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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136화 (136/326)
  • < 금화 3 >

    추광열의 시선이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의 시선 끝에는 동전 하나가 있었다.

    그 동전은 빙글빙글 돌면서 허공에 떠올랐다가 다시 내려오는 걸 반복하는 중이었다.

    추광열은 한동안 동전에서 시선을 못 떼고 있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현석을 바라봤다.

    그제야 현석이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또 준비한 내기 있나?”

    “당연히 있지.”

    아직 두 가지나 더 준비한 게 있었다. 하지만 추광열은 선뜻 그걸 꺼내놓지 못했다.

    무조건 이길 수 있다고 여겼던 동전 던지기를 실패하는 바람에 자신감이 급격히 떨어졌다.

    그런 추광열을 본 현석이 피식 웃었다.

    “준비 철저히 해서 다시 붙든가.”

    현석의 도발에 추광열이 움찔했다. 그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좋아. 철저히 준비해서 한 번 붙어보자고.”

    추광열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사나운 기세가 무럭무럭 피어났다.

    “종목을 미리 정해. 붙을 날짜도 정하고. 뭘 걸 건지도 정해. 어디 한 번 박 터지게 싸워 보자.”

    현석은 빙긋 웃었다.

    “그래도 되겠어? 종목 미리 안 정했는데도 졌잖아. 정하고 하면 승산이 아예 없을 텐데?”

    “웃기지 마라.”

    추광열이 이를 갈며 현석을 노려봤다.

    “운이 아니라 진짜 실력으로 승부를 가리면 넌 무조건 진다. 네놈 따위가 날 이길 수 있을 거 같아?”

    현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치고, 그래서 무슨 종목으로 할 건데?”

    추광열이 이를 뿌득 갈았다. 현석의 말과 태도와 표정과 눈빛까지 모든 것이 다 짜증을 유발했다. 기분이 끝없이 바닥으로 추락했다.

    이러다가 무기를 뽑아 힘으로 해결해 버릴 것 같았다. 아까부터 계속 그런 충동을 억누르느라 눈가에 실핏줄이 터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래선 안 된다. 힘을 쓸 땐 쓰더라도 처절한 절망감을 맛보여줘야만 한다.

    “단검 던지기 같은 건 어때?”

    현석의 제안에 추광열이 눈을 번득이며 노려봤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나쁠 것 같지 않았다.

    사실 단검 던지기는 추광열도 제법 하는 편이었다. 현석이 아무리 단검던지기를 잘한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적당한 시간만 주어지면 무조건 압도할 자신이 있었다.

    “단검은 누가 준비하는 걸로 하지?”

    “당연히 각자 해야지. 어떤 단검을 준비하느냐도 실력 아닌가?”

    추광열이 씨익 웃었다.

    “그 말은 마음에 드는군.”

    종목이 정해지자 추광열의 태도가 한껏 느긋해졌다.

    “단검이라고 막연하게 정하지 말고 더 세밀하고 정확하게 정해야 하지 않겠어? 나중에 사실은 단검 세우기였다느니 하면 웃기잖아. 안 그래?”

    “정확도와 힘으로 하지. 얼마나 많은 힘을 담아서 멀리, 그리고 정확히 던지느냐로 결정하면 될 것 같은데. 괜찮지?”

    “반가운 소리군. 난 또 꼼수나 부리려는 줄 알고 비웃고 있었는데 말이야.”

    현석은 속을 살살 긁어대는 추광열의 말에도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뭘 걸지나 정하는 게 어때?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하고.”

    현석이 마음대로 하라는 듯 담담히 말하자, 추광열이 한동안 음산한 웃음을 흘렸다.

    “큭큭큭큭큭.”

    마치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남자라면 올인이지. 다 걸어라. 네가 걸 수 있는 걸 다 걸어. 몽땅 받아주마.”

    현석이 피식 웃었다.

    “일단 내기로 얻은 두 개는 걸어야겠지?”

    현석은 그렇게 말하며 손가락으로 팔찌를 빙글빙글 돌렸다. 손가락 위에는 금화가 팽이처럼 팽그르르 돌았다.

    그걸 본 추광열이 또 이를 갈았다. 평정심을 잃지 않으려 애쓰고 있지만, 저 두 개를 본 순간 그게 살짝 흔들렸다.

    “이 두 개에 걸맞은 물건을 먼저 걸고 얘기를 진행하는 게 어때?”

    현석의 말에 추광열이 잠시 심호흡을 통해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품에서 뭔가를 꺼내 보여줬다.

    반지 모양의 아티팩트였다. 반지에 문양이 가득 새겨져 있었는데, 그 문양의 중심에 금화에 새겨져 있던 것과 똑같은 그림이 있었다.

    그걸 본 현석의 눈이 반짝였다.

    [세 번째 증표]

    드디어 세 번째 증표가 나타난 것이다.

    “내가 네놈이랑 내기하려고 이걸 얻어왔다. 아마 그 팔찌만큼의 가치는 있을 거다. 같이 얻은 거니까.”

