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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152화 (152/326)
  • < 서열정리 1 >

    적의를 품고 나타난 사람은 모두 열두 명이었다. 남자 열한 명에 여자가 한 명이었는데, 다들 20대 중반쯤으로 보였다.

    하나같이 평범한 인상에 풍기는 분위기도 평범했다. 얼굴을 한 번 보고 돌아서면 잘 기억이 나지 않을 것 같았다. 체형도 마찬가지로 지극히 평범했다.

    현석은 그들을 보며 눈을 빛냈다.

    ‘다들 같은 스킬을 갖고 있군.’

    열두 명 모두가 같은 스킬의 보유자였다.

    [균형 잡힌 사람-외부로 표출되는 모든 것을 주변의 평균치에 맞춘다.]

    막상 이름과 설명만 보면 이게 대체 뭐 하는 스킬인지 얼른 알기 어렵지만, 저렇게 직접 보면서 설명을 확인하면 어떤 효용이 있는지 대번에 알 수 있었다.

    이름이고 효과고 정말 특이한 스킬이었다. 주변에 동화되어 기억에 남지 않게 하는 효과를 가진 스킬이었다.

    주변에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효과가 클 것이다. 그래서 저렇게 잔뜩 모아놓은 것일 테고 말이다.

    저런 스킬을 가진 사람을 한 명만 찾기도 쉽지 않았을 텐데 무려 열두 명이나 있는 걸 보면 역시 사람이 많은 중국다웠다.

    현석은 갑자기 흥미가 일어 그들의 정보를 심안을 통해 좀 더 자세히 확인했다.

    다들 레벨도 같았다. 모두 97레벨이었다. 상당한 레벨이었다.

    다만 레벨에 비해 스탯은 살짝 모자랐다. 하지만 현석의 기준은 현석 주변에 있는 플레이어들이었기에 진짜 모자라는 거라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실제로는 스탯조차 전체 플레이어들의 평균치였다.

    현석은 스탯이나 레벨은 대충 확인하고 넘어갔다. 어차피 진짜 전투에 돌입하면 스탯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있는 법이다.

    힘이나 민첩 스탯이 몇 더 높은 것보다 전투 경험이 몇 차례 더 있는 사람이 훨씬 더 잘 싸운다.

    그리고 몇 번이나 목숨을 걸고 싸웠느냐가 승패에 훨씬 큰 영향을 미친다.

    그 싸움이 상대의 목숨을 빼앗기 위한 싸움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리고 플레이어들 간의 싸움에서는 경험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스킬이었다.

    타이틀도 중요하지만 타이틀은 보통 스킬과 연결되는 일이 많기에 중요한 것이다. 그러니 결과적으로는 스킬이 가장 중요하다 할 수 있었다.

    사람마다 생각과 기준이 다를 수는 있지만, 적어도 현석이 생각하기엔 그랬다.

    어쨌든 지금 적의를 갖고 현석 일행 앞에 나타난 열두 명의 플레이어들 중에는 제법 쓸만한 스킬을 가진 사람이 세 명 있었다.

    [마음을 하나로-서로의 마음을 연결해 유기적인 움직임이 가능하게 도와준다.]

    저렇게 한꺼번에 협공할 때 정말 유용한 스킬이 될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아무 때나 쓸 수 있는 스킬은 절대 아니었다.

    현석은 이 스킬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예전 이 스킬을 가진 사람이 길드 내에 있었으니까.

    물론 함께 팀을 이뤄서 사냥해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워낙 자주 봤고, 길드의 중심에 있는 사람이었는지라 저 스킬에 대해서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저건 굉장히 오랫동안 함께 훈련해야만 쓸 수 있는 스킬이었다.

    갑자기 급조한 팀에서 어설프게 저 스킬을 썼다간 다 죽는다.

    생각의 일부가 갑자기 공유되는 스킬이다. 당연히 심각한 부작용 몇 가지가 있었다.

    그리고 그 부작용을 최소화하거나 없애는 방법은 꾸준한 훈련밖에 없었다.

    ‘즉, 저놈들은 오랫동안 함께 해온 팀이라는 거지.’

    서로의 마음이 오랫동안 통했으니 아마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도 극대화되어 있을 것이다. 그것이 이 스킬의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나머지 두 사람의 스킬도 제법 괜찮은 공격 스킬이었다. 하지만 현석의 관심을 끌 정도는 아니었다.

    현석이 그렇게 그들의 정보를 확인하는 동안 진영관이 앞으로 나섰다.

    진영관은 저들이 자신을 찾아온 흑사회의 조직원들이라고 판단했다.

    자신의 싸움이 다른 사람에게로 번지는 건 그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물론 이 자리에 자신보다 약한 사람은 저기 뒤에 서서 덜덜 떨고 있는 가이드뿐이었지만 말이다.

