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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134화 (134/326)
  • < 금화 1 >

    현석은 목적지를 향해 빠르게 이동했다. 물론 달려가는 건 아니었다.

    아직 면허를 못 땄기에 운전수의 도움을 받아 도로를 질주했다.

    “이거…… 왠지 오랜만인 것 같지 않습니까?”

    운전수는 기분 좋게 웃으며 룸미러를 통해 현석을 힐끗 쳐다봤다.

    현석은 뒷자리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는데, 머릿속은 복잡하게 움직이는 중이었다.

    현석의 차를 운전하는 사람은 예전 K나이츠 길드를 상대할 때 함께 있었던 그 사람이었다.

    그는 오랜만에 현석과 함께 움직이게 되어 상당히 고무되어 있었다.

    예전 K나이츠와 싸울 때의 경험은 정말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왠지 오늘 그런 느낌을 한 번 더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그런데…… 오늘은 장소가 왠지 좀 애매하군요.”

    운전수는 말 내용과 어울리지 않게 씨익 웃고 있었다. 일단 네비게이션에 장소를 찍고 가긴 하지만 도착지를 보면 그냥 길 중간이었다.

    사실 예전 K나이츠 길드와 싸울 때도 그랬다. 물론 그땐는 명확한 목적지가 있었지만 중간에 길을 바꾸면서 결국은 이런 애매한 장소로 가서 싸웠다.

    한데 이번에는 아예 처음부터 애매한 장소로 가는 것이다. 그러니 기대감이 한껏 고조될 수밖에 없었다.

    현석은 운전수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추광열을 어떻게 처리할지 가는 동안 결정해야만 한다.

    양동욱에게 말하기는 내기를 통해 해결한다고 했지만, 사실 여차하면 힘을 써도 된다.

    추광열이 비록 120레벨이 넘었다고 하지만, 현석에게는 안 된다.

    현석의 레벨은 벌써 133이었다.

    이번에 권혁찬과 함께 다녀온 마계 원정이 정말로 컸다. 그 원정에서 권혁찬도 엄청난 레벨업을 했지만, 현석에게 비할 바가 아니었다.

    이번에 다녀온 마계에서는 대부분의 마수와 마족을 현석이 처리했다.

    게다가 권혁찬이 죽지 않도록 애쓰면서 싸워야 했기에 훨씬 위험했다.

    위험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성장률도 높은 법이다.

    133레벨이었지만 보유 스탯은 150레벨을 능가할 정도였다. 거기에 새로운 타이틀까지 얻었다.

    [마족사냥꾼-500개체 이상의 마족과 1000개체 이상의 마수를 사냥했을 때 얻을 수 있는 호칭. 격이 높은 마족들이 주는 위압감에 저항할 수 있다. 힘+15, 민첩+15, 체력+5]

    이런 대단한 타이틀까지 추가로 얻었으니 추광열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현석을 당해낼 수 있을 리 없었다.

    사실 현석은 슬슬 레벨업의 정체기에 들어섰다.

    이제는 웬만한 수준의 던전으로는 레벨업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강한 던전에 들어가도 웬만한 수준의 마수를 잡아서는 레벨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현석이 빠른 레벨업을 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마계를 정벌해야만 한다.

    그리고 아주 등급이 높은 던전을 클리어 해야만 한다.

    어쨌든 현석이 제대로 마음만 먹으면 추광열 정도 처리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추광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추경훈과 그 일당들에게 걸린 정신적 종속이 깨질 위험이 있었다.

    추경훈과 그 일당은 간단히 처리해선 안 될 놈들이었다. 써먹을 수 있을 만큼 써먹을 생각이었다.

    ‘아마…… 이번이 마지막이 되겠지.’

    이번에 써먹고 나면 아마 다시 써먹기 어려워질 것이다. 이번 일이 끝나면 그들도 끝날 테니까. 생명이 끝나든, 아니면 플레이어로서의 삶이 끝나든.

    계속 말을 걸던 운전수도 현석의 분위기가 왠지 심상치 않아 보이자 결국 입을 다물고 운전에 집중했다.

    덕분에 예상했던 시간보다 좀 더 일찍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제 어떻게 할까요?”

    운전수의 물음에 현석이 차에서 내리며 말했다.

    “돌아가.”

    “예? 돌아가라고요? 그럼 나중에 어떻게 가시려고…….”

    “필요하면 부르지. 여기 있으면 위험하다.”

    운전수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현석의 말을 들어야만 한다.

    자신이 죽고 사는 거야 그렇다 치고, 혹여 방해라도 되서 현석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정말 큰일이다.

    그러니 지금은 시키는 대로 물러나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럼…… 일단 가까운 마을에 가 있겠습니다. 일 끝나시면 바로 연락 주십시오.”

    운전수는 그렇게 말하고 차를 출발시켰다.

    현석은 멀어져가는 차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근처에 있는 넓적한 바위에 앉았다.

