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으로 2 >
현석과 임형석은 인도에서 바로 중국으로 이동했다.
중국은 엄청나게 큰 나라다. 그러니 정확한 목적지를 정하지 않으면 아무리 헤매도 원하는 걸 찾을 수 없었다.
지금 렉스턴 에너지는 살짝 방심한 상태였다. 그렇기에 인도나 중국에서의 움직임을 양동욱에게 훤히 읽힌 것이고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양동욱이라도 이번엔 제대로 된, 정확한 정보를 줄 수 없었다.
인도는 렉스턴 에너지에서 커다란 단서를 찾았기에 범위를 좁힐 수 있었다.
같은 조건으로 동시에 찾기 시작하면 현석이 렉스턴 에너지 쪽보다 훨씬 빨리 찾을 수 있는 건 너무나 당연했다.
현석에게는 다른 플레이어는 엄두도 낼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마력 감지 능력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범위를 좁혔을 때의 얘기였다.
중국 쪽 정보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렇기에 렉스턴 에너지도 지금 한창 삽질 중이었다.
렉스턴 에너지가 가진 정보는 딱 하나였다.
그들이 찾는 것이 사천과 운남을 포함하는 큰 지역 어딘가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대체 그 정보를 어떻게 얻은 건지는 몰라도 렉스턴 에너지 쪽에서는 상당한 믿음을 가지고 사천과 운남 쪽을 뒤지고 있었다.
현석이 비행기에 타기 직전 양동욱이 스마트폰을 통해 알려준 정보였다.
현석은 그걸 힐끗 보고는 의자에 등을 기대고 누워 마력 수련에 돌입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중국에 도착하기 전까지 반드시 이 비행기에 촘촘한 마력패턴을 새기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다지면서 눈을 감았다.
임형석은 중국에서 고수들과 한 판 붙을 생각에 벌써 흥분되는지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그 역시 지그시 눈을 감고 수련에 돌입했다.
현석이 던전 생성지역을 떠난 열흘 동안 야생에서 살며 그동안 무수한 수련과 경험을 통해 성장한 능력을 안정시키고 완벽하게 몸으로 받아들였다.
임형석이 고작 열흘 동안 현석을 이길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할 수 있다고 자신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임형석이 얻은 힘과 경험은 고작 열흘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래서 지금도 그것을 몸으로 받아들이고 정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임형석도 중국에 도착하기 전까지 그걸 끝내겠다고 다짐하며 눈을 감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인도를 떠나 중국에 도착했다.
물론 두 사람 모두 원하던 결과를 얻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실망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쉽게 된다면 이런 수련을 할 이유도 없었으니까.
* * *
“그래서 고수는 언제 만나게 해줄 건데?”
그렇게 묻는 임형석의 표정은 불퉁하기 그지없었다.
지금 두 사람은 양동욱이 따로 섭외해 보내준 현지 가이드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이동 중이었다.
현석은 정확한 위치를 지정해서 그쪽으로 가라고 했는데, 처음에는 가이드도 그게 어디인지 몰라 한참 동안 전화로 다른 사람에게 묻고 인터넷을 검색해서 알아냈다.
“그나저나 플레이어 관계자 분들이라고 들었는데, 아직 완공도 안 된 호텔을 말씀하셔서 놀랐습니다. 혹시 호텔 쪽 투자 목적으로 오신 겁니까?”
가이드는 신기한 표정으로 현석에게 물었다. 물론 운전을 하고 있기에 현석의 얼굴이나 표정은 룸미러를 통해서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현석은 처음 가이드를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가이드는 그런 것도 신기했다.
현석이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가이드는 화제를 돌렸다. 아무래도 일에 관계된 대화를 하기는 힘들 거라 판단한 것이다.
사실 현석은 그저 대화가 귀찮아서 가만히 있을 뿐이었는데, 가이드는 그것을 좀 오해했다. 대답하기 곤란하거나 꺼려지는 대화주제였다고 생각한 것이다.
가이드가 두 번째 꺼낸 화제는 임형석의 관심을 확 끌 만한 것이었다. 물론 임형석이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이나 툭툭 꺼낸 말을 토대로 선정한 화젯거리였다.
“그쪽에 가면 대단한 고수가 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고수?”
임형석이 대번에 눈을 반짝였다. 그는 새삼 양동욱이 고마웠다. 이렇게 한국말을 잘 하는 가이드를 붙여줬으니 말이다.
만일 현지인이라서 한국어를 못했다면 저런 중요한 말도 못 알아먹고 그냥 지나쳤을 것 아닌가.
임형석은 새삼 열 받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옆에 앉은 현석을 노려봤다.
“중국어로 저 얘기를 했으면 이놈이 나한테 그 말을 전해줬을 리 없지. 에잉, 야박하고 못된 놈.”
임형석은 그렇게 한 번 투덜거리며 현석에게 눈을 부라린 다음 다시 고개를 돌려 앞에 앉아 운전 중인 가이드를 바라봤다.
그의 눈빛은 지금까지 한 번도 보여준 적 없을 정도로 부드럽기 짝이 없었다.
