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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147화 (147/326)
  • < 인도에서 1 >

    “너랑 다니니까 이렇게 비행기도 자주 타고 좋네.”

    임형석은 넓고 길쭉한 시트에 거의 눕듯이 앉아서 말했다.

    퍼스트 클래스의 위용이었다.

    양동욱은 두 사람에게 편안히 인도에 다녀오라고 퍼스트 클래스를 예약해 주었다.

    덕분에 현석과 임형석은 인도까지 가는 내내 편안히 누워 각자의 수련에 몰두할 수 있었다.

    물론 대단한 수련을 하는 건 아니었다.

    임형석은 현석이 얼마 전에 내준 숙제인 기세를 갈무리 하는 수련을 했다.

    그리고 현석은 여전히 마력 수련에 몰두 중이었다.

    요즘 현석이 하는 마력 수련은 사물에 마력을 덧씌우는 훈련이었다.

    사실 검에 마력을 씌우고 그렇게 한 다음 마력의 성질을 변화시켜 날카로운 절삭력을 부여하거나 전격 속성이나 얼음 속성을 부여하는 등의 일은 전투에 적용할 수 있을 정도로 즉각적으로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현석이 하는 수련은 그런 간단하고 단순한 방식이 아니었다.

    예를 들면 지금처럼 비행기에 탔을 때는 비행기에 마력을 덧씌운다. 그것도 비행기의 모양에 딱 맞춰서.

    비행기에 마력을 그냥 덮어 씌우는 게 아니라 비행기 모양의 마력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근처에 있는 모든 사물에 그런 식으로 마력을 덧씌워 같은 모양의 마력 덩어리를 하나 만들어내는 것이 현석이 최근에 시작한 수련이었다.

    당연히 지금은 비행기를 만들고 있었다.

    이 수련 방법은 정말로 어려웠다. 난이도가 엄청났다. 그리고 그렇게 어려운 만큼 효과도 대단했다.

    특히 마력 패턴을 만들고 변형시키는 능력이 크게 향상됭첬다.

    아무래도 마력 패턴이라는 것도 마력을 얼마나 정교하게 다루느냐의 문제였다.

    그러니 이런 식으로 마력을 더 세밀하게 다룰 수 있으면 패턴을 구성하는 데 도움이 되는 건 당연했다.

    최근 현석은 이 수련에 연결시켜 자신만의 마력패턴을 만들어내는 훈련까지 함께 하고 있었다.

    그 수련의 일환으로 지금 비행기에 정교하게 마력을 덧씌운 다음 꼬리에서부터 차근차근 마력패턴을 만들어 가는 중이었다.

    그건 정말로 길고 복잡하고 끈기와 인내를 요구하는 작업이자 수련이었다.

    현석은 가만히 누운 채 눈을 감고 그렇게 마력을 조각해 나갔다.

    특별한 의미를 가진 패턴은 아니었다. 그저 최대한 가늘고 세밀하게 패턴을 만들어 그려 나갔다.

    이건 마력 패턴을 통해 뭔가를 하려는 게 아니라 그저 수련의 의미였으니 복잡하고 촘촘하게 만들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각자의 수련에 몰두하느라 밥도 걸렀다. 임형석이든 현석이든 이런 식으로 수련에 한 번 빠지면 다른 어떤 것에도 관심을 주지 않는다.

    그렇게 그들은 수련과 함께 인도에 도착했다.

    * * *

    렉스턴 에너지의 실권자인 칼슨 휘하에는 상당히 뛰어난 플레이어들이 많았다.

    그 중 칼슨이 정말로 신임했던 두 사람은 이제 더 이상 세상에 남아있지 않았다.

    물론 그들이 사라졌다고 해서 칼슨이 슬퍼하거나 한 건 아니었다. 다만 그들의 능력을 써먹을 수 없게 되어 아쉬웠을 뿐이다.

    그럴 때, 그 아쉬움을 일거에 날려버린 인물이 등장했다.

