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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137화 (137/326)
  • < 팀 메인퀘스트 1 >

    류지혜는 살짝 긴장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서 일행을 기다렸다. 아니, 동료들을 기다렸다.

    어제 갑자기 현석에게 연락을 받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현석이 이렇게 누군가에게 따로 연락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었다.

    자신만 연락을 받았다는 사실에 옆에 함께 있던 류혜연이 한동안 시무룩해 있었지만, 류지혜는 그런 동생의 심정을 다독여 줄 여유조차 없었다.

    ‘날 중심으로 하는 팀이라니.’

    애초에 현석이 자신과 동생인 류혜연을 끌어들일 때부터 이렇게 여럿이 모여 함께 사냥하게 될 거라고 예상은 했다.

    아니, 사실 그때는 현석이 길드를 따로 만드는 줄 알았다.

    한데 시간이 지나며, 현석이 만들고자 하는 것이 길드가 아니라 그저 단순한 팀이라는 걸 알았을 때는 오히려 다행스럽게 여겼다.

    길드에는 필연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얽히게 된다.

    그리고 류지혜는 아직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얽히고설킨 관계가 부담스러웠다.

    물론 나중에 나이를 더 먹고 경험을 더 쌓고 나면 얘기가 좀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녀는 이번에 생길 팀의 리더가 되었다. 사실 나이는 권혁찬이 더 많았고, 팀의 유일한 남자이기도 했지만, 현석은 굳이 그녀가 팀을 이끌도록 했다.

    그래서 좀 부담스럽긴 했지만 그래도 해낼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이 있었다.

    사실 팀의 중심에서 전체적인 상황을 파악하며 전투를 조율하는 것은 그녀에게 맞춤옷처럼 딱 맞았다.

    현석이 류지혜를 팀의 리더로 둔 것은 그녀가 나중에 던전관리센터 한국 지부장이 된다는 단순한 이유였다.

    한국 지부장이 될 정도면 한 조직의 리더로 충분한 능력과 재능이 있다는 뜻일 테니까.

    그리고 실제로 류지혜는 그런 쪽으로 재능이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가진 버프라는 스킬도 거기에 딱 맞는 면이 있었다.

    지금 그녀는 양동욱의 회사, 주식회사 현석에 있는 큰 회의실에 홀로 앉아 있었다.

    회사 이름을 지은 사람은 당연히 양동욱이었다.

    양동욱도 이런 일에는 별로 신경을 안 쓰는 스타일이었다. 관심도 없었고 말이다.

    처음 회사 이름을 들은 모든 사람의 반응이 표정에서 바로 드러났지만 양동욱은 그조차 칭찬으로 받아들였다.

    단순히 회사 이름만으로 사람의 감정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이냐면서 말이다.

    어쨌든 류지혜가 회의실에 앉아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두근두근 기다리고 있을 때, 문이 살며시 열렸다.

    “언니.”

    가장 먼저 도착한 사람은 류혜연이었다.

    집에 있다가 류지혜가 급한 마음에 먼저 나오는 바람에 따로 오게 되었다.

    류혜연은 류지혜 옆에 앉아 생글생글 웃으며 그녀를 바라봤다.

    “이제 훈련은 끝난 건가봐. 그치?”

    류지혜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아무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류혜연은 그런 언니의 모습을 보며 살짝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벌써 저렇게 긴장하는데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하지만 류혜연은 걱정을 금세 털어버렸다. 어릴 때부터 류지혜를 보며 자라왔다. 그 누구보다 그녀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자부했다.

    물론 요즘에는 현석이 자신보다 조금 더 많이 아는 것 같긴 했지만, 류혜연에게 있어서 현석은 언제나 예외의 자리에 있으니 상관없었다.

    류혜연은 그 뒤로도 몇 마디를 더 건네 봤지만 반응이 여전했기에 결국 입을 다물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나머지 멤버들이 속속 도착했다.

    양세희가 먼저 왔고, 그 뒤를 이어 권혁찬과 박승희가 도착했다.

    박승희는 활 하나를 가져 왔는데, 신주단지 모시듯 품에 소중히 끌어안고 있었다.

    류지혜는 긴장한 눈으로 자신의 팀원이 될 사람들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자신까지 해서 모두 다섯. 이 다섯이서 앞으로 함께 사냥을 해야 한다.

    훈련이 목적이 아닌, 진짜 사냥을 말이다.

    ‘뭐…… 사실 지금까지 한 것도 사냥은 사냥이지만…….’

