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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149화 (149/326)
  • < 중국으로 1 >

    “아직 류크 쪽에서는 연락이 없나?”

    “예. 밀림 안쪽으로 더 깊이 들어간다는 연락이 마지막이었습니다.”

    “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기에 연락도 안 되는 거야?”

    칼슨이 신경질적으로 투덜거리고는 결재 서류 몇 장을 읽고는 도장을 쾅쾅 찍었다.

    어쨌든 렉스턴 에너지는 큰 회사였고,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기술만으로도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고 있었다.

    그들이 뒤로 벌이는 무수한 수작과 돈벌이와 힘 싸움은 그런 회사의 일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러니 기본적인 일은 해야 한다.

    지금 하는 결재가 바로 칼슨이 회사에서 해야 할 최소한의 일이었다.

    칼슨의 비서는 칼슨이 서류를 읽고 도장을 찍는 것을 지켜보면서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한데…… 최근 피라밋 암시장 쪽의 움직임이 좀…… 이상합니다.”

    “피라밋? 그놈들은 또 왜?”

    “예전과 다르게 상당히 활발해졌습니다.”

    칼슨은 서류에서 눈을 떼고 비서를 바라봤다. 못마땅한 눈빛이었다.

    “그동안은 조용했는데 활발하니 조사해보자 이건가?”

    비서는 잠시 머뭇거렸다. 따지고 보면 그런 뜻이긴 하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세계 각국에 지부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 중에 한국, 중국, 인도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래? 그거 참 공교롭군. 그래서 그게 전부인가? 예를 들어 딱 그 세 나라에만 지부를 설치했다거나 그런 건 없나?”

    비서는 입을 다물었다. 뭔가 있긴 있는데 그게 뭐라고 딱히 꼬집어 얘기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답답했다.

    피라밋 암시장이 단순히 사업을 확장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한국, 중국, 인도에만 지부를 세우는 게 아니라 총 12개 나라에 지부를 세우는 중이었으니까.

    대부분이 동남아 쪽이었다. 물론 유럽 몇 개국도 포함되긴 했지만 목표 자체가 아시아 쪽이라는 건 목록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러니 굳이 꼬집어서 이게 문제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저 뭔가 이상한 촉이 올 뿐이었다.

    “쓸데없는 데 신경 쓰지 말고 류크한테 연락할 방법이나 찾아봐. 도움이 필요하면 적절한 순간에 지원을 해줘야 하니까.”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중국 쪽은 어떻게 되고 있지?”

    “아무래도 시간이 제법 걸릴 것 같습니다. 인도랑은 상황이 많이 다릅니다.”

    “그래…… 아무래도 그렇겠지.”

    인도는 그나마 큰 단서와 흔적을 발견한 덕분에 일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중국은 인도보다 몇 배나 더 많은 시간과 노력과 인력을 쏟아 부어야 할 것이다.

    그 정도는 칼슨도 충분히 예측하고 있었다.

    게다가 중국은 인도보다 방해하는 세력이 훨씬 많았다.

    중국 쪽의 크고 작은 길드들 중에서 렉스턴 에너지에 호의를 가진 놈들은 하나도 없었다.

    다들 어떻게 하면 하나라도 더 뜯어먹을 수 있을까만 궁리하는 놈들이었다.

    그러니 손을 잡는다 해도 신뢰를 쌓기가 어려웠다.

    그렇다고 중국 쪽 길드들이 다른 나라의 회사나 길드, 혹은 플레이어들을 모두 배척하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참으로 묘하게 렉스턴 에너지 쪽에만 호의를 보이지 않았다. 좀 심할 정도로 말이다.

    그래서 안 그래도 중국 쪽은 일의 진행 자체가 더뎠다. 렉스턴 에너지의 힘을 시원하게 쏟아서 뭔가를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 류크랑 연락부터 시도하고…… 혹시 모르니까 피라밋 쪽 조금만 조사해 봐. 혹시 뭔가 꿍꿍이가 없는지 말이야.”