    “너희들, 날 찾아왔나?”

    진영관의 말에 열두 명 중 마음을 하나로 스킬을 가진 사람, 유일한 여인이 앞으로 나섰다.

    “진영관 대협?”

    “그래. 내가 진영관이다.”

    여인이 빙긋 웃었다. 감정이 담기지 않고 얼굴표정만 웃고 있는지라 어딘가 섬뜩해 보였다.

    “덕분에 이 근처에 있던 흑사회를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뭐?”

    진영관이 눈살을 찌푸렸다. 저 여인의 말은 진영관이 흑사회의 조직원들과 싸우는 사이 그 조직 자체를 정리해 버렸다는 뜻이다.

    어쩐지 몇 번 더 기습할 줄 알았는데 그 뒤로 잠잠하다 했다. 한데 이런 일이 있었다니.

    “그러니까…… 날 이용했다는 뜻인가?”

    “당치 않습니다. 당신이 흑사회와 싸움을 벌였기 때문에 우리가 나선 거지요. 아니었다면 우리도 굳이 나서서 그들을 정리하지 않았을 겁니다. 생각보다 까다로운 놈들이라서요.”

    그 말은 이들이 이 지역의 흑사회를 정리하지 않았다면 그 까다로운 놈들이 아직도 진영관을 노리고 있었을 거라는 뜻이기도 했다.

    진영관이 잠시 그녀를 노려봤다. 그녀는 여전히 가식적인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진영관 대협께서는 잠시 물러나 주시지 않겠습니까? 저희가 볼일이 있는 쪽은 저쪽이라서요.”

    여인이 시선을 통해 가리킨 사람은 현석과 임형석이 나란히 서 있는 쪽이었다. 임형석의 거대한 몸 뒤에 가이드가 숨어서 고개만 살짝 내밀고 있었다.

    진영관은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 없지. 저들은 이미 내 친구다. 넌 친구를 버릴 수 있나?”

    여인의 얼굴에 떠올랐던 미소가 사라졌다.

    “물론 그럴 수 없지요. 이거…… 좀 곤란하게 되었군요.”

    여인은 정말로 고민하는 모양이었다.

    그녀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얘기를 쭉 듣고 있던 현석이 나선 것이다.

    “아무래도…… 그쪽은 삼합회나 흑시에서 나온 건 아닌 모양이군.”

    여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분위기나 표정을 보니 현석의 예상이 크게 틀리지 않은 듯했다.

    “이거…… 흑시 쪽을 믿어도 될지 모르겠군. 이렇게 정보가 줄줄 새서야…….”

    현석이 그렇게 중얼거리며 고개를 슬쩍 돌려 한쪽을 쳐다봤다.

    그러자 그곳에서 새까만 옷에 검은 중절모까지 쓴 사람이 세 명 나타났다.

    놀랍게도 허공에서 마치 물감을 풀어 놓은 것처럼 색이 번져 나가더니 그것이 사람 형체를 갖추며 나타났다.

    정말 신기한 광경이었다.

    “당연히 믿으셔도 됩니다. 이번 기회를 놓치기 싫어서 일부러 흘린 정보니까요.”

    현석은 사방으로 마력을 확 풀어버렸다. 그리고 그 마력의 성질을 날카롭고 무겁게 바꿔버렸다.

    장내에 있는 모든 플레이어들이 그 마력을 접하고 깜짝 놀랐다. 마치 몸의 통제권 일부가 사라진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마음 깊은 곳에서 두려움이 퐁퐁 샘솟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날 이용했다 이거로군?”

    아까 진영관이 했던 말과 똑같았다. 하지만 풍기는 분위기와 기세는 아까와 비할 바가 아니었다.

    현석이 풀어 놓은 마력은 점점 더 무거워졌다. 그리고 점점 더 날카로워졌다.

    설상가상으로 마력에 뇌기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헉!”

    가장 먼저 무릎을 꿇은 건 처음 나타난 열두 플레이어 중 절반이었다.

    상대적으로 체력과 지력 스탯이 조금 낮은 자들이 먼저 당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대부분 상태가 비슷했기 때문에 몇 초 지나지 않아 나머지 여섯 명도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현석은 그들이 마력에 짓눌려 무릎을 꿇자, 이번엔 고개를 돌려 나중에 나타난 세 사내를 쳐다봤다.

    그들 역시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 이러실 것 까지는 없지 않습니까. 우리는 호의로 벌인 일입니다.”

    “호의?”

    현석이 피식 웃으며 무릎 꿇고 있는 열두 사람을 힐끗 쳐다보고는 다시 흑시의 세 사내를 쳐다봤다.

    그들로 향하는 마력이 갑자기 두 배로 늘었다.

    “허억!”

    세 사내가 동시에 휘청거렸다. 확실히 처음 나타났던 열두 플레이어보다 훨씬 강했다.

