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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153화 (153/326)
  • < 서열정리 2 >

    임형석이 뚱한 표정으로 현석을 쳐다봤다.

    “이럴 거면 여긴 왜 데려왔냐?”

    지금 임형석은 현석과 함께 블랙홀들이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아 안에 들어간 자들이 다시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현석이 함께 들어가서 도와줘도 되지만, 현석은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천하제일인인가 뭔가 하는 사람이나 보러 가자.”

    임형석이 벌떡 일어나며 소리치듯 큰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모든 사람들이, 그래봐야 가이드와 진영관밖에 없었지만, 임형석을 바라봤다.

    그들은 제법 떨어진 곳에 함께 앉아 있었다. 현석이 계속 뭔가 불편한 마력을 내뿜는 바람에 근처에 다가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굳이 그렇게 한 이유는 임형석 때문이었다. 뭔가 해선 안 될 말을 툭 내뱉을 것 같았다.

    “좀 기다려보시죠. 곧 나올 겁니다.”

    “나오면? 그놈들 나오면 나도 들여보내주나?”

    임형석도 아예 눈치가 없는 건 아니었기에 그렇게 물을 때는 목소리를 한껏 줄였다.

    큰 소리를 내다가 갑자기 목소리를 줄이니 멀리 떨어진 곳에서는 정말 아예 들을 수가 없었다.

    현석 정도의 청력을 갖지 않았다면 아마 못 들었을 것이다. 이런 얘기를 듣기엔 거리가 너무 멀었다.

    “저 혼자 다녀올 겁니다.”

    “뭐?”

    임형석이 경악한 표정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너 혼자 재미를 보겠다고?”

    “재미로 하는 거 아닙니다.”

    “그럼 뭔데?”

    현석이 대답할 시간은 없었다. 던전이 안에 들어갔던 사람들을 우수수 토해냈기 때문이다.

    다들 낭패를 면치 못한 모습이었다.

    현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래도 죽은 사람은 없군.”

    어떻게 보면 정말 굴욕적인 말이었다. 하지만 누구도 거기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아무도 안 죽은 게 다행이었다.

    “저긴…… 지옥입니다.”

    대련방의 여인이 그렇게 말하며 치를 떨었다. 다신 들어가기 싫은 던전이었다.

    저런 곳인 줄도 모르고 처음에 대련방이 단독으로 들어가 처리하겠다고 나댔으니 생각할수록 가슴이 서늘해졌다.

    만일 그랬다면 지금쯤 다시 나온 사람은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을 것이다.

    그나마도 동료를 미끼로 던지지 않으면 아무도 살아나오지 못할 정도로 위험한 던전이었다.

    그건 흑시에서 온 세 사내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끼리 들어가 정찰만 하고 오겠다고 했다. 하지만 만일 그랬다면 아무도 살아 돌아오지 못했을 것이다.

    저 던전은 다른 던전과 달리 들어가자마자 위험이 달려드는 곳이었다.

    “아직 시간이 있으니 각자 조직에 연락해 봐. 먼저 클리어 하는 쪽이 매뉴얼을 만들고 더 큰 몫을 가져가야 하니까.”

    다들 그 말에 머뭇거렸다. 아마 조직에 연락을 하면 당장 사람들을 보내줄 것이다. 하지만 어설프게 설명했다간 조직에 큰 누를 끼치게 된다.

    지금 잠깐 들어가 확인한 바로는 정말 강한 소수의 플레이어가 먼저 입구 주변을 정리하고 나머지 인원을 투입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래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입구가 저 정도인데 안으로 더 들어가면 얼마나 위험한 마수들이 몰려나올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그들은 한참 동안 생각을 정리한 다음, 각자의 조직에 연락을 넣었다.

    정말 오랫동안 설명을 해야 했다. 안의 지옥 같은 상황이 생생히 정해지지 않으면 큰 실수와 피해로 이어질 테니까.

    이내 결과가 나왔다.

    대련방과 흑시에서 나온 사람들이 모여 몇 마디 상의를 했고, 그 결과를 들고 대련방의 여인이 현석에게 다가갔다.

    “당신께 먼저 기회를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현석의 입가가 슬쩍 올라갔다. 너무 뻔한 수작을 부리니 참으로 재미있었다.

    사실 처음부터 수작으로 시작한 놈들이었다. 그러니 앞으로도 계속 수작을 부릴 가능성이 높았다.

    현석은 저들이 다신 수작을 부리지 못하도록 압도적인 힘을 보여줄 생각이었다.

    예전이라면 못하겠지만 이젠 가능하다. 현석의 강함은 그저 레벨이나 스탯에서 나오는 게 아니었다.

    경험도 부차적 문제였다.

    현석이 진짜 강한 이유는 자유로운 마력 컨트롤 능력이었다.

    자신이 보유한 그 막대한 마력을 한 방울도 남김없이 모조리 끌어다가 마음껏 이용할 수 있고, 자유롭게 변형할 수 있는데 뭐가 두렵겠는가.

