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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157화 (157/326)
  • < 천하제일인 4 >

    현석은 더 믿을 수 없었다. 3년 전이면 던전이 열린 거의 초창기였다.

    한데 그때 170레벨을, 아니, 다른 부가적인 것까지 고려하면 어쩌면 200레벨을 넘는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

    그런 사람이 있는 게 과연 가능할까? 그건 절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만일 그 사람이 200레벨을 넘었다면…….’

    그랬다면 그는 진정한 괴물이었다. 200레벨에는 흔히 말하는 레벨의 벽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200레벨은 넘으면 진짜 엄청난 초인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회귀 전에는 그래도 그런 자들이 여럿 있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던전이 열리고 무려 20년이 넘는 세월을 거쳐 만들어진 플레이어였다.

    현석은 그래서 더 믿기 어려웠다. 대체 어떻게 그런 플레이어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장춘은 여전히 기억을 더듬고 있었다. 당시 받았던 느낌을 떠올려 현석과 비교해야 하기에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현석보다는 월등히 높았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3년이나 지난 지금 이렇게 단호히 말할 수 있지는 않을 테니까.

    “정확히 수치로 얘기하는 건 어렵네. 내가 무슨 마력감지기도 아니고. 하지만 느낌이라면…….”

    잠시 말을 끌던 장춘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자네보다 반배쯤 더 높았던 것 같네.”

    그러니까 현석보다 1.5배나 높은 마력을 보유한 자였다는 얘기인데, 그럼 추정 레벨이 250이 넘는다. 과연 그게 가능한 일일까?

    3년 전이면 던전이 열리고 1년쯤 지났을 때이다. 과연 고작 그 시간 동안 250레벨을 올린다는 게 말이 될까?

    현석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회귀한 현석조차, 그것도 심안에 마력의 주인이라는 타이틀까지 가졌는데도 이제 170을 간신히 넘었다.

    그것도 마계를 몇 번이나 정벌해서 만든 레벨이었다.

    한데 1년도 되지 않아 250이라니.

    ‘방법이 아예 없진 않지. 레인보우 엘릭서라면…… 하지만 그건 아직 나오지도 않았는데…….’

    슬슬 정보가 섞이고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현석은 딱 여기까지만 생각했다.

    더 복잡해지기 전에 칼 같이 잘라내는 것이 낫다. 어차피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야 진실이 아닌 추측일 뿐이니까.

    ‘그나저나…… 대체 누구지? 라이언은 아닐 것 같고…….’

    라이언에 대해서는 대충 조사를 끝냈다. 추광열과 엮여 있는 것 같아서 가볍게 조사했지만 그는 절대 아니었다.

    현재 현석의 레벨을 가장 열심히 따라오는 사람이 라이언과 추광열이었다.

    하지만 그 두 사람도 아직 멀었다.

    한데 난데없이 전혀 새로운 누군가가 추정레벨 250을 찍었다. 그것도 3년 전에.

    ‘대체 그럼 지금 레벨이 몇이라는 거야?’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1000레벨이 되어야 하지만, 그랬을 리는 없다. 위로 올라갈수록 레벨 하나 올리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워지니까.

    그래도 300레벨은 넘었을 것이다. 1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250레벨을 넘을 정도로 폭발적인 성장이 가능한 사람이라면 말이다.

    ‘안 넘었을 수도 있고.’

    300레벨에도 레벨의 벽이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그 실체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회귀 전에도 플레이어들에게 알려진 레벨의 마지막 벽은 250이었으니까.

    ‘그때 250레벨을 넘은 사람이 있었나?’

    당시에도 세계 최고의 플레이어였던 라이언이 아마 250레벨을 넘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조차도 확실치는 않았다.

    하지만 200레벨을 넘은 사람들은 비교적 순조롭게 240을 넘겼다.

    200을 만들기가 힘든 거지, 그 위로 더 올라가는 게 힘든 건 아니었다.

    어쨌든 현석은 거기까지만 하고 생각을 정리했다. 그러다가 문득 그 사람이 대체 왜 장춘과 만났는지 궁금해졌다.

    “그 사람이 중국인이었습니까?”

    장춘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외국인이었네. 금발을 가진 정말 잘생긴 미남이었지. 그 사람보다 잘생긴 사람을 아직 한 번도 못 봤으니까.”

    그 말을 들으니 더 궁금한 것이 생겼다.

    “그럼 대체 그 사람을 어떻게 만나게 된 겁니까? 어르신께서 사시는 모습을 보니 그냥 관광삼아 온 사람은 아닐 거 같은데…….”

    장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사람 아니었네. 그 사람은 날 찾아왔네. 내 이름과 나이까지 알고 있더군.”

    “왜 찾아왔답니까?”

    장춘이 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 생각해도 이상한 모양이었다.

    “혹시 아는 사람이 아닐까 해서 찾아왔다고 하더군.”

    “아는 사람이요?”