    이제 남은 건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그들은 반드시 이 도로를 지나갈 것이다.

    차를 타고 이동할 놈들을 세우는 것도 일이었다. 물론 방법이야 많았지만 말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 * *

    도로를 커다란 버스 한 대가 달려가고 있었다. 상당히 크고 화려한 최고급 버스였는데, 그 안에는 추경훈과 그 일당이 타고 있었다.

    추경훈은 버스 가장 앞자리에 거의 눕다시피 앉았는데,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나머지 50명의 플레이어들은 각자의 자리에 각 잡고 앉아서 눈을 감고 있었다.

    그들은 여전히 정신적 문제에 시달리고 있었다.

    예전 그 일 이후 그들의 상태는 점점 더 안 좋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로인해 성장은 훨씬 빨랐다.

    어젯밤, 마지막으로 던전을 클리어했는데, 그때 모든 플레이어가 레벨 100의 벽을 넘어섰다.

    100레벨의 플레이어가 50명이나 된다. 이건 절대 무시 못 할 전력이었다.

    웬만한 중소 길드 정도는 이들만으로 단숨에 박살 낼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번 일은 제법 위험했다. 물론 추경훈은 자신 있었다.

    문제는 싸움이 아니라 은폐였다.

    이번 싸움은 결과만 알려져야 한다. 그나마 소문에 의해 은밀하게 알려져야 한다.

    자신들이 천외천의 수뇌부를 습격한다는 사실 자체가 아예 알려져선 안 된다는 뜻이다. 즉, 목격자가 없어야 한다.

    추경훈은 뒤를 힐끗 돌아봤다. 미동도 않고 정자세로 앉아 있는 50명의 플레이어가 보였다.

    “정말…… 골치가 지끈거리는군.”

    저들은 그날 이후 많이 달라졌다. 일단 싸움이 시작되면 다들 광기에 빠진다.

    아마 천외천 길드의 수뇌부는 단 한 명도 온전히 죽지 못할 것이다.

    추경훈은 그래도 좀 나은 편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역시 싸우다보면 광기에 젖어들곤 한다. 물론 다른 플레이어들보다는 훨씬 덜한 편이었지만.

    어쨌든 그런 잔혹한 싸움이 외부로 알려져선 안 된다. 그러니 목격자 관리가 중요했다.

    추경훈은 여기서 주저앉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든 모두 극복하고 세상을 주무르는 자들과 함께할 것이다.

    ‘레벨을 더 올리면 어떻게든 될 것 같긴 해.’

    지금 추경훈이 가진 유일한 희망이 바로 그것이었다. 레벨을 더 올리면 왠지 이런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의 그런 예감이 아주 틀린 건 아니었다.

    추경훈 일당에게 쓴 마족의 알은 현석의 마력에 물들어 있었다.

    그러니 현석보다 레벨이 높아지면 거기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생긴다.

    물론 현석보다 더 높은 레벨이 되려면 그냥 죽을 고생만으로는 불가능하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렇게 생각에 잠긴 추경훈 옆으로 추광열이 다가왔다.

    “30분쯤 남은 것 같으니 준비해라.”

    추광열의 말에 추경훈은 상념에서 벗어나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슬슬 준비하겠습니다.”

    추경훈의 대답을 들은 추광열은 자리로 돌아가려다가 멈칫하고는 버스 앞 창문을 노려봤다.

    “왜 그러십니까?”

    “아무래도…… 버스를 멈춰야 할 것 같다.”

    “예?”

    “위험해. 누군가 이 버스를 노리고 있다.”

    물론 다들 100레벨이 넘는 플레이어이니만큼 버스가 전복되더라도 다치지 않고 살아나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굳이 그런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추광열은 버스 운전기사에게 멈추라고 지시를 내렸다. 그러자 버스가 천천히 속도를 줄이더니 멈춰 섰다.

    “다들 내려. 일단 버스를 지키는 게 중요하다. 거기까지 걸어갈 수는 없잖아.”

    추광열은 그렇게 말하고 버스에서 내렸다. 그러자 추경훈은 영문도 모른 채 추광열을 따라서 내렸다.

    그 뒤로 50명의 플레이어가 반 쯤 기계적인 움직임으로 버스에서 내렸다.

    모든 사람이 내리자, 버스가 천천히 뒤로 이동했다. 차가 별로 다니지 않는 도로라서 그냥 후진해도 별 문제는 없었다.

    그렇게 버스가 좀 떨어지자, 추광열이 어딘가를 노려보며 말했다.

    “슬슬 나오는 게 어때? 불러놓고 그냥 도망칠 생각은 아니겠지?”

    그러자 멀찍이 떨어진 나무 뒤에서 현석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현석을 본 추광열의 눈이 빛났다. 대번에 알아본 것이다. 자신을 내기에서 이긴 사람이니 추광열이 잊을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리고 추경훈은 추광열과는 다른 의미로 눈을 빛냈다.

