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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158화 (158/326)
  • < 머미킹 1 >

    다섯 명의 플레이어들이 음습한 복도를 걷고 있었다. 온통 돌을 쌓아 만든 복도였는데, 지하로 어찌나 깊게 내려왔는지 복도 전체에 어둠이 짙게 내리 깔려 있었다.

    물론 이들은 강력한 손전등을 들었기에 어두워서 움직이지 못할 일은 없었다.

    하지만 이런 길을 가고 있으니 두려운 마음이 드는 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대체 언제까지 들어가야 하는 거지?”

    “난 그보다 우리가 여기 있다는 걸 피라밋 암시장 놈들이 알면 어떻게 될지가 더 걱정돼.”

    “그놈들이 알 리가 있나. 우리 쪽 보안은 아주 철저하니까 걱정할 거 없어.”

    “맞아. 아마…… 지시를 내린 칼슨 이사랑 우리밖에 모르는 일일 거야.”

    그들은 그렇게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며 걸음을 서둘렀다. 입을 다물고 가면 점점 더 두려운 마음이 들어서 말을 하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다.

    “그나저나 피라밋 아래가 이렇게 깊을 줄은 몰랐네. 벌써 한 시간은 내려온 것 같은데. 안 그래?”

    그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시간을 확인해보니 아래로 내려오기 시작한 지 한 시간이 넘었다.

    물론 복도가 직선이 아니라 나선형으로 빙글빙글 회전하듯 지하로 이어져 있었지만, 그래도 한 시간이 넘게 이동했다는 건 대단히 깊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좀 춥지 않아?”

    “그러게.”

    아닌 게 아니라 다들 입김이 훅훅 나올 정도로 온도가 급격히 내려갔다.

    천천히 추워진 게 아니라 어느 순간 갑자기 온도가 내려간 듯했다.

    “뭔가 있는 게 분명해. 조심해.”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입을 꾹 다물고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이럴 때 소리를 내는 건 자살 행위라는 걸 다들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레벨도 높지만 각종 경험도 풍부한 플레이어들이었다.

    잠입, 암살, 납치, 추적 등에는 일가견이 있는 자들이었다. 플레이어가 되기 훨씬 전부터 그런 일을 해 왔으니까.

    어쨌든 그들은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복도는 여전히 외길이었다.

    점점 더 추워졌다. 아무래도 저 아래쪽에 얼음이라도 있는 모양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추울 수가 있을까? 그것도 플레이어들이?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드디어 길고 긴 복도가 끝났다.

    복도의 끝에는 제법 커다란 석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석실 한가운데에는 돌로 만들어진 관이 놓여 있었다.

    추위의 정체는 바로 그 관이었다.

    석관에 새하얀 서리가 내려앉아 있었다. 그리고 끊임없이 냉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 냉기가 어찌나 지독한지, 석실에 들어서자마자 마치 온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으으으. 더럽게 춥네. 얼른 끝내고 가자.”

    사내 한 명이 후다닥 석관으로 달려갔다. 그의 발이 석실에 닿을 때마다 그곳에서 새하얀 냉기가 일어나 동심원을 그리며 석실 전체로 퍼져 나갔다.

    그 광경을 본 나머지 사내들은 차마 석실 안에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여기…… 뭔가 좀 이상하지 않아?”

    “그러니까 빨리 끝내고 나가자고! 그럼 여기까지 와서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돌아갈 거야?”

    당연히 그건 아니었다. 나머지 네 플레이어들이 석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이 바닥을 밟을 때도 똑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냉기가 발바닥에서 시작해 석실 전체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 왠지 그럴 때마다 더 추워지는 것 같았다.

    ‘느낌일 뿐이야.’

    다들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일단 뚜껑부터 열자고.”

    사내 한 명이 석관 뚜껑을 밀었다. 하지만 그것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가 동료들에게 도와달라는 듯 눈짓을 했다. 그러자 다들 우르르 달려들었다.

    어쨌든 빨리 끝내고 여기서 나가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높은 레벨의 플레이어답게 다섯이 몽땅 달라붙어 석관 뚜껑을 밀자,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그그그그!

    “끄응! 더럽게 무겁네!”

    정말 무거웠다. 하지만 그래도 움직이긴 움직였다.

    그그그그그!

    이내 뚜껑이 균형을 잃고 아래로 떨어졌다.

    쿠웅!

    석관 안에는 온몸을 붕대로 칭칭 감은 미이라 한 구가 누워 있었다.

    “키가 큰데?”

    키가 2미터는 훨씬 넘을 것 같았다. 물론 붕대를 그런 식으로 감아서 그렇게 보일 수도 있지만, 팔다리 길이와 몸체의 균형을 생각하면 꼭 그런 것 같지도 않았다.