    그는 단숨에 칼슨의 오른팔로 성장했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임무를 받았다.

    “다들 준비 됐나?”

    류크는 일행을 둘러보며 물었다. 그의 눈빛은 날카롭게 번득이고 있었다.

    류크가 이끄는 일행이자 부하는 50명이나 되었다. 이들은 류크의 명령을 절대적으로 따랐다.

    모두 대답 대신 차렷 자세를 했다. 언제든 출발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큰 소리 내선 안 되는 작전을 주로 수행하기 때문에 생긴 대답 방식이었다.

    류크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인 다음 돌아서서 걸음을 옮겼다.

    ‘오늘은 꼭 찾아야 하는데…….’

    이들은 지금 인도의 밀림지대를 헤매고 있었다.

    찾는 것에 대한 단서를 발견한 지 벌써 열흘이 지났다. 그런데도 아직 못 찾았다는 건 분명히 문제가 있었다.

    이대로 시간이 더 지나면 능력에 대한 신임을 잃게 될 수도 있었다.

    ‘젠장. 왜 하필이면 밀림 속에 있어서…….’

    밀림은 수색이 어려운 장소다. 그나마 류크가 찾는 것이 그리 작은 게 아니라 눈에 확 띄는 것이기에 그나마 다행이지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정말 찾기 어려웠을 것이다.

    “자, 오늘은 다섯으로 좀 많이 나눠보지. 다섯 명씩 열 팀으로 나눈다. 오늘 중에 반드시 찾아내야만 한다는 거 명심하도록.”

    류크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50명의 일행이 5명씩 짝지어 10개의 팀을 만들었다.

    류크는 신중하게 지형과 지도를 살피며 그들을 적당한 방향으로 출발시켰다.

    ‘왠지…… 묘한 예감이 들어.’

    하늘이 우중충했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뭔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왠지 오늘은 원하는 것을 꼭 찾아낼 수 있을 것 같은 예감도 들었다.

    참으로 묘한 느낌이었다.

    류크는 혼자서 따로 움직였다. 그는 그래도 될 정도로 강하고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일단 라이언을 넘어설 수 있는 유일한 재목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류크는 품에서 수정구슬 하나를 꺼냈다. 최고급 수준의 마력 탐지기였다.

    다른 팀원들도 다들 마력 감지기를 하나씩 갖고 있지만 이 정도 수준의 마력 감지기는 류크에게만 있었다.

    이 마력 감지기를 쓰려면 그냥 단순히 레벨만 높아선 안 된다. 마력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다. 또한 마력 컨트롤 능력이 필요했다.

    다시 말하면 50명의 부하들 중에 이 마력 감지기를 쓸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 된 플레이어는 한 명도 없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류크가 미래의 플레이어들을 선도할 거라고 인정받는 이유 중 하나였다.

    류크는 마력 감지기를 작동했다. 현재 그의 수준으로는 반경 10미터 정도가 한계였다.

    만일 같은 아티팩트를 현석이 썼다면 반경 1킬로미터도 파악이 가능했을 것이다. 아니, 좀 더 무리한다면 2킬로미터까지도 가능하리라.

    하지만 그건 현석에게나 가능한 일이고, 보통의 플레이어 에게는 이걸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것만 해도 굉장한 일이었다.

    류크는 거기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샤아아아아!

    빛가루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수정 구슬을 작동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류크는 주위를 둘러봤다. 빛가루가 붙은 곳은 어김없이 반짝였다.

    그리고 그렇게 반경 10미터가 빛으로 차올랐다. 그 빛은 마력이었다. 또한 마력을 파악하는 힘이자 감각이었다.

    류크의 감각권 안에 반경 10미터의 마력분포가 고스란히 새겨졌다.

    “후우. 작동이 이렇게 힘들어서야…….”

