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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144화 (144/326)
  • < 젤리웜 3 >

    젤리웜의 크기는 상당했다. 일단 높이가 3미터는 되는 듯했다. 현석의 키보다 훨씬 높았다.

    그리고 길이는 10미터가 넘는 듯했다. 제법 커다란 버스 한 대가 꾸물꾸물 움직이는 것 같았다.

    젤리웜의 움직임은 느렸지만 반응속도는 엄청났다.

    현석이 달려듦과 동시에 가장 가까이 있던 젤리웜의 몸에서 투명한 창이 우수수 쏟아져 나왔다.

    1미터 길이에 지름이 3센티 정도 되는 가느다란 창이었는데, 그래서 더 눈에 띄지 않았다.

    게다가 속도는 어찌나 빠른지 웬만한 플레이어는 눈으로 보면서도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석은 웬만한 플레이어가 아니었다.

    투두두두둥!

    현석의 검이 눈부신 속도로 움직여 날아오는 창을 모조리 쳐냈다. 절반 이상은 현석을 그냥 지나쳐 바닥에 꽂혔다.

    현석은 그렇게 바닥에 꽂힌 놈들이야말로 진짜 위험하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바닥에 꽂힌 창이 흐물흐물 녹더니 바닥에 쫙 깔렸다. 이렇게 모습을 감추고 있다가 어느 순간 확 살아나 달려들 것이다.

    현석은 감각을 사방으로 열었다. 젤리웜과의 싸움에서는 그게 정말 중요했다.

    어느새 젤리웜 바로 앞에 도착한 현석은 정면에 검을 푹 찔러 넣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절대 젤리웜에게 타격을 줄 수 없었다.

    젤리웜의 몸체는 그저 젤리 같은 덩어리일 뿐이었다. 감각도 없고 타격도 받지 않는다.

    진짜 제대로 된 충격이나 타격을 입히려면 젤리웜의 중심부에 있는 핵을 제거해야만 한다.

    젤리웜의 몸에서 뾰족한 가시가 불쑥불쑥 솟아나왔다. 이제 곧 그것들이 쭉 뽑혀 나오며 채찍처럼 현석을 공격할 것이다.

    이렇게 젤리웜은 원거리와 근거리를 동시에 공격할 수 있었다.

    방어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마수였다. 젤리웜의 젤리는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재질이었다. 웬만한 충격으로는 핵을 드러나게 할 수 없었다.

    몸체 자체가 방어인데 굳이 방어에 따로 힘을 쓸 이유도 필요도 없는 마수였다.

    현석은 검을 꽂은 채 활짝 열어둔 감각에 집중했다. 근처에 있던 다른 젤리웜들의 시선이 이쪽으로 모이는 것이 느껴졌다.

    현석의 검 끝에서 마력이 불쑥 튀어나갔다. 그러더니 맹렬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콰르르륵!

    날카롭게 벼려진 마력의 칼날이 회전하니 젤리웜의 몸체가 갈려나가기 시작했다.

    만일 현석이 몸체 자체를 공격하기 위해 마력의 회전반경을 크게 잡았다면 생각보다 큰 타격을 입히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석의 목적은 몸체에 타격을 주는 게 아니었다. 현석이 일으킨 마력의 회전은 아주 좁고 깊었다.

    콰르르르륵!

    회전하는 마력의 칼날이 좁고 긴 구멍을 뚫었다. 그리고 젤리웜에게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파악할 지능은 없었다.

    젤리웜은 그저 본능에 입각한 공격을 시작했다.

    촤좌좌좌좌좍!

    수십 개의 촉수가 등에서 뽑혀 나왔다. 그것은 금방이라도 현석을 난자할 것처럼 허공을 유영했다.

    그 촉수들이 막 현석에게 날아가려는 찰나, 현석이 하던 작업도 끝났다.

    앞에서 핵까지 연결하는 긴 통로가 완성된 것이다.

    현석은 마력을 이용해 젤리웜의 핵을 꽉 움켜쥐고 그것을 그대로 잡아 뽑았다.

    쫘아악!

    핵이 뽑힘과 동시에 허공을 유영하던 촉수들이 힘을 잃고 그대로 내려앉았다.

    현석은 핵을 뽑아내자마자 젤리웜의 몸체위에 떠 있던 이름이 바뀌는 걸 확인했다.

    [젤리웜의 체액]

    원래는 젤리웜이라는 이름이었는데, 그것이 체액으로 바로 바뀐 것이다.

    현석은 반사적으로 뽑아낸 핵의 이름도 확인했다.

    [마력의 정수]

    현석의 눈이 커다래졌다. 설마 젤리웜의 핵이 마력의 정수일 줄은 몰랐다.

    그것도 굉장히 높은 등급의 정수였다.

    현석은 주변을 둘러봤다. 수많은 젤리웜들이 꾸물꾸물 다가오고 있었다. 몇몇은 창을 쏘아낼 준비를 하는 듯했다.

    젤리웜의 체액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 아마 저대로 무너지고 나면 모두 땅속에 스며들 것이다.