    이 아티팩트는 블랙홀에서 얻은 물건이 아니었다.

    화이트홀에서 우연히 얻은 물건이었다.

    당시 그 화이트홀에 함께 갔던 사람이 바로 세계 제일의 플레이어인 라이언이었다.

    그때 팔찌와 반지를 얻었는데, 반지는 라이언이 가지고 팔찌는 추광열이 가졌다.

    라이언 역시 반지의 가치를 확인하는 데 실패했기에 선뜻 그것을 추광열에게 넘겼다.

    물론 추광열은 그것을 얻기 위해 제법 큰 대가를 지불했고 말이다.

    “어때? 네놈이 그때 했던 말 때문에 내가 얻어뒀다. 왠지…… 네놈은 이 물건의 가치를 알고 있는 것 같아서 말이야.”

    현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다. 하지만 아주 잘 아는 건 아니었다. 아직 이 증표가 말하는 물음표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했다. 또한 이 증표에 담긴 스킬들이 제 위력을 발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가치는 정말 대단할 거라고 믿었다.

    어쨌든 추광열은 현석의 태도를 유심히 살피다가 눈을 번득였다. 역시 예상대로였다.

    ‘저놈…… 분명히 뭔가 비밀이 있어.’

    추광열은 그렇게 생각하며 라이언과 함께 갔던 화이트홀을 떠올렸다.

    그 화이트홀은 정말로 위험한 곳이었다.

    던전 생성지역에 있던 화이트홀이 아니라, 따로 떨어져 있는 개별 던전이었다.

    개별로 존재하는 블랙홀이 제법 위험하다는 건 알지만 화이트홀은 처음이었기에 호기심이 있었다.

    그리고 그 호기심의 대가로 정말 죽을 고생을 했다.

    그 화이트홀은 당분간 가지 않기로 했다. 훨씬 더 성장한 이후에 들어가기로 라이언과 약속하고 장소를 봉인해 두었다.

    한데 현석을 보고 있으니 왠지 그 화이트홀에 데리고 들어가 봐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 그럼 넌 이 물건들의 정보를 걸어. 난 이걸 걸지.”

    추광열은 품에서 무언가를 하나 더 꺼냈다. 그것 역시 그가 화이트홀에서 얻은 물건이었다.

    추광열이 꺼낸 것은 핏빛 단검이었다.

    [???의 단검]

    현석의 눈이 살짝 커졌다. 또 물음표가 나왔다. 이번 물음표는 증표들에 붙어 있는 물음표와는 좀 다른 느낌이었다.

    ‘실제로도 달라. 물음표가 세 개뿐이니까.’

    물론 물음표가 세 개라고 해서 꼭 세 글자일 리는 없다. 현석의 느낌에 저건 그저 구분에 불과했다. 다른 단어라는 의미였다.

    현석은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아티팩트의 정보를 확인했다.

    [???의 의지가 깃든 단검. 알 수 없는 이유에 의해 의지가 봉인되어 있다. 봉인이 풀린 순간 ???의 의지가 세상에 내려앉을 것이다.]

    마치 자신에게 상황을 설명하는 듯한 정보였다. 대체 저 ???가 뭘까?

    알 수 없는 이유에 의해 봉인되었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현석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어쨌든…… 저건 무조건 내가 갖고 있어야 될 것 같아.’

    나중에 저것이 어떤 큰 의미로 다가올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현석은 추광열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추광열은 그런 현석을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왠지 지금 뭔가 거대한 그림자를 마주한 듯한 느낌이 아주 잠깐 들었다.

    ‘이거…… 내가 실수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현석과 얽힌 이후 처음으로 불안감이라는 것이 마음에 스며들었다.

    그래서 추광열은 딱 여기까지만 했다. 왠지 더 걸면 진짜 다 털릴 것만 같은 두려움이 들었다.

    ‘다음은 내기가 끝난 후에 계속하면 되겠지.’

    내기를 한 번에 끝낼 생각은 없었다. 이번엔 이것만 걸고, 그 다음 내기에 잔뜩 걸면 되지 않겠는가.

    “여기까지만 하고 언제 할지나 정하는 게 어때?”

    추광열이 한 발 물러나자, 현석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빙긋 웃었다.

    “그럼 그렇게 하든지.”

    추광열은 현석의 말투에 순간 울컥할 뻔했지만 꾹 눌러 참는데 성공했다.

    욱해서 막 나가봐야 자기만 손해일 것 같은 생각이 든 것이다.

    “정확히 열흘 후…… 아니, 보름 후에…… 내가 연락하지.”

    추광열의 말에 현석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을 내밀었다.

    “뭐? 어쩌라고?”

    추광열이 눈살을 찌푸리며 묻자, 현석이 한 마디 던졌다.

    “핸드폰.”

    추광열은 머쓱한 표정으로 품에서 핸드폰을 꺼내 던졌다. 현석은 그것을 받아 전화번호 하나를 찍은 다음 통화 버튼을 눌렀다.

    주머니에서 벨소리가 들려왔다.