    류크는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걸 또 한 번 상기하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아무리 걸어도 마력이 감지되지 않았다. 단서를 발견할 때처럼 강력한 마력 반응이 나오면 좋겠는데, 그렇지가 않으니 정말 미칠 지경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류크는 밀림 깊은 곳을 지나고 있었다. 반경 10미터는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물론 그 빛은 류크의 눈에만 보이는 빛이었다.

    한데 갑자기 그 빛의 일부가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류크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찾았다!”

    이건 분명한 마력반응이었다. 류크는 반응이 있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마력을 품은 무언가가 흘리는 마력의 일부분을 마력 감지기가 발견한 것이다.

    마력 반응이 일어난 쪽으로 이동하면 이동할수록 반응이 점차 커졌다.

    처음에는 그저 빛이 조금 일그러지고 일렁이는 정도였는데, 이젠 빛이 아예 사라질 정도로 마력이 짙어졌다.

    그렇게 한참을 이동한 류크의 눈에 사람이 보였다. 지금까지 확인한 마력 반응의 주인은 그가 찾던 것이 아니라 마력을 품은 사람, 플레이어였던 것이다.

    류크는 마력 감지기를 중지시켰다. 그리고 그것을 품에 넣었다.

    그의 얼굴은 크게 일그러져 있었다. 탐색을 방해받은 기분이었다.

    사실 냉정히 따지면 저 사람은 그저 밀림 한가운데 서 있었을 뿐이었지만, 그런 걸 이해해줄 기분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리 화가 나고 짜증이 나더라도 앞뒤 없이 달려들지는 않았다.

    방금 마력 감지기를 통해 확인한 저 사람의 마력은 굉장한 수준이었다.

    류크가 아무리 대단한 능력을 가졌다고 해도 저렇게 막대한 마력을 품은 사람과 싸워 이길 수는 없었다.

    ‘물론 좋은 아티팩트를 가졌으니 저렇게 마력이 짙겠지만.’

    플레이어가 레벨업을 통해 쌓은 마력만으로 저 정도가 되려면 라이언보다 훨씬 높은 레벨이어야 한다.

    그러니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건 보통 대단히 희귀하거나 뛰어난 아티팩트를 보유하고 있을 때였다.

    마력 감지기를 좀 더 세밀하게 다룰 수 있다면 정확히 어떤 장비의 마력이 높은지도 알 수 있지만 류크에게 그건 아직 불가능한 영역이었다.

    류크는 일단 신호를 보냈다. 이쪽으로 다 모이라는 신호였다. 혼자서는 자신 없지만 50명의 부하가 모두 있다면 어떤 적이라도 분쇄해 버릴 수 있었다.

    “거기 누구십니까?”

    류크는 일단 정중함을 가장하며 물었다. 그러면서 천천히 사내에게 다가갔다.

    그는 돌아서 있었는데, 류크가 불렀는데도 그저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류크는 짜증이 났지만 동료들도 없는 마당에 함부로 저 사람과 싸울 생각은 없기에 일단 한 번 꾹 눌러 참았다.

    ‘한데 뭘 보고 있는 거지?’

    그냥 돌아서 있는 건 줄 알았는데, 다시 보니 뭔가를 보고 있는 듯했다.

    류크는 갑자기 쌔한 느낌이 들어 후다닥 달려가 그가 보고 있는 광경이 무엇인지 확인했다.

    “이럴 수가……!”

    드디어 찾았다. 그가 보고 있는 광경이 바로 류크가 지금까지 찾던 그것이었다.

    류크는 커다랗고 시커먼 소용돌이들을 보며 환하게 웃었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이곳 던전 지대를 자신보다 먼저 발견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표정이 굳었다.

    여긴 렉스턴 에너지만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 한데 저 사람이 이곳을 발견했으니 이제 여기가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게 되었다.

    만일 류크가 먼저 발견했다면 어떤 식으로든 조치를 취해 아무에게도 공개되지 않도록 철저히 보호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럴 수 없게 되었다.

    이곳에 새로운 던전 생성지역이 있다는 소문이 퍼져 나가면 힘 깨나 쓴다는 플레이어들은 싹 몰려올 것이다.