    현석은 서둘러 젤리웜의 체액에 대한 정보를 확인했다.

    [젤리웜의 핵을 보호하던 물질. 내부에 마력의 정수가 들어가면 젤리 상태로 있지만 마력의 정수가 사라지면 서서히 액체 상태로 변한다.]

    딱 거기까지였다. 하지만 그 설명을 확인한 현석의 등줄기에 소름 한 가닥이 쫘악 돋아났다.

    현석은 일단 채 액체로 변해 쏟아지지 않은 젤리웜의 체액을 아공간에 넣었다.

    아무래도 아공간을 정리할 필요가 있을 듯했다.

    젤리웜의 수가 너무 많았다. 저들을 아공간에 넣으려면 칸이 너무 모자란다.

    아공간의 수를 늘리거나 아니면 젤리웜의 체액을 보관할 다른 방법을 생각해 내야만 한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사방에서 투명한 창이 날아왔다.

    투두두두두두두두둥!

    창이 사방으로 튕겨났다. 그래도 현석의 검에 부딪힌 창은 그대로 체액이 되어 쏟아졌다.

    현석의 검에 닿으면서 안에 담긴 마력이 흐트러져 평범한 물질로 되돌아간 것이다.

    어쨌든 현석은 눈을 빛내며 젤리웜들을 둘러봤다.

    이제 저놈들을 청소할 시간이 되었다.

    사냥법만 알고 있으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놈들이었다.

    물론 이 사냥법은 실제로 써서 입증된 게 아니었다. 그저 머릿속으로만 구상하던 걸 처음으로 써먹었다.

    이제 첫 번째 사냥으로 사냥법이 효과적이라는 사실이 입증되었으니 그대로 하면 된다.

    변수가 생기면 그때그때 임기응변으로 대응하면서 사냥법을 보완해 나가고 말이다.

    촤촤촤촤촥!

    사방에서 촉수가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현석은 그것들을 유연하게 피하면서 젤리웜 한 마리에게 접근했다.

    사실 앞에서 찌르건 옆에서 찌르건 별로 상관은 없었다. 다만 앞에서 찌르는 것이 촉수 공격을 좀 덜 받기 때문에 그렇게 한 거였다.

    하지만 지금처럼 저렇게 많은 젤리웜들이 한꺼번에 촉수를 날리면 굳이 찌를 자리를 찾는 것 자체가 의미 없는 일이었다.

    현석은 젤리웜의 옆으로 접근해 검을 푹 박았다.

    촤르르륵!

    빠르게 회전하는 마력이 좁고 깊은 구멍을 뚫었다. 하지만 핵을 채 빼내기 전에 사방에서 날아온 촉수 때문에 몸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촤촤좍! 퍼버벅!

    촉수들이 바닥을 때렸다. 현석은 옆으로 몸을 날리면서도 검을 계속 앞으로 내민 채였다.

    검을 젤리웜의 몸에서 빼내긴 했지만 검과 연결된 마력은 놓지 않은 것이다. 더불어 구멍을 뚫어 핵에 닿은 마력도 그대로였다.

    촤아아아악!

    핵을 그대로 뽑아냈다. 젤리웜 한 마리가 또 무너졌다.

    현석은 그런 식으로 사방을 휘저으면 젤리웜을 한 마리씩 사냥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마력컨트롤 능력을 가졌기에 가능한 사냥법이었다.

    아마 이곳에 팀 메인퀘스트가 왔다면 사냥 방식은 정말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물론 그들도 사냥에 분명히 성공했을 테고 말이다. 물론 시간이 좀 많이 걸리긴 하겠지만.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현석의 몸은 젤리웜의 체액으로 온통 끈적끈적했다. 그리고 사방에 젤리웜의 시체가 놓여 있었다.

    일부는 이미 액체로 변해 땅으로 스며들었지만 대부분은 아직 괜찮았다.

    현석은 지친 몸을 호흡으로 다스리며 젤리웜의 시체를 서둘러 아공간에 넣었다.

    젤리웜의 시체가 워낙 크기 때문에 컨테이너 박스를 소환해서 그 안에 넣는 것도 별 의미가 없었다.

    그래서 현석이 선택한 방법은 아공간에 젤리웜을 넣었다가 다른 젤리웜 위에 다시 꺼내서 두 젤리웜을 하나로 합해 버리는 방식이었다.

    혹시나 해서 해봤는데, 그저 젤리 형태의 물질이었기에 그렇게 위에다가 꺼내 놓으니 무게 때문에 두 젤리웜이 하나로 뭉쳐졌다.

    현석은 그 작업을 빠르게 반복했다. 그래서 모든 젤리웜을 하나의 거대한 젤리웜으로 뭉쳐 버렸다.

    그렇게 하니 마치 젤리웜으로 이루어진 언덕 하나가 나타난 것처럼 보였다.

    현석은 그것을 아공간에 넣기 전에 일단 한 움큼 떼어냈다. 그리고 그 안에 마력의 정수 하나를 넣었다.

    물론 그 마력의 정수는 젤리웜의 핵이었다.

