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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141화 (141/326)
  • < 변화 2 >

    “역시 사람은 고기를 먹어야 돼.”

    임형석을 그렇게 말하며 거대한 불판 위에서 지글지글 익어가는 고기들을 집어 입에다가 휙휙 던져 넣었다.

    그리고 그런 임형석의 모습을 약간 뾰로통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있었다.

    “그러니까…… 꼭 먹고 싶었던 게 이거였어요?”

    임형석은 입에 고기를 꽉 채운 채 와구와구 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그것을 꿀꺽 삼킨 다음 말했다.

    “아무리 진수성찬을 먹어도 이렇게 고기를 구워먹지 않으면 먹은 것 같지가 않거든.”

    블러디퀸은 살짝 어이없는 눈으로 임형석을 바라보다가 한숨쉬듯 중얼거렸다.

    “좀 더…… 어른의 식성을 가졌을 거라 생각했는데, 제가 틀렸네요.”

    임형석은 피식 웃으며 불판 위에 남은 고기를 싹 쓸어 입에 넣었다.

    20인분이 넘는 고기가 임형석의 뱃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이제 좀 먹은 것 같군.”

    아까 그렇게 많이 먹고도 무려 20인분의 고기를 해치우고 나서야 배가 좀 차는 모양이었다.

    정말 질릴 정도의 식성이었다.

    “자, 이제 배도 채웠으니 다시 얘기해 봅시다.”

    임형석의 표정이 전에 없이 진지했다.

    “대체 나한테 원하는 게 뭐야?”

    블러디퀸이 뒤로 몸을 눕히며 의자에 등을 기댔다. 그리고 고개를 살짝 들며 임형석을 바라봤다.

    “아시는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둔하신가봐요?”

    “아니, 아니.”

    임형석이 고개를 휘휘 저었다.

    “겉으로만 보기에는 딱 알겠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간단 말이지.”

    “뭐가 그리 이해가 안 가죠?”

    임형석이 턱으로 블러디퀸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쪽 아주 대단한 사람이잖아. 안 그래?”

    블러디퀸이 다시 몸을 앞으로 하며 테이블에 팔을 올리며 얼굴을 최대한 임형석 쪽으로 가까이 가져갔다.

    그녀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당신도 대단한 분이잖아요. 안 그래요?”

    “뭐…… 부정할 수가 없군.”

    임형석이 씨익 웃었다. 그의 자신만만한 웃음을 본 블러디퀸의 얼굴에도 미소가 떠올랐다.

    “좋아. 그럼 어른의 식사를 하러 가볼까?”

    블러디퀸의 얼굴에 더욱 진하고 고혹적인 미소가 맺혔다.

    “참고로 나 나이가 제법 많아. 나중에 후회할 수도 있어.”

    임형석의 말에 블러디퀸이 환하게 웃었다. 임형석은 그 웃음을 보며 왠지 아름다우면서도 섬뜩하고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 나이가 몇인지도 모르시잖아요? 저도 생각보다 나이가 아주 많답니다. 나중에 후회하실 수도 있어요.”

    “그래? 그럼 별로 부담가지거나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겠군.”

    임형석의 입가에 음흉한 미소가 떠올랐다.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식당 밖으로 나갔다.

    이제부터 어른의 식사를 하러 갈 시간이었다.

    * * *

    “아, 참. 보고드릴 게 있습니다.”

    양동욱은 지금 막 떠올랐다는 듯이 말을 꺼냈다. 하지만 사실은 처음 현석을 볼 때부터, 아니 현석이 오기 한참 전부터 말할 타이밍만 재고 있었다.

    “사신 길드에 비밀 창고가 하나 있었는데…….”

    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서 해. 가지든 팔든. 아니면 팀원과 나누든.”

    “예?”

    현석은 더 이상 거기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이제 고작 사신 길드의 비밀창고 정도에는 관심도 가지 않았다.

    이미 돈은 썩어 문드러질 만큼 많았고, 원한다면 앞으로 열 배는 더 벌 수도 있었다.

    하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많은 돈이 필요치 않기에 관심을 꺼뒀을 뿐이었다.

    만일 해외 쪽으로 눈을 돌리면서 자금이 필요하게 되면 또 돈을 벌 것이다. 방법이야 얼마든지 있으니까.

    미래를 알고 있다는 건, 가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막대한 위력을 발휘한다.

    특히 돈에 관해선 더더욱 큰 힘이 된다.

    현석은 그런 것들을 얼마든지 이용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레드드래곤 쪽은 요즘 어때?”

    “사신 길드가 무너지면서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최고의 길드가 되었습니다. 아마…… 이대로라면 당분간 그들의 아성을 위협할 만한 길드가 나오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들은 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슬슬 때가 되었다.

    “힐링 포션이랑 파워업 키트, 이제 대량으로 풀어.”