    “예. 알겠습니다.”

    비서는 그렇게 대답하고 물러났다. 하지만 표정이 썩 시원치는 않았다.

    피라밋 암시장은 그냥 대충 조사해서 뭔가를 알아낼 수 있을 만한 조직이 아니었다.

    고작 그런 조직이었다면 세상에서 가장 물건 추적이 어려운 암시장이라는 별칭을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피라밋 암시장은 그 어떤 조직보다 비밀스럽고 은밀했다.

    그리고 그들의 실제 규모가 어느 정도이고, 가진 재산이 얼마이며,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전혀 알려진 게 없었다.

    그런 조직을 가볍게 알아보라고 한다는 건, 그저 말만 던져 생색이나 내겠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비서는 속으로 피라밋 암시장에 대한 건은 포기하고 칼슨의 사무실에서 나갔다.

    칼슨은 비서가 나가자, 서류를 옆으로 치우고는 의자에 등을 기대 조금 편안하게 몸을 뒤로 젖혔다.

    “그나저나…… 류크 이 자식은 대체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야? 능력 좀 있다고 오냐오냐해줬더니 안 되겠어.”

    칼슨은 짜증을 담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는 상상도 못하고 있었다. 그가 아끼던 류크는 이미 몸에 걸쳤던 장비만 남기고 그냥 사라져 버렸다는 것을.

    그리고 그 장비는 피라밋 암시장을 통해 은밀히 처리 중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 * *

    “으아아아!”

    임형석은 늘어지게 기지개를 켰다. 온몸이 찌뿌드드했다. 하지만 마음은 더할 나위 없이 상쾌했다.

    다섯 개의 던전은 연이어 격파했다. 게다가 하나하나가 정말 어마어마하게 위험한 던전이었다.

    세 번째 던전부터는 죽을 뻔한 상황을 수시로 겪어야만 했다.

    어쨌든 지금은 모든 던전을 완벽하게 클리어해서 던전이 모두 사라진 상태였다.

    이제 남은 건 두 개의 화이트홀과 한 개의 투명 던전 뿐이었다.

    하지만 그 던전들은 배경이 폭포로 있기 때문에 눈에 잘 띄지 않았다.

    물론 마력 감지기를 동원해 찾으면 찾아낼 수 있겠지만 그래도 블랙홀들이 있을 때보다는 찾기가 어려울 것이다.

    “이제 어쩔 거냐? 여기 그냥 두고 가면 안 되는 거 아냐? 이거 먹으러 온 거 아니었어?”

    임형석의 물음에 현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래도 당분간은 안전하니 사람들을 이쪽으로 데려와야지요.”

    그 말에 임형석이 인상을 팍 구겼다.

    “사람들을 여기로 데려온다고? 그럼 시간이 많이 걸리겠네?”

    임형석은 그런 의미 없는 이동보다는 치열한 싸움을 원했다. 그는 잠시 눈살을 찌푸린 채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가 눈을 번쩍 뜨고 현석을 바라봤다.

    “저긴 어떠냐?”

    임형석은 현석이 자신을 쳐다보자 시선을 돌려 화이트홀을 바라봤다.

    “저 하얀 구멍에도 위험한 놈들이 잔뜩 있지? 아냐?”

    현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저기에는 위험한 놈들이 잔뜩 있죠.”

    “그럼 너 올 때까지 나 저기에 들어가 있으면 안 될까?”

    그 말에 현석은 잠시 고민했다. 저긴 화이트홀이지만 그냥 일반적인 화이트홀과는 좀 달랐다.

    현석이 이 던전 생성지역을 찾아 소유하려고 애쓴 이유가 바로 저 화이트홀 때문이었다. 그리고 화이트홀 사이에 있는 투명 던전이랑.

    “저긴 나중에 들어가죠. 여기 말고 한국에 있는 것부터 해결을 하는 게 아마 나을 겁니다.”