    진짜 2미터가 넘는 사람을 미이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준비한 거 꺼내.”

    다들 품에서 새빨간 액체가 담긴 병을 하나씩 꺼냈다.

    그리고 각자 자리를 잡고 병에 담긴 액체를 미이라의 몸에 졸졸 부었다.

    한 명은 머리에, 나머지는 각각 손과 발에 액체를 부었다.

    미이라의 몸이 점점 붉게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왠지…… 더워지는 것 같지 않아?”

    그렇게 말하는 사내의 온몸에서 땀이 줄줄 흘렀다.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 순간 완벽하게 붉어진 미이라가 벌떡 일어났다. 마치 뻣뻣한 인형을 강제로 일으킨 것처럼 그대로 자리에서 튕기듯 일어난 것이다.

    다들 너무 놀라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아니, 놀라지 않았어도 비명을 지르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의 몸이 녹아 흐르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녹아 흐른 액체가 일어선 미이라의 몸으로 남김없이 흡수되었다.

    “크하아!”

    미이라가 막혔던 숨을 크게 토해냈다. 그는 자신의 팔다리를 유심히 살폈다.

    “다시…… 깨어났다.”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린 미이라는 이내 웃기 시작했다.

    “큭큭. 큭큭큭큭. 큭큭큭. 크하하하하하!”

    미이라의 미친 듯한 웃음소리가 석실에 크게 울렸다. 어느새 석실 가득했던 냉기는 말끔히 사라진 뒤였다.

    대신 그 안을 가득 채운 건 무엇이든 녹여버릴 듯한 뜨거운 열기였다.

    그렇게 머미킹이 다섯 제물을 삼키고 긴 잠에서 깨어났다.

    * * *

    집으로 돌아온 현석을 반긴 건, 양동욱의 호들갑이었다.

    “크, 큰일 났습니다!”

    양동욱이 현석의 집까지 찾아와 이럴 정도면 아마 보통 일은 아닐 듯싶었다.

    현석은 그런 양동욱을 가만히 쳐다봤다. 양동욱은 그제야 현석 뒤에 서 있는 임형석과 진영관을 발견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한데…… 이 분은?”

    “진영관입니다.”

    진영관이 제법 능숙한 한국어로 그렇게 말하며 손을 내밀었다. 물론 할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었다. 비행기 안에서 내내 연습하던 말이었으니까.

    “아, 예. 양동욱입니다.”

    양동욱은 진영관의 손을 잡으며 말하고는 현석을 바라봤다.

    “앞으로 함께 할 사람이다.”

    양동욱은 현석의 말에 진영관과 임형석을 번갈아 바라봤다. 풍기는 분위기가 왠지 비슷한 것이 앞으로 임형석과 함께 다닐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뭐…… 나쁘지 않지.’

    양동욱은 그런 생각을 하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다시 용건을 꺼냈다.

    “그보다 큰일입니다. 피라밋 암시장에 지금 난리가 났습니다.”

    “난리? 그게 무슨 말이야!”

    현석보다 오히려 임형석이 나서서 양동욱의 멱살을 틀어쥐고 탈탈 흔들었다.

    “켁켁! 이, 이것 좀 놔 주십시오.”

    그제야 임형석은 자신이 너무 흥분했다는 걸 깨닫고 슬그머니 손을 놓았다.

    “무슨 일이야? 난리가 났다니.”

    “피라밋 암시장에 머미킹이라는 괴물이 나타났습니다.”

    임형석의 입가가 슬쩍 올라갔다.

    “그래? 괴물? 그럼 때려잡으면 되겠네.”

    양동욱이 급히 임형석을 말렸다.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저 괴물이 난동 부리는 거라면 양동욱도 나름의 힘을 동원해 충분히 해치울 수 있었다.

    양동욱이 휘하에서 은밀히 부리는 플레이어의 수가 엄청나게 많았다. 대부분이 어중이 떠중이였지만, 몇몇은 상당히 강했다.

    게다가 레드드래곤 길드의 힘을 빌릴 수도 있다.

    아니, 그걸 다 떠나서 피라밋 암시장의 힘만으로도 웬만한 괴물은 다 처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일은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그 머미킹이라는 괴물이 원래 피라밋 암시장의 주인이었답니다. 그래서 지금 그쪽이 두 파로 갈렸습니다.”

    그 말에는 현석도 살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피라밋 암시장의 원래 주인이라니. 그럼 블러디퀸은 뭐란 말인가.

    “아주 오래 전에 세력다툼이 있었는데, 그때 블러디퀸이 승리해서 머미킹을 봉인해 뒀는데, 이번에 다시 깨어난 모양입니다.”