    “네놈이 왜 여기 있는 거지?”

    추경훈은 갑자기 예전에 현석에게 협박을 당해 던전관리센터의 창고들을 순회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잊을만하면 연락을 해서 지역마다 돌아다니며 창고를 뒤졌는데, 생각할수록 분노가 치밀었다.

    게다가 동영상이 있다고 속이기까지 했다. 없는 증거를 들먹여 자신을 협박했으니 얼마나 짜증이 나겠는가.

    물론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자신에게도 잘못이 있고, 그런 엄청난 일을 저지른 대가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좀 편해지는 데 도움이 되긴 했지만 말이다.

    추경훈은 현석을 노려보며 천천히 다가갔다. 그 뒤로 50명의 플레이어들이 서서히 진형을 넓히며 따라갔다. 현석을 넓게 포위할 생각이었다.

    추경훈이 정상적인 상태였다면 자신이 현석에게 그런 식으로 속고 나서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걸 이상하게 여겼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추경훈은 그럴 정신이 없었다. 마족의 알이 가진 향기를 진하게 풍기는 현석이 바로 지척에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추경훈을 따르는 50인의 플레이어 역시 평소보다 상태가 더 안 좋았다. 그들의 눈빛에 광기가 떠오르고 있었다.

    일촉즉발의 순간, 커다란 외침이 장내의 모든 움직임을 멈추게 만들었다.

    “그만!”

    추광열이었다.

    아낌없이 마력을 뿜어내는 추광열의 기세는 엄청났다. 순간적으로 추경훈을 비롯한 50인의 플레이어들의 눈에 떠올랐던 광기가 사라질 정도였다.

    물론 사라졌던 광기는 금세 다시 차올랐다. 고작 그 정도로 광기를 죽이기엔 현석이 풍기는 마력의 향기가 너무 짙었다.

    현석의 레벨이 추광열보다 훨씬 높기에 추광열이 아무리 열심히 마력을 뿜어내도 그 위력이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추광열에게는 그 정도면 충분했다. 아니, 그 뒤의 일은 관심도 없었다. 그가 원한 건, 모두의 움직임을 멈추고 자신이 현석 앞에 서는 것이었으니까.

    현석 앞에 선 추광열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노려보며 말했다.

    “이거…… 오랜만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반갑다고 해야 하나? 애써 날 찾아온 거 맞지?”

    현석은 대답 대신 추광열을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했다.

    “설마 우연히 만난 거라고 말하진 않겠지? 나한테 그렇게나 열심히 신호를 보냈는데 말이야.”

    사실 신호를 보낸 건 굳이 추광열에게만 한 게 아니었다. 버스 전체에 보낸 신호였는데, 그걸 추광열만 알아차린 것뿐이었다.

    사실 버스가 조금 더 다가왔으면 추경훈도 충분히 그 신호를 알아차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굳이 오해를 풀어줄 이유는 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런 오해를 가지면 앞으로 일을 진행하기가 훨씬 수월해진다.

    추광열이 품에서 동전 하나를 꺼냈다.

    “그림? 숫자?”

    그렇게 말하는 추광열의 입가가 길게 찢어졌다. 이 설욕을 위해 그동안 몇 가지 내기를 항상 준비하고 다녔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었다.

    그가 꺼낸 동전은 그냥 평범한 동전이 아니었다. 던전에서 얻은 귀한 동전이었다.

    이 동전은 마력에 정말로 민감했다.

    그걸 알아낸 추광열은 자신의 마력을 이용해 동전의 앞뒤를 마음대로 뒤집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연습을 거듭했다.

    그건 그의 마력 컨트롤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물론 그래봐야 현석이 하고 다니는 것에 비하면 태양 앞의 반딧불이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걸 이용해 이번 내기를 단숨에 이길 거라 자신했다.

    동전의 한쪽 면에는 사람 얼굴이 그려져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17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현석의 심안이 자동으로 동전의 이름과 정보를 읽었다.

    [칸두스 금화-황제 칸두스의 대관식을 기념해 만든 23개 중 17번째 금화. 황금과 켈리움을 50:50으로 섞어 만들었다. 마력전도율이 높은 켈리움을 이용해 금화 내부에 특별한 마력패턴을 새겼다.]

    현석은 그걸 보자마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저건 반드시 얻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데 지난번 증표도 그렇고 대체 추광열은 저런 물건을 어디서 구하는 거지?’

    현석은 투명던전에 마계까지 드나드는데도 저런 특별한 물건을 얻은 기억이 많지 않았다.

    한데 추광열은 저런 걸 벌써 두 개나 갖고 있으니 신기하지 않은가.

    “먼저 뭘 걸 건지부터 말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렇게 말하는 현석의 시선이 온통 금화에 꽂혀 있었다. 추광열이 씨익 웃으며 금화를 연신 위로 튕겼다가 받았다.

    내기 물건은 정해졌다.

    < 금화 1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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