    플레이어들의 훈련은 당연히 던전 안에서 사냥을 통해 이뤄진다. 그래야 레벨을 올릴 수 있고, 성장의 효율도 훨씬 좋기 때문이다.

    가끔 떨어지는 아티팩트나, 마수의 몸에서 뽑아낸 마정석은 덤이고 말이다.

    류지혜는 일행을 하나하나 둘러봤다.

    류혜연이나 양세희의 실력은 이미 여러 번 겪어봤으니 충분히 파악했다.

    하지만 아직 권혁찬과는 손발을 많이 맞춰보지 않아서 확신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권혁찬은 아직 제대로 된 힘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뭔가 스킬이 있다고 했는데, 아직까지 한 번도 쓰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굳이 스킬을 쓸 필요도 없었으니 당연했다.

    그리고 박승희는 더더욱 미지의 존재였다.

    아직 그녀와는 한 번도 함께 던전에 들어가 보지 않았다.

    그녀가 활을 쓰는 원거리 딜러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몰랐다.

    어쨌든 이제 서로에 대해 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그걸 얼마나 잘 파악하고 있느냐에 따라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느냐가 결정될 테니까.

    류지혜는 잠시 뜸을 들였다. 그리고 눈을 빛내며 일행을 둘러봤다.

    “우리…… 일단 한 번 몸을 맞춰볼까요?”

    그 말에 류혜연과 양세희가 멀뚱멀뚱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리고 권혁찬과 박승희는 살짝 귀를 붉혔다.

    네 사람의 반응을 확인한 류지혜가 자신이 한 말을 되씹고는 당황해 허둥지둥 설명을 덧붙였다.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간단하게 사냥 한 번 해보자는 거예요. 각자 발휘할 수 있는 스킬들도 마음껏 써보면서요.”

    그제야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의 눈이 반짝였다. 정말 기대감이 넘치는 팀이었다.

    그렇게 결정되었을 때, 문이 열리고 한 사람이 등장했다.

    현석이었다.

    “좋은 결정이다. 나도 같이 가지. 새로운 던전도 소개시켜줄 겸.”

    난데없이 등장해 말을 던진 현석을 바라보는 모두가 긴장한 표정으로 침을 꿀꺽 삼켰다.

    아무래도 설렁설렁 해보려는 마음은 얼른 지우는 게 나을 듯했다.

    * * *

    다들 황당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대체 이런 곳이 있다는 정보는 또 어떻게 얻었단 말인가.

    “대체…… 여긴 어떻게 발견한 거죠?”

    류지혜가 멍하니 현석을 바라보며 물었다. 물론 현석은 대답해주지 않았다.

    다들 놀라는 게 당연했다.

    지금 이곳은 알려지지 않은 던전 생성지역이었으니까.

    게다가 동굴 안이었다. 동굴조차 알려지지 않은 곳이었다. 이렇게나 규모가 큰데 말이다.

    상당히 깊은 동굴이었다. 입구는 좁았지만 안으로 들어갈수록 낮아지고 넓어졌다.

    동굴의 끝에는 호수라고 불려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넓은 연못이 있었다.

    그리고 그 연못 위에 검은 소용돌이들이 떠 있었다.

    모두 다섯 개의 블랙홀이 있었고, 연못 끝부분에 두 개의 화이트홀이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모르지만 여긴 투명 던전도 있는 곳이었다.

    두 화이트홀 사이에 투명 던전이 존재하는 특별한 던전 생성지역이었다.

    현석이 일행을 보며 말했다.

    “여기가 한국 최고의 포인트다.”

    다들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확실히 범상치 않아 보이는 장소였다.

    일단 블랙홀의 크기 자체가 달랐다.

    “아무리 봐도…… 최소 플래티넘 이상으로 보입니다만…….”

    게다가 블랙홀의 회전속도가 엄청나게 빨랐다. 다들 1등급이라는 뜻이다.

    현석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다들 퀸 등급이다.”

    “퀸이요?”

    모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킹 등급은 들어봤어도 퀸은 처음 듣는다.

    “다이아와 킹의 사이에 존재하는 등급이지. 귀한 등급이야. 딱 여기에만 있는 거니까.”

    현석의 말은 또 한 번 모두를 놀라게 했다.

    이곳에만 유일하게 존재하는 등급이라니. 그들의 시선이 이번엔 연못 끝에 있는 화이트홀로 향했다.

    “왠지…… 다른 화이트홀이랑도 좀 달라 보이는데, 제 착각인 거겠죠?”

    하지만 말을 하는 류지혜도 그게 착각이 아니라는 건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이곳의 화이트홀은 모양부터가 달랐다.