    ‘이 장소에 대한 정보를 돈 주고 팔 수도 있어.’

    류크는 저 사내의 정체는 모르지만 그럴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것도 염두에 둬야만 했다.

    류크의 머리가 정신없이 팽팽 돌아갔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결론은 하나뿐이었다.

    “혼자 오신 겁니까?”

    류크가 최대한 부드러운 어조로 물었다. 그제야 사내, 현석이 고개를 돌려 류크를 쳐다봤다.

    순간, 류크는 또 한 번 싸한 느낌을 받았다. 현석의 차가운 눈이 그의 입을 막아 버렸다.

    현석은 대답 대신 다시 고개를 돌려 앞에 펼쳐진 던전 생성지역을 쳐다봤다.

    이곳 역시 특이했다. 한국에 있는 동굴 속 던전 생성지역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거대한 폭포가 있었다. 그리고 그 폭포를 중심으로 부채꼴 모양으로 던전들이 펼쳐져 있었다.

    블랙홀이 다섯 개였고, 화이트홀이 두 개 있었다. 그리고 현석만 알 수 있는 투명 던전이 하나 있었다.

    블랙홀은 역시 퀸 등급이었다. 한국과 아주 똑같았다.

    ‘여기도 중요한 포인트가 되겠지.’

    현석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사방에 안개처럼 뿌려 놓은 마력에 좀 더 집중했다.

    지금 옆에 선 멍청이는 렉스턴 에너지에서 나온 놈이 분명했다. 아마 이 던전을 찾기 위해 온 것일 테고 말이다.

    현석은 상황을 빨리 정리하기 위해 일부러 마력을 흘렸다. 그게 아니었다면 류크가 이렇게 빨리 이곳을 찾지는 못했을 것이다.

    “사람이 말을 걸면 대답을 좀 하는 게 어때?”

    류크가 빈정거리듯 말했다. 그의 말투에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의 신호를 확인한 동료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었으니까.

    현석은 천천히 돌아섰다.

    어느새 뒤로 빠져 있던 류크가 그런 현석을 보며 씨익 웃었다.

    류크의 주변에는 그의 부하 플레이어들이 잔뜩 포진해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나머지 플레이어들이 도착하는 중이었다.

    아마 류크는 상상도 못할 것이다.

    현석이 이미 이들이 몇 명인지, 또 언제쯤 다 모일 것인지까지 다 파악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류크는 현석이 가만히 보고만 있자, 놀라서 그런 거라고 판단했다.

    “왜? 갑자기 좀 무서워지나?”

    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류크의 얼굴이 더욱 득의만만해졌다.

    “세상이 참 무서워지는군. 대화가 실종되고 있어.”

    류크가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난 대화를 할 용의가 충분히 있어.”

    류크가 현석을 보며 씨익 웃었다.

    “자, 선택해. 첫 번째, 자결한다. 두 번째 양손을 자르고 눈과 귀와 혀를 파낸다. 세 번째 머리에 큰 충격을 줘서 바보로 만든다. 어때? 고르기 쉽지?”

    현석은 담담히 류크를 쳐다봤다. 거기에 대한 답은 굳이 자신이 해줄 필요가 없었다.

    어느새 류크와 일당들 뒤에 나타난 임형석이 대신 해줄 테니까.

    “난 네 번째를 고르지. 여기 있는 놈들을 모조리 쳐 죽인다. 어때? 기대되지?”

    류크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돌아섰다. 하지만 고작 한 명밖에 안 보이자, 그제야 표정을 좀 풀었다.

    류크가 환하게 웃었다.

    “그래. 아주 기대되네. 한 놈이면 싱겁잖아. 둘만 되도 갖고 놀 수 있는 방법이 얼마나 많아지는데.”

    임형석도 류크와 똑같이 웃었다.

    “쓰레기네.”

    강렬한 투기가 임형석과 현석에게서 동시에 뿜어져 나왔다.

    분위기가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 인도에서 1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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