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팀 메인퀘스트 2 >
첫 번째 블랙홀에 들어온 류지혜는 감탄했다.
이곳은 밤이었다.
세상은 깜깜했고, 하늘에는 보석처럼 반짝이는 별들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수놓아져 있었다.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봤다. 눈에 익은 익숙한 별자리 몇 개가 보였다.
지구의 밤하늘을 갖다 놓은 듯했다.
하지만 저건 진짜가 아니라 환상이다. 류지혜는 던전의 경계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현실을 잘라다가 붙여 놓은 듯한 벽이 던전을 둘러싸고 있다.
그저 사진 같은 그림을 붙여놓은 게 아니었다. 영상도 아니었다. 정말 현실이었다. 하지만 현실이 아니었다.
그런 기묘한 광경은 던전이 아니면 절대 보지도 느끼지도 못할 것이다.
저 하늘도 분명히 그런 식으로 만들어져 있을 것이다. 아직 저기까지 올라가 확인해본 적은 없지만 말이다.
그녀가 지금까지 경험한 던전 중에 가장 아름다운 곳 같았다.
하늘의 별은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았고, 사방에 높은 돌탑이 솟아 있었다. 그것도 은은하고 신비롭게 빛나는 돌탑이 말이다.
덕분에 깜깜한 어둠 속에 잠겨 있는데도 시야 확보가 용이했다.
이곳을 아름답다고 느끼는 건 류지혜뿐이 아니었다.
“예쁘다…….”
류혜연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멍한 표정으로 사방을 둘러봤다. 그 정도로 이곳의 풍경은 시선과 정신을 빼앗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양세희도 박승희도 류혜연과 비슷한 반응이었다.
심지어 남자인 권혁찬까지도 아름다운 풍경에 눈과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다.
짜악!
커다란 박수 소리가 밤하늘을 뒤흔들었다.
그 큰 소리에 다들 깜짝 놀라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소리가 난 쪽을 바라봤다.
현석이 빙글빙글 회전하는 출구 앞에 서 있었다.
“이 던전을 첫 번째로 고른 이유가 바로 이거야.”
다들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거라고만 말하면 그게 뭔지 어떻게 안단 말인가.
“이 던전은 플레이어의 정신을 흔드는 곳이지. 풍경부터 정신을 현혹시키기 위해 존재해.”
그 말에는 정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생각해보면 다들 넋이 나갈 정도로 풍경에 빠져 있지 않았던가.
“내가 손뼉을 치지 않았다면 아마 공격을 당했을 거야. 저기 보이나?”
현석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을 확인했지만 대부분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기에 반응한 사람은 박승희뿐이었다.
그녀는 기본적으로 활을 쏘기 때문에 눈이 좋았다. 또한 순간 집중력도 뛰어났다.
“뱀이 있네요. 그것도 새까만…….”
박승희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방금 그 새까만 뱀이 빠르게 돌진하며 사라져 버리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저렇게 빠르게 움직이면서도 소리가 나지 않고 기척조차 없었다.
만일 정신을 놓고 있을 때 저 뱀이 공격하면 속절없이 당하고 말 것이다.
“뱀이 있다고요? 어디요?”
“사라졌어요. 정말…… 빠르고 은밀하네요.”
박승희의 중얼거림에 다들 표정이 굳었다. 빠르고 은밀하다는 말을 듣는 순간 방금 자신들이 얼마나 큰 위기를 벗어났는지 깨달은 것이다.
“안개뱀이라는 마수다. 저렇게 실체화해서 독으로 공격하기도 하지만 진짜는 안개처럼 흩어져서 정신을 교란시키는 마수지.”
“안개처럼 흩어진 놈을…… 어떻게 잡죠?”
지금까지 한 번도 상대해본 적 없는 방식의 마수였다. 안개처럼 흩어져 있다니.
현석은 간단히 대답했다.
“불로 태워버리면 된다.”
“불로 태운다고요? 그럼 항상 불을 준비하고 다녀야 하나요? 아니면 화염방사기?”
현석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일행을 둘러보며 눈을 빛냈다.
“마력으로 불을 일으키면 된다.”
다들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긴장한 눈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정말 까마득한 말을 들었다. 마력으로 불을 일으킨다고? 말이 쉽지 그게 어디 가당키나 하단 말인가.
마력을 이용해 몸을 강화하는 것도 버거운 사람들에게 그걸로 불을 일으키라니.