    현석은 전화를 끊은 다음 추광열에게 다시 휙 던졌다.

    추광열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것을 받아 챙긴 다음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인상을 팍 썼다.

    생각해보니 추경훈이 버스를 타고 가 버렸다. 그리고 여긴 도로 한가운데이고, 최소한 차를 탈 수 있을 만한 곳으로 가려면 한참 동안 걸어야 한다.

    추광열이 다시 몸을 돌려 현석을 바라봤다.

    “혹시 차 가져왔나?”

    현석은 피식 웃으며 전화기를 꺼냈다.

    “준비성 없이 설렁설렁 사는군.”

    추광열이 울컥해서 혼자 가겠다고 소리치려다가 참았다.

    어쨌든 편히 가면 좋지 않은가.

    ‘이거…… 왠지 이미지가 무너지는 것 같아.’

    추광열은 입을 꾹 다물었다. 앞으로 절대 말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 모든 것이 아까 든 그 묘한 느낌 때문이었다.

    질 것 같은 불안감 말이다.

    잠시 후, 현석의 차가 도착했다. 안 그래도 근처에서 대기 중이었기에 몇 분 걸리지도 않았다.

    그걸 본 추광열의 얼굴이 또 한 번 구겨졌다.

    “준비성 철저해서 좋겠어.”

    그 말을 하고 현석의 담담한 얼굴을 본 추광열은 말하지 말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자신은 과묵할 때 가장 빛난다고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이번에는 말이다.

    * * *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현석은 금화를 손에 들고 유심히 살폈다.

    옆에 앉은 추광열이 연신 힐끗거리며 뭘 하는지 궁금해 했지만 신경 쓰지 않고 금화에만 집중했다.

    설명만 보면 그냥 기념주화 같은 거였다.

    ‘왜 23개를 만들었지?’

    보통 사람은 딱 떨어지는 수를 선호한다. 사실 그건 이 제국이라는 곳도 다르지 않은 듯했다.

    한데 이 기념주화만 왜 23개일까?

    답을 예상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23세에 황제가 되었을 것이다.

    하면 왜 특별한 마력패턴을 새겨 넣었을까?

    현석은 그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금화에 새겨진 마력패턴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금화에 켈리움을 이용해 마력패턴을 새긴 방식이 정말 특이하면서 대단했다.

    마력패턴은 금화 내부에 새겨져 있었다.

    애초에 처음 주조할 때, 자연스럽게 내부에 켈리움을 통한 마력패턴이 형성되도록 만든 것이다.

    현석은 왠지 어떤 방법을 이용해서 만들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정답은 마력이었다.

    마력을 컨트롤해서 녹은 켈리움의 모양을 유지시킨 것이다. 녹은 금이 금화 모양으로 굳을 때까지 마력으로 켈리움의 모양을 꽉 붙잡으면 이렇게 만들 수 있다.

    현석은 이 마력패턴의 목적을 알아냈다.

    ‘그냥 구분하기 위한 거야.’

    아주 단순했다. 이 마력패턴에는 글자가 숨겨져 있었다. 황제 카두스라는 글자가 말이다. 게다가 숫자도 함께 있었다. 17이라는 숫자가.

    즉, 금화 표면에 있는 그림과 숫자를 마력패턴으로 한 번 더 새겨놓은 것이다. 그것도 아주 대단한 방법을 이용해서 말이다.

    말이 마력 컨트롤로 켈리움을 붙잡는 거지, 금화가 다 식어서 굳을 때까지 조금도 움직이지 않은 채 켈리움을 붙잡고 있는 것이 쉬울 리 없었다.

    아마 이 작업을 맡은 사람은 대단한 마력 컨트롤 능력을 갖고 있을 것이고, 이 하나의 금화를 만듦과 동시에 탈진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한데 이런 쓸모도 없는 패턴을 새겨 넣다니.

    현석은 그래서 이 금화가 더 중요하게 여겨졌다. 그리고 계속되는 끌림이 느껴졌다.

    처음 금화를 봤을 때부터 저건 무조건 얻어야 한다는 생각이 어찌나 강렬하게 들었는지 그게 표정과 눈빛으로 드러날 정도였다.

    ‘분명히…… 언젠가 쓸 일이 있을 거야. 틀림없이!’

    현석은 그렇게 확신했다.

    어느새 서울에 들어섰다.

    ‘사신 길드는 어떻게 됐을까?’

    사실 알아볼 필요도 없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풀려나가고 있었다.

    아마 렉스턴 에너지는 당분간 한국에서 손을 뗄 가능성이 높았다.

    사신 길드를 마지막으로 자신들이 직접 컨트롤 할 수 있는 큰 조직을 만드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려면 너무나 많은 시간과 노력과 돈과 인력이 필요하니까.

    두 번의 실패면 충분했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눈과 귀는 꾸준히 열어 놓을 것이다. 그저 앞으로 쓸데없는 수작을 부릴 일이 줄어들었을 뿐이다.

    어쨌든 모든 것이 계획 대로였다.

    < 금화 3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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