    임형석의 표정이 묘해졌다.

    “이건 무슨 전설의 고향도 아니고…….”

    양동욱은 임형석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잠시 어리둥절하다가 이내 현석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쪽에서 도움을 요청해 왔습니다. 어쩔까요?”

    당연히 도와야 한다. 피라밋 암시장은 현재 현석에게 있어서 상당히 중요한 아군 중 하나였다.

    그들과 얽혀서 돌아가는 일이 제법 많은데, 여기서 그들이 무너지면 여러 가지 일이 제대로 꼬여버린다.

    “머미킹을 없애 버리면 되는 건가?”

    “그게…… 또 그리 간단치 않습니다. 죽이면 안 되고 재봉인을 해야 한답니다.”

    임형석이 인상을 팍 구겼다.

    “뭐가 그리 복잡해?”

    “그게…… 피라밋 암시장의 유지와 관계 있다고 합니다.”

    “유지?”

    현석의 눈이 번득였다. 아무래도 직접 가서 머미킹을 눈으로 보고 확인할 필요성이 느껴졌다.

    ‘블러디퀸이 플레이어가 아니었듯이…… 머미킹도 플레이어는 아니겠지?’

    사실 블러디퀸을 보면서 뭔가 보통 사람이랑은 다르다는 느낌이 좀 들긴 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현석의 심안은 너무 마력에 치우쳐있다. 마력이 없는 사람에게는 작동하지 않는 단점이 있었다.

    그래서 임형석이나 진영관, 장춘 같은 뛰어난 고수의 정보를 확인할 수가 없다.

    ‘그나저나…….’

    현석은 문득 떠오른 생각에 임형석을 쳐다봤다.

    회귀 전에 임형석은 분명히 플레이어로 각성을 했다. 그 얘기는 플레이어로서의 자질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거기에 대한 정보를 전혀 확인할 수가 없었다.

    ‘뭐…… 언젠간 되겠지.’

    현석은 일단 넘어갔다. 그리고 양동욱을 쳐다봤다.

    “렉스턴 에너지의 움직임은 없나?”

    이번 일이 그냥 벌어졌을 리는 없다. 머미킹은 현석의 기억에도 없는 존재였다.

    그렇다는 건 이번 생에 처음 등장한 놈이라는 뜻인데, 그 얘기는 현석 때문에 꼬인 역사에 의해 나타났다는 얘기였다.

    그럼 머미킹이라는 카드를 꺼낸 놈은 너무나 뻔했다.

    “그놈들 뭔가 꾸미고 있습니다.”

    “그 뭔가가 뭔데?”

    현석이 눈을 빛내며 묻자, 양동욱이 잠시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놈들 이번에는 보안이 어찌나 철저한지 알아낸 게 많지 않습니다. 한데…….”

    양동욱이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암시장을 만드는 것 같습니다. 그것도 뉴욕 지하에.”

    “암시장?”

    현석은 뉴욕 지하에 세워질 암시장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회귀 전에 세계 3대 암시장 중 하나였으니까.

    “엠페러타워?”

    “어? 그 이름을 어떻게 알고 있습니까? 저도 아직 확신하지 못해서 말씀을 드릴까 말까 고민하던 이름인데.”

    드디어 엠페러타워가 생기는 모양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승승장구하는 암시장이었다.

    세계 암시장의 판도를 바꾼 곳이기도 했다. 한데 왠지 회귀 전보다 암시장이 생긴 시기가 이른 느낌이었다.

    ‘확실히 빨라. 적어도 5년은 지나야 생길 줄 알았는데…….’

    회귀 후에는 왠지 모든 것이 더 빨라졌다. 심지어 플레이어들의 성장속도까지 빨라졌다.

    현석은 고개를 돌려 임형석과 진영관을 쳐다봤다.

    “또 왜?”

    임형석이 인상을 팍 썼다. 왠지 모를 불길하면서도 귀찮은 기운이 느껴졌다.

    “이집트에는 어르신이 다녀오셔야겠습니다.”

    “뭐? 내가? 왜? 난 말도 모르는데?”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한국말 잘하는 사람들 피라밋 암시장에 널렸습니다.”

    양동욱이 얼른 나서서 얄밉게 말했다.

    임형석은 그런 양동욱에게 눈을 부라렸다. 양동욱은 아뜨거 하는 표정으로 얼른 시선을 돌렸다.

    “두 분이 다녀오시죠. 아마…… 크게 힘들 일은 없을 겁니다.”

    “그걸 네놈이 어떻게 알아?”

    현석이 씨익 웃었다.

    “내가 그렇게 만들 테니까요.”

    < 머미킹 1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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