    “그래. 한데…… 그게 분위기가 참 묘했지.”

    “그게 무슨 말입니까?”

    “내가 보기에 그 사람은 장춘이라는 이름을 가진 자를 찾는 게 아니었어. 일단 날 보고 뭔가를 확인하고 싶었던 것 같아.”

    “뭘 확인한 겁니까?”

    “그걸 모르겠다는 거지. 내가 참…… 그런 쪽으로는 아주 예민한 사람인데도 말이야.”

    점점 대화가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현석은 이쯤에서 얘기를 마무리했다.

    갑자기 술과 고기를 턱 내려놓은 것이다.

    거의 바닥 나 가던 고기 위에 지금까지 먹었던 것만큼의 양이 더 쌓였다.

    그리고 술도 무려 다섯 통이 새로 등장했다.

    그걸 보고 다들 반색했다. 고기를 구워야 할 운명을 가진 가이드만 빼고.

    가이드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하지만 불평 한 마디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불판에 새 고기가 착착 올라가는 동안 장춘이 현석과 임형석을 보며 말했다.

    “오랜만에 피가 끓는 경험을 해서 그런지 기분이 제법 나쁘지는 않군. 비록 대결은 비겼지만…… 아마 몇 달 안에 저 친구가 날 넘어설 것 같군.”

    “에이, 무슨 섭한 말씀을.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은 분이잖습니까.”

    임형석이 흐흐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장춘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난 이미 쇠락의 길에 들어섰네. 아마…… 몇달 후면 더 약해지겠지. 반면 자네는 아직도 강해지고 있으니…… 굳이 싸울 필요도 없네. 내가 졌네.”

    장춘은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임형석을 향해 정중히 포권을 취했다.

    임형석은 그 모습에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 장춘에게 똑같이 해 주었다.

    대체 저 사람이 왜 이러나 싶은 표정으로 바라보던 임형석은 장춘이 다시 자리에 앉아 술과 고기를 먹기 시작하자 멍하니 그를 내려다봤다.

    그렇게 보고 있다 보니 왠지 조금 전에 그가 왜 이랬는지 알 것도 같았다.

    임형석은 장춘 앞에 털썩 주저앉아 함께 술과 고기를 해치우기 시작했다.

    장춘은 한창 술을 마시다가 현석을 힐끗 보고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래도…… 그 사람보다 자네가 더 무서웠네.”

    장춘은 그렇게 말하고는 현석에게 엄지손가락을 척 올려줬다.

    다시 술판이 시작되었다.

    현석은 더 이상 술과 고기를 즐길 수 없었다. 장춘이 해준 말이 계속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그리고 더는 생각하지 않으려 했던 그 미지의 플레이어가 계속 신경 쓰였다.

    어쨌든 그렇게 하루가 마무리 되어갔다.

    * * *

    현석 일행은 한국을 향해 떠났다. 현석은 처음 약속한 대로 진영관을 데려갔다.

    진영관은 비행기에 타자마자 한국어 공부부터 시작했다.

    몸을 쓰는 일은 그냥 이 악물고 하겠는데, 이 나이에 갑자기 안하던 공부를 하려니 죽을 맛이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살려면 해야지.

    장춘과 가이드는 현석 일행을 공항까지 배웅해 주었다.

    그리고 세 사람과 헤어지자마자 차를 타고 어딘가로 이동했다.

    “바로 가시겠습니까?”

    가이드가 차를 출발시키며 물었다. 장춘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하기로 했으면 최선을 다해야지. 바로 그쪽으로 가.”

    “예. 알겠습니다.”

    가이드는 대답하며 가속페달을 밟았다.

    이제 이 일이 마지막이다. 장춘을 그곳에 데려다주는 걸로 그가 이번에 맡은 모든 임무가 마무리된다.

    ‘하아. 진짜 힘든 일이었어.’

    사실 별 거 없었지만 왠지 그동안 맡았던 그 어떤 일보다 더 힘들었다.

    그게 현석과 함께 있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뛰어난 고수들과 함께 해서 그런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어쨌든 이제 마무리를 하러 가는 거니 긴장이 조금씩 풀렸다.

    도착할 때까지의 시간은 아주 짧았다. 일부러 이러려고 목적지에서 가장 가까운 공항을 이용했으니까.

    일단 적당한 곳에 차를 주차시킨 다음, 차에서 내렸다.

    “이쪽입니다.”

    가이드는 힘차게 앞장섰다. 그 뒤를 장춘이 뒷짐까지 지고 유유자적하게 따라갔다.

    “호오. 길이 참으로 특이하구나.”

    그냥 단순한 산길이 아니었다. 길이 아닌 곳으로 한참이나 들어가는데, 그러다보니 또 길이 나타났다.

    완벽하게 중간이 끊긴 길이었기에 우연히 이런 곳을 찾아내는 건 결코 쉽지 않을 터였다.