    만일 여기서 레벨이 더 높아진다면, 그 어떤 적이 얼마나 몰려오건 홀로 상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아니, 플레이어들에게는 거의 재앙이나 다름없는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

    마력 컨트롤 능력이 지금보다 훨씬 높아진다는 건 타인의 마력까지 건드릴 수 있다는 얘기가 되니까.

    현석은 던전에 다가간 다음 돌아서서 대련방과 흑시의 플레이어들을 슥 둘러봤다.

    현석의 시선이 흑시의 세 플레이어에게 향했다.

    “애초에 의도적으로 정보를 흘려 대련방이 끼어들게 만들었지? 그 부분 아주 명확하게 정리해야 할 거야.”

    흑시의 플레이어들은 그 말에 몸을 움찔 떨었다. 현석의 시선만 받아도 몸이 위축되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현석은 이번엔 대련방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직접적으로 위해를 가하려 했지? 내가 약했으면 어떤 꼴이 되었을까?”

    현석의 몸에서 뭉클 살기가 피어올랐다. 대련방 사람들은 그대로 주저앉았다. 어느새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 부분, 확실히 정리해.”

    대련방의 플레이어들은 다들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반드시 정리할 것이다. 적절한 보상을 마련하지 않으면 아마 다 죽을 것이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에는 그런 생각밖에 안 들었다. 현석에게 완벽하게 정신이 제압당한 것이다.

    현석은 다시 한 번 그들을 슥 둘러본 다음 돌아섰다.

    “던전에 대한 매뉴얼을 만들어주지. 거기에 대한 계산도 아주 확실히 해야 할 거야.”

    그 말을 끝으로 현석이 던전으로 들어갔다.

    “후우. 이건…… 미친 짓이야.”

    흑시의 사내 중 하나가 그렇게 중얼거리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흑시와 대련방의 플레이어들은 방금 사선을 함께 헤쳐 나왔다. 두 무리의 분위기가 아까와는 확연히 달라졌다.

    서로 멀리 떨어져 앉지도 않았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같은 조직인 줄 착각할 수 있을 정도였다.

    어쨌든 서로의 도움으로 살아 돌아올 수 있었다. 사이가 돈독해지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서로 의견을 나누고 대화하는 것도 아주 자연스러웠다.

    “결과가 어찌 될 것 같은가?”

    흑시의 플레이어들이 아무래도 나이가 제법 있었기에 말을 편히 했고, 대련방 쪽은 다들 젊었기에 상대를 존중해 주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실패하길 바라고 있습니다.”

    대련방의 여인은 목소리를 한껏 낮춰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다들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현석이 실패하길 바라는 건 너무나 당연했다. 만일 정말로 성공해 버리면 그들의 입장이 좀 곤란해진다.

    앞으로 이곳을 관리하고 주로 사냥을 해야 하는 건 흑시와 대련방이다.

    한데 그렇게 해봐야 가장 큰 몫은 항상 현석이 가져간다고 생각하면 조직에서 그들의 입지에 문제가 생긴다.

    조직이야 그저 약속을 지키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지 않다. 오늘 일에 미래가 걸려 있었다.

    “아마…… 실패할 겁니다. 거길 혼자서 어떻게 클리어합니까?”

    “내 생각도 그래. 저자가 아무리 강해도…… 아마 입구나 돌파하면 다행일 거야.”

    다들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안감은 아무리 애써도 없앨 수 없었다.

    다들 말이 없어졌다. 그렇게 침묵 속에서 속절없이 시간이 흘러갔다.

    시간이 지나니 그래도 몸이 조금씩 회복되었다.

    무리하게 클리어하려 하지 않고 정찰을 목적으로 했기에 그나마 많이 다치지 않아 회복도 빨랐다.

    “슬슬……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하긴. 굳이 여기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을 이유는 없지.”

    어차피 이 정도 시간이 지났으면 안에 들어간 사람도 죽었다고 봐야 한다.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 대충 근처를 정리하고 떠날 준비를 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모습을 임형석과 진영관이 유심히 보고 있었다.

    “쟤들 그냥 가려는 건가?”

    임형석의 물음에 옆에 있던 가이드가 고개를 끄덕이며 방금 저들이 한 말을 번역해서 들려주었다.

    그 말을 다 들은 임형석이 버럭 화를 내며 벌떡 일어났다.

    “뭐? 어차피 죽었을 테니까 그냥 간다고? 저 어처구니 없는 말을 듣고 내가 참아야 돼?”

    임형석은 당장에라도 달려들어 모조리 때려눕힐 기세였다.

    진영관은 굳이 말릴 생각이 없기에 임형석을 따라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만일 싸우게 된다면 자신 역시 한 팔 거들 생각이었다.

    지금까지 저들을 지켜보며 대충 견적을 냈는데, 아마 임형석 혼자 나선다 해도 저들 정도는 충분히 박살을 낼 수 있을 듯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도망치는 놈들을 막을 수 없게 된다. 진영관은 그 도망치는 놈들만 막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싸울 필요가 없었다.