블러드퀸과 나란히 누워서 서로를 바라볼 때나 지어줄 법한 표정이었다.
어쨌든 그 표정은 가이드에게 엄청난 부담감을 지워주었다. 가이드는 얼른 룸미러에서 시선을 뗐다.
더 보고 있으면 큰일 날 것 같았다.
“그래서 어떤 무술을 익힌 고수지?”
“소문으로는…… 팔극권 쪽인 것 같은데, 사실 소문이라는 게 별로 믿을 만하지는 않잖습니까?”
임형석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나도 비슷한 일을 겪어봐서 소문에 대해서는 좀 알지. 내 소문도 참 얼토당토않게 나더란 말이지.”
물론 다른 사람의 소문과는 방향이 좀 다르지만 어쨌든 임형석도 실제와 소문이 다른 사람 중 하나였다.
임형석이 그렇게 맞장구까지 쳐주자, 가이드의 표정에서 긴장이 살짝 사라지며 말에 흥이 실리기 시작했다.
“그렇죠. 그래서 저도 사실 이런저런 소문은 많이 들었지만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갔단 말입니다. 물론 소문을 다 믿지도 않았고요.”
“그래서?”
“한데! 제가 마침 그 고수가 활약하는 모습을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할 일이 생긴 겁니다.”
“호오. 직접 봤다고? 어떻던가? 막 10층 건물을 주먹으로 박살 내고, 달리는 차를 쫓아가 손으로 콱 잡아서 휙 들어 던지고 막 그러나? 아니면 플레이어가 100명쯤 몰려오는데 혼자서 모조리 박살을 내고 그러나?”
“예에? 으하하하! 농담도 잘하십니다. 세상에 그런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아마 플레이어도 그런 건 못할 걸요? 안 그렇습니까?”
가이드가 이번엔 현석 쪽에 힐끗 시선을 주며 물었다.
현석이 한 말은 딱 한 마디였다.
“할 수 있다.”
가이드는 순간 말문이 막혀 입을 꾹 다물었다. 하지만 이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아, 예. 그렇군요. 할 수 있군요. 제가 뭐 플레이어에 대해 아는 게 있겠습니까? 그냥 그런가 보다 하는 거죠.”
가이드는 다시 룸미러를 통해 임형석을 바라봤다. 한데 임형석의 태도가 조금 전과는 아주 달랐다.
‘갑자기 왜 저러지? 내가 뭐 기분 상하게 했나?’
가이드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얘기 계속 할까요? 제가 직접 본…….”
임형석이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내저었다.
“뭐, 계속 해 보든가.”
흥미가 확 떨어진 말투였다. 하지만 얘기는 들어볼 생각인지 가이드를 보고 있긴 했다.
가이드는 좀 떨떠름했지만 어쨌든 시작한 얘기니 마무리는 해야겠다는 생각에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그쪽 호텔 공사를 하는 놈들이 그 지역에서 제법 힘깨나 쓰는 놈들입니다.”
“조폭?”
“예. 흑사회라는 놈들인데, 아주 잔인하기가 이를 데 없는 놈들입니다.”
“그냥 잔인하기만 해? 얘기 들어보니 별 거 아닌 놈들 같은데?”
“에이, 무슨 말씀을. 그놈들 진짜 대단한 놈들입니다. 하나하나가 웬만한 장정 두세 명은 단숨에 때려눕힐 정도라니까요?”
그 부분에서 이미 흥미를 잃은 임형석이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가이드는 신경 쓰지 않고 말했다.
“그런 놈들 열 명이랑 시비가 붙었는데…… 휙휙휙 하더나 열 놈이 다 쓰러져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 말에 임형석이 눈을 빛내며 다시 흥미를 보였다.
“그러니까 어떻게 싸웠는지도 제대로 못 봤다는 거네?”
“뭐…… 그건 그렇습니다만…… 에이, 그래도 열 놈이나 한꺼번에 쓰러뜨렸는데, 그 정도면 대단한 고수 아닙니까?”
임형석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흥미가 생긴 것이다.
“그럼 일단 그 사람부터 만나러 가자.”
“예?”
가이드가 깜짝 놀라 룸미러를 통해 임형석을 바라봤다. 그리고 슬그머니 시선을 옆으로 돌려 현석의 표정을 살폈다.
현석은 여전히 같은 표정으로 창밖만 내다보고 있었다.
“시키는 대로 해.”
현석의 말이 떨어지자, 가이드가 신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 그럼 그쪽으로 방향을 잡겠습니다.”
부우웅!
차의 엔진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가속페달을 밟은 가이드의 발에 힘이 꽉 들어갔다.
그렇게 그들은 운남의 구석에 있는 제법 경치 좋고 볼거리가 많은 지역으로 들어섰다.
* * *
진영관은 걸음을 멈췄다. 온몸을 옥죄는 투기와 살기에 더 이상 한가로이 걸을 수가 없었다.
그는 천천히 돌아서며 말했다.
“이번에는 정말 제대로 된 놈으로 구했나보구나.”
돌아선 진영관의 표정에 살짝 긴장이 맴돌았다. 하지만 그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두려움이란 잃을 것이 있는 사람에게나 존재하는 것이다. 그는 더 이상 잃을 게 없는 사람이었다.