“앞으로 마력을 이용해 불 정도는 즉시 만들어낼 수 있을 정도로 훈련을 해야 한다.”
다들 표정이 어두워졌다.
류지혜는 팀의 분위기가 다운되고 의욕이 떨어지는 걸 느끼고는 얼른 나서서 물었다.
“그게 안 되면 어쩌죠?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대체할 방법은 없나요?”
현석은 그런 류지혜의 질문에 아주 간단명료하게 대답했다.
“안 되면 세 번째 던전을 클리어하기 전에 다 죽는다.”
모두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주, 죽는 다고요? 그것도 세 번째 던전에서?”
“죽기 싫으면 익혀라. 던전을 포기하게 만들 생각은 절대 없으니까.”
바닥을 찍었던 의욕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 자리를 위기감이 채웠다.
현석은 그런 일행을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마력의 불은 플레이어의 필수 요소다.”
물론 지금으로부터 20년 후의 미래에서 말이다.
다들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또, 인정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세 번째 던전에서 죽기 싫으면 무조건 익혀야만 한다.
문제는 그것만 익히고 끝나는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여긴 던전이었다. 그것도 퀸 등급의 위험한 던전이었다.
흔히 다이아몬드 등급의 던전에 가기 위해선 최소 100레벨은 넘어야 한다고들 한다.
물론 그 전에도 갈 수는 있지만 죽을 확률이 70%가 넘는데 가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적어도 100레벨의 벽은 넘어야 다이아몬드 등급의 던전에서 사냥을 진행할 수 있었다.
물론 제대로 구성된 조직을 잔뜩 이끌고 들어가지 않으면 사냥 자체가 불가능했다.
한데 그 다이아몬드 등급보다 더 위의 던전을 고작 다섯 명이서 클리어해야만 한다.
게다가 팀 메인퀘스트에서 100레벨인 넘은 사람은 류지혜, 류혜연, 양세희뿐이었다.
권혁찬과 박승희는 비록 지옥훈련을 거치긴 했지만 100레벨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물론 이 던전에서 100레벨의 벽을 깨게 될 것이 거의 확실하긴 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런 열악한 팀이 이 던전에서 살아남음과 동시에 마력의 불이라는 걸 깨우칠 수 있을까?
류지혜는 지독한 회의감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현석이 그동안 불가능한 일을 시킨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것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회의감의 주체는 예측이었고, 현석에 대한 믿음은 경험이었다.
때론 예측이 경험을 무너뜨리기도 하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 류지혜에게는 현석에 대한 경험적 믿음이 훨씬 더 마음에 와 닿았다.
“좋아요. 해보죠.”
류지혜의 말에는 강한 자신감이 어려 있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나머지 팀원들의 눈이 커다래졌다. 그들은 놀란 표정으로 류지혜를 바라봤다.
이런 자신감은 전염되는 법이다. 리더가 흔들리지 않으면 나머지는 아주 자연스럽게 따라가게 되어 있었다.
그런 점에서 류지혜는 제법 괜찮은 리더였다.
다들 마음을 하나로 뭉쳤다. 그들은 결연한 표정으로 진형을 갖췄다.
미리 연습했던 진형이었다.
가장 앞에 탱커인 양세희가 서고, 그 바로 뒤에 권혁찬이, 그리고 나머지 세 사람이 바로 뒤에 나란히 서는 진형이었다.
혹시 나타날지 모를 마수의 기습에서 정면과 측면을 양세희가 맡고, 후방의 기습을 류지혜가 책임지는 구조였다.
류지혜는 버퍼가 되기 전에는 어설픈 근접 딜러였다.
근접 딜러가 되기 위해선 민첩도 중요하지만 체력도 중요했다.
일단 아무리 탱커가 적의 공격을 막아준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몸이 튼튼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었으니까 말이다.
권혁찬 역시 그런 의미에서 제법 몸이 단단한 편이었다.
어쨌든 그렇기에 혹시 모를 기습에 어느 정도의 대응이 가능했다.
아무튼 진형을 갖춘 팀 메인퀘스트가 전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근처에 서 있던 현석이 눈을 빛내며 그들을 유심히 관찰했다.
이들을 제대로 성장시켜야만 한다.
그래야 진짜 모험을 할 수 있을 테니까.
* * *
현석과 팀 메인퀘스트가 동굴 속 던전생성지역에 있을 때, 세상은 난리가 난 상태였다.