    임형석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야, 한국에도 이런 게 있어? 진작 말을 하지!”

    “한국에 있는 건 여기 보다 덜 위험합니다. 아마 어르신은 별로 재미없으실 겁니다.”

    실제로 이곳 인도의 블랙홀들이 같은 퀸급인데도 훨씬 위험했다.

    난이도를 통해 엄밀히 등급을 따져보면 여긴 킹급에 훨씬 가까웠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킹급 보다 더 어렵고 위험한 점도 있었다.

    임형석이 사냥 중에 죽을 뻔했으니 말 다한 것 아닌가.

    ‘아마…… 중국에 있는 건 더 어려울지도 모르지.’

    중국에 있는 건 확인해보지 않았지만 아마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회귀 전에도 중국에 있는 퀸급 던전이 공개 되었을 때, 가장 많은 플레이어를 죽음으로 몰아간 던전이 바로 거기였으니까.

    “에잉. 좀 더 놀고 싶었는데.”

    임형석이 아쉬운 눈으로 화이트홀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가 저기에 들어가려면 현석의 도움이 절실하다.

    그리고 들어갔을 때, 현석이 나 몰라라 하면 안에 갇혀서 나올 수조차 없다.

    그러니 얌전히 현석이 하자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임형석은 주위를 슥 둘러봤다. 그러더니 씨익 웃었다. 그 미소에는 기대감이 가득 담겨 있었다.

    “너 혼자 다녀와라.”

    임형석의 말에 현석이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그를 쳐다봤다. 혼자 다녀오라니. 그럼 그때까지 여길 지키고 있겠다는 뜻인가?

    임형석은 손을 휘휘 내저었다.

    “가라니까. 나 혼자 알아서 먹고 자고 할 테니까 얼른 다녀와.”

    임형석을 그렇게 말하며 주위를 휘휘 둘러봤다.

    “여기 먹을 거 많잖아.”

    현석은 그걸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지금 임형석은 사냥으로 먹고 살겠다고 하는 것이다.

    짐승을 사냥하겠다는 건데 그건 마수와 싸우는 것보다 사실 훨씬 어려운 일이었다.

    마수들은 기본적으로 공격적 성향을 갖고 있기에 사람을 보면 달려든다.

    하지만 짐승들은 그렇지 않다.

    맹수 같은 경우는 기습을 하기도 하고 달려들기도 하지만 모든 맹수가 다 그런 것도 아니고, 또 맹수가 아닌 경우는 숨어서 도망간다.

    사냥이라는 건 그런 맹수와 싸우고 도망치는 짐승을 쫓아가 잡는 일이었다.

    그러니 싸움만 잘하면 마수 사냥이 훨씬 쉬운 게 당연했다.

    현석은 임형석을 가만히 쳐다봤다.

    “다른 생필품이라도 좀 드리죠.”

    임형석이 고개를 저었다.

    “필요 없다. 그런 것들이 사람을 나약하게 만드는 거야.”

    임형석은 현석을 보며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어딘가 사나워 보이는 미소였다. 게다가 눈빛은 섬뜩하기 그지없었다.

    “열흘쯤 걸리지? 다녀와. 그리고 다녀와서 나랑 한 판 붙자. 아마…… 이번엔 내가 이길걸?”

    그 말을 들은 현석도 환하게 웃었다. 임형석 못지않게 사납고 섬뜩한 미소였다.

    “다녀와서 보죠.”

    현석은 그 말을 남기고 돌아서서 훌쩍 몸을 날렸다. 현석은 빽빽한 밀림의 나무 사이를 교묘하게 빠져나가며 빠르게 내달렸다.

    이내 현석이 사라져 버리자, 임형석이 목을 이리저리 꺾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자, 그럼 식사 거리를 잡으러 가 볼까?”

    임형석은 철저히 야생으로 돌아가 감각을 갈고 닦을 생각이었다.