    현석은 나름 마음의 준비를 했다. 젤리웜의 핵을 다시 저 젤리에 넣으면 혹시 되살아날 수도 있었다.

    되살아나면 그 즉시 없애야만 했다.

    어쨌든 살짝 긴장한 상태로 마력의 정수를 젤리에 넣었다. 다행히 젤리웜으로 되살아나지는 않았다.

    현석은 기대감 어린 눈으로 그것을 유심히 살폈다.

    “역시…… 이게 답이었어.”

    드디어 답을 찾았다. 마력의 정수를 보존하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젤리 안에 들어간 마력의 정수는 더 이상 허공으로 흩어지지 않았다. 들어가기 전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했다.

    [마력의 정수가 담긴 젤리웜의 체액]

    이름도 바뀌었다. 현석은 혹시 설명을 확인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심안을 집중했다.

    [마력의 정수로부터 마력이 흩어지지 않게 보관 중인 젤리웜의 체액. 유효기간 49999912초]

    유효기간이 있는 걸로 봐서 젤리웜의 체액이 뭔가 특별한 역할을 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마 자신이 가진 무언가를 소진해 내부에 있는 마력의 정수를 지키는 모양이었다.

    초를 시간으로 대충 변환해 보니 1년 반 정도의 시간이었다. 그 정도면 충분치는 않아도 제법 오랫동안 안심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현석은 거대한 젤리웜의 체액으로 이루어진 동산을 아공간에 넣었다.

    칸으로 나뉜 아공간의 장점이 발휘되었다. 저렇게 뭉쳐 있으니 제법 단단했기에 아공간 안에서 흩어질 염려는 없었다.

    이미 젤리웜의 사체를 이용해 몇 번이나 시험해 봤으니 안심할 수 있었다.

    어쨌든 이제 마력의 정수를 보관할 방법을 찾았다. 남은 건 충분히 많은 젤리웜의 체액을 확보하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아마도 이곳 마계에는 충분하고도 남을 정도로 많은 젤리웜이 살고 있었다.

    방금 현석이 잡은 것을 빼고도 말이다.

    현석은 고개를 돌려 임형석을 확인했다. 임형석은 여전히 마족과 싸우고 있었다.

    어찌나 치열하고 처절하게 싸우는지 끼어들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임형석은 확실히 승기를 잡아가고 있었다.

    저런 걸 보고 있으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형석이 상대하는 마족은 굉장히 강력한 개체였다.

    현석이 1대1로 싸운다고 하더라도 쉽게 죽이기 어려운 상대였다.

    그런 마족을 상대로 저렇게 승기를 유지하며 끝까지 싸우는 걸 보면 임형석의 강함을 충분히 알 수 있다.

    아마 저 마족과 제대로 싸울 수 있는 플레이어의 수도 아직까지는 손에 꼽을 정도일 것이다.

    어쨌든 임형석의 싸움도 점점 끝으로 치닫는 중이었다. 아마 몇 분 안에 결판이 날 것이다.

    물론 그 결판의 승자는 임형석일 것이고 말이다.

    현석은 근처에 앉아 쉬면서 임형석의 싸움을 지켜봤다.

    간단한 사냥법을 발견해 젤리웜과 싸웠다고 하지만 결코 쉬운 싸움은 아니었다.

    그런 싸움이 끝났으니 아무리 현석이라 할지라도 지치는 게 당연했다. 마력 소모도 제법 심했고 말이다.

    패시브 스킬에 의해 빠르게 회복되어 가고 있긴 하지만 이번에는 싸움 자체가 마력을 소모하고 극도로 예민한 마력 컨트롤이 중요한 싸움이었기에 피로가 쌓인 방식 자체가 평소와 많이 달랐다.

    현석에게는 지금 푹 쉴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이런 것도 좋네.”

    현석은 온몸을 느슨하게 이완시키며 임형석의 싸움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 * *

    “후아. 뒈질 뻔했네.”

    임형석은 대자로 누워 씩씩 숨을 몰아쉬었다. 정말로 힘든 싸움이었다.

    이런 치열하고 지독한 싸움을 해본 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였다. 아니, 어쩌면 평생 겪어본 싸움 중에서 제일 치열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기분이 좋았다. 싸움이 끝났는데도 흥분이 가시지 않고 온몸에서 아드레날린이 쏟아졌다.

    임형석의 입꼬리가 위로 한없이 치솟았다.

    그는 벌떡 상체를 일으켜 앉으며 현석을 바라봤다. 그리고 손을 내밀었다.

    “그거 내놓고, 또 싸우러 가자.”

    현석은 그런 임형석을 보며 빙긋 웃었다.

    정말 사람 하나는 제대로 데려왔다.

    원한다면 얼마든지 원하는 대로 해줘야 하지 않겠는가. 현석은 양껏 젤리웜 사냥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잠시 후, 두 사람은 다시 길을 떠났다.

    아마 이 앞길에는 조금 더 위험한 마수와 마족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의 심장이 기대감과 긴장감이 뒤섞인 채 두근두근 뛰었다.

    < 젤리웜 3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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