    안 그래도 그 부분에 대해 계속 생각하고 레드드래곤의 오명국과도 충분히 논의를 했기에 양동욱도 미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예. 열흘 후부터 본격적으로 판매를 시작하겠습니다. 레드드래곤에도 열흘 정도 대비할 시간이 필요할 테니까요.”

    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자잘한 사항이야 알아서 하면 된다.

    “그럼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돈을 벌게 되겠군요.”

    양동욱은 갑자기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힐링 포션과 파워업 키트는 사냥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아이템이었다.

    게다가 원가가 많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었다.

    재료만 제때 수급되면 만드는 족족 팔려나갈 것이다. 당연히 공급이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할 테고, 그것은 암시장의 활성화를 의미한다.

    아마 사재기를 비롯해 무수한 방식으로 시장을 흔드는 놈들이 나올 것이다.

    양동욱은 거기에 대한 대비도 이미 해 두었다.

    국내 암시장은 종로에서 알아서 정리할 것이고, 해외 암시장은 피라밋에서 정리하기로 했다.

    이제 만들어 파는 일만 남았다.

    “판매는 국내 위주로 하겠습니다. 아무래도 그걸 원하시는 것 같아서…….”

    양동욱의 말에 현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의 힘을 전체적으로 키울 필요가 있었다. 특히 렉스턴 에너지의 손길을 걷어낸 지금이 한국의 성장을 지원할 최적의 타이밍이었다.

    “렉스턴 에너지 쪽 소식이 들어오면 바로 연락하도록.”

    현석은 그 말을 남기고 밖으로 나갔다.

    양동욱은 알았다고 채 대답하기도 전에 사라진 현석의 모습에 입만 뻐끔거리다가 결국 고개를 저었다.

    “하여간…… 바쁘셔.”

    양동욱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현석이 오는 바람에 살짝 뒤로 미뤄진 손님과 만날 시간이 되었다.

    회사의 접객실로 들어간 양동욱은 자신을 기다리던 손님, 피라밋 암시장의 웨인을 보고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

    이제 진짜 사업 얘기를 진행할 차례가 되었다. 더불어 인도와 중국에 대해서도 좀 알아보고 말이다.

    * * *

    현석은 마력의 정수 하나를 들고 이리저리 살폈다. 다리는 기계적으로 움직여 어딘가로 향하는 중이었다.

    집이나 던전생성지역으로 가는 건 아니고, 서울 외곽에 있는 한적한 장소로 가는 중이었다.

    이제 슬슬 혼자 하기 버거운 마계를 토벌할 때가 된 듯해서였다.

    현석은 이번 마계 토벌을 통해 회귀 전의 레벨에 근접할 정도로 성장할 생각이었다.

    레벨은 그 정도지만 실제 강함은 레벨을 초월하고 있으니 아마 거기까지 성장하면 상상도 못할 정도로 강해질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레벨업이 너무 쉽고 빠른 느낌이야.’

    아무리 고속 성장의 비결을 알고 있고, 마계를 자주 토벌하고 어려운 던전을 틈나는 대로 클리어하긴 했지만 그래도 성장이 너무 빨랐다.

    회귀 전에 현석은 무려 20년에 가깝게 플레이어 생활을 했다. 물론 초기 몇 년은 안 한 거나 다름없을 정도로 헤맸지만 그걸 제외하고도 10년이 훨씬 넘었다.

    그런데 그렇게 오랫동안 올린 레벨을 고작 1년 만에 다 따라잡는다는 게 말이 되는가?

    비단 현석뿐만이 아니었다. 이번 생에서는 다른 플레이어들도 상당히 레벨업 속도가 빨랐다.

    물론 고렙으로 가면 갈수록 레벨업 자체가 어려워져서 한계에 부딪히고 벽에 막혀 정체기에 들어서겠지만, 지금 상황을 보면 그조차 금세 넘을 수 있을지 모른다.

    예전과는 뭔가가 달라졌다.

    그것이 현석이라는 존재가 회귀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모든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따른다는 점이었다.

    이런 식으로 플레이어들이 빠르게 성장하면 그에 따른 파장이 분명히 생겨난다.

    어쩌면 회귀 전에는 일어나지 않았던 뭔가가 벌어질 수도 있었다.

    그래서 현석은 지금보다 훨씬 더 빠르게 강해져야 한다는 조급증이 수시로 찾아왔다.

    그때마다 억지로 마음을 다독여 가라앉히긴 하지만, 이젠 슬슬 참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목숨을 내걸어야 하는 마계에 도전하기로 했다.

    ‘어르신이랑 같이 가면 좋은데…….’

    애초에 임형석과 함께 가려고 기다리던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 임형석은 어디 있는지 모른다.

    양동욱의 말에 의하면 블러디퀸과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하니, 걱정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도 함께 마계에 가지 못하니 조금 아쉬운 마음은 들었다.