    아마 열흘 후에 현석과 제대로 한 판 붙으면 무조건 이길 수 있다고 자신했다.

    임형석의 몸이 밀림 속으로 빠르게 스며들었다.

    * * *

    현석은 빠르게 밀림을 이동했다. 뛰진 않았다. 그렇게 하면 아무도 못 쫓아올 테니까.

    생각보다 깊이 들어가야 하는지라 쫓아가는 사람들의 표정이 그리 좋진 않았다.

    그들은 피라밋 암시장에서 나온 사람들이었다. 모두 20명 정도였는데 플레이어도 있고, 보통 사람도 있었다.

    플레이어들은 정찰과 경계, 그리고 위험으로부터 일행을 보호하는 역할을 맡았다.

    다른 플레이어 집단이 기습하지 않는 한, 100레벨이 넘는 플레이어가 세 명만 있어도 이런 밀림에서의 위험이 확 줄어든다.

    “더 들어가야 합니까?”

    “이렇게 깊이 들어가야 하는 거면…… 아무래도 관리가 쉽지 않겠는데요?”

    현석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런 걸 결정하는 건 이들의 몫이 아니다. 이들은 그저 시키는 대로 일을 진행하는 사람들이었으니까.

    이내 커다란 공터가 나타나며 주변이 확 밝아졌다. 그리고 엄청난 크기의 폭포가 보였다.

    물이 굉음과 함께 쏟아지는 광경은 장관이었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누구도 그런 장관에 시선과 마음을 빼앗기지 않았다.

    “여기로군요!”

    얘기로 들었던 블랙홀은 없지만 분명한 화이트홀 두 개가 보였다.

    블랙홀은 클리어 했다고 했으니 위치만 알면 대충 공사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현석이 블랙홀의 위치를 툭툭 짚어줬다. 그러자 다들 알아서 할 일을 찾아 움직였다.

    현석은 잠시 그들이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이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임형석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서였다.

    ‘음?’

    현석은 갑자기 등줄기가 싸해지는 기분에 본능적으로 몸을 날렸다.

    꽈득!

    방금 현석이 서 있던 자리에 돌멩이 하나가 틀어박혔다.

    현석은 돌이 날아온 쪽을 쳐다봤다. 거대한 몸을 가진 누군가가 빠르게 사라지는 모습이 보였다.

    현석은 그가 누군지 굳이 묻고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그만 하고 중국 갑시다!”

    현석의 말에 임형석이 수풀 속에서 불쑥 솟아나더니 달려왔다.

    “중국? 거긴 왜? 또 비행기 타고 가는 거냐?”

    현석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임형석의 모습에 피식 웃었다.

    임형석은 거의 넝마에 가까운 옷을 입고 있었다. 열흘 동안의 야생 생활이 제법 고달팠던 모양이다.

    “그럼 걸어갑니까? 가시죠. 비행기 시간 놓치면 곤란하니까.”

    현석이 먼저 움직이자, 임형석이 따라붙으며 물었다.

    “중국 가면 무술 같은 거 쓰는 고수들도 있으려나?”

    그렇게 묻는 임형석의 눈이 더없이 초롱초롱 빛났다.

    현석이 고개를 건성으로 끄덕여주자, 임형석의 움직임이 두 배로 빨라졌다.

    “뭐해? 빨리 안 가고.”

    임형석은 앞으로 막 달려가다가 뭔가가 생각났는지 딱 멈추더니 고개를 돌려 현석을 바라봤다.

    “너, 중국 다녀온 다음에 꼭 한 판 붙어. 이번엔 미루는 거 없다!”

    그 말을 남긴 임형석이 밀림을 질주했다. 마치 야수 같은 몸놀림으로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현석은 그런 임형석의 뒤를 쫓아 빠르게 움직였다.

    왠지 임형석과 한 판 붙는 일이 제법 기대되기 시작했다.

    어쨌든 그렇게 두 사람은 중국을 향해 달려갔다.

    < 중국으로 1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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