    다른 블랙홀이나 화이트홀은 원형에 가까운데 이곳의 화이트홀은 길쭉한 타원형이었다.

    “꼭…… 게임에 등장하는 포탈처럼 생겼네요.”

    그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플레이어들은 대부분 게임에 관심을 가진다.

    자신들이 하는 일 자체가 왠지 게임과 관계가 있는 것 같으니 당연했다.

    보통 거기에서 뭔가 영감을 얻거나 성장의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갖고 게임을 접하게 된다.

    그런 그들에게 저런 타원형 모양의 화이트홀은 참으로 익숙했다.

    “일단 당분간은 여기서 사냥을 진행한다. 화이트홀에는 들어가지 않는 걸 원칙으로 한다.”

    류지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그럴 생각은 없었다. 저 화이트홀이 풍기는 분위기는 정말로 위험스러웠다. 근처에 다가가기도 싫었다.

    현석은 가장 오른쪽에 있는 블랙홀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게 1번이다.”

    모두의 시선이 현석의 손가락을 따라 움직였다.

    현석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움직이며 블랙홀들을 하나하나 지정해 주었다.

    1번부터 5번까지. 그것이 클리어해야 할 던전의 순서였다.

    “저 순서로 던전을 클리어 하면 된다는 거죠? 그런데…… 과연 우리 수준으로 다이아보다 더 높은 등급의 던전을 클리어할 수 있을까요?”

    현석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불가능하다.”

    다들 어이없는 표정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그러니까 지금 불가능한 일을 당연하다는 듯이 시켰단 말 아닌가.

    “하나하나는 모자라지만 너희는 팀이다.”

    현석의 말에 다들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더없이 진지한 표정이 되었다.

    이내 류지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우리 팀이…… 과연 저 던전들을 클리어할 수 있을까요?”

    현석은 아까보다 더 단호하게 대답했다.

    “할 수 있다.”

    모두의 가슴이 세차게 뛰었다. 그들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자신의 동료들을 하나하나 둘러봤다.

    “첫 번째 던전은 내가 함께 들어가서 도와주지. 하지만 두 번째부터는 알아서 해야 한다.”

    다들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도 느낀 것이다. 이곳의 던전을 그들의 힘만으로 클리어할 수 없다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이대로 현석의 팀으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할게요. 할 수 있어요. 아니, 반드시 해낼 거예요.”

    류지혜가 한 자 한 자 다짐하듯 말했다. 그러자 나머지 사람들도 일제히 고개를 끄덕이며 동시에 말했다.

    “해낼 겁니다.”

    현석의 미소가 그제야 조금 만족스러워졌다. 이제야 제대로 함께 모험을 떠날 수 있을 만한 기초가 마련된 것 같았다.

    물론 이 던전들을 수없이 클리어하면서 레벨과 경험을 쌓아야겠지만 말이다.

    “그럼, 들어갈까?”

    현석이 먼저 연못으로 향했다. 그러자 류지혜가 그 뒤를 따랐다.

    나머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류지혜 뒤에서 나란히 서서 걸어갔다.

    막 연못 안으로 발을 들이려는 순간, 류지혜가 아차하는 표정으로 걸음을 멈췄다.

    “그런데 우리 팀 말이에요.”

    류지혜의 말에 현석도 걸음을 멈추고 돌아섰다.

    다들 궁금한 눈으로 류지혜와 현석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류지혜는 불러 놓고도 잠시 머뭇거렸다.

    “말해라.”

    현석의 재촉이 떨어지고 나서야 류지혜의 입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우리 팀도 이름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현석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말했다.

    “이미 지었는데?”

    “예? 전 못 들었는데요?”

    류지혜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녀는 동의를 구하는 듯 뒤돌아 동료들을 둘러봤다.

    나머지 사람들도 금시초문이라는 듯 동그래진 눈으로 현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양동욱이 말 안 해줬나보군.”

    현석은 별 거 아니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모두의 시선이 현석의 입에 집중되었다.

    “메인퀘스트.”

    “예?”

    “그게 팀 이름이라고요?”

    세상에 무슨 팀 이름이 메인퀘스트란 말인가. 이게 무슨 게임 속 세상도 아니고 말이다.

    현석은 눈을 빛내며 말했다.

    “결국 다들 이름 따라 가는 법이니까.”

    뭔가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 현석은 다시 돌아서서 연못 속으로 들어갔다.

    발로 일으키는 물소리가 모두의 귓가에 철벅철벅 들려왔다.

    < 팀 메인퀘스트 1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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