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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139화 (139/326)
  • < 팀 메인퀘스트 3 >

    쿠웅!

    둔중한 울림과 함께 강렬한 충격파가 사방을 휩쓸었다.

    하지만 양세희 뒤에 있는 사람들은 아무도 그걸 겪지 않았다. 양세희가 아주 완벽할 정도로 모든 힘을 막아내고 흘려버렸기 때문이다.

    “두 번째가 온다! 이번만 버티면 돼!”

    류지혜의 외침에 양세희는 이를 악물었다. 이번만 버티면 된다.

    양세희의 몸에서 강력한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스킬 철벽을 쓴 것이다.

    류지혜는 그걸 확인한 다음 박승희에게 말했다.

    “미니 골렘 나올 타이밍 됐어! 준비!”

    박승희는 활을 들었다. 그녀의 눈이 번득였다. 일단 한 번 집중하기 시작하면 다가오는 적들을 모조리 스캔해낼 수 있었다.

    박승희는 순식간에 십여 발의 활을 날렸다.

    쐐애애액!

    십여 발의 화살이 거의 동시에 공기를 가르며 사방으로 날아갔다.

    꽈드드드득!

    저 멀리 바닥에서 솟아나고 있던 작은 골렘들이 머리가 터져 나가며 그대로 무너졌다.

    미니골렘은 완성되기 전까지는 핵이 머리에 있다는 걸 알아낸 뒤로 이렇게 처리했다.

    미니골렘들이 무너진 순간, 거대한 골렘의 주먹이 다시 한 번 내리 꽂혔다. 골렘의 주먹에는 무시무시한 마력이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흐아아압!”

    양세희가 기합을 내지르며 방패를 든 손에 힘을 꽉 줬다.

    꽈아아아앙!

    거대한 폭음이 울렸다. 당연히 또 한 번의 충격파가 사방을 휩쓸고 지나갔다.

    그리고 그 순간 권혁찬이 양세희 앞으로 튀어나갔다.

    꽈과과과광!

    골렘의 온몸에서 작은 폭발이 일어났다. 권혁찬의 주먹이 꽂힐 때마다 그 부분이 폭발했다.

    권혁찬은 모든 타격에 마력을 실을 수 있게 되었다. 그가 가진 마력의 특성이 바로 폭발이었다.

    주먹에 마력을 실을 수 있게 되면서 권혁찬의 공격력은 한 층 더 강력해졌다.

    하지만 아무리 타격에 폭발력이 추가되었다고 해도 골렘의 몸이 워낙 거대해서 그걸로는 아무리 때려도 타격을 줄 수 없었다.

    더구나 골렘은 핵을 박살 내지 않으면 아무리 부숴도 다시 몸을 복구해 낸다. 그러니 아무 쓸모없는 공격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권혁찬은 골렘을 타고 달리며 마구 검을 휘둘렀다.

    콰과과과과광!

    골렘의 몸 곳곳이 터져 나갔다. 그러던 순간, 권혁찬이 외쳤다.

    “찾았다!”

    권혁찬은 그렇게 외침과 동시에 자신의 스킬, 검기난무를 펼쳤다.

    “흐아아압!”

    권혁찬의 검이 순간 수십 개로 불어난 듯한 착각이 일었다. 그 검 하나하나에 엄청난 위력이 담겼다.

    쩌저저저저저정!

    권혁찬을 중심으로 거대한 검기의 폭풍이 몰아쳤다. 그것은 골렘의 몸 일부를 날려 버릴 정도로 굉장한 위력이었다.

    그렇게 몸 일부가 날아가자 골렘의 몸체 깊숙한 곳에 박혀 있는 핏빛 핵이 드러났다.

    활을 팽팽하고 당기고 기다리던 박승희는 그 순간 손을 놓았다.

    쐐애애액!

    꽈득!

    화살에 담긴 막대한 마력이 골렘의 핵으로 스며들었다.

    꽈드드드득!

    그대로 핵이 부서졌다. 박승희가 자랑하는 스킬, 섬격이었다. 가장 빠르게 작은 목표를 부술 때는 섬격만한 스킬이 없었다.

    핵이 부서진 골렘의 몸체가 와르르 쏟아졌다.

    “으차!”

    권혁찬이 무너지는 바위를 발로 디디며 위로 훌쩍 떠올랐다.

    그리고 바닥에 가볍게 착지했다.

    샤아아아아.

    류혜연이 펼친 치유 스킬이 빛가루가 되어 권혁찬에게 날아가 그대로 흡수되었다.

    골렘의 몸을 달리며 싸우다가 얻은 자잘한 상처들이 말끔히 사라졌다.

    그리고 모든 팀원의 몸에 활력이 샘솟았다.

    사냥을 하면서 계속 경험했지만, 겪을 때마다 신기하기 짝이 없었다.

    “이번엔 어땠나요?”

    류지혜가 고개를 돌려 한쪽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녀뿐 아니라 팀 메인퀘스트의 모든 팀원들이 두근두근하는 심정으로 그쪽을 바라봤다.

