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눈 뜨고 레벨업-151화 (151/326)
  • < 중국으로 3 (6권 끝) >

    꽈드드드드득!

    사람의 팔과 팔이 부딪히고 다리와 다리가 부딪히는데 마치 거대한 나무가 비틀리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두 사람의 팔다리가 서로 부딪칠 때마다 강렬한 충격파가 사방을 휩쓸며 흙먼지를 피워 올렸다.

    피와 살로 이루어진 사람이 싸우는 모습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플레이어끼리 싸워도 이 정도는 아닐 것이다.

    이들은 플레이어도 아닌데 인간의 한계를 넘은 듯한 속도로 격렬한 공방을 주고받고 있었다.

    현석은 두 사람의 싸움을 보며 감탄했다.

    진영관도 임형석과 마찬가지로 플레이어가 아니다. 그런데도 플레이어보다 더 대단한 힘을 보여주고 있었다.

    세상에 임형석 말고도 저런 힘을 발휘하는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다.

    ‘그래도…… 결국은 어르신이 이기겠군.’

    싸움의 흐름은 시종일관 임형석이 주도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줄곧 승산을 유지한 채로 싸웠다.

    임형석이 어느 정도 사정을 봐주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상대의 목숨을 끊지 않기 위해 자제하는 거지 실력이 압도적으로 차이가 나서 갖고 노는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도 진짜 살고 죽이는 싸움을 하면 생각보다 금방 결판이 날 것이다.

    임형석은 공정하게 싸우고 싶다며 모든 장비를 다 벗어버라고 왔다.

    아마 장비를 차고 있었으면 초반에 벌써 싸움이 끝났을 것이다.

    어쨌든 현석은 처음 3분이 지나자, 두 사람의 싸움에 급격히 흥미를 잃었다.

    어차피 결과는 정해져 있었고, 주고받는 공방도 더 이상 특별한 게 없었다.

    이제 남은 건 임형석이 쌓였던 스트레스를 얼마나 확 풀어낼 수 있느냐였다.

    아마 자기가 가진 힘을 바닥까지 싹 소진하고 나면 어느 정도 기분이 풀릴 것이다.

    ‘그럼…… 난 이쪽을 적극적으로 해결해 볼까?’

    중국에서의 일은 생각보다 간단할 수도 있었다. 여기서 시간이 오래 걸리고 힘들만한 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였다.

    일단 목표로 하는 던전 생성지역은 금방 찾아낼 수 있었다. 중국의 생성지역에 대한 정보는 제법 소상히 아니까 말이다.

    물론 들어가 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워낙 유명해서 위치며 근처에 뭐가 있는지까지 대부분 머릿속에 들어 있었다.

    아직 지어지지도 않은 호텔 이름을 먼저 꺼낸 것도 그래서였다.

    설마 아직 호텔이 지어지지도 않았을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문제는 이곳 생성지역의 관리를 누구에게 맡기고 어떻게 할 거냐는 점이었다.

    현석이 염두에 둔 건 피라밋 암시장과 양동욱이 손잡고 하는 거였다.

    한데 중국에 와서 분위기를 보니 그것만으로는 안 될 것 같았다.

    렉스턴 에너지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고 말이다.

    인도가 없었다면 모를까, 인도의 그 밀림 깊숙한 곳에 위치한 던전 생성지역을 지키면서 중국까지 관리하기엔 일이 너무 컸다.

    현석은 가이드를 보며 말했다.

    “양동욱이나 블러디퀸이랑은 연락이 되나?”

    가이드는 임형석과 진영관의 싸움을 넋 놓고 구경하다가 현석의 말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예?”

    현석은 다시 말해주지 않고 가이드를 가만히 쳐다봤다. 가이드의 머리가 팽팽 돌아가며 무의식중에 들은 현석의 질문을 기억해냈다.

    “아! 연락! 예. 됩니다. 둘 다 연락 됩니다. 다만 블러디퀸 쪽은 여왕이 아니라 여왕의 기사인 웨인에게만 연락이 됩니다.”

    웨인이 누군지 알기에 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지시 받은 건 없고?”

    “그냥 열심히 따라다니면서 잘 모시라는 것 밖에는…….”

    단순하지만 정확한 지시이긴 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별 쓸모 없는 지시였다.

    이제 던전 생성지역을 찾는 건 시간문제였다. 이 근처 어딘가에 있으니 현석의 마력 감지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면 며칠 안으로 분명히 찾아낼 것이다.

    하지만 진짜 일은 찾은 다음부터였다. 어설프게 중국 쪽 길드나 조직들이 개입되면 진짜 골치 아파진다.

    현석은 양동욱에게 전화를 걸었다.

    양동욱은 신호음이 가자마자 전화를 받았다. 마치 전화기를 앞에 두고 언제 연락이 오나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어떻게 됐습니까?

    전화를 받자마자 단도직입적으로 저렇게 물어보는 걸 보니 정말로 소식이 오기만을 기다렸던 모양이다.

    “중국이다.”