벌써 일곱 번이나 흑사회의 습격을 받았다. 매번 점점 더 강한 놈들이 더 위험하고 잔인한 무기를 들고 찾아왔다.
심지어 마지막엔 총까지 동원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진영관의 옷자락 하나 건드리지 못했다.
진영관은 총구를 보지도 않고 적이 쏜 총을 피하는 엄청난 모습까지 보여줬다.
그 뒤로 흑사회의 습격이 한동안 없었는데, 오늘 정말 제대로 된 놈을 데리고 온 것이다.
돌아선 진영관은 30미터쯤 떨어진 곳에 서 있는 사내를 바라봤다.
사내 옆에는 어딘가에서 본 적이 있는 듯한 남자가 서 있었는데, 아무리 봐도 흑사회에서 나온 놈처럼은 안 보였다.
진영관은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흑사회에서 나온 놈들 같지는 않은데…….”
그런데 왜 자신에게 이렇게 살기와 투기를 보낸단 말인가. 분명 처음 보는 사람이니 특별히 원한을 맺을 일도 없었을 터인데 말이다.
진영관은 그렇게 그 사람과 잠시 대치하다가 이내 눈을 크게 떴다.
그제야 저 거대한 사람에게 좀 떨어진 곳에 가만히 서서 이 상황을 구경하고 있는 사내를 발견한 것이다.
진영관은 생전 한 번도 두려움이라는 것을 못 느껴봤다. 어렸을 때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최소 기억하는 한도 내에서는 두려움을 모르고 살았다.
한데 생전 처음으로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스멀스멀 흘러나왔다.
그 두려움은 진영관의 온몸을 잠식해 들어갔다. 진영관의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진영관은 이를 악물고 그 두려움을 이겨냈다.
다리의 떨림이 멎었고, 팽팽하게 당긴 활시위처럼 온몸의 근육이 팽팽하게 긴장했다.
그러자 저 멀리서 대치하고 있던 거대한 남자, 임형석이 씨익 웃었다.
“그럭저럭 쓸 만한데?”
임형석은 성큼성큼 걸어 진영관에게 다가갔다.
진영관은 임형석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점점 거대해지는 기세에 표정이 확 굳었다.
‘뭐지? 이 사람? 플레이어인가?’
임형석 덕분에 저 멀리 서 있는 현석으로부터 오는 두려운 느낌이 모조리 날아가 버렸다.
굳이 이 악물고 버티지 않아도 괜찮을 정도가 되었다.
그러자 상대적으로 훨씬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진영관은 서둘러 물었다.
“누구지?”
임형석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 중국말 모르는데?”
중국말은 몰라도 이렇게 직접 몸으로 하는 대화는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임형석의 주먹이 진영관을 향해 비쾌하게 날아갔다.
파앙!
진영관은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며 주먹을 피해냈다. 주먹이 공기를 터트리는 소리가 귓가에서 울렸다.
아마 보통 무술가라면 이 한 수에 머리가 멍해지면서 두 번째 공격을 허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진영관은 거기까지도 다 예상하고 있었다. 기를 이용해 그 순간 귀를 막아버렸다.
그러면서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가 자연스럽게 임형석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마치 잘 짜여진 각본에 따라 움직이는 것 같았다.
진영관의 손바닥이 임형석의 옆구리 위쪽에 찰싹 달라붙었다. 아니, 그렇게 되는 줄 알았다.
임형석의 반응은 그야말로 야수같았다.
주먹을 내지른 힘을 이용해 몸을 빙글 돌려 진영관의 장법을 피해 버린 것이다.
진영관은 그 한 수의 교환으로 상대와 자신의 차이를 대번에 알아차렸다.
진영관은 어릴 때부터 체계적인 무술을 배웠다. 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가문에 전해지는 기법을 통해 체계적으로 기를 쌓고, 그것을 쓰는 법도 체계적으로 배웠다.
한데 임형석은 그렇지 않았다.
그에게는 체계 따위 없었다. 그저 본능에 의해 움직이고 싸울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무수한 경험과 결합해 세월을 지나면서 그 어떤 체계적인 무술보다 대단한 위력을 발휘하게 되었다.
형식과 체계가 없는 무술이 되어버린 것이다.
물론 재능이라는 토대가 없으면 절대 이뤄내기 불가능한 경지였다.
진영관은 공격 실패와 동시에 거리를 한껏 벌렸다.
“이유나 알고 싸웁시다.”
진영관의 말에 임형석은 고개를 돌려 가이드와 현석을 바라봤다.
가이드가 얼른 중국말로 그의 말을 번역해 주었다.
그러자 임형석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재미있잖아. 피도 끓고. 넌 안 그래?”
임형석의 말을 가이드가 얼른 번역해 주었다.
그러자 진영관의 표정이 묘해졌다.
샤아아아아!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세가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날카롭게 벼려졌다.
그걸 본 임형석의 미소가 더욱 환해졌다.
이내 두 사람이 서로에게 달려들었다.
꽈앙!
< 중국으로 2 > 끝
ⓒ 김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