    거기에는 현석이 서 있었다.

    계속 그 자리에 서 있었는데도 팀원들은 물론이고 던전 안의 마수들도 현석의 존재를 그동안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현석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합격.”

    류지혜가 됐다는 듯 주먹을 불끈 쥐고 파이팅 포즈를 취했다.

    벌써 몇 마리 째 이 형광 골렘을 잡았는지 모른다.

    처음 던전에 들어와 일행이 아름다운 풍경이라며 넋 놓고 바라보던 빛나는 돌탑은 골렘이었다.

    탑의 모습일 때나 골렘의 모습일 때는 은은하고 아름다운 빛이 났는데, 이렇게 부서지고 나니 그저 평범한 돌에 불과했다.

    그 모든 돌탑을, 아니, 골렘을 부수고 나서야 간신히 인정을 받았다.

    류지혜는 왜 현석이 이 던전에 제일 먼저 왔는지 이젠 알 수 있었다.

    골렘은 강력하고 거대한 마수였다.

    즉, 팀의 역량을 파악하기에 가장 적합한 마수이면서 팀의 조직력을 다지기에도 가장 좋은 마수였다.

    골렘을 상대하면 상대할수록 동료의 능력을 좀 더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조직력이 늘어났다.

    “이제 대충 쉬었으면 저기 있는 보스를 처리하도록.”

    현석의 말에 류지혜가 고개를 돌려 저 멀리 서 있는 압도적인 높이의 돌탑을 바라봤다.

    누가 봐도 저 돌탑이 바로 이 던전의 보스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돌탑 자체에서 풍기는 압박이 어마어마했으니까.

    아마 저 골렘을 잡는 건 정말 쉽지 않을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안개뱀이야.’

    이번 사냥에서 가장 큰 위협이 된 적은 골렘이 아니라 안개뱀이었다.

    방금은 안 나왔지만, 가끔 골렘을 잡고 있을 때 안개뱀들이 다가오는 경우가 있었다.

    안개로 변해서 오기도 하고, 은밀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하지만 어느 쪽 모습으로 오든 심각한 위협을 안겨주는 건 분명했다.

    안개의 형태로 오면 시야가 제한되는 건 물론이고 정신 방어까지 해야 한다.

    그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마력의 불을 일으켜 안개뱀을 쫓아내거나 죽이는 건데, 아직 그걸 능숙하게 해낼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도…… 곧 될 거 같긴 한데…….’

    류지혜는 그런 생각을 하며 류혜연을 바라봤다. 마력에 대한 류혜연의 컨트롤 능력은 정말로 대단했다.

    그러니 현석의 집 지하에 있는 아지트를 그렇게 자유자재로 드나들 수 있는 것이고 말이다.

    류혜연은 곧 자유자재로 마력의 불을 일으킬 수 있을 것 같았다. 류지혜가 보기엔 그랬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그걸 내가 해내야 해.’

    류지혜는 입술을 깨물었다. 마력의 불을 일으켜 안개뱀을 방어하는 건 자신이 해야만 할 일이었다.

    아니, 그뿐 아니라 이 팀에서 전투 중에 필요한 모든 사소한 포인트들은 자신이 모두 짚어내서 처리해야만 한다.

    류지혜는 전투 초반에 버프를 걸어주는 것 외에는 딱히 할 일이 없었다.

    반면 류혜연은 동료의 상태에 항상 신경을 곤두세워야만 한다. 찰나의 순간에 방심하고 눈 돌리는 순간 동료의 목숨이 사라질 수도 있으니 말이다.

    “후우우.”

    류지혜는 심호흡을 했다. 강력한 위기감과 긴장감이 온몸을 장악했다. 그녀는 지금 상태가 딱 적당하고 좋다고 여겼다.

    만일 이게 첫 사냥이라면 나중을 생각지 않는 미친 짓이었지만, 이건 마지막 사냥이었다.

    이 사냥 한 번에 온몸을 불사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출발.”

    류지혜의 명령에 팀 메인퀘스트가 이동을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진형을 만들었고, 류지혜를 중심으로 은은한 마력의 흐름이 생겨났다.

    멀리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현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진짜 한 팀이 된 것 같았다. 역시 뛰어난 인재들다웠다.

    류지혜를 중심으로 흐르는 저 은은한 마력이 바로 팀의 수준을 말해준다.

    아마 회귀 전에도, 그리고 지금에 와서도 저 마력 흐름의 존재와 의미를 아는 건 현석뿐이겠지만 말이다.

    “걱정할 거 없겠어.”

    현석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멀어져가는 팀 메인퀘스트를 가만히 쳐다봤다.

    이제 더 여기 있을 필요가 없었지만, 그래도 이 팀이 처음으로 하나가 되어 진정한 팀으로 거듭나는 모습은 봐 주는 것이 도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석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조금 더 가까운 곳에서 보고 싶었다.

    던전 안의 마수들도 이번 싸움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듯 스멀스멀 몰려들고 있었다.

