고받으며 걸어가는 두 사람을 보고 있으니 왠지 묘하게 어울리는 것 같았다.

    웨인이 진영관을 바라보며 물었다.

    “싸움은 좀 하십니까?”

    “웬만큼 합니다.”

    “상대는 총을 들고 있습니다. 혹은 플레이어이거나.”

    진영관이 씨익 웃었다.

    “그거 재미있겠군요.”

    왠지 임형석이나 현석과 함께 하다 보니 성격도 조금씩 변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웨인은 아주 든든한 표정으로 힘차게 걸음을 옮겼다.

    진영관은 조금 떨리는 심정을 감추려 애쓰며 그 뒤를 묵묵히 따랐다. 살아남기만 하자고 다짐하면서.

    그 와중에 실전 경험을 통해 실력이 늘어나면 더 좋고 말이다.

    * * *

    현석은 변장을 끝낸 다음 예전에 아르포르 기사단이 있던 투명 던전과 연결된 던전이 있는 산으로 향했다.

    그곳의 위치는 아주 잘 기억하고 있었다. 나중에 반드시 이용할 일이 있을 거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이용할 일이 생겼고 말이다.

    이곳은 감춰진 화이트홀이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 화이트홀은 지하묘지로 이어져 있었다.

    물론 현석이 모두 소탕한 지하묘지였다.

    어쩌면 언데드들이 남아 있거나 소멸했다가 다시 부활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의 현석과 지금의 현석은 전혀 다른 존재나 다름없었다.

    단순히 레벨만 해도 엄청나게 올랐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마력 컨트롤 능력이 훨씬 좋아졌다는 점이었다.

    그뿐 아니라 장비도 더 좋아졌다.

    그러니 어떤 언데드가 나타난다고 해도 문제될 게 없었다.

    난데없이 본드래곤이라도 나타나지 않는 한 말이다.

    물론 본드래곤이 나타난다고 해도 호락호락 죽어주진 않겠지만.

    현석은 산 정상에서 위를 쳐다봤다. 그곳에 감춰진 화이트홀이 있었다.

    그곳의 마력을 비틀어 펼치니 새하얀 소용돌이가 불쑥 나타났다. 아마 저건 조만간 사라질 것이다.

    현석은 화이트홀을 향해 곧장 점프했다.

    화이트홀은 현석을 단숨에 집어삼켰다. 그리고 다시 작아지더니 이내 사라져 버렸다.

    * * *

    지하묘지는 예전 모습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현석이 언데드와 싸우면서 남은 흔적들이 곳곳에 그대로 있었다.

    “역시 아직 남은 놈들이 있었어.”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스켈레톤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수가 많지는 않았다. 하지만 하나하나 덩치가 상당히 컸다.

    그냥 보통 스켈레톤은 아닌 듯했다. 물론 어떤 스켈레톤이 나오든 의미는 없었지만.

    현석은 진마검을 뽑았다.

    “이제 슬슬…… 검도 바꿀 때가 된 것 같군.”

    진마검은 상당히 좋은 검이었다. 그렇기에 아직도 충분히 쓸 만했다.

    아마 이보다 더 좋은 검을 구하려면 운도 많이 필요할 것이고, 또 어려운 등급의 던전을 돌아야 할 것이다.

    아니면 더 어려운 마계를 정벌하거나.

    현석은 진마검을 들고 스켈레톤들을 향해 돌진했다.

    꽈드드드드드득!

    스켈레톤들이 말 그대로 박살 나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원래 스켈레톤은 단순이 부서진다고 죽는 마물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흩어진 스켈레톤의 잔해는 다시 살아나지 못했다.

    마력 감지 능력이 누구보다 뛰어난 현석이었기에 스켈레톤의 존재를 결정하는 핵을 공격과 동시에 모조리 부숴버린 것이다.

    스켈레톤의 잔해를 밟으며 현석은 앞으로 걸어갔다.

    이곳의 명칭은 지하묘지였다.

    그러니 지하로 들어가야 한다. 여길 지나 한국의 산에 있는 화이트홀로 나갈 때도 마찬가지 과정을 겪었다.

    현석은 덩그러니 서 있는 건물로 다가갔다. 그곳이 바로 지하묘지의 입구였다.

    저기로 들어가 가장 깊은 곳으로 내려가면 지하감옥으로 이어진 화이트홀을 찾을 수 있다.

    현석은 건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지하로 이어진 계단이 보였다.

    그밖에는 아무런 움직임도 마력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방심해선 안 된다. 지하 깊은 곳에 아직 남은 강력한 언데드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현석은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 예전에 소탕했기에 남은 언데드는 거의 없었다.

    거의 없다는 얘기는 간혹 나타나기도 한다는 뜻이었다. 그때 미처 소탕하지 못하고 남은 놈들이 강한 마력에 이끌려 이곳을 배회하고 있었다.

    현석이 언데드들과 싸울 때 뿜어낸 마력 때문에 현석이 싸웠던 장소를 중심으로 언데드들이 흩어져 있었다.

    예전에 비하면 없는 거나 다름없었다. 현석은 언데드들을 빠르게 정리하며 지하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지하의 끝, 막다른 방에 도착한 현석은 눈살을 찌푸렸다.

    거대한 존재감을 안으로 깊숙하게 갈무리한 마물 하나가 화이트홀을 막은 채 웅크리고 있었다.

    “진짜 본드래곤이 있을 줄이야.”

    이 지하묘지의 보스는 저 본드래곤이었다.

    본드래곤은 현석이 방에 들어오자마자 웅크리고 있던 몸을 천천히 폈다.

    캬아아아아아!

    본드래곤의 괴성이 방안을 쩌렁쩌렁 울렸다.

    현석은 그런 본드래곤을 유심히 보며 눈을 빛냈다. 드래곤이라고 하기엔 너무 크기가 작았다.

    하지만 모양은 드래곤이 분명했다. 또한 내재된 마력의 존재감을 봐도 드래곤쯤은 되어야 가질 수 있을 정도의 크기였다.

    현석은 목을 이리저리 꺾으며 몸을 풀었다.

    그냥 가기 싱거웠는데, 마지막 문지기가 본드래곤이라면 제법 즐거운 길 아니겠는가.

    진마검을 든 현석이 몸을 한껏 낮췄다. 그리고 발에 힘을 꽉 주었다.

    꽈득!

    바닥이 움푹 파이며 현석의 몸이 어마어마한 속도로 본드래곤을 향해 쏘아져나갔다.

    쿠워어어어어!

    그 순간, 본드래곤의 입에서 새까만 브레스가 쏟아져 나왔다.

    < 머미킹 2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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