    쩡!

    뭔가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강렬한 마력의 파동이 사방을 휩쓸고 지나갔다.

    다들 깜짝 놀라 현석이 들어갔던 던전을 바라봤다.

    던전이 있던 자리에 오연히 서 있는 현석과 허공에 둥둥 떠 있는 아티팩트가 보였다.

    “이, 이럴 수가…….”

    “거길…… 클리어 했다고? 게다가 아티팩트?”

    허공에 둥둥 떠 있는 아티팩트는 가죽 부츠였다. 심플한 문양 몇 개가 은은한 빛을 내고 있었는데, 척 보기에도 심상치 않았다.

    그들이 진짜 놀란 건, 현석의 모습이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사실은 안에서 던전을 클리어 하기 전에 아공간에 보관하던 옷으로 갈아입은 것이지만, 저들이 그런 걸 알 리 없었다.

    저렇게 멀쩡히 던전을 완벽하게 클리어한 현석이 같은 인간으로 보이지가 않았다.

    “크, 클리어 하신 건가요?”

    현석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냥 보면 알 수 있는 일에 굳이 대답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놈들이기에 더더욱 그랬다.

    “매뉴얼을 만들어주지. 나머지 던전은 어떻게 할 생각이지? 그것도 내가 클리어 해줘야 하나?”

    현석의 말에 다들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아무래도 작전을 변경해야 할 것 같았다.

    “일단…… 상부에 연락을 해야할 것 같습니다.”

    현석은 피식 웃었다. 머리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았다.

    “좋을 대로. 단, 30분 후에 난 여기서 출발한다. 지분 설정은 양동욱과 하도록. 대강 얘기는 해둘 테니까.”

    현석은 그렇게 말하고는 임형석과 진영관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임형석은 눈을 빛내며 물었다.

    “어때? 재미있었나? 싸울 맛이 나는 놈들 좀 있어?”

    현석은 임형석을 가만히 보며 말했다.

    “어르신은 별로 재미없었을 겁니다.”

    “거짓말 아니지?”

    “조만간 정말 재미있는 곳에 함께 가시죠. 이제 얼마 안 남았습니다. 아마…….”

    현석은 그렇게 말하고는 씨익 웃었다.

    “정말 재미있을 겁니다.”

    임형석도 환하게 웃었다.

    “그래? 그거 참 기대되는구나.”

    그렇게 말한 임형석은 현석을 재촉했다.

    “뭐 해? 그 천하제일인인지 뭔지 만나러 가야지. 감히 날 빼고 천하제일을 논한 그 괘씸한 놈을 꽉 눌러주지 않으면 잠이 안 올 것 같거든.”

    현석은 빙긋 웃으며 흑시와 대련방의 플레이어들을 쳐다봤다.

    정신없이 연락을 하고 논의를 하더니 나름 결론을 내린 모양이었다.

    현석의 특별한 청력은 그들의 대화를 고스란히 들을 수 있게 해 주었다.

    “슬슬 가죠. 아마 당분간 자리를 떠도 괜찮을 거 같으니.”

    “그래?”

    임형석이 반색하며 진영관을 바라봤다.

    “뭐해? 같이 가야지.”

    진영관은 임형석이 뭐라고 말하는지 왠지 알 것 같아 쓴웃음을 지었다.

    잠시 망설이던 그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은 그의 고향이라는 것 빼고는 사실 남아있는 게 없었다. 당연히 미련도 별로 없었다.

    차라리 이들을 따라다니는 게 훨씬 즐거울 것 같았다. 또 강해지기에도 좋고 말이다.

    “그럼 함께 가시죠.”

    진영관이 그렇게 말하며 따라붙자, 임형석이 잘 생각했다는 듯 씨익 웃었다.

    그리고는 진영관의 등을 팡팡 두드리며 말했다.

    “좋아! 같이 끝까지 가보자고! 그리고!”

    임형석이 진관영의 눈을 똑바로 보며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한국말 배워. 무조건.”

    진영관은 그게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자신에게 굉장한 위기가 닥쳐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여기서 고개를 끄덕이지 않으면 더 큰 위기에 빠질 것 같은 예감에 즉시 고개를 위아래로 정신없이 움직였다.

    그제야 만족스러운 표정을 한 임형석이 진영관의 등을 세게 때렸다.

    꽝!

    “크억!”

    진영관은 하마터면 피를 토할 뻔했다. 가벼운 내상까지 입었다.

    황당한 눈으로 임형석을 바라보자, 그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가자!”

    성큼성큼 앞질러 걸어가는 임형석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진영관은 이내 피식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때까지 눈치만 살살 살피던 가이드가 얼른 따라붙으며 말했다.

    “장춘 대협이 계시는 곳은 제가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저만 믿고 따라오시면 됩니다.”

    그렇게 말하는 가이드의 눈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어쩌면 정말 대단한 싸움을 구경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렸다.

    < 서열정리 2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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