    임형석이 함께 있다면 압도적으로 빠른 토벌이 가능해진다. 물론 혼자 가는 것보다 압도적으로 위험해지긴 하겠지만 말이다.

    현석이 마계에 가려는 이유는 빠른 성장만 있는 게 아니었다.

    지금 손에 들고 살피는 마력의 정수도 이유 중 하나였다.

    얼마 전 박승희의 저주를 풀면서 현석은 마력의 정수를 보관할 방법이 어쩌면 마계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계의 마수나 마족들은 보통 던전의 것들보다 훨씬 특이하고 희한한 놈들이 많았다.

    그리고 아주 특수한 능력을 가진 놈들도 종종 있었다.

    그런 특수한 능력을 가진 놈들의 몸에서 뽑아낸 특별한 아이템이라면 마력의 정수를 보관할 수도 있지 않을까?

    현석은 마력의 정수에서 미세하지만 끊임없이 마력이 빠져나가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예전보다 훨씬 민감해진 마력의 감각이 그 미세한 흐름을 파악했고, 더 좋아진 마력 컨트롤 능력이 그 흐름을 잠깐이나마 막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거기에는 한계가 분명히 있었다.

    다른 건 아무것도 안 하고 마력의 정수만 돌볼 수는 없지 않은가. 또한 마력의 정수가 한두 개도 아니고 그 많은 걸 한꺼번에 다룬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해낼 수만 있다면 아주 훌륭한 마력 컨트롤 수련이 되긴 하겠지만.’

    그래도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마력의 정수가 필요한 건 레벨업이 한계에 도달했을 때였다.

    레벨 하나 올리는 데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해서 거기에 시간을 쏟을 의미가 확연히 줄어들 때가 되어서야 써먹을 것이다.

    즉, 그 전까지는 자력으로 레벨업을 해야만 한다는 뜻이었다.

    자력으로 레렙업을 하는 것과 마력의 정수로 만든 레인보우 엘릭서를 이용해서 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당연히 자력으로 하는 것이 훨씬 효과가 좋았다.

    그러니 자력으로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그 다음에 레인보우 엘릭서를 이용해야 한다.

    아무리 엘릭서가 많다고 해도 말이다.

    현석은 마력의 정수를 다시 품에 넣었다. 그 순간 아주 익숙한 모습이 저 멀리에서 보였다.

    임형석이었다. 큰 호텔에서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팔짱까지 끼고 찰싹 달라붙어 있는 중년 여인이 함께였다.

    “블러디퀸?”

    현석은 두 사람의 모습과 호텔의 모습을 번갈아 쳐다봤다.

    호텔에서 함께 나온다고 꼭 잠자리를 함께 했다고 볼 수는 없었다. 호텔에는 차를 마시는 곳도 있고, 밥을 먹을 수 있는 식당도 있으니까.

    하지만 현석은 두 사람의 모습을 보자마자 그게 아니라 다른 목적으로 호텔에 왔었다는 걸 대번에 알 수 있었다.

    대체 두 사람이 언제 저렇게 친밀한 관계가 된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현석은 조금 더 빨리 걸어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막 차에 올라타려던 임형석이 현석의 모습을 발견했다.

    “어? 네놈이 여긴 웬일이야?”

    임형석은 그렇게 말하고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어이없는 눈으로 현석을 바라보며 말했다.

    “설마 혼자 온 거야? 대체 혼자서 왜 호텔에 와?”

    현석은 대답하지 않았다. 굳이 호텔에 온 게 아니라 임형석을 발견해서 온 거라고 변명하듯 말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말을 듣고 나니 기분이 과히 좋지는 않았다.

    “호텔에 온 게 아니라 지나가는 중입니다.”

    임형석이 고개를 휘휘 돌려 주변을 둘러봤다. 아무리 봐도 그냥 지나갈 만한 장소는 아니었다.

    하지만 왠지 더 얘기하면 안 될 것 같은 짐승적 육감이 그의 말을 막았다.

    “어…… 그러냐. 그럼 계속 갈 길 가든가.”

    임형석이 차에 안 타고 머뭇거리고 있자, 먼저 차에 탄 블러디퀸이 창문을 내리고 밖을 내다봤다. 그녀는 현석을 발견하자마자 호들갑을 떨었다.

    “어머. 이런 데서 보네요. 그런데 왜 혼자죠? 호텔에.”

    현석은 문득 마계고 뭐고 가서 연애부터 해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생각은 들자마자 사라졌다.

    지금은 이렇게 노닥거릴 시간이 없었다.

    “위험한 곳에 사냥가려던 참인데…….”

    더 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 임형석은 즉시 차문을 닫고 현석 앞에 섰다.

    “가자.”

    현석의 얼굴에 씨익 미소가 떠올랐다.

    < 변화 2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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