    심안으로 확인한 정보만 해도 그랬다. 저들의 레벨은 셋 모두 117이었으니까.

    하지만 레벨이나 스탯, 스킬만으로 판단할 수 없는 다른 것들이 저들에게 있었다.

    저들은 경험이 정말로 풍부해 보였다. 그것도 사람을 상대한 경험이.

    아마 저 셋이 나서서 몸을 사리지 않고 싸우면 무릎 꿇은 열두 명 정도는 순식간에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대가로 부상은 좀 입겠지만 말이다.

    현석은 마력의 성질을 훨씬 무겁게 만들고 날카롭게 벼렸다.

    “으억!”

    결국 세 사람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무릎을 꿇지도 못했다. 그들이 받은 타격은 앞선 열두 명이 받은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힘주어 버틴 만큼 더 큰 타격을 입었다. 애초에 적당히 버텼다면 이렇게 다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세 사내는 두려운 눈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설마 이렇게 강할 줄은 몰랐다.

    현석은 그들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걸어갔다. 현석이 가는 방향에는 무릎을 꿇은 열두 사람이 있었다.

    그들 역시 두려운 눈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왠지 저 사람이라면 저렇게 담담하게 와서 단숨에 목을 착착착 잘라 버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 느낌이 그들을 짓누르는 마력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마력에 힘을 실어 제압했기 때문에 플레이어인 그들은 훨씬 더 세밀한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다.

    만일 일반인이 같은 일을 당했다면 이렇게까지 두려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현석은 가장 앞에 나와 있는 여인에게 향했다.

    그녀를 오연히 내려다보는 현석의 모습에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숙여 시선을 피했다. 어느새 온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소속.”

    “운남 대련방입니다.”

    현석이 고개를 돌려 가이드를 쳐다봤다. 대련방에 대해 알려줄 사람이 그밖에 없었다.

    답은 즉시 나왔다.

    “운남을 장악한 조직이자, 거대 길드입니다. 플레이어들이 조직의 주축이라서 운남 안에서 플레이어로 먹고 살려면 대련방의 눈치를 무조건 봐야 합니다.”

    현석이 이번엔 마력에 짓눌려 거의 엎드리다시피 하고 있는 세 사내를 쳐다봤다.

    “예! 연계했습니다! 그들과 손잡지 않고서는 운남에서 제대로 일을 풀어나갈 수 없습니다! 던전 몇 개 운영하자고 그들과 전쟁을 벌일 수는 없지 않습니까!”

    현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마력을 싹 거둬들였다.

    “허억! 허억!”

    다들 손으로 땅을 짚은 채로 숨을 헐떡였다. 마라톤이라도 뛰고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마력도 바닥났다.

    그들은 여전히 두려운 눈으로 현석을 올려다봤다.

    “렉스턴 에너지하고도 싸워야 하는데 우리끼리 힘 뺄 필요는 없지.”

    현석은 그렇게 말하고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임형석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그 뒤를 따랐다. 사실 말을 하나도 못 알아들으니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파악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사람을 보면서 개겨야지. 쯧쯧.”

    임형석이 해줄 수 있는 말은 그게 다였다. 물론 그 말을 알아들은 사람은 현석과 가이드가 전부였지만.

    그리고 진영관이 홀린 듯 그 뒤를 따랐다.

    남은 열다섯 사람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현석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이내 호흡이 좀 안정되고 몸에 힘이 돌아오자 그들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현석의 뒤를 따라갔다.

    * * *

    “정말 신기하긴 하네.”

    임형석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며 눈을 빛냈다. 인도에서 본 것과 아주 똑같았다.

    다섯 개의 블랙홀, 그리고 두 개의 화이트홀이 있었다.

    그들에게는 안 보이지만 화이트홀 사이에 투명 던전도 하나 있었다.

    완벽하게 똑같은 구성이었다. 그저 장소만 다를 뿐이었다. 물론 던전의 내용도 다를 것이다. 같은 건 모양과 배치뿐이었다.

    임형석은 그저 신기한 정도였지만, 나머지 다른 사람들은 넋을 놓고 그 광경을 바라봤다.

    플레이어들 역시 이런 형태의 던전 생성지역은 처음 봤다.

    사방을 끝없이 위로 솟은 절벽이 막고 있는 장소였다.

    진영관이나 대련방에서 나온 사람들조차 운남에 이런 장소가 있는 줄도 몰랐다.

    한데 현석은 마치 이곳 지리를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이들을 이끌고 여기에 찾아온 것이다.

    현석은 일행을 슥 둘러보며 말했다.

    “일단…… 블랙홀부터 클리어하고 시작할까?”

    좌중에 긴장감과 기대감이 한껏 고조되었다.

    < 서열정리 1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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