    그렇게 끊겼다가 이어진 길로 들어간 다음에도 계곡을 몇 개나 지나고 나서야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정말 깊은 산중에 있는 곳이로구나.”

    장춘은 상당히 기꺼운 표정이었다. 산의 기운이 온몸을 훑고 지나가는 느낌이 정말 상쾌했다.

    절벽과 절벽 사이의 좁은 길이 나타났다.

    “저기로 가면 되는 모양이군.”

    장춘은 그때부터 앞장섰다. 그가 갑자기 앞으로 나선 이유가 있었다. 절벽 안쪽에서 삼엄한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뭔가 위협이 있다면 가이드보다는 자신이 맞서는 것이 훨씬 나을 거라 판단한 것이다.

    장춘은 절벽 사이로 들어섰다. 그 순간 날카로운 뭔가가 날아왔다. 살기가 담기지 않은 걸로 봐서 위협만 할 생각인 듯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어선 안 된다. 이럴 때일수록 기선제압이 중요했다.

    장춘의 특기가 즉시 발휘되었다.

    날카로운 무언가의 정체는 칼이었다. 장춘은 칼의 평평한 면을 손바닥으로 가볍게 밀었다.

    캉!

    칼의 궤적이 변하며 절벽을 세차게 때리고는 부러져 버렸다.

    장춘은 칼을 휘두른 사내의 눈이 커다래지는 걸 보며 훤히 드러난 그의 등에 가볍게 손바닥을 올렸다가 뗐다.

    “쿠웩!”

    멱따는 소리와 함께 사내가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졌다. 그리고 정신을 잃었다.

    장춘은 그를 내버려두고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모여 있을지 모르니 얼른 들어가 상황을 전달하는 게 나았다.

    장춘의 의도를 알았는지 가이드가 다급히 그의 뒤를 따랐다. 물론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채였다. 장춘의 움직임을 방해해선 안 되니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사람들이 절벽길로 우르르 몰려왔다. 물론 그래봐야 몇 명 안 된다.

    장춘은 좀 더 서두르기로 했다.

    무기를 들고 온 사람도 있고 맨손인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모두 플레이어인 것은 확실했다.

    장춘의 몸이 얼음 위를 미끄러지듯 앞으로 쭉 나아갔다. 마치 바닥에 보이지 않는 막이 있어서 그 위를 이동하는 듯했다.

    그걸 본 모두가 깜짝 놀랐다. 하지만 그렇다고 움직임을 멈추거나 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플레이어들은 장춘과 가까워지자, 자신이 가진 무기를 거침없이 휘둘렀다.

    하지만 장춘은 그 모든 공격을 물 흐르듯 피하며 슬쩍슬쩍 건드려 힘의 방향을 교묘하게 바꿔 버렸다.

    거기에 약간의 힘을 더해주는 걸로 끝이었다.

    장춘을 공격했던 모든 플레이어는 자신의 힘에 휘둘려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그리고 장춘은 그런 빈틈을 용납할 정도로 녹록한 사람이 아니었다.

    투두두두두둑!

    장춘의 손이 아주 가볍게 플레이어들의 목이나 등을 툭툭 치고 지나갔다.

    그 단순한 일격에 다들 쓰러져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장춘은 그렇게 쭉 미끄러지듯 계속 이동해 결국 절벽길을 통과했다.

    “호오!”

    절벽길을 통과하자, 사방이 절벽으로 막힌 거대한 공터가 나타났다. 그 자체로도 장관이었는데, 거기에 허공에 커다란 소용돌이까지 떠 있으니 절경이 따로 없었다.

    “대단하군!”

    연신 감탄하자 어느새 바짝 따라붙은 가이드가 말했다.

    “정말 대단하죠? 저도 두 번째 보는 거지만 또 감탄이 나옵니다.”

    장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을 쳐다봤다.

    이곳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상당히 많은 플레이어가 있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그 중 책임자로 보이는 사람이 앞으로 나섰다.

    “내가 장춘이오.”

    굳이 더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다들 서로 눈치를 보느라 정신이 없었으니까.

    장춘은 현석이 이곳 던전 생성지역의 책임자로 추천한 사람이었다.

    그라면 조화롭게 이곳을 책임질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리고 그라면 자신의 편이 되어줄 거라 믿었다.

    문제는 장춘을 과연 이들이 책임자로 받아들일 것이냐인데, 그건 생각보다 쉽게 해결되었다.

    장춘이 여기까지 오면서 만들어 놓은 과정을 모두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 뒤로 장춘에 대한 태도가 확연히 달라졌다.

    게다가 장춘이 플레이어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는 다들 경악했다.

    어쨌든 그렇게 장춘은 중국의 퀸급 던전 생성지역의 책임자가 되었다.

    그리고 너무나도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던 가이드는 결국 벗어나지 못하고 장춘의 수발을 드는 사람이 되어야만 했다.

    물론 반쯤은 강제적이었다.

    < 천하제일인 4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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