사신 길드 때문이었다.
미친 플레이어들이 사신 길드에 난입해 건물을 박살 내고 사람들을 마구 죽였다.
물론 플레이어들끼리의 싸움이었지만, 그 일이 세상에 미치는 여파는 상상을 초월했다.
하지만 거기에 관한 세부적인 내용은 모두 비밀리에 처리되었다.
플레이어들 간의 분쟁이 공개되거나 공론화되면 곤란해지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또, 플레이어들로 인해 혼란이 야기될 수도 있었다.
그 모든 상황을 고려해 사건을 축소하고 은폐시켰다. 그리고 대부분을 감췄다.
물론 그게 완벽하게 이뤄질 리는 없었다.
하지만 정부 차원에서 나서 최선을 다했고, 각 길드에 발을 걸치고 있는 대기업들도 모두 나서니 들끓는 분위기 자체는 서서히 진화되고 있었다.
하지만 물밑으로는 여전히 치열하게 움직였다.
일단 정치권을 비롯한 힘깨나 쓴다는 사람들이 가장 정신없이 움직였다.
그들은 어떻게 하면 주도권을 쥘 수 있을지, 또 어떻게 하면 경쟁상대를 나락으로 떨어뜨릴지에 대해서만 고민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런 큰 사건이 터졌는데, 그걸 이용하지 못하면 정치 바닥을 뜨는 게 낫다.
그리고 사신 길드를 뜯어먹으려는 무수한 조직들도 난리였다.
애초에 추경훈 일행이 사신 길드를 공격할 때 한 팔 거든 자들은 다들 노리고 원하는 바가 있기에 움직인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노력한 대가를 얻기 위해 더욱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물론 지금의 싸움은 물리적인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물리적인 싸움보다 훨씬 지독하고 음험했다.
어쨌든 사신 길드를 중심으로 하는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세상에서 한 걸음 떨어진 곳에 서서 처음부터 이번 일을 계획하고 조율했던 양동욱은 벌써 싸움 한복판에서 한참이나 떨어져 나온 뒤였다.
그는 정말 오랜만에 종로 암시장에 방문했다. 당연히 그가 암시장 안에서 찾을 사람은 황노인밖에 없었다.
“어르신, 저 왔습니다.”
양동욱이 능글능글 웃으며 황노인에게 인사했다.
“버릇없는 놈.”
“버릇은 없어도 의리는 있지 않습니까. 그렇죠?”
황노인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부정할 수가 없구나. 던져준 떡은 잘 먹었다.”
“에이, 던져주긴요. 그냥 함께 상부상조한 거지요. 안 그렇습니까?”
“상부상조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이놈아, 너 얼마나 먹었어?”
양동욱이 손사래를 쳤다.
“에이, 별로 안 먹었습니다. 그저…… 땅 조금하고 사신 길드에서 운영하던 비밀창고 정도? 진짜 별 거 아니죠? 헤헤헤.”
황노인의 표정이 대번에 변했다.
“비밀창고? 그놈들한테 그런 것도 있었어? 왜 난 모르고 있었지?”
“만든 지 얼마 안 됐거든요. 마침 연이 닿았는지 만들 때부터 파악하고 있었죠.”
황노인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것도 체하지 않게 잘 처리해. 사신 길드에 얽힌 놈들 많은 거 알지? 어설프게 하다간 진짜 큰 코 다친다.”
“피라밋이랑 손잡아서 괜찮습니다.”
피라밋이라는 말에 황노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쉽지 않은 놈들이야. 너무 믿지 말고 항상 대비책을 세워둬.”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아마 당분간은 별 일 없을 겁니다. 아주 든든한 지원군이 있어서 말이죠.”
“든든한 지원군?”
황노인이 의아한 표정으로 양동욱을 바라봤다.
양동욱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자, 이제 일 얘기로 넘어갈까요?”
“허어. 정말 많이 컸구나.”
황노인은 기가 찬다는 듯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의 눈만은 한없이 대견하게 웃고 있었다.
양동욱을 현석에게 붙여준 건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
한편 양동욱의 든든한 지원군, 임형석은 상당히 커다란 테이블 가득 펼쳐진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임형석 앞에는 금발의 중년 부인이 우아한 미소를 머금은 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 팀 메인퀘스트 2 > 끝
ⓒ 김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