    -아니, 그거야 당연히 알고 있죠. 그보다 찾았습니까?

    현석은 피식 웃었다. 저렇게 급하게 묻는 걸 보니 뭔가 꿍꿍이가 있거나 준비한 계획이 있는 모양이었다.

    “찾기 전에 확인할 게 있어서 연락했다.”

    -예? 확인이요? 그냥 찾으시면 되는데…….

    “찾으면 그 다음엔? 그냥 중국 애들한테 넘겨주려고?”

    -아, 그 부분을 말씀 안 드렸군요. 이미 얘기 끝났습니다. 삼합회랑 손잡았습니다. 아무래도 중국 쪽에서도 힘이 좀 있는 조직이랑 엮이는 게 일 진행이 편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삼합회?”

    현석은 눈살을 찌푸렸다. 확실히 삼합회가 끼어들면 잔챙이들은 군침도 못 흘릴 것이다.

    하지만 삼합회가 마음먹고 뒤통수를 치겠다고 나서면 아무것도 못하고 쫓겨날 수도 있었다.

    -믿어도 됩니다. 안전장치가 확실합니다. 그리고 피라밋 암시장, 생각보다 강한 곳입니다. 그들과 손잡고 일을 벌이는데 감히 뒤통수를 칠 생각은 못할 겁니다.

    현석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피라밋 암시장이 그렇게나 강력한 조직이었나?’

    지금 당장은 암시장 중에 가장 조직력과 정보력이 뛰어난 곳이 맞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적어도 회귀 전에는 그랬다.

    ‘어쩌면…… 나랑 엮이면서 피라밋 암시장도 미래가 달라졌을지도 모르지.’

    피라밋 암시장이 어떻게 쇠락의 길을 걷게 되는지는 사실 현석도 잘 모른다.

    하지만 추측은 할 수 있다.

    피라밋 암시장이 영향력을 잃기 시작하는 시점이 미국의 엠페러타워가 등장한 다음부터였다.

    사실 아무리 쇠락한다고 해도 세계 3대 암시장 중 하나임은 분명했다.

    하지만 만일 현석이 회귀 전에 죽지 않고 몇 년 더 버텼다면 분명히 피라밋 암시장은 3대 암시장에서 이름이 빠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 뒤 몇 년이 더 지나면 자연스럽게 몰락의 길을 걸었을 것이다.

    “삼합회가 흑시랑 관계있나?”

    -어라? 흑시까지 아십니까? 하긴…….

    피라밋 암시장에 가서 블러디퀸과 직접 인연을 맺고 온 사람이 흑시를 안다고 해서 이상할 건 없었다.

    양동욱은 그렇게 이해한 다음 말을 이었다.

    -아무튼 그냥 찾으시면 됩니다. 삼합회 쪽에 연락해 놓겠습니다. 그리고…… 블러디퀸이 중국으로 출발했습니다.

    현석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왜?”

    -그거야…… 뭐 아시잖습니까.

    양동욱은 말을 얼버무렸다. 굳이 설명을 길고 자세히 하고 싶지 않았다. 왠지 말을 하면 자신이 비참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현석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알았다. 그럼 일단 목표부터 찾는 걸로 하지.”

    -예. 10분 안에 흑시에서 사람을 보낼 겁니다.

    현석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전화를 끊었다. 옆에서 통화내용을 고스란히 듣고 있던 가이드가 멍하니 현석을 바라봤다.

    지금까지는 그저 별 거 아닌 일인 줄 알았다. 한데 삼합회라니. 또, 흑시라니. 가이드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저…… 저는 이제 돌아가도 될까요? 목적지에 잘 데려다 드렸으니…….”

    물론 현석은 단호히 거절했다.

    “이쪽 일을 마무리할 때까지 함께 있기로 한 거 아니었습니까?”

    “그, 그렇……죠.”

    현석은 더 말하지 않았다. 당연히 계속 함께 해야 한다고 믿는 듯했다.

    가이드도 거기에 대해서는 더 말하지 못했다. 다만 몸을 한 번 더 부르르 떨었을 뿐이다.

    가이드는 속으로 양동욱에게 마구 욕을 했다. 이런 일인 줄 알았으면 이렇게 쉽게 일을 맡겠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안 맡겠다고 해도 양동욱이 강제로 맡겼겠지만 말이다.

    “에휴.”

    가이드는 한숨을 내쉬며 다시 시선을 싸움으로 돌렸다. 그의 눈이 금세 몽롱해졌다.

    정말 끝내주는 싸움이었다.

    * * *

    “으하하하! 간만에 아주 즐거웠어!”

    임형석은 크게 웃으며 진영관의 등을 팡팡 두드렸다.

    웬만한 사람이었으면 등이 터져 나갈 정도로 강력한 두드림이었다.

    하지만 진영관은 그저 피식 웃기만 했다.