    미니골렘부터 시작해 안개뱀에 아직 한 번도 등장하지 않고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고 있던 돌지렁이까지.

    모두가 팀 메인퀘스트를 노리고 다가오는 중이었다.

    하지만 현석은 걱정하지 않았다. 또한 저들의 싸움에 끼어들 생각도 없었다.

    저들은 그 누구보다 이 상황을 잘 헤쳐 나갈 테니까. 그리고 이 사냥을 통해 몇 단계 위로 성장할 테니까.

    꽈드드드드득!

    거대한 돌탑이 몸을 일으키며 골렘으로 변했다.

    드디어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현석은 근처에 있는 바위에 걸터앉아 느긋하게 싸움을 지켜봤다.

    꽈과과과광!

    거대한 폭음이 연달아 울렸다. 그리고 사방에서 안개가 몰려들었다.

    화르르르륵!

    거대한 마력의 불길이 안개를 모조리 태워버렸다.

    현석은 더없이 다이나믹한 싸움을 지켜보며 슬며시 미소 지었다.

    이제야 메인퀘스트가 진정한 팀이 되었다.

    * * *

    블러디퀸은 거대한 탁자에 차려진 음식을 남김없이 먹어치운 임형석을 바라보며 부드럽고 우아하게 미소 지었다.

    “식사도 정말 남자답게 하시네요.”

    그 말을 들은 임형석이 씨익 웃었다.

    “남자답다는 말, 자주 듣긴 하지. 그런데 정말 우리 말 잘하는데? 정말 그 짧은 시간 동안 공부한 거 맞아?”

    임형석이 놀랍다는 듯 블러디퀸을 바라봤다. 그녀의 한국어 실력은 정말 대단해서 눈을 감고 있으면 그녀가 분명히 한국 사람이라고 착각할 정도였다.

    지금도 블러디퀸에게서 시선이 떨어진 순간이면 한국인과 앉아 있는 것 같아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그 팔 한 번만 만져봐도 되나요? 근육이 정말 굉장하시네요.”

    “어렵지 않지.”

    임형석은 팔을 쑥 내밀었다. 그러자 블러디퀸이 감탄어린 표정으로 그의 팔을 주물렀다.

    돌덩이 같은 근육이라는 건 바로 이걸 두고 하는 말이리라. 그러면서도 특이하게 유연하고 부드러운 느낌까지 들었다.

    정말 신기한 근육이었다.

    “대체…… 어떻게 하면 이런 근육을 만들 수 있죠?”

    임형석은 그 말에 씨익 웃었다.

    “열심히 하다보면 누구나 얻을 수 있지. 그리고 진짜 중요한 건 근육이 아니야.”

    그 말에 블러디퀸이 빙긋 웃었다.

    “그럼 뭐가 중요하죠?”

    임형석이 두 주먹을 서로 가볍게 부딪히며 말했다.

    “기.”

    “기?”

    “사람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기운, 그러니까 힘을 말하지. 그게 근육따위보다 훨씬 중요해.”

    “아하! 플레이어들이 말하는 마력을 말하는 거군요? 그런데 …… 미스터 임은 플레이어가 아닌 걸로 아는데, 제가 잘못 알고 있는 건가요?”

    “아니, 맞아. 난 플레이어가 아니지. 그리고 내가 다루는 힘도 마력이 아니야.”

    “그럼 뭐죠?”

    “아까 말했잖아. 기라고. 기.”

    “기…… 신비롭네요.”

    블러디퀸의 눈이 더욱 반짝였다. 그녀는 팔을 테이블에 올려 손으로 턱을 괴고는 임형석을 바라봤다.

    “뭔가…… 먹고 싶은 거 없나요?”

    그녀의 눈빛이 묘하게 빛났다.

    그걸 본 임형석이 씨익 웃었다.

    “먹고 싶은 거? 당연히 있지.”

    블러디퀸이 고혹적인 미소를 지었다.

    “역시 그러실 줄 알았어요.”

    그녀는 고개를 돌려 지금까지 옆에 서서 그녀의 시중을 들던 웨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웨인은 이제 슬슬 가보셔야 하지 않겠어요?”

    그녀는 난감한 표정을 짓는 웨인에게 부드럽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미스터 양이 웨인을 찾는 것 같던데…… 가서 얘기를 들어보세요. 아마…… 우리한테도 좋으면 좋았지 나쁘지는 않을 거예요.”

    웨인은 잠시 망설이다가 이내 한숨을 살짝 내쉬고는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예. 지시대로 이행하겠습니다.”

    웨인이 방에서 나가자 블러디퀸이 임형석을 바라보며 좀 더 고혹적인 눈빛을 보냈다.

    “이제…… 방해꾼도 사라졌으니 드시고 싶은 걸 드시러 가실까요?”

    임형석이 씨익 웃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거 좋지.”

    자리에서 일어난 임형석은 성큼성큼 걸어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묘한 미소를 지은 블러디퀸이 그 뒤를 따라갔다.

    < 팀 메인퀘스트 3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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