    사실 아프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그저 참을 만했다. 그 역시 임형석의 마음을 다 이해하기에 이 정도는 그냥 즐길 수도 있었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이젠 굳이 그럴 필요도 못 느꼈다. 한바탕 어울리고 나니 그저 상대의 눈만 봐도 마음이 통할 것 같았다.

    “제가 아직 수련이 부족합니다. 조만간 폐관수련을 할 생각인데, 그 다음에 또 한 번 대련 부탁드립니다.”

    진영관은 그렇게 말하며 정중히 포권을 취했다. 그러자 말은 못 알아들었어도 분위기로 대충 뜻을 짐작한 임형석이 더 크게 웃었다.

    “으하하핫! 좋아! 언제든 덤비라고! 으하하핫!”

    서로 다른 나라 말을 하는데도 묘하게 대화가 되는 모습에 가이드가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봤다.

    임형석은 진영관에게 기대감 넘치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런데 말이야, 동생. 혹시…… 중국에 동생보다 강한 사람 없나? 꼭 더 강하지 않아도 되니 비슷한 사람이라도. 응? 없어?”

    진영관은 기대감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임형석의 눈을 보고는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 대번에 짐작할 수 있었다.

    “글쎄요. 일단…… 제가 겪은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소문 몇 가지는 들은 적이 있군요.”

    거기까지 말한 진영관이 가이드를 한 번 힐끗 보고는 말을 이었다.

    “무술가들 사이에서만 도는 소문이라 아마 보통 사람은 알기 쉽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있다는 거야, 없다는 거야?”

    묘하게 대화가 이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임형석의 말에 진영관이 알아서 해석하고 대답했다.

    “사천에 가시면 장춘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무술가들 사이의 소문에 의하면…… 그분이 천하제일입니다.”

    물론 진영관은 지금까지 장춘과 만나보지 않아서 그렇지 막상 만나 자웅을 겨루면 자신이 이길 거라고 자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 임형석과 싸우면서 크게 깨달은 바가 있었다. 아직 자신은 멀었고, 세상에는 강자가 모래알처럼 많다는 사실이었다.

    장춘에 대한 얘기는 무술가들 사이에서 맴도는 소문으로만 접했다.

    진영관은 임형석을 바라봤다.

    만일 그 소문이 대부분 사실이라면, 장춘의 실력은 임형석과 비슷하지 않을까?

    임형석은 가이드를 바라봤다. 가이드가 눈이 마주치자마자 즉시 대답했다.

    “사천에 장춘이란 분이 천하제일이라고 하십니다.”

    그 말에 임형석이 씨익 웃었다.

    “감히 날 빼고 천하제일을 논해? 그게 말이 돼?”

    가이드가 즉시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됩니다. 제가 보기에는 어르신께서 천하제일이십니다.”

    임형석의 얼굴이 살짝 구겨졌다. 가이드는 자신이 무슨 실수를 했는지 몰라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임형석은 턱으로 옆에 있는 현석을 가리켰다.

    “아직 저놈을 못 넘었어.”

    가이드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현석과 임형석을 번갈아 바라봤다.

    임형석이 사나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덧붙였다.

    “그래도 조만간 넘을 게 확실하지.”

    그때 진영관이 갑자기 날카로운 눈으로 어딘가를 노려봤다. 그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진영관은 임형석을 바라봤다. 하지만 임형석은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분간할 수 없는 표정이었다.

    “그렇게 매사 긴장해서 어떻게 살아. 그냥 내버려 둬. 덤빈 다음에 족쳐도 늦지 않으니까.”

    그 말에 진영관이 몸에 들어간 힘을 좀 뺐다.

    가이드는 신기한 눈으로 진영관과 임형석을 바라봤다.

    “혹시…… 두 분 중국말이랑 한국말, 할 수 있으신 거 아닙니까?”

    임형석이 그 말을 듣고는 씨익 웃으며 가이드의 목에 팔을 확 휘감았다.

    “쿠엑!”

    목이 끊어질 것처럼 아팠다. 가이드는 임형석의 팔을 손바닥으로 탁탁탁 두드렸다.

    한데 말이 나오질 않았다. 그리고 너무 아프면 비명도 못 지른다는 사실을 지금 정확히 깨달았다.

    “한 번 주먹을 맞댔던 남자는 말이야. 말 같은 거 안해도 그냥 통해. 알겠냐?”

    가이드는 알았다는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아니, 굳이 대답을 할 필요가 없었다. 임형석이 놔줬으니까.

    숨어서 이쪽을 지켜보던 자들이 등장한 것이다.

    “이놈들 봐라?”

    임형석의 눈에서 투지가 일렁거렸다.

    나타난 자들은 플레이어들이었다. 그것도 제법 강한 놈들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눈에 적의를 담고 있었다.

    임형석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오늘 정말 운수 좋은 날인 거 같아. 그렇지 않아?”

    임형석이 마지막 말을 하며 현석을 바라봤다.

    “그런 거 같습니다.”

    현석도 그 말에 동의하며 눈을 빛냈다.

    < 중국으로 3 (6권 끝) > 끝

    ⓒ 김강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